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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뿌리 ㅣ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42
도종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나더니, 몇개의 단풍잎마저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다. 다행히 노란 은행잎은 추위에도 아량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쓸쓸한 늦가을에 어울리는 시집은? 단연 '슬픔의 뿌리' 이리라. 봄에 읽고 꽂아두었다가 다시 꺼내어 읽어보니 느낌이 새롭다. 그때는 감정이 무디어서 인지, 봄햇살을 맞느라 정신이 없어서인지 별 감동이 없었는데, 지금은 시들이 온통 나의 감정을 대신 전해 주는 듯 하고, 작가의 고단한 삶을 나타내 주는 듯 하여 마음이 아팠다.
여름의 끝자락에 만난 도종환님. 후배의 도움으로 시골 별장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데, 아침이면 새가 날아와 '선생님 선생님' 하며 부른다는 말씀을 하신다. 몸이 아파 교직을 떠나셨지만 아직도 아이들과의 생활을 잊지 못하시는 듯 하다.
이 책은 시인이 몸이 많이 아파 교직을 떠나면서 쓴 시 모음집이라고 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관조하면서 쓴시라 그런지, 시에는 작가의 삶을 회고하면서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하는 듯한 작가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첫장을 열면 보이는 '쓸쓸한 세상' 에는 쓸쓸한 현재의 삶에 대해 애절하게 표현하였다. '아름다운 길'에는 우리의 삶의 굴곡을 나타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길을 갔지만, 겨울이 되면 빙판으로 변하고, '내가 넘어질 때 너도 따라 쓰러지고' 하는 참된 부부애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의 진정한 사랑에 대해 알려주는 '새의 사랑'은 내 자식 밖에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있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종례시간'은 작가의 아이들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작품은 작가의 다양한 삶의 경험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도종환님도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과, 해직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건강상의 이유로 학교를 떠난뒤의 상실감등 파란만장한 삶의 체험에서 이렇게 멋진 시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자 했습니다......
******* 쓸쓸한 세상
이 세상이 쓸쓸하여 들판에 꽃이 핍니다
하늘도 허전하여 허공에 새들을 날립니다
이 세상이 쓸쓸하여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유리창에 썼다간 지우고
허전하고 허전하여 뜰에 나와 노래를 부릅니다
산다는 게 생각할수록 슬픈 일이어서
파도는 그치지 않고 제 몸을 몰아다가 바위에 던지고
천 권의 책을 읽어도 쓸쓸한 일에서 벗어날 수 없어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글 한 줄을 씁니다
사람들도 쓸쓸하고 쓸쓸하여 사랑을 하고
이 세상 가득 그대를 향해 눈이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