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체 게바라의 젊은 한 때,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Key 아르헨티나에서 페루까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으로 자라나게 될,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젊은 한때.

낡은 모터사이클을 탄 청년은 내 이름은 에르네스토, 라고 말한다. 그는 아직은 ‘체’라고 불리지 않는다. 자신이 태어난 대륙을 더듬으면서, 혁명보다는 연민에 동요하는 젊은 영혼.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알베르토 코르다의 사진이 각인시킨 전사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타고 넘어 천진한 열정으로 여행을 시작한 스물세살 에르네스토와 동행하는 영화다. ‘미알’(나의 알베르토)이라는 다정한 애칭으로 친구를 부르곤 했던 그는 15년 뒤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헌신한 혁명가라는 이유로 살해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그 비극을 멀찌감치 두고, 다만 여행을 할 뿐이다. 그리고 기다린다. 에르네스토가 “더이상 예전의 내가 아닌” 자신을 발견하기까지.

1952년 1월, 의대생 에르네스토 게바라와 생화학을 전공하는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페루를 가로지르는 라틴아메리카 여행을 떠난다. 스물셋과 스물아홉. 철없이 들뜬 두 청년은 포데로사라고 이름 붙인 구식 모터사이클을 타고 언덕처럼 배낭을 쌓아올리고선 시동을 건다. 아름답지만 험한 라틴아메리카 흙길을 따라가던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는 수명을 다한 포데로사를 떠나보내기에 이른다. 히치하이크를 하거나 걸어서 여행을 계속하는 두 청년은 포데로사를 잃은 대신 이전보다 훨씬 생생한 만남을 갖게 된다. 땅을 잃고 일자리를 찾아서 거대한 광산으로 향하는 가난한 부부, 침략자의 흔적이 뚜렷한 고대도시 쿠스코에서 마주친 인디오들, 정글 사이에 묻혀 있는 산파블로의 나환자촌. 다섯달 여행 끝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한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는, 8년 뒤에야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작별을 고한다.

<중앙역>으로 알려진 월터 살레스는 “이 영화를 찍기 전에 나는 브라질 감독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라틴아메리카의 감독이다”라고 말했다. 그보다 한 세기 전에 죽은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처럼, 라틴아메리카가 하나가 되기를 소망했던 체 게바라. 살레스는 불가능한 꿈을 가졌던 이 로맨틱한 전사가 어찌하여 거대한 대륙을 가슴에 품게 되었는지, 관객보다 그 자신이 먼저 공감하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한동안 안데스와 파타고니아에서 날아온 사진엽서처럼 보이기만 하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차츰 길을 따라 영혼도 변해가는 로드무비가 되고 성장영화가 된다. 빨리 자라거라 보챈다고 해서 씨앗이 나무로 솟아나진 않는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베레모를 쓴 혁명가와 마주하고 싶은 조급한 관객을 팜파스와 호수의 풍경으로 달래가면서 아주 천천히 다섯달에 걸친 성숙의 과정으로 인도한다. 그 끝에는 가혹한 현실을 목격하고선 오히려 하늘처럼 순수한 이상을 품게 된 에르네스토가 서 있다.

그라나도와 체 게바라가 쓴 두권의 여행기를 바탕으로 한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그들이 실제 밟았던 길목을 순서대로 따라갔다. 호수가 거울처럼 비춰내는 흙길과 숨쉴 공기도 희미한 산길, 어둠 속에 떠나오는 뱃길까지,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단 한번도 정직하고 고집센 스물세살 에르네스토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 커브를 돌 때마다 몇년 뒤 체라는 애칭을 갖게 될 혁명가의 어린 그림자가 잠깐 자기 자리를 내달라고 주장한다. 낭만적인 공상을 펼쳐놓는 알베르토에게 “폭력없는 혁명은 가능하지 않다”고 무심한 듯 말하는 에르네스토는 소총을 쥐고 쿠바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의 게릴라 대장으로 싸울 체 게바라와 가느다란 밧줄로 연결되어 있는 듯도 하다. 그러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이 여행이 에르네스토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열기로 무르익은 연상의 여인에게 이끌리고 맘보와 탱고를 구분 못해 ‘맘보-탱고’를 추는 순진한 젊은이. 그는 “당신들도 일자리를 찾고 있나요?”라는, 가난과 핍박에 지친 부부의 질문에 부끄러워하면서, 그저 여행하고 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이 투 마마> <아모레스 페로스>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그처럼 흔들리는 표정을 갖고 있던 청년이 하나의 아메리카를 외치기까지의 굴곡을 직접 겪은 것처럼 온몸과 그 몸을 감싼 공기에 새겨넣었다. 에르네스토가 예전의 그가 아니듯,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도 영화가 시작될 무렵의 그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혁명을 이룬 쿠바에 안주하지 않고 볼리비아로 떠난 체 게바라는 정치적인 알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 선택 때문에 혁명보다는 낭만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아이콘이 되었다. 그는 티셔츠와 배지와 휘장과 포스터 속에서 아주 멀어 보이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살레스는 왜 그 결연한 시선 대신 사랑에 우는 앳된 눈동자를 택했을까. 로버트 레드퍼드가 판권을 사고 제작을 추진한 제작자라는 배경이나 영화가 지나치게 밋밋하다는 약점을 제쳐놓고 본다면,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한장의 사진 속에 갇혀버린 듯했던 체 게바라가 잠시라도 숨을 쉬고 있다는 애틋한 울림을 준다. 1967년 10월 눈을 반쯤 감은 시신으로 식어갈 체 게바라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안에서만은 젊고 자유로운 에르네스토로 되살아난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체 게바라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이후 체 게바라의 여정

그는 단 한번도 눈을 감지 않았다

여행 도중 스물네 번째 생일을 맞았던 에르네스토는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1953년 7월 두 번째 여행을 떠났다. 친척 카를로스 페레르를 동반자로 삼은 그는 볼리비아와 페루, 코스타리카를 거쳐 과테말라에 도착했고, 그곳에 머물며 의사로 일했다. 그가 젊은 혁명가 ‘체’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체’는 아르헨티나인들이 무언가를 강조할 때마다 습관처럼 붙이는 단어. 이제 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진 그는 1954년 과테말라 민주정부가 CIA 지원을 받은 쿠데타로 무너지면서 멕시코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다. 무장봉기를 신봉하고 있던 체 게바라는 혁명은 한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믿음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가 아르헨티나 출신임에도 쿠바혁명에 가담하게 된 건 그 때문이었다. 카스트로 형제와 함께 쿠바에 상륙한 그는 전멸하다시피한 게릴라 부대를 이끌고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 세력을 구축해서 1959년 1월2일 수도 아바나에 입성했다. 체 게바라는 천식을 앓고 있었지만 위험한 게릴라 전투 중에도 누구보다 그 자신에게 엄격해 신망을 얻을 수 있었다. 날카로운 지성과 타고난 성실함을 갖춘 체 게바라는 해방된 쿠바에서 국립은행 총재와 공업장관을 맡았고 외교 활동도 함께했다. 그러나 그는 쿠바에 머물지 않았다.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해방시키려 했던 체 게바라는 콩고혁명에 참여했고, 그 실패 뒤에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했던 볼리비아 혁명 세력에 합류했다. 그가 최후를 맞은 나라 역시 볼리비아였다. 눈을 반쯤 뜨고 죽은 그를 두고 최후 감금처에서 그를 만났던 어떤 이는 “체 게바라는 단 한번도 눈을 감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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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4-11-19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고, 체 게바라 평전 읽고 있다. 빠르면서도 짧게 끊어지는 영화 속 스페인어에 반해 스페인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주연 배우가 체 게바라 젊은 시절 사진과 닮았더라. 베레모에 머리칼과 수염 덥수룩히 기른 사진에만 익숙해져 있다 보니, 젊은 날 그의 모습은 참 신선하다.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여운이 남는다. 주위에선 [* 다이어리][*****지우개][**온리]영화 얘기만 만발하고, 이 영화 얘기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좀 쓸쓸.

결이맘 2004-11-28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물만두님의 서재에서 눈팅을 하다가 낯익을 나롱이 그림을 보고 혹시 안피디님 언니가 아니신지... 해서 들렀습니다. 햄스터를 보니 역시 맞군요! ^^

저는 나롱이 홈피 관리자 입니다 .

그럼..

아, 저도 이 영화 봤어요..

BRINY 2004-11-2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안녕하세요~ 햄돌이랑 나롱이를 알아보셨군요^^;; 어서 빨리 나롱이가 전국적, 나아가 전세계적 인기를 얻으면 좋겠네요!
 

 [월간Da Vinci] 홈피에 갔다가 우연히 애니메이션 [암굴왕]의 광고를 보았다. [다 빈치]를 내는 Media Factory가 제작에 참여한 듯. CG를 구사한 화려한 비주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GONZO가 제작중이며,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란 멋진 원작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바로 동영상을 5편까지 구해 보았다.
괜찮다~ 이야기는 에드몽 당테스를 배신한 페르낭과 에드몽의 약혼자였으니 페르낭과 결혼한 메르세데스의 2세인 알베르의 시점, 그리고 몽테 크리스토 백작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된다. [청의 6호]를 만들었던 GONZO는 한층 발달된 CG기술을 선보인다. 오래간만에 볼만한 TV애니 하나 건져서 기쁘다. 24화 예정이라는데,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를.


암굴왕

옥의 티:카니발이니 무도회니해서 귀족들의 파티 모습이 계속 나오는데, 어째서 옷을 안 갈아입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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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되고 싶지 않았던 개
팔레이 모와트 / 그린비 / 1992년 9월
평점 :
절판


중학생이었을 때, 마당문고에서 [매트]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책을 읽었다. 모르는 작가의 책이었지만, 책이 얇았다는 것, 그리고 개가 나온다는 점에서 고른 책이었다.
그 후로 꽤 많이 이사를 다녔다. 이사 다닐 때마다 제법 많은 책들을 처분했다. 거금을 주고 구입했던 양장 전문서적도 많이 처분했다. 그러나 [매트]는 지금도 나와 같이 있다. [매트]는 지은이인 팔레이 모와트와 그 가족에게 뿐 아니라, 나에게도 많은 사랑과 웃음과 눈물을 안겨준 개다. 언젠가 이 책을 바탕으로, 세계명작동화풍 TV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건 아직도 나의 커다란 꿈 중 하나이다. 애완동물을 좋아해서 [수의사 해리어트의 개 이야기]등 동물이 등장하는 책들을 많이 본 편이지만, [매트]가 최고다. 팔레이 모와트의 글솜씨도 글솜씨지만, 팔레이 모와트에게 이런 책을 쓰게 한건 매트의 매력와 애정임에 틀림없다. 개가 되고 싶지 않았던 개 [매트].
이 좋은 책이 절판이라니, 참으로 아쉽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매트]를 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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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원으로 밥상차리기 원조 '원' 요리 시리즈 2
김용환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스스로 밥해먹기 시작한 지 어언 10년. 초창기에는 요리잡지도 사보고 스크랩도 해보고 했지만, 오히려 일상적으로 집에서 먹는 요리(?)의 레파토리는 늘지 않았다. 또 집에서 해먹는 건 하루에 잘해야 한끼니, 요리 레파토리와 솜씨가 늘리가 없지. 게다가 요리책에서 요구하는 재료와 조미료, 도구들은 왜 그리 많은지.  

그러던 참에 이 요리책의 소문을 들었다. 안그래도 제대로된 부엌도 딸리고 근처에 대형마트까지 있는 집으로 이사해, 건강을 위해서도 밥과 국, 찌게는 꼬박꼬박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다짐하던 때였다. 국 따로, 반찬 따로, 국수류 따로..식의 완성된 요리 사진만 멋진 요리책보다는, 일상적으로 간단히 냉장고에 있는 재료와 기본 조미료만으로 만들어 먹기 위한 요리책이 필요했다. 인터넷도 이용해봤지만, 그 때마다 컴퓨터를 켜고 검색을 해서 메모를 하던가 프린트를 하는 것도 귀찮았다.

구입한 지 1년 가까이 되어오는데,  [곧 나온다는 2권도 사야겠다]라는 감상이다. 지금도 책을 펼쳐놓고 콩나물국밥을 해먹은 참이다. 책의 내용을 100% 따라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을 충실하고도 간단히 안내해주니,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내 스타일로 적당히 응용하면 손쉽게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맛보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혼자 만족하며 먹기엔 충분한 요리가 된다.  책에 실린 요리의 종류도 가끔씩 땡기는 [일품요리]부터 일상적인 국, 찌게, 밑반찬까지 다양하다. 지금까지 구입한 어떤 요리책보다도 잘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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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하우스에서 로네펠트 허브티를 살 때 샘플로 받은 버번 바닐라 홍차. 샘플 봉지를 열어보니, 달콤한 바닐라향이 퍼지며 홍차 잎 속에 노란 오렌지 껍질같은 게 들어 있는 게 보인다. 유리포트에 티스푼으로 하나만 넣고 펄펄 끓는 물을 부어서 우려냈다. 2분을 기다렸다 첫잔을 따랐다. 홍차의 쓴 맛이 바닐라의 달콤함을 중화시켰는지 쓴 맛과 달콤한 맛이 잘 섞여있다. 루이보스 바닐라 허브티보다 훨씬 당기는 맛. 오렌지 껍질이 들어간 덕분인가? 왜 홍차 이름에 버본이 들어갔는 지는 모르겠지만, 버본 하니까 위스키 생각이 나는데, 우러난 홍차 색이 딱 위스키 색이다. 진한 황금색. 그렇게 홀짝 첫잔을 비우고 두잔째를 따르려고 보니까, 색이 좀더 깊은 갈색 가깝게 되어있다. 흠~ 지저분한 주위 환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디카를 들이댔다. 두잔째는 바닐라맛보다 홍차 본래의 맛이 더 강해졌다. 그래도 한모금 마신 뒤에 남는 것은 여전히 바닐라의 달콤함이다. 오랫만에 맛난 티타임을 즐겼다. 역시 홍차는 포트랑 컵도 한번 덥혀놓고, 펄펄 끓는 수도물을 부어 한번에 마실 양만 알맞게 우러내야 제맛인 것을!  


버본바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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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11-07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차 색이 이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