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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호밀밭의 파수꾼>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어린 시절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최인호의 <내 마음의 풍차> 같은 소설들이 떠오른 것은 그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책들이 주로 성장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장소설에서는 보통, 성년이 되지 않은 어린 소년, 소녀가 주인공인데, 이들은 여러 사건을 통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의 과정을 겪고 어렵사리 성년에 진입한다. 이들이 겪는 경험은 주로 사랑, 성, 죽음, 가족간의 갈등 등에서 파생되는데,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어제'의 나와는 다른 '오늘'의 나를 찾게 되거나 '내일'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보면, 성장소설이 그리는 세계는 한 사람의 생애에서 맞딱뜨리는 사건들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다만, 인상적인 성장소설이 그려낸 경험과 정서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곤 하는 사건들에서 그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와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소설을 읽는 이유, 예술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세간에 알려진 다양한 배경 때문에 더 유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점들을 접어두고 작품만을 바라보자면 어떤 면에서는 너무도 평이한 구조와 사건을 가지고 있다.
왜 이렇게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밖에 없는 소설이 인기를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지닌 다분히 다혈질적인 성격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이 소설 전체를 통해 홀든은 단 한 순간도 거짓말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을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상기시킨다. 즉, 위악(僞惡)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시간표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그만하기 위해서였다. 한번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몇 시간이라도 할 수 있다. 농담이 아니다. 몇 시간 동안 계속할 수 있다. -83쪽.
언젠가 내가 아는 한 선생님이 '졸업한 놈들 중에서 자주 기억나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속을 썩이던 놈들이다'라고 말씀하시던 게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도 그렇다. 어린 시절 같이 뛰놀던 녀석들 중에서 까불고 말썽피우던 녀석들에 대한 기억은 많이 남아 있지만, 얌전하고 공부만 하던 녀석들은 그 모습 한 가지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홀든 콜필드가 독자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이유가 그러한 위악적인 태도와 다혈질적인 성격 탓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일탈 속에 숨겨진 감성어린 내면세계가 오래도록 이 소설을 읽게 만드는 것이리라.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229∼230쪽.
자기 자신도 제대로 붙잡지 못하는 녀석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고 하니 이 대목을 읽을 때 아연해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 아연함은, 어느 순간 문득 성장의 의미를 알아버린, 성장의 그늘에 들어서버린 녀석이 전해주는 서글픔이기도 할 것이다.
앞서, 성장소설의 주인공은 몇 가지 중요한 경험을 통해 '어제'의 나와는 다른 '오늘'의 나를 찾게 되거나 '내일'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썼다. 하지만, 그것은 곧 보통의 어른, 평범한 사회인이 된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장이 드리운 그늘, 성숙이 숨기는 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