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만으로도 이 책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정원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어서 일까? 시댁에도 평범하긴 하지만  작은 정원이 있기에 내 아이들에게도 동구처럼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기억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마음속에 생각만으로도 따뜻해 지는 사람 혹은 사물이 있다는 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겠지.

정작 아름다운 정원은 책의 분량으로 볼때 극히 미세한 부분중 하나일 뿐이다. 큰길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 가야 나오는 동구네 집을 비롯한 그렇고 그런 허름한 집들 중에서 유독 눈에 띠는 3층집 정원. 그곳엔 주황빛 능소화가 하늘 향해 활짝 피어있고 손바닥만하게 크고 붉은 모란꽃, 수수꽃다리, 흰꽃을 피우는 백당나무, 황금색 곤줄박이가 있기에 동구에게는 피난처이자 희망이었다. 결론 부분에서 아름다운 정원은 박선생님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1977년부터 81년까지 5년의 세월. 거의 내 삶과 비슷한 시대상 이기에 그 때의 기억을 어렴풋이 생각하며 잠시 회상에 잠기기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초등학생 동구의 눈에 비친 가족의 모습, 동구의 성장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쓰지 못하는 난독증이 있는 동구. 마냥 떼쓰고 귀여움 받아야 할 나이임에도 할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와 갖은 구박에 늘 지쳐있는 엄마와, 무조건 할머니 편만 들며 엄마에게 욕설과 폭력을 일쌈는 아버지 아래서 성장한 동구이기에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되어 버린다. 자신을 생각하기 보다는 늘 남을 먼저 생각하는 천사표 동구.  가족의 아픔을 간직하고 사는 동구는 일종의 병을 앓는 것이다. 

눈만 뜨면 욕을 하는 할머니와 싸우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동구는 얼마나 힘이 들까? 행여 불똥이라도 튈까 두려워 쥐 죽은듯이 지내는 동구는 수업시간에도 절대 발표를 하지 않는다. 그런 동구에게 박영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방과후 1시간씩 공부를 하면서 점차 책도 읽고 글씨도 쓸 줄 알게 된다.

기쁜 일은 또 생긴다. 동생 영주가 태어나면서 집안에 웃음꽃이 피기도 하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영주에게 쏠리게 되며 두 돌무렵에 책을 읽은 영주에게 천재라는 별명도 생긴다. 영주는 가족, 이웃을 이어주는 고리가 되며, 가족이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동구의 삶에 커다란 희망과 자신감을 안겨준 박선생님이 외할머니 생신때문에 시골로 내려간뒤 소식이 끊어진 부분이 모호하지만 학교때 데모를 하면서도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을 주었던 박선생님은 진정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떠난 것이리라.

할머니의 갖은 구박으로 싸움이 끊길 날이 없는 한씨 집안이지만 동구와 영주로 인해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리라는 생각을 했던 내게 영주의 죽음은 '악' 소리가 났다. 반전이라고 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린다. 영주의 죽음으로 할머니와 엄마, 아버지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가고 '당장 나가라'는 할머니의 말에 엄마는 고추장독을 할머니 앞에 깨트리는것으로 집을 나간다.....결국 동구의 어른스러운 고민과  해결책으로 인해 서서히 한씨 집안은 안정을 찾아간다.

어른들은 무거운 짐을 왜 동구에게 지우려고 할까? 누군가 나서서 난국을 헤쳐나갈 생각을 하기 보다는 '내가 제일 힘들다'는 표정을 하고 '네가 내 맘을 알기나 하니?' 하는 이기심으로 가득 찼다. 작은 동구의 어깨가  무겁게 느껴진다. 동구의 난독증은 가족의 상실감에서 비롯되었을듯.

그러면서 내 아이들이 떠오른다.  엄마의 직장생활로 인해 학교에서 돌아오면 텅빈 집에서 외로움을 느꼈을 아이들. 가끔 아빠, 엄마의 말다툼에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하다 이내 조용해 지는 아이들, '피곤해'를 연발하는 엄마에게서 대화의 단절을 느꼈을 아이들... 가끔은 큰 아이에게서 동구와 같은 어른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동구에게 미안하고 내 아이들에게 미안해 진다. 소설 읽으면서 이렇게 울어본것도 얼마만인지...동구 개인의 성장일기가 아닌 요즘 가족의 해체와 이기심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마음 아프게 하나 하는 단면을 보여주는 듯 하다. 아이들에게 모범적인 부모가 되자. 5월 가족의 달에 읽어보면 더더욱 깨닫는 것이 많을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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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7-05-2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섬세한 글을 읽으면서 나도 같이 어린시절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내가 11살이었을 초딩 4학년 때 이야기가 되겠군요. 들로 산으로 아무 생각없이 다닐 때의 어린 시절이라니 감회가 새롭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분명 가족의 따뜻한 정을 받으면서 자라나는 새싹인 것만은 자명한 듯 합니다. 가족이라는 자양분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너그럽게 만드는 요소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어렸을 적에 지금처럼 부모님이 많은 관심을 주거나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반듯하게 따뜻한 마음을 품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문만 열고 나가면 언제나 만날 수 있었던 풀이 있고, 꽃이 있고, 들과 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부모님과 대화가 없어도 늘 곁에 있던 자연속의 친구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요. 앞도랑에서 물장구 치며, 눈에 안개가 끼도록 놀다가 덜덜 떨리는 몸을 햇볕에 달궈진 바위에 엎드려 몸을 말리며 부르던 노래 !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아마도
"해야해야 나오너라.... .............김칫국에 밥말아줄께....."
세실님도 생각나시나요. 읽고 싶어지네요.

세실 2007-05-21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마철에 도랑(=냇가?)에서 수영하다 하마터면 떠내려갈뻔 했다는....ㅋㅋ
그 노래 기억납니다. 뭐 같은 세대니까요~~~
저두 시골출신이라 학원이라고는 다녀본적도 없고 학교 다녀오면 가방 던져놓고 저녁시간까지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녁먹고도 한밤중까지 또 놀고...그저 놀 궁리만 하던 초등시절이었지요.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데 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초등시절 생각하면서 웃음이 날까요? 이 학원 저학원 옮겨다니느라 힘들었던 기억밖에는 없을듯. ㅠㅠ

소나무집 2007-05-2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과 같은 세대임을 확신합니다. 동구의 일이 내 일인 양 마음이 싸해지는군요.

세실 2007-06-09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그렇군요~~ 그러면 님도 불혹? 아닐듯 한뎅....
맞아요. 동구가 겪은 일들이 우리 세대가 겪은 일 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