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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빨간 세밀화 표지가 인상적인 <내 이름은 빨강>은 작가인 오르한 파묵이 금년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면서 새삼 주목을 받은 작품이자 요즘 각광받는 트렌드인 역사 추리 소설이다. 한마디로 문학성과 재미를 보장한다는 뜻일 테다. 16세기 말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금박 세공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먼저 죽은 자가 말을 꺼내고, 이어 12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자, 그가 사랑하는 여인, 그녀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차례로 자신의 사연을 전한다.
이 소설은 여러 측면에서 흥미롭지만 가장 주목할 것은 역시 독특한 형식이다. 장마다 화자가 바뀌며 이야기가 서술되며, 화자에는 인물들 외에 개, 나무, 금화, 빨강, 악마도 포함된다. 크게 보아 소설은 남성적인 세계와 여성적인 세계로 나눌 수 있다. (터키어가 존댓말과 예사말 표현으로 구분되는지, 성에 따라 어법이 달라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번역서에는 남성이 화자인 경우는 예사말로 여성이 화자인 경우는 존댓말로 표현되어 확연한 분위기 차이를 보여준다.) 남성적인 세계는 서두의 살인 사건을 따라 궁중 화원의 생활과 페르시아 화풍과 베네치아 화풍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여성적인 세계는 한 미인을 둘러싼 세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슬람 사회의 생활상과 다양한 인간적 감정들을 펼쳐놓는다. 따라서 이 작품은 포스트모던의 특징이라 부를 만한 다중시점에 정치적, 시대적, 문명적 서사와 풍속적이고 개인적인 내면 묘사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이라는 형식이 얼마나 포용력 있고 유연한 양식인지, 서사 구조의 가능성이 얼마나 풍부한지, 역사 추리 소설이 <장미의 이름>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문명의 충돌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