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한 젊은 친구가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그 다녀온 경험을 책으로 냈다. 글도 아마추어였고 사진도 예술사진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한 젊은이가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찍어놓은 흑백사진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젊은이가 풀어낸 이야기에 함께 웃고 눈물짓고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마치 그 길을 그 젊은이와 함께한 것 같은 느낌에 정말 행복했었다.

이 책은 그 젊은이가 다녀왔던,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독일의 한 유명한 코메디언이 그대로 가고 있다. 처음 이 책에 관심이 갔던 건 영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발에 수없이 물집이 잡혀가면서, 너무나 겁을 내면서 그 길을 갔던 젊은이 생각을 하며 나도 언젠가 꼭 그 길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이 책의 장점은 일단 아무리 유명한 코메디언이라도 이 책을 위해 특별히 무엇인가를 꾸미고 미화시키고 속이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내게는 생소한 얼굴이며 이름이지만, 독일에서는 이미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유명인이라 명품을 입고 고급 주택가에서 살며 여행을 할 땐 고급호텔에서 잘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산티아고를 간다고 해서 거짓으로 몇 십 명이 발냄새를 풍기고 코를 고는 순례자의 숙박소에서 자려고 하지 않은 것처럼 그는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을 그냥 자연스럽게 내보인다. 힘들면 서슴없이 버스나 기차를 타고 딱히 사람을 사귀려고 하지도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깨끗한 호텔을 찾아 나선다. 즉 유명인이라, 책을 낼 거라고 굳이 거짓으로 자신을 꾸미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지 모르겠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유명한 사람이든 아니든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지 자신의 세계에선 자신의 문제가 제일 크고 자신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가 두려워 거짓으로 뭔가를 하려하지 않고 그는 그냥 자신의 성격대로, 자신의 생김새대로 길을 간다. 어찌 보면 완벽하지 못한 나처럼, 그도 평범하게, 더럽고 여럿이 묵는 순례자 숙소보다는 혼자 있을 수 있는 호텔에서 묵고 싶은 거다. 아무하고나 친구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솔직함이 이 책의 장점일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 수없이 포기하고픈 마음을 다지면서 조금씩 길을 갔다. 간혹은 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매일 하나씩의 깨달음을 얻으면서, 육체적인 피곤을 무릅쓰고 그 먼 길을 갔다. 평생을 통해 간직할 친구들도 사귀면서 결국 그는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갔고 결국 큰 기쁨을 얻고 책까지 펴낸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난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와 그렇게 비슷한 약점 많고 불평 일쑤고 쉽게 자신을 용서하고 남보다는 나 자신에게 더 관심이 있고 문제에 끼어들고 싶지 않고 아무하고나 친구하고 싶지 않고 등등... 그런데 왜 공감이 가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그가 주둥이 아줌마를 보고 그의 그늘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는 나의 그늘 같은 사람인데도... 그건 그런 평범함이 단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그럴싸한 포장으로 책이 되어 나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나름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에 대해 재미도 있지만 위험도 알려주고 순례길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님을 오히려 잘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고 각자의 길은 그것이 어떤 길이든 각자가 찾기 나름이라는 것을 알려준 책이다. 하지만 그는 내게 유명인도 아니고 그저 아무도 아니었다. 그런 모습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별 감흥 없이 책을 읽었다. 어쩌면 전에 그 재밌고 즐거운 산티아고 가는 길을 안 읽었더라면 이 책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뭔가 부족하다.

더 얇고 더 별 볼일 없고 더 평범해 보이는 한국 젊은이의 그 책이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졌다. 그 길의 실제적인 위험과 어려움에 대한 가르침은 이 책이 나을지 모르지만 함께 호흡하고 함께 느끼는 그 공감은 한국 젊은이의 책이 훨씬 나았다. 그 책을 읽지 않은 이들이라면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 대한 이 책도 그리 나쁘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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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12-11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좀 그래요. 그죠? 좋다는 사람은 왜 좋다는 건지...그 젊은 친구의 글이 많이 오버랩됐어요. 그죠, 진달래님?^^

진달래 2007-12-14 08:49   좋아요 0 | URL
음... 저희처럼 그 젊은이의 책을 안 읽었으면 좋게 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나름 장점도 많은 책이니까요. 솔직하고 미화하지 않고... 그 젊은이의 책을 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을 읽고도 충분히 산티아고를 가보고 싶다고 느낄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