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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특이한 제목에다 정말 예쁜 표지의 책이다. 검은 단발머리의 예쁜 아가씨가 빨간 물고기 인형(첨에 언뜻 보고 가방인 줄 알았음. 이런 가방 있음 정말 메고 싶당. ^^;;)을 메고 앞엔 또 빨간 사과를 들었다. 뒤엔 어리버리해보이는 남자가 어쩔 줄 몰라 하고. 검은 안경에 주춤거리는 태도 그리고 끈 풀린 운동화… 이 정도면 어떤 이야기일지 어느 정도 감이 오지 않는가. 게다가 호기심(+호감)을 충분히 끌 정도가 아니겠는가. 나이가 몇이냐고 누군가 날 탓해도 할 수 없다. 예쁜 사랑 얘기에 언제나 내 마음은 설레는 스물이니까. ^.~
그런데 이 작품은 흔히 보던 로맨스나 풋내기 사랑 타령만이 아니었다. 독특한 일본 문화가 한~가득 든 사랑과 삶, 우연과 인연 그리고 운명에 관한 폭 넓은 이야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에 익숙지 않은 나도 책을 잡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단잉어들, 거리에 갑자기 나타난 전차 등등 판타지와 ‘친구펀치’(“엄지손가락을 남몰래 안으로 굳게 쥐려고 해도 쥐어지지 않아요. 그 살짝 숨긴 엄지손가락이야말로 사랑이에요.”)로 무장한 스무 살 순수한 신입생의 세상 만나기 프로젝트가 가미된 상큼한 칵테일 같은 작품이다. 또한 클럽 선배로서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반해서 ‘최눈알 작전’(‘최대한 그녀의 눈앞에서 알짱거리기 작전’!)을 구사하는 그가 과연 길거리의 돌멩이로 끝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어쩌다 지나가던 길이었어.” “아, 선배. 또 만났네요!”
이야기는 그와 그녀가 번갈아가며 이끌어가는 형식이다. 그가 보는 관점과 그녀가 보는 세상이 얽히고설키며 독자에겐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어 펼쳐지는 것이다. 간혹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또 간혹은 완전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에 푹 빠져들었다.
어른들의 세계가 궁금한 그녀가 술이 더 마시고 싶어하던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회오리바람으로 비단잉어를 모두 잃은 도도씨, 어느 새 술친구가 되어버린 하누키씨와 히구치씨는 어디서나 마주치게 되고, 술친구들을 거느리고 다니다가 밤길을 걷는 남자를 습격해서 속옷을 빼앗는 것과 ‘가짜 전기부랑’으로 술 마시기 대회를 하는 이백씨를 만나 ‘아아, 이렇게 좋을 수가. 마시다가 죽어도 좋겠어.’라는 느낌으로 술을 마시는 그녀. 기분이 좋으면 그녀는 꼭 두 발 보행 로봇의 스텝을 밟는다.
그리고 그녀를 구해주고자 줄곧 그녀 뒤를 따라다니다 더 엄청난 일을 겪는 그. 그렇게 그들은 술의 밤을 술을 마시며, ‘궤변춤’을 추며 보내고, 헌책시장에서 별별 일을 다 겪으며 책을 ‘구하고’(그녀는 원하는 책을 얻기 위해 헌책시장의 신에게 빌기까지 한다. ‘안 읽는 책은 가능한 한 세상에 풀어놓아 다음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책들이 진실로 살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는 거 아닐까? ^^;;), 대학축제에서 달마오뚝이 공주와 괴팍왕 연극을 구사일생 끝에 해내고, 다들 감기에 걸리는 계절, 겨울에 하나는 ‘상사병 겸 감기’에 걸리고 감기 신이 피해가는 다른 하나는 ‘감기 걸린 사람들 위문’을 다닌다.
남자보다는 세상이 더 궁금한 대학 신입생 그녀의 눈앞에서 알짱거리기만 하는 그. 역시 우연도 만들다 보면 인연이 되는 것일까. 읽는 내내 해피했고, 읽고 나서도 해피한 작품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어떤 인연.’
덧붙임1: 그녀가 메고 있는 가방 같은 빨간 물고기 인형은 뭘까? ^.~
덧붙임2: 대학축제에 잠깐 등장하는 ‘빤스총반장’과 ‘코끼리 엉덩이’ 여성의 이야기는 지저분한 감도 없지 않아있지만 그래도 감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