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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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별 지구‘라는 은유적 표현에 ˝지구는 별이 아니라 행성입니다만...˝ 이라고 말하는 대책없는 이과형 인간. 하지만 인문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때로는 뾰족한 유머까지 구사하는 사람의 책이라면,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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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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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연구실 밖으로 처음 고개를 내민 과학자란 방금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유약한 존재인 것을.

<우리만의 유니버스>

0보다 작은 수를 쉽게 뺄 수 없는 학생과 멈춰 있는 축구공도 제대로 못 차는 내가 무엇이 다르가.

Q1. ‘유니버스‘ ‘코스모스‘ ‘스페이스‘는 모두 우리말로 ‘우주‘라고 번역된다. 무엇이 서로 다른가? 각 단어를 어디에서 들어보았는가?

우리가 은하니 성단이니 얘기할 때 사용하는 ‘우주‘는 ‘유니버스‘다. 별과 먼지와 행성과 우리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것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과 상황과 환경이다.

‘코스모스‘는 질서와 조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우주다. 우주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에는 질서와 조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버릴 텐데, 다행히도 우주의 먼지는 모이면 구름이 되고, 구름이 꼭꼭 뭉쳐 별과 행성을 만들어내고, 별은 제 안의 연료가 소진되면 남은 것을 폭발적으로 내어놓으며 다시 우주에 먼지를 공급한다. 별이 모이고 모여 성단을 이루고, 은하를 이루고, 은하단을 이룬다. 밤하늘의 별은 흘러가고 행성은 때때로 역행했다 다시 순행한다. 일식과 월식은 예측에 맞게 일어난다. 빅뱅 이론처럼 우주가 어떻게 생겨나고 진화했는가 살펴보는 분야를 ‘우주론cosmology‘이라고 한다. 칼 세이건의 대표작인 그 책 이름이 <코스모스>인 것도 우주의 질서와 조화, 우주라는 대자연의 작동 원리를 논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주‘ 따위로 섣불리 번역하지 않고 원제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대단히 훌륭한 일이다.
컴퓨터 자판에도 있는 ‘스페이스‘는, 자판에서와 다름없이 ‘공간‘으로서의 우주다. 특히, 인류가 인공위성이나 우주선과 같은 인공물체를 보내 탐사하는 공간을 칭한다.

대학이 학문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공부라는 걸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은 사람, 배움의 기쁨과 앎의 괴로움을 젊음의 한 조각과 기꺼이 맞바꿀 의향이 있는 사람만이 대학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며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

어떤 사람의 직업은 정해진 ‘시간‘을 성실히 채우는 일이고, 또다르 사람의 직업은 어떤 ‘분량‘을 정해진 만ㅋ늠 혹은 그에 넘치게 해내는 것이라면, 나의 직업은 어떤 주제에 골몰하는 일이다.

외국 연구자들과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들의 메일이"Enjoy!"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칼 세이건의 유명한 고전 <코스모스>를 처음 읽던 때의 나는 신화도 종교도 역사도 모르는 채 유럽을 여행하던 때의 나와 다르지 않았다. <코스모스>는 인류가 기록하고 남긴 역사는 물론, 그 이전의 생명 역사, 또 그 이전의 지구와 태양계의 형성, 마침내 우주 빅뱅까지 거슬러올라가며 그야말로 모든 ‘자연‘의 역사를 두루 통찰하는 ‘빅 히스토리‘의 거작이다. 천문학의 태동에 대해 설명하면서 점성술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고, 별을 비롯한 다양한 천체를 어원으로 하는 수많은 단어를 설명한다. 외계 생명을 얘기하다가 지구 생명에 대한 진화론의 역사를 훑고,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논하며, 세포핵 속 DNA의 뉴클레오티드까지 들어갔다가 목성 대기로 쏙 빠져나온다. 한 사람이 지닌 지식의 넓이와 사유의 깊이가 그의 생물학적 나이라든지 그가 태어난 후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몇 바퀴 돌았는가 따위에 비례할 리는 없지만, 우주와 지구의 역사,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논하는 이 대작을 집필했을 때 칼 세이건의 나이가 사십대 중반에 불과했다는 걸 생각하면 놀랍다... 천문학만 알아서는 이 책을 읽을 수 없다. 생물학도 알아야지, 화학도 알아야지, 그의 위트와 감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사와 종교,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천문학계의 상황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다길래 샀다. 몇 차례 읽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다시 깨달았다. 번역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을. 그래, 뭐 꼭 그렇게 하늘과 우주에 대한 감동으로 전율을 느끼는 사람만 천문학을 전공하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장기하식으로 말하자면, 천문학자가 <코스모스>를 완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뭐 상관없는 거 아닌가?

요즘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일평생 천문학 연구와 교육에 몸 바치셨던 홍승수 교수께서 새로 번역한 판본이다. 현재의 번역도 훌륭하지만, 만약 오랜 뒤에 또다시 새로운 번역본이 나온다면 나는 그때에도 또 개정 번역판 <코스모스>를 사들일 것이다. 후루룩 넘겨 읽고, ‘아, 이 아저씨 또 사람 선동하네!‘ 생각하며 책장에 꽂아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우주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 나오는 연쇄살인범은 ‘다음 생에는 천문학자나 등대지기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소시오패스라서 밤하늘 혹은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직업을 떠올린 것일까. 나도 이 직업을 선택할 때는 천문학자가 사회에 나올 일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아마 등대지기도 때때로 방송작가의 인터뷰 요청을 받을 것이다.

학회에서 발표자를 당황시키기 딱 좋은 고약한 질문 중 하나는 "확실한가요?"다.

일찍이 철학자 데카르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했던가. 과학자들은 그 말을 아주 잘 실천하고 있다. 의심하는 것이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문제에도 다양한 각도에서 의심하고, 그 답을 구하려 애쓰며, 답을 찾은 뒤에도 과연 답이 하나뿐인지 또다르 측면에서의 답은 없는지 계속해서 의심하는 것, 그것이 과학자가 하는 일이며 해야 하는 일이다.

책이라는 것은 선물하기가 은근히 까다로운 물건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각자의 독서 취향이 있고, 독서에 취미가 없는 사람은 책 좀 읽으라는 뜻이냐며 발끈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우주와의 랑데부는 완전한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서점에 갔다가 무심결에 다양한 성운과 은하 사진으로 가득한 과학 잡지를 집어들었다. 그것이 랑데부의 시작이었는 줄도 모르고 그저 우주를 담은 사진들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어느 순간 천문학의 세계에 도킹해 있었다. 친구의 오디션에 따라갔다가 캐스팅된 배우나 세찬 장맛비에 우산을 빌려주었다가 연인으로 발전한 커플에게도 그런 환상적인 랑데부가 있었을 것이다. 혹여 그런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별에서 태어나 우주 먼지로 떠돌던 우리가 이 지구를 만난 건 그야말로 우주적으로 멋진 랑데부였으니까.

우주에 갈 때도 지구상의 미생물이 다른 천체를 오염시키는 일이 없도록 대비를 한다.

설명은 간단할수록 좋다는 ‘오컴의 면도날‘ 개념

발상의 대전환을 촉발하는 사건을 ‘코페르니큐스적 혁명‘이라고 비유

해와 달, 행성들이 지나는 길에 있는 별들은 스물여덟 개의 별자리, 28수로 묶어두었고, 동방의 청룡, 서방의 백호, 북방의 현무, 남방의 주작이 각각 7수씩을 맡고 있다. 28수는 윷놀이 말판에서도 볼 수 있다. 말판을 잘 보면 한가운데 칸 주위로 28개의 칸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북극성과 28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만 원궈지폐의 뒷면에도 우리 전통 별자리가 나온다.세종시대의 천문 관측기기 혼천의와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의 뒷배경에 희미하게 보이는 수많은 동그라미가 바로 한반도의 옛 밤하늘을 담은 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다.

지폐 하나에 천문학 관련 아이템이 셋씩이나 새겨진 나라는 많지 않다. 해외 학회에서 만난 다른 나라 연구자들에게 지폐를 자랑하면, 한국 사람들은 천문학에 무척 관심이 많고 지폐에 새길 만큼 중요하게 여기나보다 하는 말을 듣는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런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 물결. ‘은파‘는 그런 뜻이다. 푸른 여름의 밤바다 위로 밝은 보름달이 고요히 떠오르면 연인들은 그 달빛 아래에 앉아 달이 아름답다고 서로에게 속상이겠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달이 아름답네요‘로 번역했다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를 주고받으면서.

달에서 보는 지구는 마치 선반에 올려놓은 오르골 장식품처럼 달 하늘 어딘가에 떠서 제자리에서 천천히 돈다. 낮에도 밤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지구의 위치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달에 집을 짓는다면 지구로 향하는 창을 낼 것이다. 창문이 곧 생동하는 액자가 될 테니.

그러잖아도 비좁은 간이 관측소 안에서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어야 했다. 빌 브라이슨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나라에서는 불법일 만큼 가까이".

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고, 삶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안갯속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되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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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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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화 되면 누굴 캐스팅할지 감독놀이하며 읽을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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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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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 스콧 피츠제럴드, 1922

E.A.포는 단편을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정의했어. 그 당시에는 ‘앉은 자리‘라는 게 지금보다는 길었을 것 같다만. - P41

로링 캠프의 행운 / 브렛 하트, 1868

인생의 시기마다 그에 딱 맞는 이야기를 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해주는구나. 명심해라, 마야. 우리가 스무 살 때 감동했던 것들이 마흔 살이 되어도 똑같이 감동적인 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책에서나 인생에서나 이건 진리다. - P57

에이제이는 동네 사람들의 신용카드를 긁으며, 죽음이 관계를 차단하는 상실인 반면 도난은 관계를 이어주는 견딜 만한 상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 P61

"그리고 맨날 똑같은 책만 읽어달래. 근데 그게, 쓰레기 같은 유아용 보드북이에요. <이 책 끝에 나오는 괴물>?" - P80

그들은 <꼬마 완두콩>을 읽던 참이었는데, 후식으로 채소를 먹으려면 저녁으로 사탕을 다 먹어야만 하는 완두콩의 얘기였다.
"이게 아이러니라는 거야, 마야." 에이제이가 말했다. - P93

"이야, 귀여운 아가씨. 잘 지냈어?"
"입양됐어요." 마야가 말했다.
"그거 굉장히 어려운 말인데." 램비에이스는 에이제이를 쳐다보았다."이거 맞는 말이야? 진짜로 그렇게 됐어?"
입양절차에는 평균적인 시간이 소요됐고, 마야의 세번째 생일이 오기 전 구월에 판가름났다.에이제이의 가장 큰 약점은 운전면허증이 없다는 것(소발작 떄문에 애초에 딸 생각을 안 했다)과, 당연히, 애는커녕 개나 화초도 키워본 적 없는 독신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에이제이의 학벌과 지역사회와의 강한 유대(즉 서점을 운영한다) 그리고 아이 어머니가 아이를 그에게 맡기고 싶어했다는 점이 위의 약점들보다 더 크게 작용했다.
"축하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서점 사람들!" 램비에이스가 말했다. 그는 마야를 공중에 던졌다가 받아서 땅에 내려놓았다. 그는 카운터 너머로 상체를 내밀고 에이제이와 악수를 나눴다. "자. 이제 포옹을 하자고, 친구. 이건 포옹할 만한 소식이잖아." - P95

신을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에이제이는 눈을 감고 그게 누구든 하여간 저 높은 초월적 존재에게 그의 고슴도치 같은 마음을 총동원하여 감사 인사를 올렸다. - P99

이 세상 같은 기분 / 리더츠 바우슈, 1986

아버지가 되고 난 다음에야 이 이야기와 조우했으니, 프리마야(마야가 오기 전) 시대에도 이 소설을 좋아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인생에서 단편에 더 끌리는 시기를 여러 번 거쳐왔다. 그 중 한 시기는 네가 걸음마하던 시절과 일치한다. 내가 장편을 읽을 시간이 어디 있었겠니, 안 그래, 우리 딸? - P103

가게 너비는 십오 마야, 길이는 이십 마야다. 이걸 아는 이유는 한 나절을 바쳐 누워 굴러가며 측정했기 때문이다. 삼십 마야가 넘지 않아 다행이었다. 측정 당시 마야가 셀 수 있는 숫자가 거기까지였으므로. - P106

서점 문을 여는 오전 열시 직전, 마야는 자기 자리로, 즉 그림책이 전부 모여 있는 코너로 간다.
마야가 책에 다가가는 첫번째 방법은 냄새를 맡는 것이다. 책의 재킷을 벗겨내고 코앞까지 들어올려 딱딱한 표지가 두 귀를 감쌀 정도로 책 속에 얼굴을 묻는다. 책에서는 늘 그렇듯 아빠의 비누, 풀, 바다, 식탁, 치즈 잼새가 난다. - P106

마야는 어머니가 자신을 아일랜드 서점에 두고 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일정 나이가 되는 모든 애들한테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떤 아이들은 신발 가게에 남겨진다. 또 어떤 애들은 장난감 가게에 남겨진다. 또 어떤 애들은 샌드위치 가게에 남겨진다. 그리고 인생은 어떤 가게에 남겨지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거다. 마야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살고 싶지 않다. - P109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 플래너리 오코너, 1953

어떤 사람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한 가지만 물어보면 알 수 있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 P113

에이제이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말할 때면 벌거벗은 기분이 든다. - P118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 - P119

"<모비 딕>을 좋아하나요?" 그가 물었다.
"싫어해요." 어밀리아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들은 많지 않아요. 선생들은 숙제로 내주고, 부모들은 자식이 뭔가 ‘고급‘스러운 것을 읽는다고 즐거워하죠. 하지만 애들한테 그런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니까 애들이 자기는 독서랑 안 맞는 줄 알게 되는 거라고요." - P121

술이 나왔다."와, 봐요." 어밀리아가 말했다. "귀여운 작살이 꽂힌 새우라니. 이거 뜻밖의 즐거움인데."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난 술 사진 찍는 거 좋아해요."
"술은 가족 같죠." 에이제이가 말했다.
"가족 ‘이상‘이죠." 어밀리아는 잔을 들어 에이제이와 부딪혔다. - P123

"당신은 어떤 소설을 배경으로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으면 좋겠어요?" 에이제이는 어밀리아에게 물었다.
"아, 어려운 질문이네요. 전혀 뜬금없긴 한데, 대학 다닐 때 <수용소 군도>를 읽고 있으면 그렇게 배가 고파지더라고요. 소비에트 교도소의 빵과 수프에 대한 그 온갖 묘사들 하며." 어밀리아가 말했다. - P124

"저기, 에이제이," 어밀리아가 불렀다. "서점 주인이 되는 것에도 나름 영웅적인 면이 있고, 아이를 입양하는 것에도 영웅적인 면모가 있다고요."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뿐입니다." - P130

"내가 경찰 노릇한 지 이제 이십 년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인생에서 나쁜 일은 거의 모두 나쁜 타이밍에서 비롯되는 거야, 그리고 좋은 일은 모두 좋은 타이밍에서 비롯되고."
"거 좀 심하게 단순한 논리 같은데."
"생각을 해봐. <태멀레인>을 도둑맞지 않았다면 문을 안 잠그고 다니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메리언 월리스가 아기를 가게에 놔두지도 않았겠지. 좋은 타이밍이라는 게 바로 그런 거야." - P134

(각주) 언제 어디서고 죽음을 맞을 수 있는 해적들은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귀걸이를 했다는 속설이 있다. - P143

마야는 리츠 호텔만큼 커다란 노랑 다이아몬드를 골랐고, 그것은 얼추 양호한 상태의 <태멀레인> 초판가에 맞먹는 가격임이 드러났다. - P174

"결혼합시다." 그는 거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난 섬에 처박혀 있고, 가난하고, 애도 딸렸고, 수익이 점점 줄어드는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거 잘 알아요. 당신 어머니가 나를 싫어하고, 작가 이벤트를 주최하는 일에는 영 젬병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특이한 청혼이네." 어밀리아가 말했다. "당신의 장점부터 시작해야지, 에이제이."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우린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맹세코. 나는 내가 읽는 책을 당신도 같이 읽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밀리아가 그 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내 아내가 되어주세요. 당신에게 책과 대화와 나의 온 심장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에이미." - P193

빛은,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밝다.
경적은, 나른하고 너무 늦다.
금속은 휴지처럼 구겨진다.
몸은 고통스럽지 않다, 이미 어딘가 다른 곳으로 날아갔으므로.

그래, 대니얼은 충돌 직후, 죽음 직전에 생각했다. 딱 그거군. 문장은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 P212

두번째 이야기는 블랙하트 고등학교에서 온 버지니아 킴의 작품이었다. <여행>은 중국에서 입양된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 P228

고자질하는 심장 / E.A.포, 1843

그때 니콜이 문학적 삶을 살아가는 더 나은, 더 행복한 길이 있을 거라고 말을 꺼냈다. 내가 말했어, "그래, 가령 어떤?"
그녀가 말했다. "서점 주인."
"좀더 자세히 말해봐." 내가 말했다.
"내 고향에 서점이 하나도 없다는 거 알아?"
"진짜? 앨리스 정도 되는 동네면 하나쯤 있을 법도 한데."
"그래." 그녀가 말했다. "서점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도 할 수 없지."

그렇게 우리는 대학원을 때려치우고 그녀의 신탁기금을 헐어 앨리스 섬으로 이주했고, 아일랜드 서점이라는 가게를 열었지. - P243

"가끔 그이의 유머 감각이 그립긴 해요. 하지만 그의 가장 좋은 부분은 책에 다 있어요. 그가 몹시 그리워지며 언제든 책을 읽으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 P250

"결정적으로, 근사한 표지가 중요해요. 내용이 얼마나 훌륭하든지 그건 문제가 안 돼요. 일분일초도 못생긴 대상에 내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아요." - P251

에이제이는 종종, 이 세상 최고의 것들은 죄다 고기에 붙은 비계처럼 야금야금 깎여나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레코드 가게가 그랬고, 그다음엔 비디오 가게가, 신문과 잡지에 이어 이제는 사방에 보이던 대형 체인 서점마저 사라지는 중이다.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형 체인 서점이 있는 세상보다 더 나쁜 유일한 세상은, 대형 체인 서점‘조차‘ 없는 세상이었다. 적어도 대형 서점은 약이나 목재가 아니라 책을 팔지 않는가! 적어도 그런 서점에는 문학 공부를 한 사람, 책을 읽을 줄 알고 사람들에게 책을 골라줄 수 있는 사람도 좀 있지 않겠는가! - P262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 레이먼드 카버, 1980

내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해온 문제는, 어째서 싫어하는/혐오하는/결함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들에 관해 쓰는 것이 사랑하는 것들에 관해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걸까 하는 거야. - P289

책을 읽으면서 그는 마야를 위해 새로운 단편소설 목록을 만들고 싶어진다. 마야는 작가가 될 거야, 라고 생각한다. 그는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란 직업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마야에게 그 생각을 얘기해주고 싶다. ‘마야, 장편소설도 분명 그 나름대로 매력적이지만, 산문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창조물은 단연 단편이지. 단편을 마스터하면 세상을 마스터하는 거야." - P297

결국, 우리는 단편집이야. - P301

좋아, 그는 생각한다. 한 단어가 돼야 한다면 한 단어로 하지 뭐.
"사랑? 그는 말했다. 제대로 발화됐기를 빈다.
마야는 눈썹을 찡그리고 그의 표정을 읽으려 애썼다. "장갑?" 마야가 물었다. "손 시려요, 아빠?"
그는 고개르 끄덕였고, 마야는 아버지의 두 손에 자기 손을 포갰다.차갑던 그의 손이 이제 따뜻해지고, 그는 오늘은 이걸로 할 만큼 했다고 판단한다. 내일은, 어쩌면, 말을 찾아낼지도. - P304

"애한테 넌 독서를 싫어하는구나 하면 애는 그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지." - P308

"있잖아,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겨. 에이제이나 어밀리아 같은 좋은 사람들. 그리고 난, 책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 얘기를 하는 게 좋아. 종이도 좋아해. 종이의 감촉, 뒷주머니에 든 책의 느낌도 좋고. 새 책에서 나는 냄새도 좋아해." - P308

"난 평생을 앨리스에서 살았어. 내가아는 유일한 곳이지. 좋은 동네고, 이곳을 쭉 그렇게 살리고 싶어. 서점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잖아, 이즈메이." - P310

나는 진심으로 아일랜드 서점을 사랑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고, 종교도 없다. 하지만 내게 이 서점은 이승에서 교회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이곳은 신성한 곳이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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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 개정보급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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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에 보면 소위 ‘집행유예 망상‘이라는 것이 있다.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불그레한 뺨과 통통한 얼굴을 한 그들을 보는 순간 우리는 크게 용기를 얻었다. 그 사람들이 수감자 중에서 특별히 뽑힌 사람들이라는 것과, 수년 동안 매일 같이 이 역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책임지는 접대반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집행유예 망상- - P36

외부 사람들 중에는 강제수용소에 예술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뿐만 아니라 유머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더 놀랄 것이다. 비록 그 흔적이 아주 희미하고, 몇 초 혹은 몇 분 동안만 지속되지만.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유머- - P86

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기 위한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 번 유추를 해보자.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 방에 들여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유머-

만약 강제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이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으면, 그는 자기가 하나의 인간이라는 생각, 마음을 지니고 내적인 자유와 인격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라는 생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거대한 군중의 한 부분에 불과한 존재로 생각한다. 존재가 짐승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이나 의지가 없는 양떼처럼 무리지어 - 때로는 여기에 있다가 그 다음에는 저기로, 때로는 함께 몰려다니다가 때로는 서로 떨어져 다니는 - 다니게 된다. (...중략...) 그리고 양떼인 우리들은 오로지 두 가지 생각만 한다. 어떻게 하면 저 무서운 개들을 피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생존을 위해 군중 속으로-
- P96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적 자유- - P120

수감자들을 심리학적으로 관찰해 보면 내면세계가 간직하고 있는 도덕적, 정신적 자아가 무너지도록 내버려둔 사람이 결국 수용소의 타락한 권력의 희생자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련의 의미- - P126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이나 완성을 의미하고,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끌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 - P127

수감자들 역시 기이한 ‘시간 감각‘을 경험했다. 시시때때로 자행되는 폭력과 배고픔이 하루를 꽉 채우고 있는 수용소에서는 하루라는 작은 단위의 시간은 영원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보다 긴 단위의 시간, 예를 들자면 일주일은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수용소에서 내가 한번은 동료에게 하루가 일주일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고 얘기하자 그 친구도 내 말에 동의한다고 한 적이 있다. 우리의 시간 감각이 얼마나 역설적이었던가!
이와 관련해서는 예리한 심리학적 관찰이 돋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토마스 만은 서로 비슷한 심리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 즉 폐결핵에 걸려 요양소에서 언제 나가게 될지 모르는 환자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영적인 발달단계를 얘기하고 있다. 그들도 똑같은 상태, 미래도 없고 삶의 목표도 없는 생존의 상태를 경험한 것이다.

-끌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 - P128

평범하고 의욕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스마르크의 이 말을 들려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끌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 - P131

미래-그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형태를 띠고 일어난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 P133

저녁이 되어 사람들이 모두 막사에 모였을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은밀하게 물었다.
"말해 보게. 자네 오늘 기뻤나?"
우리 모두 똑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 사람이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아니야."
우리는 글자 그대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앞으로 천천히 그것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이렇게 갇혀 있다가 석방된 죄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신의학적인 용어로 ‘이인증‘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꿈처럼 비현실적이고, 있을 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얼마나 많이 꿈에게 사기를 당해 왔던가! 자유의 날이 와서, 석방되고, 집으로 돌아가고,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아내를 포옹하고, 테이블에 앉아서 그 동안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하는 꿈, 그런 꿈을 꾸었다. 오히려 너무나 자주 꾼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그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자유의 날을 맞은 그 꿈도 끝이 나고 만다. 이제 그 꿈이 지금 실현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그 꿈을 믿을 수 있을까?

-해방의 체험- - P154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에게는 더 이상 정신적 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게 심한 정신적 압박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받았던 사람에게는 자유를 얻은 후에도 그전과 똑같은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특히 그런 정신적 억압상태에서 갑자기 벗어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위험은 정신위생학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잠수병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 속의 잠함에서 일하던 잠수부가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올 때 가장 위험한 것처럼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받다가 갑자기 풀려난 사람은 도덕적, 정신적 건강에 손상을 입을 위험이 크다.

-해방 이후 나타난 현상들- - P157

"인생을 두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존재의 본질- - P182

사람은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나 혹은 자기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시련의 불가피성이다. 이런 시련의 도전을 용감하게 받아들이면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를 갖게 되며, 그 의미는 글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보존된다. 다시 말해 삶의 의미는 절대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시련의 잠재적인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련의 의미- - P189

그 동안 써놓았던 책의 원고를 빼앗긴 대신 나는 물려받은 그 외투에서 히브리 기도책에서 찢어낸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유대교의 기도문 종에서도 가장 중요한 셰마 이스라엘이었다. 나는 이렇게 기막힌 ‘우연의 일치‘를 단지 종이에 적지만 말고 그대로 ‘살라고‘ 하는 신의 계시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련의 의미- - P190

요즘은 신경질환보다는 개인적인 문제 떄문에 정신과 의사를 찾는 환자들이 점점더 많아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옛날 같으면 정신과 의사 대신 목사와 신부, 랍비를 찾아갔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성직자에게 가지 않고, 의사를 찾아와서는 이렇게 묻는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임상에 따른 문제들- - P191

인간의 존재가 본질적으로 일회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로고테라피는 염세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것이다. 이것을 비유를 들어 설명해 보자. 염세주의자는 매일같이 벽에 걸린 달력을 찢어내면서 날이 갈수록 그것이 얇아지는 것을 두려움과 슬픔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비슷하다. 반면에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떼어낸 달력의 뒷장에다 중요한 일과를 적어놓은 다음 그것을 순서대로 깔끔하게 차곡차곡 쌓아 놓는 사람과 같다. 그는 거기에 적혀 있는 그 풍부한 내용들, 그 동안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기록들을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반추해 볼 수 있다.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젊은이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잃어버린 자신의 청춘에 대해 향수를 가질 이유가 있을까? 무엇 때문에 그가 젋은이를 부러워하겠는가? 그 젊은이에게 놓여 있는 잠재 가능성 때문에? 아니면 그가 가지고 있는 미래 때문에? "천만의 말씀"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가능성 때신에 나는 내 과거 속에 어떤 실체를 갖고 있어. 내가 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용감하게 견뎌냈던 시련이라는 실체까지도 말이야. 이 고통들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비록 남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삶의 일회성- - P198

사실 책임이 전제되지 않는 자유는 방종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내가 동부 해안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보완이 되도록 서부 해안에 책임의 여신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범결정론에 대한 비판- - P213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의학- - P215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란 간단하게 말해서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는 세 개의 비극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계속 낙관적일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개의 비극적인 요소는 인간의 삶을 제한하는 1)고통과 2)죄와 3)죽음을 말한다.

-비극 속에서의 낙관- - P219

유럽 사람의 눈에는 미국의 문화가 인간에게 ‘행복하기를‘ 끊임없이 강요하고 명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복은 얻으려고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비극 속에서의 낙관- - P221

영화는 수천 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장면에 다 뜻이 있고 의미가 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의미는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부분, 개별적ㅇ니 장면들을 보지 않고서는 영화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삶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삶의 최종적ㅇ니 의미 역시 임종의 순간에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최종적인 의미는 각각의 개별적인 상황이 갖고 있는 잠재적인 의미가 각 개인의 지식과 믿음에 최선의 상태로 실현되었는가, 아닌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비극 속에서의 낙관- - P228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이렇게 주장한 적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굶주림에 시달리도록 해보자. 배고픔이라는 절박한 압박이 점점 커짐에 따라 각 개인의 차이는 모호해지고, 그 대신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표현하는 단 하나의 목소리만 나타나게 된다.

-비극 속에서의 낙관- - P241

빅터 프랭클린은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이며 미국 인터내셔널 대학에서 로고테라피를 가르쳤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은 정신요법 제3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했다.
190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고,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르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3년 동안 다카우와 다른 강제수용소가 있는 아우슈비츠에서 보냈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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