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문을 나서서 중산북로를 따라 쭉 내려가면 우산을 받쳐들고 왕진가는 의사의 동상이 인상적인 맥케이 기념병원이 있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아 조금만 더 가면 MRT역. 거기서 MRT를 타고 시내관광에 나섰다. 첫 목적지는 타이페이의 번화가라는 시먼딩. 시먼딩은 한마디로 서울의 명동같은 느낌이었다. 시먼딩의 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 본고장 버블티를 주문. 버블티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그리고 양은 또 왜이리 많은지. 동오대학 유학생으로 이번 여행 안내를 맡아준 선현씨 말에 의하면 쩐주(버블티 안에 들은 타피오카) 먹고 찐 살은 빠지지도 않는다나. 하여간 나는 버블티 한잔만으로도 위장이 가득차 버렸다. 선현씨는 벌써 배부르면 안된다고 하면서 또다른 디저트집으로 가서 또화를 주문. 또화는 따끈한 연두부 위에 각종 토핑과 따끈한 설탕물을 얹어주는 거였는데, 간신히 연두부와 토핑으로 얹은 땅콩만 집어먹었다. 가기 전에 온갖 타이완 디저트 이름을 줄줄 외워두었건만...선현씨가 [그게 다 먹은 거여요? 국물은 손도 안댔네]한다. 아아, 여행전날도 정신없이 일하다 새벽부터 먼길달리고 날라온 내 위장은 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다. 타이완 디저트를 만끽해보려는 나의 계획은 이로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시먼딩 안의 쇼핑센터와 대형서점과 문구점을 본 다음, 시먼딩 일각에서 도교 사원 발견. 오호~ 이것이 중국식 도교 사원인가. 이렇게 시내 상점가 구석에 사원이 있다니. 그리고 다시 MRT타고 스린 야시장으로.

MRT는 시내를 벗어나자 고가 위를 달려서 경치 구경하기 그만이었다. 스린 야시장은 타이페이 최대의 야시장. 각종 관광가이드에 반드시 가 볼 곳으로 소개되어 있다. 시장 자체는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외국인들이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에 가는 이유가 이런 거 때문에 가겠지. 다양한 종류의 차를 무게로 달아서 파는 가게에서 천연꽃잎을 말려서 파는 차를 몇가지 구입했다. 가게 냄새가 매우 좋았다. 그리고 패스트리 비슷한 빵도 사 먹고. 포장마차 비슷한 노점에서 단쯔멘을 사 먹었다. 가느다란 면인데, 국물 맛이 좋았다. 시장은 무지무지 넓었고, 걷다 지친 우리는 마지막으로 MRT역 앞에 있는 먹자건물로. 중국인들은 외식을 많이 한다더니, 그 넓은 건물 안이 음식점과 손님으로 가득했다. 유명한 굴전을 먹었다. 맛있었다. 먹고 나와보니, 어느덧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있었다. 호텔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떠난 시기는 아직 월드컵 전이라 터키 붐이 일기 전이었다. 게다가 여행시즌도 아닌, 4월말~5월초였으니 터키로 가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터키 항공이 좌석 없다고 해서, 에어 프랑스를 예약했다가 막판에 좌석을 내주는 바람에 국내선 연결 할인도 받지 못하는 등 트러블이 많았다. 하여간, 토요일 아침,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터키 항공의 탑승수속은 아시아나 항공에서 대행해주고 있었다. 근데 이거 정말 이스탄불 가는 거 맞나요. 수속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우선 일본 칸사이국제공항까지의 탑승권만 받았다.

알고보니 이 비행기는 일본JAL항공과의 코드 쉐어 편으로, 일본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잠시 인천에 들른 것이었다. 비행기안은 인천공항 면세점 쇼핑백을 잔뜩 든 일본 단체 여행객들로 가득. 창가에 자리잡고 앉아보니 내 옆에 배낭을 맨 여자가 터키여행가이드북을 들고 와서 앉는다. 이스탄불 가시나요? 지금은 그 언니의 이름도 잊어버렸는데, 그 언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1달간 터키일주를 하러 떠나는 언니였다. 하여간 그렇게 비행기에서 시작된 인연으로 나중에 이스탄불 시내 관광도 같이 하게 되는데, 순식간에 칸사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서투른 한국어로 나와 그 언니, 그리고 또 다른 한국남자 이름이 방송되지 않는가. 알고보니 그 비행기로 이스탄불에 가는 한국인은 딱 3명뿐이었던 것이었다. 나와 언니, 그리고 우리 뒷 좌석의 사업가 아저씨. 게다가 그 아저씨의 최종 목적지는 이란으로 이스탄불 공항에서 또 갈아타신단다. 이란으로 대리석 사러 가신다는데, 이미 수차례 이 코스로 다니셨다고. 이스탄불 초행인 나와 언니는 그 아저씨 덕분에 안심할 수 있었다. 칸사이 공항에서 엄마 줄 시세이도 화운데이션까지 사고, 국수와 삼각김밥으로 배를 채우니 다시 비행기를 탈 차례. 승무원도 교대하고 비행기 청소도 끝내고, 황금연휴를 맞이한 일본 단체 관광객과 귀향길에 오르는 터키인들이 줄줄이 탑승. 이러니 비행기 좌석이 없다고 하지.

 


이스탄불근접

 

 

 

 

 

 

 

 

 

승객으로 가득찬 비행기는 다시 기수를 서쪽으로. 우리나라와 중국대륙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서쪽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만원 비행기를 타면 늘 답답함을 느끼는 나. 좌석마다 개인 오락시설이 딸린 것도 아니지. 비행기 창문은 내려놓고 있으라하자...지루하면서도 얼떨떨한 긴장에 싸이면서도, 움직임이 없어 소화도 안되면서도 주는 기내식 다 받아 먹고 하는 동안 어째저째 비행기는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대륙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자리한 도시. 도착 시간은 이미 밤이어서 불빛 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드디어 착륙.
비행기를 내려 입국심사대로. 대리석 수입하시는 아저씨는 여기서 다시 이란가는 비행기로 트랜짓하시러 가시고, 언니와 둘이 입국심사대로 이동. 보아하니 러시아인 관광객들이 많은가본데, 그 사람들은 뭔가 돈을 내고 즉석비자를 발급받는 모양이었다. 우리 한국인들은 무사 통과~
근데 밖으로 나와보니 대부분이 단체여행객들이라 마중나온 가이드 쫓아 움직이는데, 언니와 나를 마중나오기로 한 분들이 안 보이는 거다. 둘이 벤치에 멍하니 앉아 기다리는데, 먼저 나를 마중나온 분이 오셨고, 그 분이 언니와 약속한 민박집에  연락해줘서, 언니와 나는 다음날 토카프 궁전에서 만나기로 하고 작별.
이번에 이스탄불에서 신세지기로 된 집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중간 쯤에 위치한 주택가에 있었다. 현지에서 한식당과 여행사를 경영하시는 가족. 전문 민박집이 아니지만, 복층식 빌라의 남는 방을 자유여행객들에게 내주시고 계셨다. 낯가림이 심한 나도 친척집에 다니러 온 거 같은 분위기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앞으로의 여행계획을 상담하고, 사프란볼루로 가는 버스 예약과 가파도키아 갔다가 카이세리 공항에서 다시 이스탄불로 오는 비행기표 예매를 부탁하고 여장을 풀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hen Yun은 상해 Fudan대학 출신인 대학원 동기다. 지금은 박사과정을 마치고 모교로 돌아가 조교수가 되어 있다. Chen은 소흥주로 유면한 절강성 소흥 출신으로, 재색겸비하고 자신만만한 엘리트 중국 여성의 표본을 보는 거 같다. 대학원 시절, 같은 연구실에 2명뿐인 여자 유학생이라는 점, 같은 기숙사에 있었다는 점 때문에 많이 친했고 신세도 많이 졌다.
그런 Chen Yun이 귀국한 해 가을, 바로 상해로 쳐들어갔다. 진로변경문제로 고민하고 이것저것 알아보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중국 대학에 설치된 국제MBA코스로의 유학도 고려사항 중 하나였기 때문에 Fudan대학 사정도 알아볼 겸 해서 겸사겸사 개천절 연휴를 이용하여 중국대륙으로 날라가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쩌다 갑자기 터키로 뜰 생각을 했는가 하면...발판을 만든 건, 반디 앤 루니스에서 세일가에 건진 날짜 지난 일본판 마담 휘가로 잡지였다. 거기에 터키 여행 특집이 실렸는데, 왜 그리 사진이 이쁜 건가! 원래 터키란 나라에 관심 많았고 고등학생 때 터키 여학생과 펜팔도 했었지만, 터키는 먼 나라였다. 과거의 나라였다. 그런데 마담 휘가로에 실린 그 총천연색 화보들은 현대 터키의 모습을 너무나 환상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화보들은 디스커버리에서 나온 터키 가이드책을 사게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터키]란 2글자로 인해, 터키투어(www.turkey-tour.co.kr)와 한마음 비전 트래블 여행사를 만나게 되어 터키에 꽉잡히고 말았다. 그때가 벱푸 다녀온 지 1달쯤 되었을 때였고, 덜컥 인터넷으로 항공권과 숙박만 예약한 후, 바쁜 직장생활에 쫓겨 제대로 준비도 못한채 4월말 황금연휴를 맞게 되었다.

그 때 터키에 다녀온 건, 내 일생에 잘한 몇가지 선택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제 내 인생의 목표는 오직 하나! 정년까지 열심히 (그리고 얌전히) 일해서 정년이되면 터키로 날아가 연금과 이자 소득으로 노후생활을 보내는 것이다! 하하하!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5-08-14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철학과 교수들이 터키로 안식년을 맞으러 가더군요. 그들이 왜 그리 명분도 없이 EU에 안달하는지는 이해가 가지않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랍니다.
 

Beppu는 뱅쿠버 영어학교에서 사귄 Moko가 사는 곳이다. Moko는 나이도 많지만, 오랫동안 여행사에서 일한 경험으로 캐나다에서 내 '언니'같은 존재였다. 뱅쿠버에서의 마지막 한달은 학교도 그만두고 개인교습만 받으며 혼자 아파트를 빌려 살았는데, Moko덕분에 충실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Moko 그리고 일본 오사카에서 온  Shinji, 독일 뮌스터에서 온 유쾌한 Peter, 멕시코에서 온 내성적인 Oswaldo와 시내와 빅토리아 섬을 쏘다니거나, 내 아파트에 모여 소란을 피우거나하며 지냈다. 그리고 Moko의 도움으로 록키산맨과 앨버타주로 여행을 준비할 수 있었다. 

내가 귀국한 후에도 1년정도 더 캐나다에 체류하던 Moko는 Ritsumeikan Asia Pacific University 직원이 되었다. 그런 Moko에게 무작정 놀러간 것은 2002년 구정연휴. 벱푸는 유학생 시절 큐슈 일주 열차 여행을 할 때 한나절 들러서 지옥온천순례를 한 적이 있으므로, 이번에는 벱푸 시내보다 벱푸 주변을 둘러보는 곳이 목적. 처음에 계획했던 야나가와 운하를 나룻배 타고 내려가는 체험이 운하 대청소로 실행불가능하게 되어 아쉬웠지만, 그밖에도 새로운 장소를 볼 수 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큐슈는 남쪽이니 따뜻할거야~~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구정 연휴다보니 비행기표 잡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회사 단골 여행사에 부탁해서 겨우겨우 연휴 첫날에 후쿠오카로 향하는 마지막 비행기의 비지니스석을 잡을 수 있었다. 후쿠오카행이었기 때문에 다행히 요금이 안비싸서 다행. 비행기 타는 시간은 짧지만, 어쨋건 대형 점보기 비지니스 좌석의 서비스는 다 맛볼 수 있었다. 탑승도 먼저하지, 탑승구에서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비지니스 클라스 전용석에, 코트도 받아서 옷걸이에 걸어주지, 슬리퍼도 주지, 좌석은 푹 파묻힐 정도로 넓지, 게다가 호화판 기내식!!!! 먹는 시간이 짧아서 아쉽게도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후쿠오카 공항에 내리니 늦은 시간임에도 구정연휴를 맞은 우리나라와 대만 관광객으로 바글바글. 입국심사관이 누구 집에 가냔다. 모코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귀찮아서 학교 친구요했더니, 심사관이 알아서 나의 옜날 유학 비자를 발견하고는 아, 히로시마 유학 시절 친구가 지금은 벱푸에 사나보네, 구정 연휴라 친구네 놀러가느냐고 한다. 그렇다고 대답하고선 통과. 일본의 지방 국제 공항 입국 심사관 "아저씨"들은  꽤나 질문이 많다.

짐을 찾아 나가니, 모코가 바로 기다리고 있다. 나의 기억속의 모코는 늘 애교머리를 내리고 뒷머리를 시니용으로 올린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커트머리. 나를 보자마자 [정말로 다시 만났네]하며 울음부터 터트린다. 덩달아 나까지 눈가가 시큰해진다. 할 얘기는 많았지만, 벱푸까지 가는 리무진 버스 시간이 우리를 재촉한다. 지도로 보면 벱푸와 후쿠오카는 꽤 먼 거리지만, 버스는 칠흑같은 어둠이 깔린 고속도로를 달려 한밤중에 우리를 벱푸 시내에 내려주었다. 고가도로를 내려 벱푸 시내로 들어서니, 온천가 특유의 유황 냄새와 여기저기서 뿜어져나오는 하얀 연기!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모코의 차로 옮겨 타고 모코 어머니가 기다리시는 교외의 집으로 향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