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어머니 산소에 다녀왔다. 해마다 봄가을에 간다고 해도 일년으로 치면 두어 번밖에 안 되는 일인데, 오늘도 어머니 산소에 가서 느낀 건 엊그제 왔다가 또 온 것처럼 얼마 안 되었다는 느낌. 요 몇 년 전부터 시간이 부쩍 빨리 간다는 생각인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지난 며칠 전부터 어머니 생각을 자주 해서 그랬나 보다. 어머니의 얼굴, 어머니의 미소, 어머니의 목소리, 어머니의 걸음 같은 것을.

2.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만으로 17년, 햇수로 18년째이다. 당시에는 아직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으므로 어미니의 때이른 별세로 인해서 많은 아픔과 깊은 그늘을 갖기도 했었지만, 이제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가급적 좋은 기억만 하려고 노력한다. 어머니가 즐겨 드시던 음식, 어머니가 나직히 부르시던 노래, 어머니가 볼펜으로 적으시던 가계부, 소풍 때 같이 오셔서 지켜 보시던 모습, 이불 빨래를 하시며 땀을 훔치던 모습, 이사를 가신 후 뿌듯해하시던 모습 같은 것들을.

3.

  어릴 때 어머니가 자주 하신 말씀은 "너는 커서 교수가 되어야 한다"였다. 그렇게 말하실 때면 회초리를 들고 무섭게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렇게 되어 있단다'라는 투로 심상한 목소리셨는데, 나는 지금도 당신께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계셨는지 궁금하다. 왜냐면 나는 교수가 되고 싶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고, 나이가 든 지금 교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는 하지만 나는 어머니께 "교수가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한 적은 없다. 만약에 어머니가 건강하셔서 내 장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어머니의 기대에 따랐을까.

4.

  나는 예전의 물건을 별 쓸모가 없는데도 여전히 갖고 있거나, 예전에 애착을 가졌던 일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고 많이 기억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나는 군대에 있을 때 받았던 편지들을 (비록 몇몇 편지들은 물에 젖어 울거나 했어도) 거의 갖고 있다. 그걸 펼쳐보는 일은 거의 없지만, 서랍을 정리하거나 이사를 할 때 나는 그것들을 버리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버리지 못했다. 버릴까말까 갈등도 잠시 했었으니까. 하지만 버리지 않았고, 간직하기로 하자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그게 나라는 사람이다.

5.

  어머니가 돌아가시고서 어머니의 물건들은 아버지에 의해 또는 몇 번의 이사로 인해 거의 없어졌다. 심지어는 어머니의 사진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그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당신께서 스스로 그것들을 한 장 한 장 다 없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인사를 하러 안방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그것들을 계속 들여다보다가 찢기를 반복하고 계셨다. 나는 얼른 어머니 옆으로 가서 그러지 마시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시고 사진이 꾲혀 있던 앨범을 장롱에 다시 넣으셨을 뿐이다. 그만 하겠다고 말씀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어머니는 그 이후에는 나나 다른 식구들의 눈을 피해 사진들을 없애셨을 것이다.

6.

  어제 오전에 비가 왔었다. '내일 어머니 산소에 갈 때도 비가 오면 어쩌나' 잠시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어제 오후에 비가 그치면서 오늘 날이 맑을 거라 해서 마음이 좋아졌는데, 아침에 나서면서 보니 비가 그친 후라 그런지 아주 맑고 하늘이 높았다. 어머니를 보러 가는 발걸음도 가볍고 마음도 한결 맑게 해주는 날씨였다. 벌초를 다 하고 허리를 펴서 하늘을 바라보니 멀리 흰구름이 하늘 언저리를 가볍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 하늘 아래에 서서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아들은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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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09-20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엄마도 항상 제게 무엇이 되라고 하셨지만, 저는 엄마가 바라는 그 무엇이 되지는 않았어요.
제가 바라는 그 무엇이 되기 위해 나름의 열정을 바쳤던 순간, 엄마는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늘 제 책상 앞에 갖다 놓으셨죠.
신간 <친정엄마>를 샀어요. 수필집도, 더군다나 눈물샘을 뻔히 자극할 것 같은 친정엄마라는 제목도 제 취향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글로나마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가봐요.
엄마 라는 말 속에 담긴 뜨끈한 국물, 많이 드시고 오셨지요?
먹어도 늘 부족한 그 뜨끈한 국물...
가만히 브리즈님의 하루를 스케치하면서 슬프기도, 청아하기도, 평온하기도 하였습니다.

superfrog 2004-09-2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는 종잇장처럼 마르셨어요. 사람의 얼굴이 저렇게 마를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놀라워하며 봤던 감각이 기억에 있습니다. 끝내 소통하지 못했던 애증의 관계에 그저 이렇게 끊어진 고리가 한 구석에서 안도의 숨을 쉬게 하기도 하는 걸 애써 감추며 웃는 낯으로 아버지의 기일을 한해 두해 맞고 있습니다.

stella.K 2004-09-20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버지가 안 계시는데...저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피아노 한대 사 주시면서, 피아니스트가 되라고 말씀하시곤 했죠. 그 말이 어린 나의 귀에 왜 그리 생뚱맞게 들렸는지. 자식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청개구리인가 봅니다. 지금도 엄마는 내가 당신 말을 듣지 않는다고 성화시니까요.^^

2004-09-20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브리즈 2004-09-2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저 님 : 따뜻한 우유 한 잔, 그것도 어머니께서 가져다주신 우유라면 더 바랄 것이 없었을 듯싶네요. 왠지 나중에 플레저 님도 공부하는 딸을 위해 우유를 들고 가실 것 같은데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예전의 그 우유를 떠올리게 될지도요..

금붕어 님 : 엄마와 딸의 관계와 달리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조금 틀린 것 같더군요. 조금 단순하게 말하자면, 엄마의 약점은 보듬으려고 하는 반면에 아버지의 약점에 대해서는 실망하는 것 같더라구요. 물론, 여자가 아닌 제가 다 알 수는 없지만요. 지난 시간을 지혜롭게 간직하시길 바랄게요.

stella 님 : 피아니스트가 되라고 하신 아버지의 바람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그 마음을 기억하는 딸은 여전히 그 기억을 갖고 있는걸요. ^^..

2004-09-22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9-23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4-10-06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셨구나. 브리즈님, 오래도록 간수하고 기억하는 분이로군요.
눈물이 조금 나려고 했어요.

브리즈 2004-10-0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딸기 님도 언젠가는 어머니가 되실 테니 더 그러시지 않으셨을까 생각해보네요. ^^..

딸기 2004-10-09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즈님, 저 지금도 어머니예요. 모르셨구나. :)

브리즈 2004-10-0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몰랐었네요. (사실 알 길이 없지요?!) ^^..
어쨌든 딸기 님이 대문도 바꾸시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걸 보니 기분이 괜히 좋아지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