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해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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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는 늘 쿨하다. 꼬인 데가 없이 즐겁다. 유쾌하고 편안하다. 그리고 재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마음 한 켠 쿡 쑤시기도 한다. 그냥 웃고만 넘길 수 없는 건 아마도 이런 마지막에 남는 아련한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꾼이라는 별명답게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라든가 <도망자 이치도> 등등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오던 작품들과는 달리 지난번의 <참말로 좋은 날>에선 꿀꿀하고 우울하기만 한 삶들을 그려 하나도 안 좋은 날들을 선보였었다. 그런 그가 다시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이야기로 돌아왔다.

“도장 콱 찍어줘. 남편으로서 부인한테 해줄 수 있는  일 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나중에 생각해도 참 잘했다 싶은 보람있는 일일 거야.” “나, 지금 무지 행복해.”

객관적으로 철이 안 든 아버지에게 이혼 도장 콱 찍어주라는 친구 같은 아들과 남모르게 나름의 선행을 하며 사는 행복한 아버지와의 대화다. 늘 뭔가에 중독되어 있는 아버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일찍 철 든 아들은 이제 친구다. 이해하기 어려운 듯하면서도 안쓰러워하는 관계다. 그게 행복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아버지도 아들도 서로 맺힌 거 없이 쿨한 게 그런 게 진정 행복한 관계인지도 모른다.      

성석제의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찌질하다. 잘나고 멋진 넘보다는 늘 어딘가 모자라고 너무 통속적이다. 이기적이며 솔직하다. 유치하고 가끔은 치사빤쭈다. 하지만 밉지 않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함께 여행을 하고 같이 놀아 늘 문제가 생긴다. 생길 수 있는 문제들. 그 가운데에서 찌질한 녀석들은 조금씩 성장하는지도 모른다. 선녀를 꿈꿀 수는 있어도 함께할 수는 없는 찌질한 녀석들, 그런 게 또 평범하고 찌질한 녀석들의 일상이 아니겠는가.
 
작품집 가운데 구성 인물들이 따로 또 연결되는 식의 특이한 구성을 띤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 가운데 제일 눈길을 끈 작품은 역시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이다. 청소년 소설집이었던 <라일락 피면>에서 이미 읽었던 작품인데, 스토리 자체, 그 스토리를 끌어가는 힘, 그리고 반전까지 아주 독특하고 재밌는 작품이었다. 가끔은 그러한 인생의 우연한 반전이 우리 인생을 결정짓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의 서로 다른 인생길인 것이다.

‘어라, 저기 걸어가는 저 사람, 백선규 같네. 저 사람 도대체 무슨 생각을 저렇게 골똘하게 하고 있을까. 인사를 해볼까? 안녕하세요,라고 해야 하나? 그냥 안녕,이라고? 그러고 나서 고향, 초등학교를 말하면 알아볼까? 아이, 귀찮아. 그런 걸 하면 뭘 해. 우리는 가는 길이 다른데. 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저 사람은 자신의 그림을 열심히 그리면 그만이지. 점점 멀어지네. 사라져버렸네. 나도 곧 가야 하긴 하지만.’

성석제의 이 작품집이 내 가을밤을 훔쳐버렸다. 저녁마다 졸려 둑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읽으려고, 너무 재밌어서 덜 긴박한 부분에선 졸면서도 읽었다. 그리고 행복해졌다. 늘 그렇듯이. 그의 찌질한 주인공들처럼 찌질한 나도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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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10-30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렛만이어요, 진달래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책 읽고 서평 올렸는데...
그 책 재밌었어요. 편하게 읽히기도 하고.
잘 되면 좋겠는데...^^

진달래 2008-11-03 08:52   좋아요 0 | URL
어머, 감사합니다. ^^
재밌게 읽으셨다니 기뻐요.
저도 즐겁게 읽은 책이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