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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 한뜻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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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을 몇 권 읽지 않은 내가 이런 표현을 쓸 자격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시모프의 글은 한결같다. 늘 고른 수준의 만족감을 주는 그의 글은 과학소설로서 모든 것을 보여준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과학적으로 충실한 묘사,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체와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독자들을 배려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몇 달 전 비상업적인 루트로 입수한 아시모프의 단편집 <골드>를 오랜만에 꺼내들었다. 1부는 초기 단편들을 싣고 있고 2부는 유고집에 수록된 작품을 모아둔 것이라는데,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1941년에 발표된 단편부터 70년대, 80년대 작품들도 들어 있어서 사실상 아시모프의 모든 시대를 커버하고 있다.

로봇이 일상화된 세상을 다룬 글, 외계와의 조우의 다룬 글, 특히 글쓰기에 관한 저자의 의식을 반영한 글이 인상적이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하는 고전적인 물음을 풀어나가는 수단으로 창조성을 대표하는 글쓰기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교정보는 로봇'에는 노동의 즐거움을 위협하는 로봇에 위기감을 느끼는 교수가 등장하고, '칼'은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참지 못하는 로봇과 그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 주인의 이야기다. 이번 단편들을 읽으면서, "로봇이 일상화된 미래 사회에서 과연 로봇이 인간과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아시모프가 비관적인 답을 가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로봇 공학 3원칙은 바로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한 대비책으로 보이며, 이 원칙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의 단편에 묘한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 같다.

아무튼 과학소설에 하나의 기준을 마련해준 그의 소설이 이렇게 오랫동안 절판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아무래도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아시모프보다는 악몽 같은 디스토피아를 즐겨 묘사했던 필립 딕이 훨씬 트렌디하겠지만, 도라에몽 같은 아시모프의 착한 로봇 이야기를 읽지 못한다면 세상은 참으로 삭막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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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타이거! 그리폰 북스 9
알프레드 베스터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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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라는 것이 참으로 미묘한 것이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지향을 띠고 있어서 명성 앞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게 마련이다. 해서 남들의 칭찬이 자자한 책에 공감하지 못할 때 서글픔을 느끼게 된다. 알프레드 베스터의 <파괴된 사나이>를 읽었을 때의 기분이 알쏭달쏭 야릇한, 유치하면서도 생경한 느낌이었다면 <타이거! 타이거!>는 근사한 장난감을 선물로 받은 기분이다. 존트, 가속, 초능력, 텔레파시, PyrE 등의 진기한 개념들, 그리고 태양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복수와 참회의 드라마는 마치 뫼비우스/조도로프스키의 <잉칼>을 읽었을 때처럼 상상력의 자장이 넓어지는 유쾌한 느낌을 준다. 독특한 캐릭터와 기발한 아이디어, 서사 구조를 운용하는 재능도 뛰어나지만, 놀라운 것은 이 모두가 어디서 본 듯하다는 점, 대중적이면서도 거창한 주제(종교, 도덕)를 다룬다는 점, 무엇보다 숨막히게 재미있다는 점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책 속에 푹 빠지고 싶을 때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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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십 트루퍼스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5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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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하인라인의 명성과 영화에 대한 실망 사이에서 망설이다 이제야 <스타십 트루퍼스>를 읽었다. 결과는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강화복 같은 아이디어는 지금 보아도 흥미롭고 군대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이야기를 풀어 가는 솜씨 또한 명성대로 훌륭했다. 특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군대, 전쟁, 규율, 윤리에 관한 작가의 장광설이 펼쳐지는 대목이었다.

"전쟁의 목적은 정부가 결정한 일을 무력을 통해 지원하는 일이야. 그 목적은 결코 죽이기 위해 적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 내가 시키고 싶은 일을 적에게 강요하는 일이야. 살육이 아니라  (...) 통제되고, 목적을 가진 폭력이지"(p.108). "우리는 훈련과 경험, 그리고 엄격한 정신 수양을 통해 윤리 의식을 획득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윤리 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존 본능이 세련되고 세분화된 것이다. (...) 윤리적 본능이란 어른들이 네 마음속에 심어 준 개념, 즉 개인 차원의 생존을 넘어선 절대적 생존이 존재한다는 신념을 의미한다"(p.191).

<스타십 트루퍼스>는 군대적 질서가 지배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을 어떻게 강인한 군인(시민)으로 키워낼 것인지 설교하는 소설이다. 하인라인의 입장은 '교육'과 '사회'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교육은 개인의 잠재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인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훈육하는 것인가. 사회는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를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일방적인 목적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독재 체제를 옹호할 것인가. 그것이 관건이다.

발표된 지 5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도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제기하는 이슈가 현재에도 여전히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효율성이 지배하는 사회, 내 편과 상대편이 적대적으로 맞서는 사회, 수단과 목적이 뚜렷이 구분되는 사회다. 이런 효율성의 사고, 힘의 사고가 지금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논리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논리는 명확해 보이는 만큼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든다. 물론 우리는 경험적으로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가 획일화된 사회보다 더 만들고 유지하기 어렵지만 그만큼 더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인류가 다원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음을 알고 있다.

사족으로, 성장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한참 세계관을 형성해 가는 중인 청소년들보다는 비판 능력을 갖춘 성인이 읽어야 할 책임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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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스내처 - 이색작가총서 1
잭 피니 지음, 강수백 옮김 / 너머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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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포일러를 알아버린 스릴러 영화를 보는 기분이 이럴까. 이 역사적인 고전 SF는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신체 내부에 침투한 강탈자 외계인이라는 아이디어가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 탓도 있겠다. 그렇다고 꼭 시대적인 이유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점잖은 말투의 대화는 긴박한 상황을 헤쳐가기 위한 절박함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제3자에게 정황을 찬찬히 설명하는 투에 가까운데, 의도적이 아니라면 단정하고 깔끔하고 안정감 있는 문체가 여기서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미지의 공포를 전하기 위해 러브크래프트가 구사했던 문체와 비교해 보라.)

이 소설을 좀더 흥미롭게 읽는 방법은 외계인의 존재를 소설의 초반부에 언급되었듯이 전적인 심리적 망상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익숙하던 것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은 여전히 섬뜩함을 자아내며, 그것이 집단 최면이나 인종주의와 결부된다면 사회 비판적 텍스트로도 힘을 발휘한다. (중소도시의 따분한 일상에 대한 언술로 보기에는 주인공의 사회 생활이 너무 건전하다.) 한편 외계인의 본성이 의외로 평화적임이 드러나면서 자발적으로 지구를 떠나는 설정은 전염병으로 상황 종료를 맞는 <우주 전쟁>처럼 맥빠지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생존을 위해 그토록 먼 우주를 건너온 생명이 보이는 삶의 의지가 그 정도밖에 안 되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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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고독 - 과학 오디세이 1, 외계 생명체는 존재하는가?
클리퍼드 픽오버 지음, 이한음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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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표는 분명하다. 공상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외계인의 문제를 과학적인 관점에서 따져보자는 것. 그래서 외계인은 어떤 모습이며, 어떤 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어떻게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지, 또 그들은 어떻게, 왜 그 먼 거리를 날아오는지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추리한다. 아직 목격되거나 밝혀지지 않은 사실에 대해 접근하려면 기존의 것을 둘러보는 것이 순서일 터. 따라서 외계인의 존재를 이야기하려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고찰이 먼저이며, 외계인의 외양과 감각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생명체들이 다양한 환경에서 어떤 외양과 감각을 발전시켰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외계인과 지구인의 의사 소통 가능성을 다룬 장에서는 가장 객관적인 학문인 수학이 도구로 활용되며, 외계인의 여행을 다룬 장에서는 현대 물리학 이론이 동원된다. 결국 외계인학(책의 원제)은 자연 과학이 동원된 생물학/인간학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영리한 책이 실은 그렇게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 아마 그것은 외계인에 대해 갖는 우리의 상상의 지점이 외계인과 인간이 만났을 때 벌어질 흥미진진한 드라마(혹은 파국)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어떤 물질로 만들어졌고, 어떤 식으로 번식을 하며, 어떤 감각 기관으로 세상을 인식하는가 하는 개체적이고 국부적인 사항보다는 그들이 먼 우주를 가로질러 지구로 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리고 마침내 지구에 왔을 때 벌어질 여러 갈등 같은 집단적인 드라마에 우선적으로 관심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이 책을 반길 사람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위한 기본적인 과학적 지반을 필요로 하는 과학 소설가 지망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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