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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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멜리 노통의 데뷔작은 소문으로 들었던 바로 그대로였다. 병원 소독약 냄새처럼 싸한 기운의 냉소적인 풍미를 즐기고픈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이 없겠다.

거의 두 인물의 대화로만 진행되는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대사의 묘미에 있다. 문장의 흡인력과 감칠맛만으로도 웬만한 드라마를 가볍게 능가한다. 독설, 냉소라는 것이 적대적 세상에 대한 자기방어 내지 선제공격이라 볼 때, 뒤틀린 우월감과 자기합리로 포장한 타슈 선생의 거침없는 언변과 그 허점을 파고들려는 기자(다들 이름이 없다)가 벌이는 승부는 펜싱 선수들의 칼끝에서 튀는 불꽃처럼 팽팽한 긴장감으로 넘친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소모적인 심리 게임이 아닌 것이, 인간 혐오나 글쓰기의 본질, 기성 문단 비판 같은 진지한 이슈들을 두루 건드리고 있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통렬하면서도 상쾌한 글이다.

언어에 대한 감각,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 밀도 높은 자의식, 여기에 풍자와 재미까지 두루 갖춘 이 소설에 없는 유일한 것은 여백이다. 아멜리 노통에 비하면 커트 보네거트의 냉소는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보일 정도다. 마지막으로, 영화 감독 프랑스와 오종의 세계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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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 로봇 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정철호 옮김 / 현대정보문화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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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벌거벗은 태양>은 여러모로 <강철 도시>와 대구를 이루는 소설이다. 무대만 뉴욕 시티에서 솔라리아 행성으로 옮겨왔을 뿐, 일라이저 베일리와 다닐 올리버 콤비가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구성에, 다름을 생각하게 하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당연히 솔라리아에서의 삶이다.

극히 적은 인구에 길어진 수명, 사람보다 만 배나 많은 수의 로봇은 <강철 도시>에서 그려진 거대한 시티의 모습과 정반대다. 이곳 사람들은 노동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있고, 직접적인 접촉 없이 홀로그램을 통해 서로 만나며, 가족이라는 혈연 공동체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히 고립된 개인들의 삶만이 존재하는데,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란 바로 아이를 공동으로 키우는 일과 로봇 제작이다. 누군가는 이런 삶을 모든 우주 국가가 밟게 될 문명의 첨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시모프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없는 삶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여전히 고립이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전작의 도식을 그대로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추리의 메커니즘은 여전히 정교하고, 한층 거대해진 스케일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신경질적이고 교만한 형사의 캐릭터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점, 난데없이 은하계 정복 계획이 등장하고 마지막에 저자의 견해가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점 정도가 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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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 로봇 1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정철호 옮김 / 현대정보문화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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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봇을 주제로 한 아시모프의 첫 번째 장편소설 <강철 도시>에는 로봇의 반란을 다룬 디스토피아 소설의 암울함도 없고, 필립 딕의 소설에서처럼 정체성을 둘러싼 신경증적 고민도 없다. 아시모프가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떻게 로봇에 대한 공포를 떨치면서 로봇의 편리함을 잘 이용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지극히 실용적인 고민인 셈인데, 그의 유명한 '로봇 공학의 3원칙'도 이런 실용적 필요에 의한 것이다. <강철 도시>는 추리 소설의 플롯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로봇의 갈등과 화해를 추구한 작품이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이유 없이 로봇을 혐오하는 회고주의 세력들이다. 로봇이 점차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도시의 외곽에는 우주인들이 정착하여 불안감을 조성하는 상황에 불만을 품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자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주인의 거주지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형사 일라이저 베일리는 인간과 똑같은 외모의 로봇 다닐 올리버를 파트너로 맞아 사건 수사에 들어간다. 물론 소설은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여 열린 미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며, 그 중심에는 베일리가 로봇에 대해 갖는 감정의 변화가 있다.

<강철 도시>를 읽는 하나의 즐거움은 1950년대의 상상력으로 그린 미래 도시의 모습을 엿보는 것이다. 급격히 늘어난 인구 때문에 거대한 시티를 중심으로 군집 생활을 하는 인류의 모습은 헐리웃 SF 영화에서 즐겨 다루는 미래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자연과 분리된 밀폐된 환경, 제한된 자유, 배급 생활, 엄격한 위계 질서 등 여기서 그려지는 미래의 모습은 가까운 미래에 구현될 수도 있는 현실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또 위협적이다.

솔직히 그렇게 매력적인 문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군더더기 없이 전개되는 구성에 SF 특유의 폭넓은 상상력과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추리 소설 기법이 잘 조합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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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음악, 나치 음악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82
이경분 지음 / 책세상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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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시대의 고전 음악가들을 다루고 있는 책으로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음악사의 한 귀퉁이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떠난 자, 고통받은 자, 협력한 자로 나누어 작곡가들이 나치 정권에 대해 보인 상이한 반응들을 정리하고 있다. 음악과 정치라는 문제에 대한 필자의 확고한 관점, 그리고 논점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논점이 말끔해 좀더 입체적이고 풍성한 서술이 아쉽기도 하다(음악과 정치라는 복잡미묘한 분야라면 더더욱). 게다가 나치 시대 독일의 음악 생활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다소 부족한 것 같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유럽 망명 시절 아이슬러가 12음 기법을 사용해 칸타타를 작곡했다는 것, 슐호프의 <미래에>가 존 케이지에 앞서 소리의 부정을 실현했다는 것, 하르트만의 내적 망명 생활,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재즈의 수용 양상, 전후 독일에서 나치 시대 음악가들이 복권되는 과정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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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머리카락 - 광포한 시대, 사람들의 손에 건네진 베토벤의 힘
레셀 마틴 지음, 문명식 옮김 / 지호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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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식단은 풍성하다. 소더비 경매에 나온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모티브 삼아 역사의 전후를 세심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여기서 다뤄지는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9세기 초반 유럽의 작곡가 서클이 하나고, 나치 치하의 덴마크 해안에서 벌어졌던 유대인 탈출 사건이 하나며, 유전자 감식을 둘러싼 베토벤의 병력 보고가 나머지 하나다. 물론 이 모든 사건의 현장에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이 있었다. 그리고 각 장들 사이로 베토벤의 간략한 전기적 사실이 연대기별로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만큼 포만감은 크지 않다. 아이디어 자체가 참신한 데다가 논픽션 작가로서 러셀 마틴의 글 엮는 솜씨나 자료 조사 또한 나무랄 데 없지만 뭔가 밀도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원인은 역시 베토벤의 머리카락에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머리카락이 주인공이라고는 하지만 머리카락에 일차적인 관심이 있어서 책을 집어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서 머리카락을 글의 전개의 주된 중심으로 잡되 그것을 베토벤과 그의 음악과 적절히 조율하는 것이 관건일 터인데, 그것이 좀 미흡했다는 생각이다. 머리카락을 차례로 손에 넣은 자들의 이력이 필요 이상으로 장황했고, 누락된 시기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한 나머지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한없이 지루해진다. 베토벤의 병력에 대한 조사 결과도 시시했고, 베토벤 매니아에 대한 문화적 의미를 지적하는 예리함도 없다.

아마 내가 이 책에서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참신한 해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베토벤에 대한 상식적인 호기심은 충족시킬 수 있겠지만, 결국은 전통적인 베토벤 신화에 한 획을 더 보태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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