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남영신 지음 / 까치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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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하는 사람입니다. 번역을 하면 할수록 외국어 실력보다 한국어 실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 한국어의 기본 특성을 잘 이해하는 것이 훌륭한 번역에 절실히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이 책은 한국어답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줌으로써 제가 그동안 경험적으로 마주쳤던 번역상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까다로운 조사 '은'의 사용법과 문장성분 생략의 문제가 유용했습니다. 한국어는 무엇보다도 간결할 때 빛을 발하는 언어인데 그 간결함이 지나치면 뜻이 모호하고 불명확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라는 표현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겠지요.

정말 필요한 때에 제대로 만난 반가운 책입니다. 다만 욕심을 낸다면, 한국어에서 높임법과 더불어 가장 까다로운 사항인 띄어쓰기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 아쉬웠습니다. 아울러 연습 문제를 편집상의 기술을 발휘하여 좀더 보기 좋게 처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원칙을 좀더 유연하게 적용해도 괜찮지 않은가 싶은 구절이 몇몇 있었지만 그것은 언어의 용례가 세월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그냥 묻어두겠습니다.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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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왕과 양키 - 마크 트웨인 대표선집 4 마크 트웨인 대표선집 4
마크 트웨인 지음, 조애리 옮김 / 미래사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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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이자 풍자 문학의 대가인 마크 트웨인의 <아더왕과 양키>는 한 미국인이 우연히 아더왕의 시대로 들어가 벌이는 모험을 다룬 소설이다. 아더왕이 대표하는 6세기는 교회와 귀족 계급이 권력을 확고히 다진 시대이며 기사도 윤리가 확립된 시대이다. 이에 비해 양키가 대표하는 19세기는 과학을 앞세운 기술 문명과 민주주의가 진보와 휴머니즘의 이념을 유포시킨 시대다. 결국 이 책은 서로 다른 시대를 겹쳐 봄으로써 문명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풍자란 본래 어리석음을 조롱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 어리석음의 강도가 커질수록 즐거움 또한 커지는 법이다. 소설의 초반부는 양키의 눈에 보이는 6세기 사회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폭로하여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과학이 앞세운 진보 또한 인간에게 득만 갖다주는 것이 아님이 밝혀진다. 이것은 소설 말미의 전쟁을 다룬 장에서 극단적으로 표출된다. 귀족 계급과 왕권을 뒤집고 민중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첨단 무기를 앞세운 무차별 살상이 자행된다. 과연 폭력은 진보를 위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이때 그것은 누구를 위한 진보인가?

대충 감을 잡았겠지만 흥미롭게도 이 책은 원래 의도와 무관하게 이라크 전쟁의 메타포로 읽힐 수 있다. 아더왕의 영지를 이라크로 볼 때, 여기에 문명을 이식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양키는 부시 정권의 모습 그대로다. 물론 현실은 허구보다 더 복잡하고 끔찍하다. 적어도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얻을 수는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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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쟁 메피스토(Mephisto) 8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임종기 옮김 / 책세상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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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관광지를 들렀다가 의외로 초라한 볼거리에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과대포장이거나 아니면 역사적 가치가 현재적 가치(순수한 미적 가치를 포함)를 앞지르는 예이기 때문이다. 웰즈의 <우주 전쟁>이 내게 딱 그런 경우다. 화성 침공이라는 아이디어가 처음 등장한 소설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글을 읽는 재미나 날카로운 분석의 맛을 느끼기가 어렵다. 한마디로 심심한 책이다.

그래서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을 즐겁게 읽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겠다. 먼저 가급적 기대치를 줄일 것. 고전이라고 해서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다음 상상력을 적극 활성화하여 당대 사회에 대한 메타포로 읽을 것. 스스로를 피해자인 지구인이 아니라 가해자인 외계인의 입장에 두는 것도 색다른 독서 경험이 된다. 마지막으로 까렐 차뻭의 <로봇 R.U.R>과 비교하며 읽을 것.

두 작품 모두 외계인과 로봇이라는 타자를 통해 인간 존재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폭력과 살육의 문제를 다루며 결말에서 어설픈 해피 엔딩을 마련하여 희망을 주고자 한다는 점도 서로 닮았다. 런던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좀 더 흥미롭게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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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보수 동서 미스터리 북스 61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광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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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러브크래프트라는 이름을 소개하는 가장 공식적인 방법은 영국의 J.R.R. 톨킨과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환상의 세계를 구축한 장르 소설 작가라는 것이다. 어쩌면 '소설로 읽는 엑스파일'이라는 소개가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와 호기심을 외계인/고대인의 신화를 통해 자극하는 러브크래프트는 20세기 미국의 대중 문화와 대중적 상상력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런 그의 작품이 계속 국내에 소개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사실 그는 문학적인 묘사나 문장력보다는 그가 창조해낸 세계로 인해 더 평가를 받는 작가다. 게다가 거의 일인칭 관점으로 일관하는 화법과, 보여주는 영화와 달리 상상력을 통해 행간을 보충해야 하는 문학의 속성 탓에 그의 책에서 몰입하는 재미를 찾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그의 글을 읽으며 지레 공포를 조장하는 작가의 호들갑에 성가셔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잡게 되는 것은 워낙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러브크래프트적 세계 때문이다.

시간 날 때마다 펴놓고 읽기보다는 숨을 한번 고르고 집중하며 읽어야 진가를 발휘하는 책이다. 하긴 서툰 번역 탓에 요구되는 집중력의 정도가 과한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겠다. 개인적으로는 씽크북에서 나온 <광기의 산맥>을 권하고 싶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가운데 하나만 택하라면 '어둠 속의 속삭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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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박영욱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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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대중 문화가 만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대중 문화의 철학적 해석이 있는데 <영화관 옆 철학카페>로 유명한 김용규 님의 작업이 대표적인 예다. 또 하나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으로 '텍스트'가 아닌 '매체'로서의 대중 문화를 철학적으로 재정립하려는 시도다.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는 제목이 연상시키는 것과 달리, 그리고 저자가 대중 문화의 구체적인 사례 분석을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 문화 일반의 철학적 정초에 일차적으로 관심이 있다.

그래서 내가 책에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기대와 달리 철학적 논의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에서 거론되는 몇 안 되는 학자들은 철학자라기보다 사상가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 특히 3, 4장이 그러한데, 현대 미술과 영화에 관한 책에서 (굳이 철학이라는 이름을 내걸지 않고서도) 많이 논의되었던 사항들이다. 사실 철학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논의의 전개가 얼마나 철학적인 엄정함과 논리를 갖고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결함은 좀더 심각하다.

대중 문화의 위상을 철학적으로 높이기 위한 책이라면 우선 저자가 대중 문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런 것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머리말에 이런 추상적인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는 식의 용감한 발언이 나온다. 여기서 나는 저자가 과연 철학자인지 의심이 갔다. 이렇게 중요한 질문이 왜 추상적인지도 이해가 가지 않을뿐더러 철학의 강점은 무엇보다 각론이 아닌 총론에서 찾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총론 없는 각론은 특히 철학의 경우 모래 위의 성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책 곳곳에서 저자의 논의가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것은 당연하다. 1장에서 커트 코베인의 음악이 쇤베르크의 음악만큼이나 혁신적이라고 한다. 대중 음악도 클래식 못지 않은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3장에서는 대중 문화와 순수 문화의 경계가 이제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또 팝 아트는 사실 순수 문화에 가깝다고 한다. 2장에서는 문화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전개되는 고유한 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4장에서는 고전 헐리우드 영화를 일체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규정한다.

대체 저자는 대중 문화를 고급 문화와 독립된 장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는 미적 특질로 구별되는가, 그저 관습의 문제일 뿐인가? 음악, 영화, 미술 등 문화를 이루고 있는 각 분야는 통합적인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한가? 무엇보다 대중 문화는 방어적으로 옹호되어야 하는 대상인가?

세세한 오류들도 많다. 분명한 것만 지적하자면, 너바나의 가치를 논하면서 화성 중심의 클래식이 갖는 긴장-해결의 패턴을 따르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적어도 블루스 이후 아프로-아메리칸 전통의 음악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또한 너바나의 음악이 장조-단조의 분리를 넘어서고 있다고 했는데, 이 또한 헤비 메탈의 파워 코드와 블루스의 블루 노트가 가능하게 해준 특징으로 너바나 이전 음악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만약 이런 논리로 따지면, 화성은 장조를 가리키지만 선율은 단조를 가리키는 Mack the Knife 같은 곡은 얼마나 혁명적인가?

이렇게 서로 다른 전통을 무시하고 표면적인 현상에 집착하는 진단은 재즈와 힙합을 다룬 대목에서도 반복된다. 주도적인 성부가 있는 클래식에 비해 독립적인 성부들이 어우러지는 재즈가 진보적이라는 평가는 음악의 발생 과정과 수용을 염두에 두지 않은 일면적인 진단이다. 힙합의 등장이 화성 중심의 서양 음악을 해체한다는 평가 또한 대중 음악의 전통을 넓게 고려하지 못한 결과다. 로큰롤 이후 대중 음악에서 화성의 역할은 클래식과 엄연히 다르며, 무엇보다 아프로-아메리칸 전통의 음악은 화성 중심의 음악이 아니다. 이런 오류들에 비한다면, 궁상각치우를 도레미솔라에 대응한다고 한 것(p.29), 기타 리프와 솔로를 혼동한 것(p.51), 루프를 리듬이라고 착각한 것(p.109), chromaticism을 온음계라고 한 것(p.147) 등은 사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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