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머리카락 - 광포한 시대, 사람들의 손에 건네진 베토벤의 힘
레셀 마틴 지음, 문명식 옮김 / 지호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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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식단은 풍성하다. 소더비 경매에 나온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모티브 삼아 역사의 전후를 세심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여기서 다뤄지는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9세기 초반 유럽의 작곡가 서클이 하나고, 나치 치하의 덴마크 해안에서 벌어졌던 유대인 탈출 사건이 하나며, 유전자 감식을 둘러싼 베토벤의 병력 보고가 나머지 하나다. 물론 이 모든 사건의 현장에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이 있었다. 그리고 각 장들 사이로 베토벤의 간략한 전기적 사실이 연대기별로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만큼 포만감은 크지 않다. 아이디어 자체가 참신한 데다가 논픽션 작가로서 러셀 마틴의 글 엮는 솜씨나 자료 조사 또한 나무랄 데 없지만 뭔가 밀도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원인은 역시 베토벤의 머리카락에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머리카락이 주인공이라고는 하지만 머리카락에 일차적인 관심이 있어서 책을 집어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서 머리카락을 글의 전개의 주된 중심으로 잡되 그것을 베토벤과 그의 음악과 적절히 조율하는 것이 관건일 터인데, 그것이 좀 미흡했다는 생각이다. 머리카락을 차례로 손에 넣은 자들의 이력이 필요 이상으로 장황했고, 누락된 시기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한 나머지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한없이 지루해진다. 베토벤의 병력에 대한 조사 결과도 시시했고, 베토벤 매니아에 대한 문화적 의미를 지적하는 예리함도 없다.

아마 내가 이 책에서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참신한 해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베토벤에 대한 상식적인 호기심은 충족시킬 수 있겠지만, 결국은 전통적인 베토벤 신화에 한 획을 더 보태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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