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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이 남자, 너무 웃기다. 엄청 엄살 부리고 허풍도 떤다. 또 뻔뻔하면서도 우유부단하다. 소심하면서도 따스하다. 남자의 자리가 좁아졌다고, 남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이젠 여자가 뭐든지 남자보다 더 잘하고 남자는 여자의 발아래에 있다고 엄살을 떤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자가 점점 더 권력을 장악하고 남성우월주의에 빠진 남자들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엄청 오바하는 남자다. 엄살, 그만 떨지! 하지만 그 엄살이 밉지 않다. 심지어 귀엽게 보이기까지 한다. (용서하시라, 개인적 취향이니까. ^^;;)
꼭 남자, 여자의 입장에서만 이 작품을 볼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남자의 소소한 생각 속에서, 정말 뻔뻔하고 웃기는 이 남자의 태도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도 어느 정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청 찔렸다. 그리고 즐겁게 많이 웃었다.
“어느날인가, 나도 해봤다. 아내에게 말했다, 혼자 거실에서 식사하고 싶어. 그러니 당신은 딸들과 부엌에서 먹어. 다들 아무 말 하지 말고, 행여 날 바라볼 때면 눈을 깔아 하고 말이다.” 영화 [대부]를 보고 나서 남자의 권위를 세워보려는 이 남자, 폼 잡다 혼난다.
“어럽쇼, 뭐라고? 눈 깔고 어떻게 보라는 거야? (...) 여보, 내 말 잘 들어. 고 조그만 주먹을 한번만 더 내 앞에 드는 시늉이라도 하면, 당신은 속옷 바람으로 가정법원 앞에 서 있게 될 거야. 당신의 그 마피아 컬렉션도 다 압수해서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릴 거고, 다시는 내 모습도 보지 못하게 될 거야. 내 말 알아들었어? 아니면 손톱 소제하는 줄로 통통한 당신 배때기에 새겨줄까?” 결국, 농담이었다며 꼬리를 내리지만, 벌로 남자는 혼자 영화를 보며 냉동식품으로 부엌에서 끼니를 때우게 된다. 그러게, 왜 까불어?
작가의 현실과 다분히 섞이는 듯 보이는 이 소설은 어찌 보면 현대 사회를 단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어떤 땐 아이러니컬하게, 또 어떤 땐 시니컬하게. 하지만 대부분은 이 남자가 사회를 바라보는, 여자와 남자의 관계를 고찰하는 그리고 가족을 생각하는 따스함과 잔잔함이 느껴진다. 자신을 한껏 조롱하기도 하고 유약하고 어쩔 줄 모르는 상태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작은 일에 기뻐하고 또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나와 내 동류인 우리는 전환기에 있다. 여자들은 이미 가치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평화, 사랑, 귀기울임, 부드러움 등, 우리의 영역을 보다 더 잘사는 오아시스로 만들어주는 그 모든 좋은 것들로 사회는 잘 굴러가고 있다. 하지만 복지국가와 모성사회는 우리에게 빨리 콧물흡입기 사용법을 배우라고 강요한다.”
이 전환기는 꼭 남자들에게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사회가 변하고 관계가 변하고 있다. 그에 맞춰 얼마나 현명하게, 발맞춰 나가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많은 부분, 우리와 다른 부분도 있었고 또 오바라고 생각하는 부분, 그리고 우리에겐 생소한 유머도 있었지만 그게 또 우리와 다른 외국문학을 읽는 재미가 아닌가. 암튼 이 작품을 읽고 난 드디어 남자가 사랑스러워졌다.
엄살 떠는 남자들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