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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코스키가 간다 - 제2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한재호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요즘의 현실은 어째 다들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고 안정이 안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뭔가를 악착같이 붙들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안고 우리는 현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사실 적게 먹고 적은 걸로 행복하다면 그리 악착을 안 떨어도 될 텐데, 많이 가져야 하고 많아야 행복한 현실이니 현재 가진 걸로는 늘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더 뭔가에 집착하고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한다.
사실 학교에 다닐 때는 그 불안이 와 닿질 않는다. 학교에 소속되어 있을 땐 그저 막연한 불안이었던 것이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에 아주 급박하게 우리 목을 죈다. 그런데 이젠 워낙 쟤나 나나 다 백수니까, 이젠 백수도 마치 하나의 직업군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위안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여기 등장하는 남자가 바로 그런 남자다. 거북이(처럼 얄밉게 생겨서 그런 별명을 얻은)는 그의 여자 친구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 남자, 백수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나름 노력도 한다. 열심히 이력서를 준비하고 면접도 보러 다닌다. 하지만 아직 직업을 잡지 못해 졸업한지 좀 됐지만 여전히 학교 근처에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듣게 된 동네의 한 남자에 대한 얘기에 솔깃하게 된다. 물론 거북이의 충동질도 있었다.
‘그것은 근처 주민인 듯한 한 남자에 대한 소문이었는데, 남자의 이름-이라기보다 별명-은 부코스키, 그는 비가 오는 날마다 어디론가 외출한다고 했다.’
왜 부코스키인가에 대한 당위성은 좀 떨어져 보이지만 작품 자체의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다. 현대 사회에서 백수인 한 인물을 표방해서 리얼리티를 충분히 살렸으면서도 스토리 전개가 기발하고 특이하다. 인간의 외로움, 소통의 부재 그리고 뭔가 해보려는 노력... 상상력이 뛰어나면서도 간단명료한 문체도 상쾌한 작품이다. 복잡하지 않고 편안하게 스토리를 끌어간 점, 그러면서도 경박하거나 가볍지 않은 주제로 잘 끌어간 멋진 작품이다.
실업자이다 보면 직업을 갖는 것만이 최고의 목표가 된다. 나머지는 전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대척점에 의미 없(어보이)는 일상에 더 큰 자리를 준다. 그건 비오는 날만 되면 수퍼를 닫고 우산을 쓰고 아무데나(!) 걸어 다니는 그 일명 부코스키를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다. 그 뒤를 이어...
이 작품은,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건 어쩌면 어쩔 수 없이 ‘서른 살 소년’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이 세상에 대한 반항처럼 보인다. 나도 똑같이 남들처럼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그래야 어딘가에 소속되지만, 그 안에서의 고독과 외로움은 어쩌면 아웃사이더로서 느끼는 그것보다 더 클지도 모르지 않는가. 아웃사이더가 더 많은 이 사회, 그 아웃사이더도 할 일이 있고 할 말이 있고 나름의 삶이 있다.
하루쯤은 나도 비가 오는 날, 부코스키가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서면 그 뒤를 따라가 보고 싶다. 그게 자장면을 먹으러 간 것이든, 산본의 어느 벤치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