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구판절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은 그 다음이다. 여자는 자세를 바로한 채, 갑자기 옷깃을 풀었다. 내 귓전에는 뻣뻣한 허리띠를 안쪽에서 잡아당기는 비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하얀 가슴이 드러났다. 나는 숨을 죽였다. 여자는 하얗고 풍만한 젖가슴의 한쪽을, 그대로 자기 손으로 꺼냈다.
사관은 짙은 색 찻잔을 받쳐 들고, 여자 앞에 무릎 꿇은 채로 다가갔다. 여자는 젖가슴을 양 손으로 주물렀다.
나는 그 장면을 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짙은 색 찻잔 속에서 거품을 띄우고 있는 연둣빛 차에, 희고 따듯한 젖이 뿜어나와, 방울을 남기며 잔 속에 담기는 모양, 고요한 차의 표면이 하얀 젖으로 흐려져 거품을 일으키는 모양을, 바로 눈앞에 보듯이 역력히 느꼈다.
사내는 그 찻잔을 들고, 그 기이한 차를 남김없이 마셨다. 여자의 하얀 가슴도 감추어졌다.-56쪽

육체적인 불구자는 미모의 여자와 마찬가지로 대담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불구자도 미모의 여자도, 남들에게 보여진다는 사실에 지치고, 보여지는 존재라는 사실에 질려서, 궁지에 몰린 끝에, 존재 그 자체로 마주 쳐다보는 것이다. 먼저 보는 쪽이 이긴다.-98쪽

"우리 집 근처에 아주 예쁜 꽃꽂이 선생님이 계시는데, 요전에 자신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려 주더라구요. 전쟁 중에 그 선생님께 애인이 있었는데, 육군 장교로 결국 전쟁터에 나가게 돼서, 잠깐 동안, 남선사에서 마지막 대면을 했대요. 부모님이 반대하는 사이였지만, 헤어지기 직전에 임신한 것이 불쌍하게도 사산이었대요. 남자도 무척이나 슬퍼한 끝에, 마지막으로, 엄마로서의 네 젖을 먹고 싶다고 해서, 시간도 없으니까, 그 자리에서 찻잔에 젖을 짜 넣어, 마시게 했다는군요. 그리고 한 달 후, 애인은 전사했지요. 그 후로, 선생님은 정조를 지키며 혼자 살고 계시다는군요. 아직 젊고 예쁜 여자인데도."-123쪽

호주머니를 뒤진, 단도와 수건에 싸인 칼모틴 병이 나왔다. 그것을 계곡 사이를 향하여 던져 버렸다.
다른 호주머니의 담배가 손에 닿았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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