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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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멕시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포로의 심장을 잔인하게 꺼내 죽였다는 아즈텍 전사들도 아니고, 2000만 명의 인구가 고지대에 몰려 사는 멕시코시티의 혹독한 환경도 아니며, 민속 의상을 입고 때로는 떠들썩하게 때로는 구슬프게 연주하는 멕시코 전통 음악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요리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내가 살던 기숙사에는 세계 각지에서 건너온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멕시코 출신이었다. 그가 부엌에서 온갖 주방용구들을 꺼내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하던 그 모습, 소리, 냄새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이 소설의 출발점이자 마침표는 요리이다. 비록 세세한 요리 재료나 과정이 시시콜콜 소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티타는 요리를 매개로 하여 세상과 교류하고 마음을 열며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한다. 특별한 요리를 주제로 티타가 겪은 삶의 단면이 한 장씩 펼쳐지는 독특한 구성의 이 소설은 전편을 감싸는 따뜻한 유머와 마술 같은 환상, 그리고 가부장 질서의 견고함을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결국 원하는 사랑을 쟁취하는 티타의 애타는 노력이 독자를 매료시킨다.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장대하게 교향악적으로 풀어냈다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한 여인의 삶을 실내악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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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 - 판타지의 제왕
마이클 화이트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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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이고 까다롭고 강박적이며, 평생 대학과 저술 활동밖에 몰랐고, 현대 문명을 혐오했던 톨킨 교수의 삶은 <반지의 제왕>의 창조자만 아니라면 그렇게 매력적인 인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중간계라는 전혀 낯설고 매력적인 세계를 창조한 이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이 책을 집어들게 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가톨릭 신앙과 고대 언어에 대한 관심을 평생 이어갔으며,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문명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자연을 벗하며 살아온 그의 삶은 자연스레 <반지의 제왕>의 이미지와 중첩되면서 생동감을 부여받는다. 물론 나처럼 학자의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옥스퍼드 교수 시절에 흥미를 보일 것이며, 또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C.S. 루이스와의 관계도 흥미진진한 스토리일 것이다.

마이클 화이트의 전기는 전체적으로 무난한 모양새를 띠고 있다. 인물의 생애를 충실하게 재구성하면서 작품에 대한 나름의 평을 곁들인 구성인데, 중간계를 다루지 않은 작품들에 대한 정보가 다소 부족하다는 점을 제하면 술술 읽히는 책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난 뒤에 톨킨의 또 다른 전기가 국내에 소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험프리 카펜터의 전기가 최초로 쓰여진 톨킨의 전기이자 가장 권위 있는 판본으로 통한다는 사실도. 서점에서 잠깐 책을 둘러보니 둘 다 비슷한 구성인데, <반지의 제왕>에 대한 정보는 오히려 카펜터의 책이 더 자세하고 대신 화이트의 책에는 톨킨 사후 그의 작품들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책이 연이어 소개되니 왠지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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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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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드라마도 액션도 없고, 정교한 묘사도 빼어난 문체도 없는 소설이 흥미로울 수 있을까? 체호프의 단편 소설은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일상에서 주목받지 못한 채 지나치는 순간의 단면을 포착해 새로운 관점으로 돌아보게 하는 것, 그것이 체호프 소설의 매력이자 그를 읽는 경험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감정의 진실이다.

체호프의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면은 독자의 감정을 소설 속에 끌어들이는 기교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간결하고 냉정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나락에 떨어지듯 갑작스러운 마무리를 통해 독자의 실생활의 감정을 주인공의 감정에 겹쳐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섬세한 감정을 묘사한 작품으로는 <공포>와 <베로치카>가 먼저 기억된다. 친구의 부인에 대한 우호의 감정이 한순간 돌아서게 되는 대목과 처음으로 사랑 고백을 받은 남자의 미묘한 갈등은 극히 생생하고 사실적이다. <관리의 죽음>과 <드라마>는 사람들 사이의 오해와 무신경을 경쾌한 템포로 담아낸 그로테스크한 작품이며, <베짱이>는 냉혹한 이기심이 빚어낸 비극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내기>는 체호프가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음사 번역에 앞서 열린책들에서 나온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도 읽었는데, 두 권 모두 번역 상태도 좋고 작품 선정도 괜찮다. 다만 열린책들에 수록된 작품들이 다소 무겁고 사색적이라면 민음사 판본은 상대적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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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들려준 이야기 - 신화와 예술로 만나는 숲의 세계
김기원 지음 / 효형출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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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관해 부담 없이 읽을거리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무난할지 모르겠지만 전문가의 책치고 얄팍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숲을 소재로 한 신화, 종교, 예술의 사례를 정리해 모아둔 것으로 이 정도는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모을 수 있는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소재주의'를 벗어나려면 전문가다운 보다 깊은 통찰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숲을 소재로 한 음악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숲의 소리가 오케스트라 편성이나 작곡가의 음향 구성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흥미로운 작업이다. 왜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제작자들이 유명했는지를 나무 재료와 음향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도 좋다. 지역에 따라 풍경화의 색채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이유를 숲의 수종에서 찾을 수는 없는지 설명하는 것도 전문가가 할 수 있는 작업이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숲의 산업화를 주제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넣을 수도 있다. 삼림욕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국립공원의 역사는 무엇인지, 숲의 냄새를 상업화한 향수 산업은 어떠한지 등 숲과 관련한 흥미로운 논의들은 얼마든지 많다. 지구상에 숲이 형성되는 과정이나 우리 역사 속의 숲 관련 이야기를 다룬 대목은 마음에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이런 내실 있는 정보들로 호기심을 자극하기보다는 당위적인 주장과 상식적인 명제에 기대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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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앨버트 칸 지음, 김병화 옮김, 파블로 카잘스 구술 / 한길아트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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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첼리스트, 그보다 덜 위대한 작곡가, 그보다 더 위대한 인간. 바로 이 책의 주인공 파블로 카잘스다. 책을 읽는 동안 그에 대한 경외감과 동시에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이 준 재능과 건강 외에 인간에 대한 사랑과 겸손, 양심, 노력, 그리고 강직함과 소신까지 모든 덕목을 갖춘 세기의 영혼이다. 어떻게 한 인간이 이렇게 완전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에서 우리는 카잘스가 예술가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은 물론,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시대의 양심으로서 인류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모습을 감동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친구를 사귀었는데, 동료 음악가들뿐만 아니라 나치 당원과 소련 예술가, 일본의 음악 애호가, 그리고 미국 대통령, 유럽 황실,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국적과 계급을 불문한 이들로부터 폭넓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음악적으로 인격적으로 이렇게 추앙 받는 그였지만 한편으로는 고향인 카탈루냐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평생 간직하고 살았을 만큼 순수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했다.

수많은 친숙한 이름들을 만나는 즐거움, 고통스러운 역사를 깨닫는 교훈, 인간으로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지혜를 주는 큰 책이다. 그가 관여한 페스티벌과 음반에 관한 풍부한 정보들과 꼼꼼한 번역 또한 책에 무게를 실어준다. 무엇보다 사진 자료가 반갑다. 그의 풍채 좋고 따뜻한 인품이 묻어나는 사진 몇 장을 복사해 책상 앞에 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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