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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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탐미문학의 거봉이라길래, 그래 얼마나 아름다운지 좀 보자, 하고 집어든 책.
처음엔 '탐미문학'이라는 것의 정체가 뭔지 정확히 몰랐으므로, 단순히 문체가 아름다워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 마이 갓, 문체는 어차피 번역된 거라 잘 모르겠고,  꽃꽂이 선생님의 사랑 이야기가 가슴 미어지도록 아름답다.
부모가 반대하는 애인의 아이를 사산한 후, 애인을 전쟁터에 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절에서,
여자는 애인의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
마지막으로, 엄마로서의 네 젖을 먹고 싶다는 소원.
살짝 변태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꽃꽂이 선생님이 비단 허리띠를 풀고 하얀 가슴에서 젖을 짜 찻잔에 담아주는 모습을 보면 (아니, 읽으면)
아, 변태스러움을 아름다움의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로구나 실로 경탄스럽다.

탐미문학, 맞다. 거봉도 맞고.

그런데, 남자가 들고 있던 차가 연둣빛이었다고 했으니 녹차나 말차였을 텐데, 거기에 젖을 섞었다면
그것은 그린티 라떼인가?

왠지 내일은 스타벅스 가서 그린티 라떼를 주문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아, 원전에 충실하기 위해서, 시럽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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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구판절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은 그 다음이다. 여자는 자세를 바로한 채, 갑자기 옷깃을 풀었다. 내 귓전에는 뻣뻣한 허리띠를 안쪽에서 잡아당기는 비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하얀 가슴이 드러났다. 나는 숨을 죽였다. 여자는 하얗고 풍만한 젖가슴의 한쪽을, 그대로 자기 손으로 꺼냈다.
사관은 짙은 색 찻잔을 받쳐 들고, 여자 앞에 무릎 꿇은 채로 다가갔다. 여자는 젖가슴을 양 손으로 주물렀다.
나는 그 장면을 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짙은 색 찻잔 속에서 거품을 띄우고 있는 연둣빛 차에, 희고 따듯한 젖이 뿜어나와, 방울을 남기며 잔 속에 담기는 모양, 고요한 차의 표면이 하얀 젖으로 흐려져 거품을 일으키는 모양을, 바로 눈앞에 보듯이 역력히 느꼈다.
사내는 그 찻잔을 들고, 그 기이한 차를 남김없이 마셨다. 여자의 하얀 가슴도 감추어졌다.-56쪽

육체적인 불구자는 미모의 여자와 마찬가지로 대담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불구자도 미모의 여자도, 남들에게 보여진다는 사실에 지치고, 보여지는 존재라는 사실에 질려서, 궁지에 몰린 끝에, 존재 그 자체로 마주 쳐다보는 것이다. 먼저 보는 쪽이 이긴다.-98쪽

"우리 집 근처에 아주 예쁜 꽃꽂이 선생님이 계시는데, 요전에 자신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려 주더라구요. 전쟁 중에 그 선생님께 애인이 있었는데, 육군 장교로 결국 전쟁터에 나가게 돼서, 잠깐 동안, 남선사에서 마지막 대면을 했대요. 부모님이 반대하는 사이였지만, 헤어지기 직전에 임신한 것이 불쌍하게도 사산이었대요. 남자도 무척이나 슬퍼한 끝에, 마지막으로, 엄마로서의 네 젖을 먹고 싶다고 해서, 시간도 없으니까, 그 자리에서 찻잔에 젖을 짜 넣어, 마시게 했다는군요. 그리고 한 달 후, 애인은 전사했지요. 그 후로, 선생님은 정조를 지키며 혼자 살고 계시다는군요. 아직 젊고 예쁜 여자인데도."-123쪽

호주머니를 뒤진, 단도와 수건에 싸인 칼모틴 병이 나왔다. 그것을 계곡 사이를 향하여 던져 버렸다.
다른 호주머니의 담배가 손에 닿았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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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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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처음 나올 때 아내가 "또" 결혼한다는 설정 때문에 이슈가 됐었지, 아마.
그런데 어디선가 축구 이야기가 많이 나온단 소릴 듣고선 "안 읽어야지"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나.
월드컵 빼곤 축구는 다 재미없다, 는 게 내 생각이기 때문.
사실 월드컵 때도 맥주 마시면서 시끄럽게 TV 보는 게 재밌어서 그렇지 축구 자체에는 아무리 해도 무관심.
한일전도 스포츠뉴스에서 골 넣는 하이라이트 부분만 보면 된다.

그런데 영화를 개봉하고 나서는 그 설정 가지고 더더욱 말이 많다.
그래도 '축구' 이야기가 들어갔으니 안 볼래 싶다가 결국 메가티비에 콘텐츠가 있으므로 보기로 결정.
하지만! 그 전에 원작을 읽어야한다는 강박이....!
"영화를 보려면 먼저 읽어야 한다"는 강박과 "하지만 축구는 쫌..." 이라는 미적거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헌책방 고구마에서 마지막 순간에 이 책을 집어들어 계산해 버리는 걸로 고민 종결.
내가 알기로 전국 최저가인 헌책방 고구마에서도 이 책은 신작이라는 이유로 결코 싸지 않다. 3500원.

그리고 느낀 건..
아, 이런 게 결혼이라면 결혼도 나쁘진 않겠어.
서울에 한 명, 지방에 한 명. 정말 최고야.
하지만, 그건 손예진만큼의 미모를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라고  또 누군가 그러더라.
아... 그럼 난 일처일부제에 해당하는 사람이구나.... ㅠㅠ

영화보다는 소설 쪽의 결말이 훨씬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을 Ryu에게 말해 줬더니 "그건 쫌..." 이라는 반응이다. 흥.
어쨌건 나는, 영화에서 손예진이 입었던 비옷이 너무 갖고 싶다.
저렇게 예쁜 비옷은 어디서 파는 거지?
아니, 저건  비옷이 아니라 손예진이 예쁜 건가?
  

아, 그리고 SF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로버트 하인라인의 <Stranger in a Strange Land>를꼭 읽어야겠다.
지구에 온 화성인 발렌타인 마이클 스미스가 결혼제도를 개방하기를 주장한다는데, 오호~ (화성인 최고!)
그 이유가 지구의 전쟁과 혼란이 성적인 경쟁과 질투심에 기인하기 때문이란다.
아,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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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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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면 고통이 시작된다. 사랑의 고통이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몫이다.-50쪽

"나이가 좀 들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알게 된 게 하나 있는데,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모든 게 간단해지는 것 같아. 뭔ㄱ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원래 그럼 사람이려니 하면 그만이거든. 마찬가지로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해도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야."-63쪽

영국 속담에 1주일 동안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는 말이 있다.-102쪽

의심이란 그런 것이다. 행동을 의심하게 되고 행동에 꼬투리 잡을 것이 없으면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의도마저도 결백이 입증되면 그다음에는 무의식을 의심하게 된다.-226쪽

한 사람이 알게 되면 이내 열 사람이 알게 된다. 그 다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게 된다.-311쪽

"사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삶의 계획을 미리 세운다 해도 사실은 모두가 다 그때그때만 넘기면서 살아가는 거 아닌가요."-321쪽

로버트 하인라인이 1961년에 발표한 소설 Stranger in a Strange Land는 SF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 한다.-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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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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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맞다면, 예전의 그 대단했던 드라마 <인어아가씨>에서는
장서희가 자신의 친아빠한테 눈 시퍼렇게 뜨고 대들면서 장장 10여분 이상을 기관총처럼 쏘아댄 장면이 있었다.
몇십년간 말하지 못했던 모든 울분과 한과 노여움과 증오, 그리고 서운함까지 그 안엔 다 들어있었다.
씬도 바뀌지 않고 그냥 그 낡은 집의 주방에서만 이루어진 장면이었는데, 와우 그 폭발력이란.
아마 그 씬은 두고두고 회자됐었지.

96쪽에서 월터가 키티한테 드디어 하고야 마는 말.
후련함으로 따지자면 장서희의 100배다. 
그런데 나는 속시원하기도 하면서 가슴이 미어지더라.
아, 불쌍한 월터.
나는, 키티보다는 월터 편이다.

서머싯 몸은 단테의 신곡 중 <연옥편>의 한 구절을 이 소설의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한다.
바람 피운 게 분명한 아내를 차마 죽일 수는 없어서 다른 고장으로 데려가 서서히 죽이려 하는 남편.
하지만 마음대로 죽어주지 않자 결국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만다는.
그런데 어쩌자고 서머싯 몸은, 아내가 아닌 남편, 그러니까 키티가 아닌 월터를 죽게 했을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정말로 월터 편.
바람 피는 건 사형에 처할 정도로 중죄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내가 바람 피고 안 들키는 건 제외시킵니다.

참, 앞표지의 그림은 게오르게 람베르트의 <헤라>다.
꽤나 어울리는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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