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에로이카 > [프레시안] [인터뷰]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임지현 교수

나는 임지현 교수의 국사 비판이 옳다고 생각한다... 단, 그 발언의 정치적 효과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 이 참에 아예 작심하고,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동아시아 학자들을 조직해서 제 나라의 국사 서술들을 비판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아래로부터 동아시아 연대를 이루어내는 것은 자국 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를 앞당긴 이 나라 국사 교과서 편찬 당국이나, 독도를 자기 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이나, 동북공정을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중국이나, 단군릉 성역화에 나서는 북한이나 다 마찬가지 아닌가? 이 적대적 공생으로 촘촘하게 잘 짜여진 니들의 역사 속에 난 별로 끼고 싶지 않다. 임지현 교수처럼...

 

"청동기 시대 앞당겨지면, 우리는 자랑스럽나?"

[인터뷰]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임지현 교수
등록일자 : 2007년 03 월 02 일 (금) 17 : 22   
 

  이번 신학기에 배포된 고교 역사교과서에서 한국 고대사에 관한 내용이 종전과 달라졌다. 우선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을 보다 분명하게 못박았다. 또 청동기 시대의 개막을 최대 1000년까지 앞당겼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왜곡 등을 의식한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역사를 정치적 고려에 따라 기술하는 주변국의 행태를 비판해 온 한국 정부가 마찬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정당성이 없다는 비판이다.
  
  특히 청동기 시대의 개막을 앞당긴 것이 이런 지적이 나오게 된 주요 배경이다. 한반도에 청동기 시대가 시작된 시점을 기원전 1300년 경으로 보는 게 학계의 다수설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1000년으로 기술한 종전 교과서보다는 조금 빠르고, 기원전 2000년까지 앞당긴 새로운 교과서보다는 한참 늦은 시기다.
  
  물론 역사학계의 통설은 끊임 없이 바뀌는 것이며, 현재의 다수설이 무조건 옳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좀 더 신중한 접근, 풍부한 토론이 선행됐어야 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번 교과서 논란에 대해 단지 학계의 소수설을 채택했다는 것을 넘어 보다 폭넓은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국사, 즉 국가가 표준으로 삼은 역사라는 개념 자체를 되짚어볼 때가 됐다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문제가 되는 것도 동아시아 국가들이 국사 개념에 집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사(National History)'라는 개념은 근대 국민국가가 정립되는 과정에서 나온 '발명품'일 뿐이며, 근대 이전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또 역사학계에서는 국사를 대체하는 지역사 등의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국가가 역사 기술을 감수하는 국정 교과서 제도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서술될 수 있으며,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시각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일각에서도 이런 주장을 수용했다.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는 오는 2009년부터 국정교과서 제도를 없애고 검인정 교과서 제도를 채택하도록 제안했다.
  

  
오래 전부터 이런 주장을 해 왔던 모임 중 하나가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이다. 국사(國史) 중심의 민족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는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결성한 이 포럼은 지난 2004년 '국사의 해체'라는 문제의식을 담아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다시 '국사'가 쟁점이 된 지금, 이 책의 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한양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에서 임 교수는 단지 "교과서의 내용을 잘 써서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비판했다. 내용이 무엇이건 획일적인 시각으로 과거사 서술을 통제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민족과 국가의 과거사에서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는 게 역사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임 교수는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난 다양한 소수자의 시각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임 교수는 최근의 고구려 열풍에 대해서도 걱정스런 시각을 드러냈다. "현재의 국민국가가 존재하기 이전의 먼 옛날에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결쳐 있던 고구려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도 한국의 역사도 아닌 그저 고구려 역사일 뿐"이라는 것. 고구려사가 중국사냐 한국사냐는 물음 자체가 부질없다는 얘기다.
  
  논란이 일 수 있는 주장이다. 임 교수의 이런 주장이 단지 청동기 시대의 개막 시점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 "우리에게 '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보다 폭넓은 토론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임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국사'에 대한 집착은 주변부 국가의 공통점
  

▲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이 낸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프레시안

  프레시안 : 서구 역사학계의 추세와 달리 동아시아 국가들은 유독 개별 국민국가의 역사, 즉 '국사'에 집착하는 듯하다.
  
  임지현 : 먼저 '국사'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사'로 번역된 'national history'는 19세기 유럽에서 자리잡아가던 국민국가를 정당화하는 국가학의 일환으로 정립된 것이다.
  
  한 민족 혹은 국가의 과거를 재현하는 근대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은 넓은 의미에서의 국가권력을 뒷받침해 온 어용 학문이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광과 고난에 찬 국가의 역정을 재구성함으로써 지금 여기의 국가권력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일종의 '발명품'인 셈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발명된 '국사'는 근대적 국민국가 체제의 출현이 늦었던 나라들, 즉 식민지로 전락하거나 식민지로 전락할 위험이 큰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주변부로 이식되면서 더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식민주의에 맞서 '우리 고유'의 독자적인 국민국가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우리 고유'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일찍부터 근대적인 국민국가체제를 수립하고 식민주의적 팽창을 통해 이미 '물질적으로' 자신의 위용을 자랑할 수 있는 유럽의 국가들과 달리 '정신적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주변부 국가들이 더 '국사'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유독 더 '국사'에 집착하는 이유도 기본적으로는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런데 '국사'에 대한 집착은 비단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 그리스 등 발칸반도의 국가들이나 동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널리 발견되는 현상이다. 모두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주변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국사에 대한 집착이 동아시아적 근대의 역사적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라 해서 그것이 저절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후반 혹은 20세기의 맥락에서 동아시아 각국의 '국사'는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민족적 주체들에게 힘을 주는 계기이기도 했지만, 강한 민족적 주체를 만드는 과정은 그 내부의 다양성을 민족이라는 키워드로 획일화시키는 억압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민족'을 대변하는 주체가 (사이비) 혈통적 주류-엘리트-남성인 이상, 소수 민족-섭얼턴(차별받는 집단)-여성들은 항상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럽 역사학계에서 대두되고 있는 '글로벌 히스토리'나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가 '국사'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 이런 역사학적 트렌드와는 별도로 근대 국가의 국경 내부로 시선을 고정시킨다 해도 '국사'의 억압적 성격은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고 본다. 포스트식민주의, 여성사, 밑으로부터의 역사 등의 시도가 나왔던 것은 이런 억압적 성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진보학계는 왜 국정교과서를 방치했나
  
  프레시안 : 국가가 내용을 감수하는 국정 교과서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국사'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국정교과서 제도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임지현 : 동아시아 국가들의 교과서 검정 현황을 보면 중국에서는 여전히 국가가 교과서를 독점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최근에서야 국사의 국정교과서 제도 철폐가 논의됐고,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검인정 교과서 체제를 따랐다.
  
  한국도 원래는 검인정 방식이었다. 그런데 삼선개헌과 유신을 전후한 무렵 서울대에서 국사학과가 독립하고, 국사 교과서도 검인정에서 국정교과서로 바뀌었다.
  
  국정 교과서 체제는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이 역사 교육의 독점권을 갖겠다는 발상이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을 제외하면 국정교과서 체제를 유지한 것은 한국이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본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검인정제도 역시 과거에 대한 이해를 국가권력이 통제하겠다는 의도는 마찬가지다. 일본의 교과서 재판에서도 이런 성격이 잘 드러났다.
  
  문제는 대안적 역사해석을 주장하는 한국의 민중민족 사학 진영에서도 국정 교과서 체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십 수년 전에 이석태 변호사가 국정 교과서 체제에 맞서 법정 투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진보 역사학계는 전혀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우리가 (권력을) 잡아서 국정 교과서를 (진보적으로) 잘 쓰면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어떤 내용이 실리느냐의 문제와 별도로 국가가 과거사에 대한 기술을 통제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이 희박했던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권력의 과거 통제'라는 차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답'을 강요하는 현행 교육체제에서 역사 해석은 오로지 하나의 '정답'적 해석이 있을 뿐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킨다. 이게 더 큰 문제다. 또 학생들이 자신들이 배운 교과서가 때로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국가가 인정한 국정 교과서이건 검인정 교과서이건 마찬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청동기 없는 청동기 시대'…세계 최초 신드롬의 그늘
  
  프레시안 : 1990년대 후반 이후 '열린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면서 단일민족 신화가 많이 무너졌다. 그런데 교과서는 청동기 시대 개막시기를 학계의 다수설보다 앞당기는 쪽으로 개정됐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임지현 : 이미 고고학자를 비롯한 많은 청동기 시대 전문가들이 청동기 시대 개막 시점을 기원 전 20세기로 앞당기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한 전문가는 '청동기 없는 청동기 시대'라는 규정을 내리기도 했다. 청동기 시대 개막 시기를 앞당기려는 시도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인 셈이다.
  
  나는 기원전 20세기가 맞는지에 대한 판단을 할 전문적 식견이나 역량은 없다. 단지 청동기 시대의 개막이 더 먼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이 마치 한국 민족의 역사적 역량이 뛰어났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실인 것처럼 생각하는 역사인식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기원주의'적 사고방식의 전형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유독 '세계 최초' 신드롬이 강하다. 어떤 현상의 기원이 반드시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나타나야 하고, 외국에 그 기원이 있는 것이면 마치 민족적 자부심에 손상이 간다고 생각하는 듯한 태도다. 그러나 그것은 문화의 전파와 상호작용 등 역사의 기본적인 작동방식에 대한 몰이해에 바탕을 둔 것이다.
  
  또 청동기의 기원을 소급하는 과정에서 아직까지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의적인 시선이 많은 '기원전 20세기'를 굳이 고집한 배경에는 단군신화를 마치 사실로 확정지으려는 듯한 의도가 엿보인다. 불안한 대목이다.
  
  북한에서 단군릉을 날조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청동기시대의 개막을 기원전 20세기로 소급했다. 단군을 역사적 실재로 만드는 작업에 남북한의 민족주의적 역사학이 맞장구를 친 격이다.
  
  북한 정권에서 가장 먼저 초청한 남한 역사가가 초대 문교부 장관이었던 고(故) 안호상 씨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고대사 해석에서 남한의 대표적인 극우적 역사학자와 북한의 당 역사학자가 적극적으로 공명한 사례인 셈이다. 이제 이런 이상한 민족주의적 공모가 이번 역사 교과서의 청동기 시점 수정에 반영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다.
  
  "고구려사는 한국사가 아니다"…변경의 역사일 뿐
  
  프레시안 : 동아시아 3국이 소모적인 민족사 경쟁을 넘어서야 한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재구성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 한양대 임지현 교수. ⓒ프레시안

  임지현 : 나는 앞서 말한 맥락에서 '동아시아사'를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시키기로 한 결정을 일단 크게 환영한다. 그러나 문제는 '동아시아사'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어떤 '동아시아사'를 가르치는가다.
  
  동아시아 3국이 모두 자기 역사만을 동아시아사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다른 이웃의 역사는 조연으로 만드는 역사서술이라면, 소재가 '동아시아'로 넓어졌다고 해도 사실은 '국사'의 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그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이 쉬운 예다. 고대 동아시아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중국과 한국이 모두 고구려를 '우리 고유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자신의 국사체계 속에 강제로 편입시키려고 하는 한 균형있는 '동아시아사' 서술은 불가능하다.
  
  만약 만주국이 일종의 독립국으로 존재한다면, 만주국 역시 고구려는 자신의 민족사라고 주장할 것이다. 현재의 국민국가가 존재하기 이전의 먼 옛날에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결쳐 있던 고구려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도 한국의 역사도 아닌 그저 고구려 역사일 뿐이다.
  
  만주의 다양한 유목민족과 한번도의 선주민들, 그리고 훗날 중국으로 편입된 소수민족들이 다양한 언어과 문화를 서로 접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얽혀 살았던 전형적인 변경의 공간(border zone)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고구려사가 중국사냐 한국사냐 하는 물음은 비(非)역사적일 뿐만 아니라 반(反)역사적이기까지 하다. 고구려의 역사와 고구려의 옛사람들을 현재 국민국가의 정치적 전유구도에서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사'의 틀을 유지하는 한, 고구려사가 중국사냐 한국사냐 하는 싸움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 비단 고구려사뿐만 아니라 발해사, 신장, 티벳, 오키나와, 홋카이도, 대마도 등 동아시아 3국의 변경이 맞닿는 지역에 대해'변경사'(border history) 혹은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transnational history) 등의 시각이 요청된다.
  
  바람직한 동아시아사에 대해 지금 완성된 지도를 제공할 수는 없지만, 이처럼 국사의 틀을 벗어나 새롭게 사유하고 다른 시각으로 과거에 접근한다면 얼마든지 균형잡힌 시선을 취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인은 모두 피해자이고 일본인은 모두 가해자인가?"
  
  프레시안 : 최근 한국 사회의 민족주의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일제 강점기를 왜곡하여 서술한 <요코 이야기>가 미국 교과서에 실린 사건, 이원복 교수의 만화 <먼 나라 이웃 나라>에 유대인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논란 등이다. 이런 사건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도 앞서 언급한 내용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임지현 : 이런 사건들에서 층위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 밑에는 역시 '민족'을 단위로 사유하는 습관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요코 이야기> 사건에 대해 한국의 언론과 시민사회가 보인 반응은 민족적 관점이나 민족을 단위로 사물을 생각하는 방식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인들의 신체에 얼마나 깊이 각인돼 있는가 하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민족을 단위로 생각하면 자연히 모든 한국인은 희생자고 모든 일본인은 가해자라는 민족적 이분법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유구조 속에서는 가해자 민족이라 해도 일부 일본인은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피해자 민족이라 해도 일부 한국인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을 여지가 거의 없다. 그리고 이런 한계는 <한겨레>등 소위 진보언론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이원복 씨의 만화는 직접 읽지는 못 하고 언론을 통해서만 내용을 접했다.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유대계 음모론 등에 기대어 9·11 테러를 유대인에 대한 아랍인의 복수라는 식으로 논의를 전개한 모양이다. 기사에 따르면 시몬-비젠탈 센터가 이 교수의 만화를 출간한 김영사에 항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시몬-비젠탈 센터는 시온주의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나치 전범 추적에 전 생애를 건 시몬 비젠탈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도덕성을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국제적으로 생각보다 심각하게 번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아랍 대 유대인이라는 구도가 실은 '베이비 부시'와 동일한 사유구조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단지 편을 드는 대상이 다를 뿐이다. 이런 태도는 결국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비판하면서도 사실은 인정하는 모순을 낳는다.
  
  이는 한국 사회가 국제관계를 바라볼 때조차 민족을 단위로 사유하고 행동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다.

성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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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03-03 0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또 바뀌었군. 어쩐지 시중 서점에 교과서가 아직 안 풀렸다했더니, 정말 지난번 국사편찬위원회 연수에서 얼핏 들은 것처럼 바뀌어서 나왔군. 다른 연수 가면 욕먹는 ㅊ 모 교수들..그런데 교과서는 꼭 그들 의도대로 바뀌어진단 말이지.
근데, 어쨋거나 왜 나한테는 아직 새 교과서를 안주는 거냐. 어차피 요즘 연대같은 거 외우게 하는 일 하지 않지만...
 
 전출처 : 이매지 > 채소 드음뿍! 게살달걀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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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발판은 무너진 담을 넘어서 폐허가 된 사원 안으로 관람객을 인도합니다.


정면 입구에서 안쪽으로 향하는 통로가 이렇게 무너져 있습니다. 그런데, 앙코르와트 유적군에서 저런 통로의 안을 걸어다닐 땐 몰랐던 사원의 전체 구조를, 이렇게 무너진 잔해를 보니 차라리 알기 쉬웠습니다.


지붕의 돌들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앞쪽 회랑.


사원 중심부는 몇개의 방만 남고 다 무너지고 저렇게 바깥 회랑은 그나마 많이 남아있습니다.


사원 중심부에서 정면입구쪽을 바라보고 찍은 것입니다.


통로가 무너져서 바로 저렇게 외벽이 보입니다.


저렇게 사원의 내벽을 따라 중앙으로 접근합니다.
중앙으로 접근하면,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떡하냐. 저런 창문 앞으로 작은 사다리가 하나 있고 그걸 타고 올라가는 겁니다. 저런 창문의 기둥이 딱 하나 빠져있고, 그 사이로 올라갑니다. 바로 앞에 타이완 단체관광객들이 지나간 뒤라서 가이드들이 사다리 위와 밑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길다운 길은 끝인데 올라가야하나? 그러나 바로 앞에 하얀 원피스에 샌들 차림의 아주머니가 올라간 것을 보았기 때문에 올라가기로 합니다. 창문 위에 쭈그리고 앉은 가이드도 손짓을 하네요. 가이드북과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사다리를 올라갑니다.


이건 올라가서 찍은 사진인데, 왼쪽 남자 뒤에 난 창문 틈으로 들어와서 저 돌너미를 타고 올라 지붕으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가이드북에는 저 돌들에도 무늬가 새겨져있다는데 올라오는 데 정신없어서, 발 디딜 자리, 손 잡을 자리 찾느라 정신없어서, 그런 거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거의 다 올라오니, 다행히도 맨 위에 굵은 넝쿨같은 나뭇가지가 드리워져 있어서 그걸 잡고 오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휴...


이건 나중에 내려와서 찍은 건데, 저렇게 지붕 위에 올라가는 겁니다. 여기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올라갈 수 있어서 다행~ 그런데, 솔직히 주위에 사람들이 올라가는 거 봐서 올라가지, 혼자 있었다면 못 올라갔을 지도 모릅니다^^;


올라가서 보니, 사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네요. 사람들이 서 있는 곳에서부터 내벽을 따라 나무 발판이 이어져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지요.


바로 밑에도 저렇게 나무 발판이. 나무 발판에 감사하고 또 감사.


중앙 성소 지붕에서 내려다본 뒤쪽 회랑입니다.


저렇게 돌더미를 타고 가서 뒷쪽 회랑 지붕이나 회랑 안으로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기 왼쪽에 카키색 유니폼을 입은 가이드, 그 밑에 티셔츠 제복을 입은 경찰 아래로 놓인  사다리가 낡아서 조심하라고 하길래 저는 여기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잘못해서 미끄려지면 그대로 3,4미터 밑에 돌무더기...


내려오는 길은 그래도 올라갈 때보다 나았습니다. 다시 무너진 돌들...조각이 선명하죠. 상인방이었나 봅니다.


사원을 뒤로 하고...


유적지 입구. 벌써 사원의 폐허는 나무에 가려 잘 안보이네요.


음료수 필요 없나요?를 수줍게 외치는 어린 꼬마들 뒤에 숨어있던 사자상?

이번 앙코르와트 유적 방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유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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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3-02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못가니 동생이랑 엄마보고 갔다오라고 추천하고 있어요.
동생이 영어와 마일리지가 되니 큰돈 안 들여도 되고, 올해안에 가실듯해요.
사진도 잘 보고 글도 잘 읽었어요.수고하셨네요.
 

마지막날 오전에 방문했던 벙 미얼리어입니다.

원래 계획에서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또 택시를 대절해 이동시간을 절약했기 때문에 마지막날 오전이 통째로 비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다음날 귀국 후 바로 출근해야한다고 쉬고 싶어해서 어떨까했는데, 혼자 호텔에서 쉴 테니 혼자 가고 싶은데 다녀와도 좋다고 순순히 말해주더라구요. 고마워~ 그래서 생각지도 못했던 벙 미얼리어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시엠 리업 시내에서 차로 1시간반쯤 걸렸습니다. 앙코르와트를 지을 때 석재를 날라온 프놈 꿀렌산 근처까지 갑니다. 그래도 포장된 도로 위를 달립니다. 반띠아이 쓰레이로 가는 길도 포장은 되어 있었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들고 워낙에 열대림 가운데 있는 도로다보니 도로상태가 시원찮았고, 제가 갔을 때도 부분적으로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는데, 벙 미얼리어 가는 길은 통행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오히려 도로상태는 좋았습니다. 여기는 워낙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있고, 앙코르와트 통합 입장권이 적용되는 지역도 아니고, 도로 포장이 된 지도 얼마 안되서 잘 알려져있지 않나봅니다. 제가 방문한 1시간반동안 미니버스를 탄 타이완 단체 관광객 한팀 외에는 타이완, 일본, 서양인 개별여행자들 약간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유일한 한국인! 택시로 50불 주고 다녀왔습니다. 50불 안에는 통행료 5불도 포함. 여기도 뚝뚝을 타고 가는 사람들을 몇 지나쳤는데, 뚝뚝으로 다녀오기엔 좀 먼거 같습니다.

12세기 중반에 세워진 힌두사원이라는데, 구조는 앙코르왓과 비슷한데 단층구조로 되어 있고, 벽은 3중으로 되어 있습니다.



유적지 입구 허름한 가게들 앞에 차를 세우고 표지판을 따라 갔더니, 저렇게 다 허물어진 사원 입구가 나타납니다. 사원 입구에는 표를 확인하는 사람과 함께, 유니폼을 입은 공식 가이드들이 앉아있습니다. 가이드를 부탁할까 말까. 그러나 강요하는 기색도 없고, 그냥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길래 그냥 들어가봅니다.

사원 입구까지 보통 뱀 모양 난간을 지닌 다리가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입구가 저러니 입구로 입장이 안됩니다. 일단 무너진 회랑을 따라 동쪽으로 가봅니다.


중앙 출입구로 향하는 다리의 흔적입니다. 이 밑으로 예전에는 해자와 연못이 있었겠지요. 지금은 물의 흔적도 없네요.


사원의 동쪽 바깥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이곳도 십자형으로 생긴 사원이었지요.


폐허가 된 사원 옆으로 유유히 지나가는 소의 무리.


동편 바깥벽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부조가 새겨진 건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게 도서관 건물 앞쪽이었던가? 여기도 폐허는  초록색 나무들로 뒤덮혀 있습니다.


압사라인가, 여신인가. 저에게는 여신처럼 보입니다.


계단 모퉁이 난간장식인 나가는 남아있습니다.

동편 벽이 무너진 사이로 나무로 짠 계단이 놓여 있어서 올라가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


계단을 오르니, 나무로 된 복도같은 발판이 유적 내부까지 쭈욱 이어집니다. 우선 발판에 서서 왼편을 바라봅니다. 나무를 베어낸 흔적이 보입니다. 어떻게 저런 틈에서 큰 나무가 뿌리를 박고 자라난 걸까요.


건물 꼭대기에 저런 장식은 꽤 선명하네요.


중간 중간 이렇게 비교적 잘 남아있는 방도 있습니다. 가까이 갈 수는 없었지만. 창문 장식은 전형적인 크메르 양식이네요.
 

사원 들어서자마자 양쪽으로 있는 도서관 건물은 그래도 비교적 온전합니다. 그러나 여기도 접근은 쉽지 않음. 나무 발판에 서서 바라볼 뿐입니다.


제법 큰 나무들이 사원의 폐허를 뚫고 자랐네요.


점점 더 사원 안쪽으로 들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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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0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러져가는 모습으로 지탱하고 있는 사원과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디면서도 버티고 있는 고목들, 인상적이에요.^^

물만두 2007-03-01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만간 이 풍경이 사라질 것 같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BRINY 2007-03-0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코르와트 유적군의 사원들처럼 각국의 지원을 받은 복구의 손길을 닿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가 듣고 간 얘기에 비해서는 관리의 손길이 미치고 있는 거 같았습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지 않았을 시각, 초록 나뭇잎이 가득했던 사원의 모습과 서늘한 공기가 아련합니다.
 

앙코르 관광 둘째날의 대미는 쁘레룹에서의 일몰.
바이욘을 보고 나와서, 차는 앙코르톰 동쪽 승리의 문을 지나, 흔적만 남은 인공 저수지인 동 바라이를 지나갑니다. 돌다리, 따께우 사원, 따프롬 사원과 반띠아이 끄데이 사원의 긴 돌담들, 왕실 목욕터였다는 쓰라쓰랑을 지나 10여킬로 정도 정글 속의 좁은 길을 전진.

갑자기 공터가 나타나고, 붉은 사암으로 지은 피라밋형 사원이 우뚝 서 있습니다.
이것이 쁘레룹.
단체 여행객들은 대부분 이 지역 유일한 언덕인 프놈바켕으로 일몰을 보러 가고, 나머지는 이곳으로 오는 거 같습니다. 굳이 높은 곳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바이욘에서 시시각각 햇볕의 각도에 따라 변하는 바이욘의 4면상을 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구요.


자, 하여간 또 저런 계단 위를 올라가서 올라가서 3층 꼭대기로. 하여간 다리 운동 많이 했습니다. 나중에 내려올 때는 앞에 가는 일본 할머니들과 보조 맞춰 천천히 내려오는 데, 한발자국 내딪을 때마다 다리가 후들후들...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저렇게 서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습니다. 여기도 곧 촬영대회 분위기로 변신.


쁘레룹은 아마도 화장터로 쓰였다는데...여기는 중앙탑의 문 장식.



드디어 평원 위로 해가 지나 봅니다. 저기 남서쪽 어디로 앙코르와트의 다섯탑이 보인다는데, 잘 모르겠네요.



중앙탑 바로 밑의 계단은 이미 자리가 다 차서, 그냥 3층 가장자리에 걸터 앉아 다리를 내려뜨리고 앉았습니다. 이러다가 뒤로 지나가는 누가 치면??


햇볕이 눈부셔요.



해가 질락말락. 저기 어딘가에 기린의 긴 목이 보여도 괜찮을 거 같은 풍경입니다.


해가 지자, 바로 어둠이 깔리는 걸 아는 사람들은 서둘러 계단을 내려 시내로 향합니다.


그러나 한동안 저녁노을이 서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 거대한 구름은??!!

이 근처는 시내 6번 국도 말고는 가로등 보기가 힘든데, 경주-앙코르 엑스포를 했다는 곳으로 통하는 큰 길에만 이렇게 가로등이 줄지어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시내에서 저녁 먹는 걸 완전히 포기한 우리들.
낮에 앙코르톰 주차장 부근에서 사온 파인애플과 비스킷으로 저녁을 때우고 TV보다 바로 잤습니다. 그래도 한국과 시차 2시간이니, 8시에 자도 한국시간으로 밤 10시죠. 내일은 일출보러 4시반에 모닝콜 서비스 부탁해놨기도 했고. TV에서 글쎄 [발리에서 생긴 일]을 캄보디아어 더빙으로 보여주더라구요. 웃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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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25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 아래가 무서운데요^^

하루(春) 2007-02-25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는데요. 시내에서 저녁 먹는 걸 왜 완전히 포기하셨나요?

BRINY 2007-02-25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처음에는 그냥 그러고 다리 흔들면서 앉아 있다가 '야, 이러다가 뒤로 다니는 사람이 툭 치면 우린 어떻게 되는거냐?'하자 갑자기 무서워져서 뒤로 후퇴했답니다.
하루님/종일 땡볕속을 돌아다니느라 녹초가 되서요^^ 친구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미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거든요. 더워서 식욕도 없구요.

하루(春) 2007-02-25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저도 일본 갔을 때 8일, 9일째 되는 날에는 피곤해서 호텔에서 나가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더군요. ^^; 저는 점심을 거하게(비싸거나 배부른 걸) 먹은 날엔 저녁은 그냥 카푸치노와 조각케이크, 혹은 떡으로 대신하곤 했어요.

BRINY 2007-02-25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하루님이 그 말씀을 하시자 냉동고 속의 조각 케익이 생각났어요. 먹으러 가야지~~

깐따삐야 2007-02-25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에 다녀왔던 일행끼리 이번엔 앙코르와트다, 라고 결정했는데 아... 사진들을 보니 하루빨리 가고 싶어요.

바람돌이 2007-02-28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텔레비젼 봤는데요. 캄보디아 말로 하는 한국드라마 진짜 웃기더라구요. ^^ 그쪽 말이 분위기 있는 쪽하고는 쬐끔 거리가 있는듯.... ^^ 쁘레룹은 전 못봤는데 오히려 저곳이 좀 한적하게 괜찮았을 듯도 하네요. 다음에 가서 볼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