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로그 - 십계, 키에슬로프스키, 그리고 자유에 관한 성찰
김용규 지음 / 바다출판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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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사랑에 이끌려왔더니 완연한 철학 저서였던 <영화관 옆 철학카페>의 경우처럼 이번에도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에 끌려왔는데 알고 보니 기독교 신학에 관한 논의로 가득했다. 하지만 실은 내심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언제 신의 문제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갖겠는가. 더욱이 존재, 구원, 자유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우리의 삶에서 갖는 의미를 실감하게 해주는 책을 만날 기회란 더더욱 소중하다. 저자는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내는 남다른 비법을 깨친 듯하다. 물론 여기에는 영화의 힘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책이 다루는 주제의 무게와 달리 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십계명은 금지의 형식으로 되어있지만 실은 긍정의 메시지를 주려한다는 것, 사람의 행위를 구속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진정한 자유를 향유하게 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그는 '존재론적 해석'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가 바로 십계를 존재론적으로 해석한 실례라고 보고 있다. 이렇듯 저자는 키에슬로프스키를 내세워 십계명이 고대 유대 사회를 규율하는 계율을 넘어 오늘날 현대 사회에도 유용한 지침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책의 논의가 십계명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한 크뤼제만에 맞서 예수의 산상설교와 존재론적 전통의 아우구스티누스에 기반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그 중간에 칼뱅의 프로테스탄트적 해석이 있고, 그밖에 데카르트, 칸트, 에리히 프롬 등 많은 사상가들이 계명에 따라 드나드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것을 이분법적 구도로 놓고 보면, 한쪽에는 실존과 소유에 얽매이는 존재물의 삶이 있고, 한쪽에는 이런 이해를 초월하여 존재 그 자체를 향유하는 삶이 있다. 앞의 태도는 지극히 인간 중심의 삶이고 뒤의 태도는 신 중심의 삶이다. 저자는 바로 십계명이 인간으로 하여금 신처럼 살게 하려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의 신성화(theosis)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궁극적으로 신처럼 살라고 권하는 이 책의 가르침은 사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선택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누구든 성자와 노예 그 중간 어딘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갈수록 성자의 삶이 외면 받고 잊혀지는 세상에서 비록 우리 모두를 성자로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성자를 닮으려는 노력을 일깨워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크다고 생각한다. 문득 이 책을 쓴 저자의 고집스러움이 마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향수>에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메마른 욕탕을 가로지르는 주인공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한 가지 바램을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도 포스트모던에 관한 언급이 잠깐 나온 적이 있는데, 다음 저작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저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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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왼손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서정록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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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의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만약 어떠어떠한 세계가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어슐러 K. 르 귄의 '헤인 시리즈'는 먼 미래의 행성간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어둠의 왼손>의 게센은 눈부신 테크놀로지도 효율적인 사회 체제도 찾아볼 수 없는, 한 마디로 오늘날 지구보다 나을 게 없는 세계다. 궁극적으로 르 귄이 이 책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다름, 차이의 문제다.

<솔라리스>처럼 아예 인식 구조가 달라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라면 차이는 영원히 차이로 남을 뿐이겠지만, <어둠의 왼손>의 게센과 에큐멘 인은 같은 헤인의 후예들이 아닌가. 그래서 이들간에는 (다소 일방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교류의 욕망과 이해의 필요성이 싹튼다. 고립된 마지막 세계를 찾아온 엔보이 겐리 아이가 에스트라벤과 함께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소설의 줄기인데, 특히 빙하지대를 지나면서 불신의 장벽을 허무는 과정에 상당 부분이 할애되어 있다. 과연 생물학적 조건을 비롯하여 제도, 기술, 개인 윤리 모두가 상이한 두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남녀의 구별이 없는 종족이라는 아이디어가 가장 신선하긴 했지만 이를 페미니즘 소설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성적 차이의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을 제하면 인류학이나 윤리학의 보고서 성격이 더 강하다. <빼앗긴 자들>이 이런 주제를 사회적인 차원에서 실험한다면, <어둠의 왼손>은 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풀어가고 있다. 상이한 두 세계를 상정하고 그 속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치밀한 상황 설정과 여러 가능성의 철저한 검토 없이는 안이한 해결책이 되고 마는데 그런 점에서 르 귄은 재능이 많아 보인다.

본문에도 등장하지만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르 귄의 문체이다. 많은 SF가 알레그로의 속도로 진행된다면 이 소설은 안단테 풍이다. 주인공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구성과 곳곳에 들어간 짧은 우화들은 순수 문학에도 뒤지지 않는 문학적 풍취를 자아내지만, 시리즈의 일부인 때문인지 가끔 설명이 친절하지 않고 글읽기가 다소 지루하다는 인상을 준다. <빼앗긴 자들>에 비해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흡인력은 좀 떨어진다. 그렇지만 진지한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할 수 없는 선택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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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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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소복이 쌓인 날 아침에 읽기 시작한 호빗의 모험담은, 나이가 들어서도 첫눈을 보면 여전히 설레는 맘처럼, 동화 같은 감수성을 행복하게 일깨워준 선물이었다. 많은 분들의 지적대로 <호빗>을 <반지의 제왕>의 프롤로그로 즐기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라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즐기는 것은 또 다른 방법일 것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모험의 흥분, 선악의 분별력이라는 동화의 장점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여기에 입체성과 문학성을 부여한 톨킨의 솜씨는 대가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목표를 설정해 매진하기보다 삶 자체를 느긋하게 즐기는 골목쟁이네 빌보, 황금에 대한 욕심에 눈이 멀었지만 근면하고 용감한 난쟁이, 여기에 마법사 간달프를 비롯한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여러 종족들이 빚어내는 '희로애락의 심포니'는 단순히 모험담이 아니라 우리에게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다양한 가치관과 삶의 양식이 존재하는지, 무엇보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보람된 일인지를 말해주는 우화이자 신화이다.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해지며 읽고 난 후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행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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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 - 매트릭스의 철학 매트릭스의 과학
글렌 예페스 엮음, 이수영·민병직 옮김 / 굿모닝미디어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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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매트릭스'만큼 상업적인 위력을 지니면서 이토록 흥미로운 사상과 생각거리를 던져준 영화는 없었다. '빨간 알약 선택하기'라는 원제의 이 책은 이런 생각거리의 소산이다. 영화를 통해 얻은 지적 자극이나 호기심을 다양하게 발전시키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최적의 길잡이로서 손색이 없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다양성이다.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이라는 과학의 문제를 비롯하여 현실과 자유의지라는 철학적 논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상, 또 구원이라는 종교 문제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이는 자연스럽게 해석의 다양함으로 이어지는데, 전화 연결이나 네오의 초능력에 대한 상이한 설명들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다양함에는 편차가 동반된다. 하여 반란군의 저항조차 인공지능의 산물일 수 있다는 참신한 해석의 반대편에는 액션과 상업화를 문제시 삼는 고루한 설교가 존재한다. 또 텍스트에 집중하는 장이 있는가 하면 영화와 거의 무관한 내용을 담은 장도 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취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미래 세계에 대한 비관적 전망과 낙관적 희망을 골고루 안배하는 한편, 기계의 의식 소유 문제에 엇갈린 평을 내놓기도 하고,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의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찬반양론을 함께 싣는다. 그렇기에 앞서 괄호 안에 표기했듯이, 뭔가 중심이 없이 산만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단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관심이 가는 분야나 입장에 대해서는 책에 소개된 충실한 참고문헌(특히 웹사이트)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던 장은 과학적 질문들을 흥미롭게 풀어낸(그러나 이해하기에는 다소 버거웠던) 8장과, 기독교식으로 영화를 해석한 11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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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어 성립 사정
야나부 아키라 지음, 서혜영 옮김 / 일빛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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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그저 지시체와 의미를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용자의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근대 일본에서 번역어가 형성된 과정을 통해 실증하고 있는 책이다. 사실 번역이야말로 언어의 이런 속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터인데, 언어가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넘어오면서 그 언어를 가능케 한 사회구조와 역사까지 함께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은 오해와 전이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마련이며, 때로는 번역어에서만 가능한 새로운 차원의 의미가 생겨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카세트 효과'라는 말로 요약되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 이는 의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뭔가 중요할 것 같은 식으로 모호하게 사용되는 번역어 효과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과거의 사정을 넘어 현재적인 의미를 갖는다. 목도하는 바대로 지금은 카세트 효과의 전성기라 불러도 좋을 시대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 의도적으로 일상과 유리된 번역투의 말을 사용하기보다 아예 외국어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것은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학문에서는 물론 스포츠와 같은 일상의 영역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바이다. 번역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려 노력하기보다 외국어 자체가 갖는 낯설고도 매혹적인 특징에 손쉽게 편승하려는 노림수인 것이다. 이런 현상이, 갈수록 문화적 장벽이 허물어지는 세계화 추세와 맞물린다면 언젠가는 기계적인 일대일 대응 관계로 번역의 문제가 깨끗이 해결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우울한 생각이 든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의 번역어 성립 사정을 연구해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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