금수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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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야모토 테루의 전작 '환상의 빛'에서는 첫 아기가 태어난지 세 달 밖에 되지 않은 남편이, 술도 도박도 여자관계도 없는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자살을 한다. 남겨진 부인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왜 그랬을까? 사실은 뭔가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혹은 부담감이 극에 달하며 무게를 던져 버리고 싶었을까. 온갖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늘 써보지만 답은 구할 수 없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을 말한다. 


아아 당신은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었구나. 이유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당신은 그저 죽고 싶었을 뿐이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저는 뒤를 쫓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순식간에 멀어져 갔습니다. (P.60)

답을 구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삶. 혼자서 답안을 작성하고 스스로 채점해야 하는 여정. 그것은 그 과정 자체가 고통이고 징벌이다. 가쓰누마 아키는 이혼한 지 10년 된 남편 아리마를 우연히 만난다. 그녀는 이미 재혼한 상태였고, 그녀 옆에는 선천성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었다. 그녀는 10년 동안 묵어두었던 이야기를 편지로 쓰기 시작한다. 10년 동안 혼자 묻고 답해왔던 질문들을 조심스레 편지지에 옮겨본다. 왜 전남편 아리마는 호스티스 세오 유카코와 여관에서 자고 있었을까. 왜 그녀는 남편을 죽이고 자살을 했을까. 거기에서 가까스로 남은 남편은 왜 나에게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을까. 길고 긴, 말하자면 10년의 사연을 담아서 그녀는 아리마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열네번의 편지가 오가는 동안 그도 그녀도 모든 것이 어그러진 서로의 삶을 생각하며 많이도 울게 될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어쩌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주 불가사의한 것을 모차르트의 음악이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p.86)

삶과 죽음이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몇 번 나온다. 그 중 첫번째가 아리마와 유카타가 동반자살할 때 한 명이 죽고 나머지가 살아난 순간이고, 다음은 고양이가 쥐를 잡아 먹는 장면이 있고, 레이코의 할머니와 죽은 네 아들의 이야기가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결국 삶과 죽음은 같은 세계에서 하나가 사라진 후에야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존재하면서 거대한 세계의 법칙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마는 병원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비현실적인 경험을 하는 동안 그 둘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 공존하는 것인지, 그리하여 스스로가 만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적어도 그가 전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삶과 죽음이 어쩌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글귀를 이전에 한번 더 본적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이다.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상실의 시대 p.71, 문학사상사)

그것은 진리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의 말미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만다.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떠한 진리도 어떠한 성실함도 어떠한 강함도 어떠한 부르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실의 시대 p 440)

아무리 완벽한 이성적인 결론으로도 답을 구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삶에는 너무도 많다. 아리마는 더이상 그러하지 않아야 했으므로 아키를 떠났고, 아키 또한 더이상 같이 할 자신이 없어서 헤어졌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후회하고 있다. 세상의 그 어떤 진리도 인간의 감정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업보 


사전에는 '선악의 행업으로 말미암은 과보'라고 설명되어 있는 '업보'라는 단어가 소설에서 수차례 등장한다. 아리마는 편지에 "업보는 악과 선의 결정과 어딘가에서 연결되어 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키 또한 그것이 그녀가 살아온 지금 모습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유카타, 아키, 아리마의 삶을 지배하는 관념은 그 단어일 것이다. 맨 처음 이 단어를 떠올린 것은 아리마인데, 14살의 어느 겨울 우연히 유카타와 방에서 같이 있던 추억에서이다. 그녀는 그의 볼을 잡고 차분한 동작으로 이마를 들이밀고 뽀뽀를 한다. 그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쩌면 그것이 그녀의 훗날을 좌우하게 될 업보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아키에게 '업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대상은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 기요타카이다. 그녀는 그것이 그녀의 업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바람만 피우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런 사고가 없었다면, 둘이 살았었다면 장애를 가진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생각한다. 미리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지금'을 잊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들은 단지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구나. 어떠한 답도 바란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겠지. 의외로 많은 말들이 답답한 심장을 빠져나오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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