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물고기
김지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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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무서운 괴기 영화를 보고 나면 온 몸이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끝나고 나오면 머리가 무겁고 온 몸이 아플 때가 있다. 이 작품을 읽을 때도 그랬다. 온몸을 긴장시키는 일상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지는 지독히도 저급한 생의 일탈의 모습, 그런 생을 작가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통장을 채우듯 채우는 인물들을 그려냈다.

읽는 내내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삶의 모습이고 일상인데 너무나 불편해서 차라리 그 모습 앞에서 눈을 가리고 싶었다. 읽고 나니 <복수는 나의 것>을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뭔가 벌어질 것 같은 공포감, 기다리는 동안의 긴장감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잔인한 장면들… 칼을 든 장면이 계속 나올 때는 ‘차라리 휘둘러라’ 싶다가도 막상 ‘스~윽샥’ 긋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끼치면서 구역질이 나는 그런 느낌…
 
김지현의 작품에서는 삶 자체가 더럽다. 정말 지독히도 더럽다. 우리의 일상은 악취가 풍기고 ‘피냄새와 간장의 고린내’가 나고 시어머니는 ‘치마 속을 들여다 보고’ 다리 모델을 하는 며느리의 ‘새끼발톱은 납빛으로 죽어있었고 그 주위에 피가 흥건하다. 죽은 발톱은 살에 박힌 듯, 꼼짝도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게다가 ‘서른 중반을 넘어선 소녀’란 또 뭐람? 동사무소 여자는 ‘비린내가 풍기는 칼날’로 사과를 깎는다. ‘술병을 품에 끼고 잠든 어머니에게서는 쓰고 비릿한 악취가 풍겼다. (...) 버섯에 둘러싸인 어머니 몸뚱이에서는 월경의 비린 피냄새가 풍겼고, 어머니는 아직도 성장중인 자궁을 지닌 것 같았다.’ ‘고막이 찢어지고 달팽이관이 파괴된 사내의 왼쪽 귓속은, 늘 축축하고 악취가 풍기고 헐어 있었다.’ 곰을 안고 베고 자던 내가 기어가서 ‘싱크대 속을 들여다본 순간, 나는 욕지기를 참지 못한다. 라면봉지, 달걀 껍질, 병뚜껑, 밥알등이 싱크대 속 뿌연 물에 둥둥 떠 있다. 집 안을 떠도는 악취가 싱크대 구멍이 막혔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멧돼지 이야기> <사각거울> <털> <초대> <나무구멍> <플라스틱 물고기> <고무공> <인형의 집> <미행> 등 아홉 편의 단편들이 하나같이 악취를 풍기는 일상이다.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보면 어찌 하나 같이 그렇게 재벌 총수의 아들 딸 들은 많은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어찌 그렇게 하나 같이 다들 그렇게 구질구질한 삶에 찌들었는지… 그런 텔레비전 드라마나 이 작품이나 불편하긴 내게 마찬가지다. 그래도 플라스틱 붕어들을 열대어들과 함께 기르면서(!) 기뻐하는 여자처럼 이 삶에도 어디엔가 기쁨이 있겠지…  
 
‘여자는 열대어들과 함께, 지난날 횟집에서 얻었던 플라스틱 붕어들도 어항에 넣었다. 어항 밑바닥에서 꾸준히 올라오는 기포가, 플라스틱 붕어들을 물 아래로 잡아끌었다. 여자는 플라스틱 붕어가 물 위로 떠오르지 않자 아이처럼 기뻐했다.’ 

다 읽고 나서 작가의 말을 읽고 나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될 듯도 하다, 이 작품… “일상과 이탈, 관습과 반항, 예의와 독설 사이에 놓인 그 작두날 같은 경계 위를 걷다, 곧잘 휘청거린다.” 그 작두날에 베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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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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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깔깔, 낄낄낄낄, 크하하하, 흐흐흐흐, 쿠쿠쿠쿠, 헤헤헤헤…

이게 뭔 소리냐고? 그게 말이지, 이 작품, <완득이>를 읽는 동안 내가 내내 낸 소리라지. 나도 모르게 입이 헤벌쭉 벌어지고 온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눈에는 간혹 눈물방울이 맺히고 가슴은 따스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그래 뭐, 쫌 오바들 하더라. 설정도 좀 있더라만은 그래도 이렇게 즐겁고 재미난 작품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도대체 저 작가, 누군데 이렇게 재미난 작품을 써낸 거냐고.

무슨 애가 그렇게 성격이 좋냐, 완득아. 물론 뭐, 교회에 가서 열심히 똥주 둑여달라고 기도를 하긴 하더라만, 막상 둑을까봐 겁냈잖아. 따져보면 즐거울 거 하나 없는 게 완득이네 삶이다. 키가 너무 작은 아버지는 난쟁이 취급을 받고 게다가 카바레에서 춤이나 추는 춤꾼이다. 삼촌이란 건 겉모습은 멀쩡해갖고 도도도도… 말이나 더듬는 반푼이다. 이렇게 막말한다고 뭐라 하지 마시라. 현실을 얘기한 거니까. 게다가 선생 같지도 않은 담임 똥주는 옥탑방 이웃사촌 완득이네를 기초수급 생활자로 만들어놓고 만날 라면 던져라, 호박죽 던져라 한다. 또 십여 년 전에 집을 나간 ‘저짝 사람’ 엄마는 또 뭐냐고. 또 있다. 성인 만화 주인공이 된 공부 1등 정윤하와 사귀는 건 또 뭐냐고.

그래도, 그래도 이 작품, 너무 재밌다. 눈물 나도록 즐겁다. 미친 사람 취급받아도 좋도록 행복해진다. 독특한 구성의 완득이네 식구, 선생 같지 않은 사회선생 똥주, 밤낮 씨불거리는 앞집 아저씨 모두 즐겁다. 현실은 생각해보면 꿀꿀하기 그지없지만 이들은 그들의 현실을 꿀꿀하게 살지 않는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 어긋날 듯 어긋날 듯 굴지만 그저 교회 같지 않은 교회에서 똥주 둑여달라고 기도하는 게 다인 착한 완득이. 그래, 공부 안 하면 어떠냐. 새끼 조폭 대신 킥복싱 하면서 엄청 깨지고 TKO 당하면 어때? 언젠간 몇 배로 갚아줄 건데 말이야.

하지만 완득이, 무작정 착하고 무작정 참기만 하는 건 아니다. 말도 별로 없고 간혹은 무작정 주먹이 먼저 나가긴 하지만 그건 모두 아버지에 대한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많이 고마우면서도 간혹은 똥주가 둑이고 싶을 만큼 미운 것이다.

‘그래, 나는 한 번도 내 입으로 아버지에 대해 말한 적 없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면 그 놀림이 내가 아니라 아버지를 향한 거라는 걸 너무 잘 아니까. 이 세상이 나만 당당하면 돼, 해서 정말 당당해지는 세상인가? 남이 무슨 상관이냐고? 남이 바글바글한 세상이니까! 호킹 박사처럼 세상에 몇 안 되는 모델을 두고 그런 사람도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1등만이 특별한, 나머지는 1등 언저리로 밀려 있어야 하는…… 내 아버지는 호킹 박사 같은 1등 대접을 원하는 게 아니라, 높기만 한 지하철 손잡이를 마음 편하게 잡고 싶을 뿐이다.(...) 자기들은, 내 아버지는 비장애인입니다, 하고 다니나? 좆같다, 씨발. 내가 부러뜨린 갈비뼈만 아니었으면 문병 안 갔다. 하는 소리마다 어쩌면 그렇게 한 대 패고 싶은 말만 하는지.’

이 작품의 매력은 내가 모자라고 부족해도 세상에 대고 소리치는 시원스러운 말투, 거칠 것 없는 젊음을 발산하는 데 있다. 오른 손이 하는 일, 왼 손이 좀 알면 어때? 알게 하면 어때? 어차피 예수도 아닌 사람이 하는 일, 그런 일이 자꾸 알려져서 남들도 좀 본받으면 더 좋지. 잘한다, 똥주~! 호박죽 열심히 얻어먹고 더 좋은 일 많이 해라! 완득이가 다른 교회에 가서 또 기도를 하더라도 말이다.

완득이와 함께한 시간,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 김려령 작가, 다른 작품도 있나 찾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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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미술 수업 - 한 젊은 아트컨설턴트가 체험한 런던 미술현장
최선희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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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젊은 아트컨설턴트가 체험한 런던 미술현장’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꽤 두껍다. 값도 비싸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이해가 된다. 이 책엔 한 한국여성의 미술에 대한 열정과 그녀의 삶이 그리고 미술 관련 직업에 대한 얘기가 그려져 있고, 나 또한 그 현장에 참여한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질 정도로 미술현장에서 벌어지는 세세한 이야기가 일상과 함께 펼쳐져 있고 많은 그림과 현장 사진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즐겁다. 

사실 토요일 저녁에 책을 펼치면서 몇 장 보다가 잠이 들면 그냥 자버릴 생각이었다. 쓸데없는 얘기면 그냥 유명 화가들의 그림이나 보고 사진이나 대충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말 생생한 런던의 미술수업, 인턴 과정 등등이 너무 재밌는 게 아닌가. 배가 고파져서 밤 10시(!)에 누룽지를 끓여먹고는 새벽 4시가 다 되어 눈이 감겨서 할 수 없이 잤다. 그리곤 아침에 깨자마자 아침도 안 먹고 커피를 갖다 놓고 정오가 다 되도록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너무 멋진 책이다. 

나는 그림에 대한 선호도가 확실한 사람이다. 그 유명한 모딜리아니나 베르메르의 그림을 보고 아무 감흥을 가질 수 없다. 현대 미술의 천재화가라는 대미언 허스트의 그림엔 소름이 돋기만 한다. 한때는 샤갈과 고야를 또 한때는 인상파를 좋아했다. 모네는 어느 순간 질려버렸고 늘 좋은 건 피카소와 고흐 정도다. 프라고나르의 <그네>, 너무 좋아하고 시슬리의 눈 풍경들엔 미친다. 미술에 대한 공부를 하지도 못했고 그림도 너무 못(!) 그린다. 하지만 그림 공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 아마추어로라도 미술 평론에 대해 공부를 해보고 싶은 욕망은 늘 갖고 있다.  

최선희, 그녀는 항공사에서 근무하다 프랑스인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또 그의 근무지가 바뀌어 영국의 런던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안목, 예술 전반에 대한 안목도 있었던 모양이다. 시각적인 기억력이 좋아서 그림들에 대한 기억을 잘 하는 것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런던에서 1년간의 그림 공부 코스를 마치고 크리스피에서 인턴을 하고 또 갤러리스트로서, 아트컨설턴트로서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싶다. 물론 이 성공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녀는 아직도 이 분야에서 성장하는 중이고 계속 그 직업에 대한 경력을 쌓아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곳이 런던과 파리다. 그녀는 담담하게 그녀가 받은 수업 얘기, 그녀가 만난 인물들에 대한 얘기를 하지만 그것이 어떤 안목과 노력으로 이루어졌을지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또한 이 책은 그 젊은 여성 아트컨설턴트의 삶에 대해 일상을 속살거리는 책이다. 거창하게 자서전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그녀도 그게 무리란 걸 안다. 하지만 이 책엔 그녀의 여자로서의 삶이, 외국에서 사는 한국 여성으로서의 마음이, 외국남자와의 결혼생활이 아주 살짝, 커튼 사이로 비쳐들고 있다. 징징거리지는 않지만 사이사이 비쳐드는 외로움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 외로움을 잠재우는 담담하고 씩씩한 용기도 함께 보인다. 멋진 여자다!

그리고 이 책은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또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는 일종의 가이드라고 볼 수 있다. 갤러리스트, 큐레이터, 아트컨설턴트가 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수업과정, 그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 직접 보고 확인한 예술품들, 또 크리스피에서 하는 일들을 보여주고 있다. 즉 명화의 진품을 가리는 방법, 크리스피에서 어떻게 예술품을 받아 관리하고 경매를 붙이고, 또 전시회를 기획하고 작가를 발굴하는 등의 모든 일을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술을 예술로 보는 눈과 함께 상업적으로 향할 수 있는 세일즈의 세계도 잘 그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한국의 미술을, 한국의 작가들을 알리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국 여성 아트컨설턴트를 통해 한국 미술이 세계로 더 멋지게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와 함께, 창조적이고 상상력 풍부한 한국 작가들이 최대한 더 많이 세계에 알려지고 그들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국의 멋진 고미술을 숨겨놓고 아무도 안 보여주는 폐쇄적인 한국 미술계(우리 같은 일반인에게도 좀 보여달라구욧!), 학연, 지연, 계파 등으로 복잡한 한국의 미술 시장, 일반인은 꿈도 꿀 수 없는 그림 소장 등 문제점들을 넘어 좀 더 소통하는 우리 미술계가 되었으면 하고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하다. 

여전히 내가 현대 미술을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최선희, 멋진 그녀 덕분에 봄이 되면 우리 미술관, 우리 작가들 전시회를 좀 돌아다녀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또 알겠는가. 미치도록 좋은 그림 한 점 발견해 모아놓은 적금을 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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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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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를 먼저 읽고 단번에 반해버린 기욤 뮈소의 전작이다. 역시 어두운 과거, 사랑과 용서, 화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화려한 소설이다. 극적인 상황과 서서히 드러나는 과거 그리고 용서와 화해… 무대적 상황을 최고로 그리는 그의 비주얼적인 능력은 이 작품에서도 뛰어난 상상력으로 화려한 무대를 장식한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첫눈에 반하고 막판에 결심을 번복해 찾아가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그러다 겪게 되는 극적 상황… 문제는 끝까지 그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하고 로맨스소설처럼 너무 순수하게 그리려는 시도로 이어져 김이 빠진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순수함을 다시 돌이켜보게 되기도 하고, 어두운 과거를 묻어두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타인들을 도우려는 마음, 세상을 향해 다시 마음을 여는 그 모든 과정은 정말 한편의 영화처럼 화려하게 이미지화 된다. 과거의 고통도 현실의 사랑을 통해 다시 드러나고 치유되는 과정, 그 긍정적인 효과… 

유명한 배우가 되겠다는 야심찬 결심으로 뉴욕에 온 프랑스 여자 줄리에트는 몇 년간 단역만 하면서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나 하게 된다. 그러다 더 이상 버틸 힘도 여유도 없어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려고 하는 중이다. 다른 한편에선 닥터 샘 갤러웨이가 눈 덮인 아내의 묘지를 찾아가고 가망 없는 어린 환자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려고 노력한다. 그런 둘이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다. 순간 줄리에트는 변호사라며 거짓말을 한다. 둘은 데이트를 하고 헤어지지만 그땐 그게 어떤 서막인지 아무도 모른다…

신의 섭리까지도 거스르는 게 사랑이던가. 줄리에트를 데려가겠다고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사자(!) 그레이스, 그리고 드러나는 그레이스 주변 인물들, 그 얽힌 관계, 또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실의 위험들, 그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처럼 그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의 힘이 어떤 것이든가. 자신을 모두 내던지는 것, 그게 바로 기욤 뮈소가 말하려는 사랑의 힘이 아니겠는가.

너무나 순수한 로맨스적인 사랑의 설정과 너무 꼬아놓은 스토리가 이 책의 흠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장점이기도 하다. 꽤 두꺼운 책이고 정말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는 책이지만 금방 읽힌다. 기욤 뮈소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당연히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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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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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났는데 맨 처음 든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에이, 결국 그런 결론이야?… 그럼 결국 누가 누굴 기다린 거야?… 그래서 이젠 또 뭘 기다려야 하는 거야?…’ 그런 뻔한 결론이 있느냐 말이지. 하기야 뭐, 사랑이란 게, 뻔하지 않은가. 한쪽은 기다리다 지쳐버리고 또 다른 쪽은 다른 깨달음을 얻어 다른 걸 기다리고. 또 다른 쪽은 마음을 비우고 한없이 기다리기만 하고. 아, 기다리는 건 너무 싫단 말이다. 

사실 읽는 내내 억울했던 건 아니다. 꽤 두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 당시, 특이한(!) 중국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구나 생각하면 흥미롭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사랑도 마음대로 못하는 그런 사회에 대한 괜한 분노가 치밀기도 했지만 의외로 담담하게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는 마음, 이혼해주겠다고 동의를 했다가도 막판에 가서는 아니라고 하는 아내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군의관인 쿵린, 시골에서 딸과 함께 살면서 농사일을 하는 그의 아내 수위 그리고 쿵린의 연인인 간호사 우만나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겠다. 어찌 보면 스토리 또한 간단하기 그지없다. 부모의 뜻에 따라 할 수 없이 결혼한 쿵린은 1년에 한번만 시골로 가 아내와 시간을 보낸다. 아내는 쿵린이 병원에 있는 동안 집안일을 하며 시부모를 모셨다.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조강지처의 전형이다. 하지만 쿵린은 병원의 간호사 만나와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매해 1년에 한번뿐인 휴가를 시골로 가면서 매번 이혼을 요구한다. 그게 몇 년을 끄느냐 말이다. 그 사이 병원에서 쿵린과 만나의 사이는 공공연한 연인이지만 데이트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병원의 규칙에 따라 둘은 어떤 육체적인 접촉도 없이 사랑을 키워 나간다. 그러는 동안 다른 사람, 사건이 끼어들어 불행을 겪기도 하지만…

금지된 사회에서, 갖가지 금기 사항이 있는 사회에서 자유로운 사랑, 또 연애란 게 사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감옥행이나 유배형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힘은 세다? 그리고 사랑 후엔, 사랑이 퇴색하고 나면… 자유로운 사회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삶이에요. 오늘은 살아 있지만, 내일 죽게 될지도 몰라요. 날마다 아등바등 인간답게 살아가려 애쓴다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사랑에 한해서만은 내 마음을 따를 수밖에 없어요. 새들도 한 새장에 가둬놓고 사랑하라고 해도 싫으면 하지 않는 법인데, 사람은 더 말할 나위 없죠. 그러니까 다시는 다른 남자를 찾아보라는 말 하지 말아요.”

읽기는 쉬웠지만, 읽기 자체가 지루한 건 아니었지만, 그게 과연 작가의 문체만의 덕택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김연수 작가의 번역 작품을 많이 접해본 나로서는 그게 그의 번역 덕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스토리의 끈은 그렇게 단순할 수가 없는데, 그래서 읽고 나서 허무해졌는데 읽는 내내는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없었으니 말이다. 스토리 자체에 중점을 두는 사람에겐 별로일 책이고, 문장 문장을 음미하는 독자라면 감성적으로 읽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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