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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거울 앞에 앉아 나를 본다. 왼손을 들어올려 왼뺨을 만지자 거울 속의 나는 오른손을 들어 오른뺨을 만진다.
2. 거울 앞에 앉아 나를 본다. 오른손을 들어올려 오른쪽 눈에서 흐른 눈물을 닦아내자 거울 속의 나는 왼손을 들어올려 왼쪽 눈에서 흐른 눈물을 닦아낸다.
3. 거울 앞에 앉아 나를 본다. 거울 속의 나는 거울 앞에 앉아 나를 본다. 오래도록 나는 거울 앞에 앉아 나를 보고, 오래도록 거울 속의 나는 거울 앞에 앉아 나를 본다.
4. 거울 앞에 앉아 나를 본다. 거울 속의 나는 보이지 않는다.
5. 거울이 없는 곳에 앉아 나를 본다. 왼손을 들어올려 오른뺨을 만지고, 오른손을 들어올려 왼쪽 눈에서 흐른 눈물을 닦아내고, 거울 앞에 앉아 나를 보던 나를 본다.
6. 거울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다.
7. 거울이 없는 곳에 앉아 나를 본다. 왼손을 들어올려 오른뺨을 만지고, 오른손을 들어올려 왼쪽 눈에서 흐른 눈물을 닦아내고, 거울 앞에 앉아 나를 보던 나를 본다.
1-1. 파란 블라우스 차림에, 회색 카디건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어깨는 약해 보일 정도로 살이 없었다. 손톱의 껍질이 벗겨진 것을 보니 자주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억지로 뺏어 먹는 건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미안해요. 인사도 못했네요. 나는 클로이예요.' 그녀는 약간 형식적으로 팔걸이 위로 손을 내밀었다. -7쪽.
1-2. 그녀는 절대로 남에게 책임을 지우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녀의 성격에서 이 실마리 한 가닥을 찾아내자, 다른 수많은 측면들이 덩달아 이해되었다. 그녀가 부모에 대해서 이렇다 할 분노를 내비치지 않는다는 것(잔인한 아이러니로만 표현했다), 일에 대한 엄청난 헌신, 자기 비하나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혹독한 태도, 의무감, 심지어 우는 방식(히스테리를 부리듯 울부짖기보다는 소리 없이 흐느끼는 것)까지도. -167쪽.
1-3. 클로이와 내가 흔히 주고 받는 농담이 있었다. 우리의 감정의 변덕을 인정하고 사랑의 빛은 전구처럼 항상 타올라야 한다는 상식적인 요구를 완화하기 위해서 헤라클레이토스적인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어? 오늘은 나를 좋아하지 않아?' 둘 중의 하나가 그렇게 묻는다. '덜 좋아해.' '그래? 아주 많이 덜?' '아니,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10점 만점이라면?' '오늘? 어, 한 6.5 정도. 아냐, 6.75에 더 가깝겠네. 너는 어떤데?' '어이쿠, 나는 마이너스 3 정도인데. 오늘 아침에 네가 ...할 때는 12.5 정도였던 것도 같지만.' - 186쪽.
1-4. '너는 나한테는 너무 좋은 사람이야.' '뭐라고?' ''너는 나한테는 너무 좋은 사람이야', 그렇게 말했어.' '뭐? 왜?' '사실이 그러니까.'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클로이?' '모르겠어.' '굳이 말하자면 거꾸로지. 너야말로 문제가 있을 때마다 먼저 노력을 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를 책망하는 쪽이고...' '쉬잇, 그만, 그만해.' 클로이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왜?' '난 윌을 만나고 있었으니까.' '뭘 했다고?' '윌을 만나고 있었다고, 됐어?' '뭐? 만난다는 게 무슨 뜻이야? 윌을 만난다는 게?' '참 나, 윌과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거야.' -232쪽.
1-5. 전화벨이 울려서 전화를 받으러 가는 길에 목욕탕에서 클로이가 빗을 두었던 자리가 이제는 비어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마치 처음 발견하는 것처럼, 처음 깨달았을 때의 그 고통이 모조리 되살아났다). 빗이 없다는 사실이 심장을 찌르는 단검처럼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고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 268쪽.
1-6. 낙타는 시간을 따라 걸어가면서 짐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계속 등에 실린 기억와 사진들을 흔들어 사막에 떨어뜨렸고, 바람이 그것들을 모래 속에 묻어버렸다. 낙타는 점점 더 가벼워져서 나중에는 그 독특한 모습으로 뛰어가기까지 했다. -272쪽.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