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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멀지 않다
나희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시에 관심이 많은 지인이 '나희덕시인'을 극찬하면서 머지않아 이 시인의 시대가 온다니 호기심에 읽어보았다. 만40이 되지 않았으니 생각보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에는 삶이 녹아있는 현실적인 시들이 많이 보인다. 고생은 모르고 자란듯한 무조건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시는 식상한데, 이 시를 읽으면서 '시는 삶을 노래'한다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한듯 한 느낌을 받았다.
삶은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희망적으로 생각하면 가슴벅차오르는 환희가 있다는 것을 이 시집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는 스타킹, 가방, 거미줄, 이끼가 시인에 의해 아름다운 시어가 되고, 시상이 된다. '벗어놓은 스타킹' 에는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여인의 벗어놓은 스타킹을 보며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보이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단다. 또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하루종일 지친 하루를 보냈지만 평온한 안식을 취한뒤 내일은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월급타서 빚 갚고 퇴직금 타서 빚 갚고 그러고도 빚이 남아 있다는 게 오늘은 웬일인지 마음 놓인다. 빛도 왜 두고 갚다보면 빛이 된다는 걸 우리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는 건 빚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걸 너는 알겠지. 사과가 되지 못한 꽃사과야' 삶의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는 빚을 빛이라고 표현한 시인의 여유와 당장 빚에 쪼들려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시를 읽으면 조금은 위안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삶의 여유를 갖게하는 좋은 선물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