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연합뉴스) 김병호 특파원 =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겸 지휘자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27일 사망했다고 러시아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향년 80세.

로스트로포비치는 작년 말부터 간장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으며, 27일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중 숨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80세 생일을 맞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크렘린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4월 들어 건강이 악화되면서 병원에 재입원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1927년 아제르바이잔 바쿠 태생으로 모스크바 국립 콘서바토리를 졸업한 뒤 1945년 소련 국제음악콩쿠르에서 황금상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등 최고의 음악가들에게 사사했으며 첼리스트는 물론 지휘자로서도 큰 명성을 떨쳤다.

소련 시절 인민예술가 칭호와 함께 예술 분야 최고의 권위인 레닌 및 스탈린 상을 받았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반체제 작품을 써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옹호하다가 박해를 받아 1974년 서방으로 망명했다.

파리에 체류하던 1978년 성악가인 부인 갈리나 비쉬네프스카야와 함께 소련 시민권을 박탈당했지만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에 의해 복권돼 러시아로 되돌아왔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 그가 입원중인 병실을 방문해 조국봉사 기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로스트로포비치를 현존하는 최고의 음악인으로 호칭하기도 했다.

jerom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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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랑팡 플라자(L'Enfant Plaza) 지하철 역. 이곳은 블루, 그린, 오렌지, 옐로 등 4개선을 모두 갈아탈 수 있는 유일한 환승역이다. 워싱턴 지하철 역 중 가장 붐비는 곳이다. 미 연방 청사로 출근하는 정책 분석가, 프로젝트 매니저, 예산 심의관, 컨설턴트 등 고학력 출신의 고급 공무원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1월 12일 금요일 오전 7시 51분 랑팔 플라자 역에 청바지 차림에 긴팔 T셔츠, 워싱턴 내셔널스 팀의 야구 모자를 눌러 쓴 바이올리니스트가 악기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냈다. 주머니에 있던 1달러짜리 지폐 몇 장과 동전 몇닢을 '종자돈'으로 악기 케이스에 던져 놓았다.

바흐의'샤콘 d단조'를 시작으로 45분간 미니 독주회가 시작됐다.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마누엘 폰체의 '에스트렐리타', 마스네의'타이스의 명상곡', 바흐의'가보트'등 모두 6곡을 연주했다.

이 '거리의 악사'는 다름 아닌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39)이었다. 워싱턴 포스트 선데이 매거진 취재팀의 요청으로 몰래 카메라까지 동원한 '실험 무대'였다. 4월 8일자 워싱턴 포스트 '선데이 매거진'의 커버 스토리의 제목은 'Pearls Before Breakfast'(아침식사 전의 진주들)

조슈아 벨은 워싱턴 지하철에'출연'하기 3일전 보스턴 심포니 홀 무대에 섰다. 보스턴에서 그의 연주를 들으려면 적어도 100 달러(약 9만원)은 내야 했다. 그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350만 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다.

'거리의 악사'로 분장한 조슈아 벨은 아침 출근길 러시 아워 45분간 과연 얼마를 벌었을까. 취재진은 악기 케이스에 쌓인 돈을 세보기 전에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음악감독 레너드 슬래트킨에게 먼저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150 달러'였다. 훌륭한 연주였을 테니 틀림없이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모여서 음악을 들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1000명 가운데 75명 내지 100명 정도는 잠시라도 서서 음악을 들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레너드 슬래트킨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미리 설치해둔 '몰래 카메라'에 담긴 테이프를 분석한 결과 45분간 이곳을 통과한 사람은 모두 1097명. 잠시라도 서서 음악을 들은 사람은 단 7명뿐. 동전 한 닢이라도 던져 놓은 사람은 27명. 조슈아 벨의 바이올린 케이스에 모인 돈은 고작 32 달러였다. 조슈아 벨이 평소 받는 개런티를 역산한다면 1분에 1000 달러(90만원)쯤 된다. 하지만 워싱턴 지하철 역에서는 1분에 1달러도 못 벌었다.

워싱턴 사람들은 '훌륭한 연주'에 잠시라도 귀기울일만큼 여유가 없이 바쁜 것일까. 아니면 비싼 입장료를 내고 음악회가 가는 사람들은 '연주'보다는 연주자의 유명세에 값을 치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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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트 부크월드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사망했습니다."

18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 올라온 유머 칼럼니스트 아트 부크월드의 동영상 부고기사. 날카로운 풍자가 가득한 칼럼으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부크월드는 본인이 직접 (미리 제작된) 동영상 비디오에 출연해 자신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마지막 순간까지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미국의 저명한 유머 작가인 아트 부크월드가 17일 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병인 신장병으로 타계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18일 전했다. 향년 81세.

'워싱턴의 휴머니스트'로도 불려온 그는 40여 년 넘게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 워싱턴 정가의 엘리트 계층을 풍자한 칼럼으로 인기를 끌어왔다. 그의 칼럼은 전 세계 500여 개 신문에 실렸다. 그는 1982년 논평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 당뇨병이 악화돼 한쪽 다리를 절단한 그는 신장투석도 거부한 채 칼럼에서 워싱턴의 호스피스 시설에서 죽음을 맞는 과정을 특유의 유머러스한 필체로 묘사하며 낙관적인 정신과 의연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여기에선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 다이어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밀크셰이크, 햄버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 좋다. 내 생애 최고의 시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부크월드는 18일 공개된 뉴욕타임스의 영상 인터뷰에서 "신장투석을 중단했을 당시에는 의사가 2, 3주를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5개월이 지나도 계속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상보다 생존기간이 길어지자 지난해 다음과 같은 칼럼을 쓰기도 했다.

"전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던 일이 많이 생겼다. 아침마다 면도도 해야 하고, 휴대전화도 괜찮은 신제품을 추가 구입하고, 유언장도 새로 작성했다. 장례 계획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했다. 또 하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다시 걱정하기 시작했다."

결국 호스피스 시설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 그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투병생활을 담은 '안녕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라는 책을 펴냈다.

부크월드 칼럼의 진수는 워싱턴 정가를 소재로 한 글. 그는 "부시 대통령은 계속 이라크 미사일을 빙산의 일각(더 많은 대량살상무기가 숨겨져 있다는 뜻)이라고 말하는데, 부시 대통령을 타이타닉호의 선장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비꼬았다.

이처럼 해학에 넘친 부크월드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1925년 뉴욕 주에서 태어난 그는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는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지냈고, 아버지마저 사업에 실패했기 때문.

부크월드는 회고록에서 "우울증을 심하게 앓은 적이 두 차례나 있었으며, 자살충동을 느낀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고교 중퇴 후 해병대에 들어간 그는 전역 후 남캘리포니아대에서 대학 유머잡지 편집장을 하면서 글쓰기에 취미를 붙였다. 이후 파리로 건너가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에서 '파리의 밤'이라는 칼럼을 연재하면서 필명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18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글쎄 잘 생각은 해 보지 않았지만, 아마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 아닐까요?"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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