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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십 트루퍼스 ㅣ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5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로버트 하인라인의 명성과 영화에 대한 실망 사이에서 망설이다 이제야 <스타십 트루퍼스>를 읽었다. 결과는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강화복 같은 아이디어는 지금 보아도 흥미롭고 군대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이야기를 풀어 가는 솜씨 또한 명성대로 훌륭했다. 특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군대, 전쟁, 규율, 윤리에 관한 작가의 장광설이 펼쳐지는 대목이었다.
"전쟁의 목적은 정부가 결정한 일을 무력을 통해 지원하는 일이야. 그 목적은 결코 죽이기 위해 적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 내가 시키고 싶은 일을 적에게 강요하는 일이야. 살육이 아니라 (...) 통제되고, 목적을 가진 폭력이지"(p.108). "우리는 훈련과 경험, 그리고 엄격한 정신 수양을 통해 윤리 의식을 획득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윤리 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존 본능이 세련되고 세분화된 것이다. (...) 윤리적 본능이란 어른들이 네 마음속에 심어 준 개념, 즉 개인 차원의 생존을 넘어선 절대적 생존이 존재한다는 신념을 의미한다"(p.191).
<스타십 트루퍼스>는 군대적 질서가 지배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을 어떻게 강인한 군인(시민)으로 키워낼 것인지 설교하는 소설이다. 하인라인의 입장은 '교육'과 '사회'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교육은 개인의 잠재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인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훈육하는 것인가. 사회는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를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일방적인 목적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독재 체제를 옹호할 것인가. 그것이 관건이다.
발표된 지 5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도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제기하는 이슈가 현재에도 여전히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효율성이 지배하는 사회, 내 편과 상대편이 적대적으로 맞서는 사회, 수단과 목적이 뚜렷이 구분되는 사회다. 이런 효율성의 사고, 힘의 사고가 지금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논리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논리는 명확해 보이는 만큼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든다. 물론 우리는 경험적으로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가 획일화된 사회보다 더 만들고 유지하기 어렵지만 그만큼 더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인류가 다원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음을 알고 있다.
사족으로, 성장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한참 세계관을 형성해 가는 중인 청소년들보다는 비판 능력을 갖춘 성인이 읽어야 할 책임을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