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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평점 :
그의 소설에는 힘이 묻어난다.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지고, 읽는 내내 소설속 주인공들이 혹은 도시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으로 어느새 빠져드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섬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기자라는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에게 작품의 다양성을 선사해 준 듯 하다.
대체적으로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 한권은 옴니버스식으로 연관성을 가지고 구성되거나, 작가의 살아온 편력에 맞춘 유사성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 '강산무진'은 한편 한편이 전혀 연관없이 한 작가의 작품이 아닌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주인공의 직업부터 무대, 배경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배웅' 한때 잘나가던 하청업체를 운영하던 장수는 외환위기로 부도가 나 택시운전을 하게 되고 데리고 있던 여직원 윤애를 만나면서 과거의 회상과 현재의 짧은 만남을 이야기 한다. 마지막 문장 '아득한 시간'이라는 표현이 장수의 고단한 삶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화장'은 이상문학상수상작으로 전에 읽었던 내용인데 다시 읽어보니 새롭다. 아내의 임종과 주인공의 전립선염, 그 와중에도 이루어지는 회사 업무, 데리고 있던 여직원 '추은주'에게 품은 연정이 덤덤하게 펼쳐진다. 삶이 이리도 메마르다면 재미 없을듯. '항로표지' 등대생활의 고단함으로 교사로 이직한 김철과 잘나가던 회사 상무에서 회사가 청산되고 피신하듯 시골로 내려온 송곤수는 김철의 빈자리를 대신한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의 긴박감이 이곳까지 전해져 온다. 박사과정중이면서도 논문 한 줄 쓰지 않고 학교를 얼쩡거리는 지식인 잡배라고 표현한 '오문수'의 삶을 그리고 있는는 '뼈', 사고로 남편을 잃은 언니의 폐경을 지켜보는 이혼한 동생과의 대화가 마치 여성작가가 쓴 듯 섬세함을 더해주는 '언니의 폐경',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강산무진'은 잘 나가던 회사 임원이 암 진단을 받으면서,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집을 팔고 주변정리를 하는 과정들을 담백한 어조로 보여주고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두면 과연 무엇을 하게 될까? 주인공처럼 하나 하나 정리를 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듯.
그의 작품에 공통점이 있다면 2~30대의 생기 발랄함 보다는 4~50대의 삶에 지친 모습들이 그려진다는 점이이다. 직장을 잃거나, 사고들 당하거나, 병을 얻거나, 이혼을 하는 무거움들. 그러나 특이한건 그의 소설에는 어둠의 그림자가 느껴지거나 칙칙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는 강한 삶의 의지, 새로운 삶의 의지도 보여준다. 전문적인 지식이 느껴지는 글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소설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몇개월후 다시 집어들면 또 다른 새로움으로 다가올 듯 하다. 여유있을때 한 편 한 편 음미하며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