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구슬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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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미셸 투르니에의 작품은 <나무동화>에 실렸던 짧은 단편을 읽은 게 다이다. 환상과 상상을 넘나드는 그의 글이 단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참 어려웠었다. 그리고 이제 새로 나온 그의 작품을 막 다 읽었다. <황금 구슬>이라는 장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의 작품은 손에 잡힐 듯 말 듯 아련하기만 하다. 여전히 환상을 넘나들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순수함과 현대 사회를 대척점에 놓고 너무나 뻔한 저울질을 하는 것 같기도 한데, 결국 내 의식 안에 잡힌 명확한 결론은 없다. 그래서 다 읽고 난 지금,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브라힘은 북아프리카의 사막에 사는 소년이다. 전통적으로 가축을 방목하면서 사는 부족에 둘러싸여 현대와 기계문명과는 동떨어진 세상에 살고 있던 어느 날, 랜드로버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던 한 금발의 서양 여자에게 사진을 찍히고 그 사진을 기다리다 결국 낙타의 사진만 오자, 그 사진을 찾으러 사막을 건너고 강을 건너고 도시를 건너 그녀가 있는 파리로 간다는 얘기이다. 소년이 결국 여자를 만나 사진을 받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하나의 실마리에 불과한 것이니까. 어쨌든 소년이 파리에 가서 겪는 수많은 일들... 순진한 시골아이 눈에 비친 대도시, 그리고 도시 사람들의 모습, 그들의 생활 등등이 그려지고, 시골아이에게 성에 대한 세계가 얼핏 모습을 드러내고... 거기에 무녀의 춤과 함께 황금 구슬이 상징성을 띠고 그 상징성은 소년의 성과 함께 현실성을 띤다.  

아름다운 대목은 많다. 북아프리카의 영웅에 얽힌 구전설화부터 아름답고 열정적인 무녀의 춤,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웠던 여왕의 그림이 불러일으킨 많은 시상들... 그 모든 이야기는 사막 속의 오아시스처럼 이야기의 갈증을 해소할 만큼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주고, 오래 그 맛을 음미하게 한다.

하지만 한편 시작이 워낙 <연금술사>와 비슷하고 주인공 소년 이브라힘이 길을 떠나는 것도 그렇고 혹시 끝에 뭔가 반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도 반전이 없으면 당할 그 허탈함을 예상해 반전이 없을 거라는 가정을 하고 읽었다. 적어도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그런 반전은 없었고, 왜 그런 결론이 났는지, 그 결론이 무슨 의미인지조차도 명확하지 않다. 

‘이미지’의 소설이라는 건 결국 이세욱씨와의 대담에서 그의 설명을 읽고 나서 알았다. 내가 무뎌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진’이라는 소재만을 가지고는 그가 말하고자 한 ‘이미지’란 것이 그렇게 선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그가 의도한 대로 이해하는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의문스럽다. 또한 이 글을 읽으면서 서양 사람이 품고 있는 동양이나 사막의 겉모습에 대한 환상이랄까, 그런 게 느껴져서 약간은 불편하기도 했다. 동양여자의 야들야들한 외모와 검고 긴 머리채를 보면서 그녀의 실체가 아닌 그녀에 대한 환상을 품는 서양 남자의 시각 같은 거랄까.  

아무튼 어렵지 않은 그의 소설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건, 그의 소설이 문장 속에서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스토리가 주는 의미보다 주지 않는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어려운 문장도 하나 없고, 술술 읽히는 소설을 다 읽고 났을 때도 마치 안개 속을 헤매고 뜬 구름 가운데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닐까. 아무튼 내가 이 작품으로 그의 소설의 섬세함과 위대함을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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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5-16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 전 그의 단편 하나를 읽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했었죠. 그 이후 이 사람 소설을 읽어 보리라 벼르고만 있었지 정작 읽지는 못했답니다.
이번에 기회가 좋아 한번 도전해 볼까 했는데 선두를 뼈꼈다는...ㅜ.ㅜ 알지요?
언제고 전작에 도전하고 싶은 작가입니다.^^

진달래 2007-05-1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모르는데요... ^^;; 다른 분이 알(겠)지요? 진짜예요... ㅋㅋ
근데 저하곤 잘 안 맞는 거 같아요...

하양물감 2007-05-2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달래님, 주인공 이름이 이드리스 아니던가요? ^^; 이브라힘은 낙타치기 소년이지요...

진달래 2007-05-2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제가 헷갈렸나 보네요. 특별히 이름에 무슨 뜻이 있는지, 그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지 않기에 그대로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