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 스콧 피츠제럴드, 1922

E.A.포는 단편을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정의했어. 그 당시에는 ‘앉은 자리‘라는 게 지금보다는 길었을 것 같다만. - P41

로링 캠프의 행운 / 브렛 하트, 1868

인생의 시기마다 그에 딱 맞는 이야기를 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해주는구나. 명심해라, 마야. 우리가 스무 살 때 감동했던 것들이 마흔 살이 되어도 똑같이 감동적인 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책에서나 인생에서나 이건 진리다. - P57

에이제이는 동네 사람들의 신용카드를 긁으며, 죽음이 관계를 차단하는 상실인 반면 도난은 관계를 이어주는 견딜 만한 상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 P61

"그리고 맨날 똑같은 책만 읽어달래. 근데 그게, 쓰레기 같은 유아용 보드북이에요. <이 책 끝에 나오는 괴물>?" - P80

그들은 <꼬마 완두콩>을 읽던 참이었는데, 후식으로 채소를 먹으려면 저녁으로 사탕을 다 먹어야만 하는 완두콩의 얘기였다.
"이게 아이러니라는 거야, 마야." 에이제이가 말했다. - P93

"이야, 귀여운 아가씨. 잘 지냈어?"
"입양됐어요." 마야가 말했다.
"그거 굉장히 어려운 말인데." 램비에이스는 에이제이를 쳐다보았다."이거 맞는 말이야? 진짜로 그렇게 됐어?"
입양절차에는 평균적인 시간이 소요됐고, 마야의 세번째 생일이 오기 전 구월에 판가름났다.에이제이의 가장 큰 약점은 운전면허증이 없다는 것(소발작 떄문에 애초에 딸 생각을 안 했다)과, 당연히, 애는커녕 개나 화초도 키워본 적 없는 독신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에이제이의 학벌과 지역사회와의 강한 유대(즉 서점을 운영한다) 그리고 아이 어머니가 아이를 그에게 맡기고 싶어했다는 점이 위의 약점들보다 더 크게 작용했다.
"축하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서점 사람들!" 램비에이스가 말했다. 그는 마야를 공중에 던졌다가 받아서 땅에 내려놓았다. 그는 카운터 너머로 상체를 내밀고 에이제이와 악수를 나눴다. "자. 이제 포옹을 하자고, 친구. 이건 포옹할 만한 소식이잖아." - P95

신을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에이제이는 눈을 감고 그게 누구든 하여간 저 높은 초월적 존재에게 그의 고슴도치 같은 마음을 총동원하여 감사 인사를 올렸다. - P99

이 세상 같은 기분 / 리더츠 바우슈, 1986

아버지가 되고 난 다음에야 이 이야기와 조우했으니, 프리마야(마야가 오기 전) 시대에도 이 소설을 좋아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인생에서 단편에 더 끌리는 시기를 여러 번 거쳐왔다. 그 중 한 시기는 네가 걸음마하던 시절과 일치한다. 내가 장편을 읽을 시간이 어디 있었겠니, 안 그래, 우리 딸? - P103

가게 너비는 십오 마야, 길이는 이십 마야다. 이걸 아는 이유는 한 나절을 바쳐 누워 굴러가며 측정했기 때문이다. 삼십 마야가 넘지 않아 다행이었다. 측정 당시 마야가 셀 수 있는 숫자가 거기까지였으므로. - P106

서점 문을 여는 오전 열시 직전, 마야는 자기 자리로, 즉 그림책이 전부 모여 있는 코너로 간다.
마야가 책에 다가가는 첫번째 방법은 냄새를 맡는 것이다. 책의 재킷을 벗겨내고 코앞까지 들어올려 딱딱한 표지가 두 귀를 감쌀 정도로 책 속에 얼굴을 묻는다. 책에서는 늘 그렇듯 아빠의 비누, 풀, 바다, 식탁, 치즈 잼새가 난다. - P106

마야는 어머니가 자신을 아일랜드 서점에 두고 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일정 나이가 되는 모든 애들한테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떤 아이들은 신발 가게에 남겨진다. 또 어떤 애들은 장난감 가게에 남겨진다. 또 어떤 애들은 샌드위치 가게에 남겨진다. 그리고 인생은 어떤 가게에 남겨지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거다. 마야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살고 싶지 않다. - P109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 플래너리 오코너, 1953

어떤 사람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한 가지만 물어보면 알 수 있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 P113

에이제이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말할 때면 벌거벗은 기분이 든다. - P118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 - P119

"<모비 딕>을 좋아하나요?" 그가 물었다.
"싫어해요." 어밀리아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들은 많지 않아요. 선생들은 숙제로 내주고, 부모들은 자식이 뭔가 ‘고급‘스러운 것을 읽는다고 즐거워하죠. 하지만 애들한테 그런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니까 애들이 자기는 독서랑 안 맞는 줄 알게 되는 거라고요." - P121

술이 나왔다."와, 봐요." 어밀리아가 말했다. "귀여운 작살이 꽂힌 새우라니. 이거 뜻밖의 즐거움인데."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난 술 사진 찍는 거 좋아해요."
"술은 가족 같죠." 에이제이가 말했다.
"가족 ‘이상‘이죠." 어밀리아는 잔을 들어 에이제이와 부딪혔다. - P123

"당신은 어떤 소설을 배경으로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으면 좋겠어요?" 에이제이는 어밀리아에게 물었다.
"아, 어려운 질문이네요. 전혀 뜬금없긴 한데, 대학 다닐 때 <수용소 군도>를 읽고 있으면 그렇게 배가 고파지더라고요. 소비에트 교도소의 빵과 수프에 대한 그 온갖 묘사들 하며." 어밀리아가 말했다. - P124

"저기, 에이제이," 어밀리아가 불렀다. "서점 주인이 되는 것에도 나름 영웅적인 면이 있고, 아이를 입양하는 것에도 영웅적인 면모가 있다고요."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뿐입니다." - P130

"내가 경찰 노릇한 지 이제 이십 년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인생에서 나쁜 일은 거의 모두 나쁜 타이밍에서 비롯되는 거야, 그리고 좋은 일은 모두 좋은 타이밍에서 비롯되고."
"거 좀 심하게 단순한 논리 같은데."
"생각을 해봐. <태멀레인>을 도둑맞지 않았다면 문을 안 잠그고 다니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메리언 월리스가 아기를 가게에 놔두지도 않았겠지. 좋은 타이밍이라는 게 바로 그런 거야." - P134

(각주) 언제 어디서고 죽음을 맞을 수 있는 해적들은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귀걸이를 했다는 속설이 있다. - P143

마야는 리츠 호텔만큼 커다란 노랑 다이아몬드를 골랐고, 그것은 얼추 양호한 상태의 <태멀레인> 초판가에 맞먹는 가격임이 드러났다. - P174

"결혼합시다." 그는 거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난 섬에 처박혀 있고, 가난하고, 애도 딸렸고, 수익이 점점 줄어드는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거 잘 알아요. 당신 어머니가 나를 싫어하고, 작가 이벤트를 주최하는 일에는 영 젬병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특이한 청혼이네." 어밀리아가 말했다. "당신의 장점부터 시작해야지, 에이제이."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우린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맹세코. 나는 내가 읽는 책을 당신도 같이 읽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밀리아가 그 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내 아내가 되어주세요. 당신에게 책과 대화와 나의 온 심장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에이미." - P193

빛은,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밝다.
경적은, 나른하고 너무 늦다.
금속은 휴지처럼 구겨진다.
몸은 고통스럽지 않다, 이미 어딘가 다른 곳으로 날아갔으므로.

그래, 대니얼은 충돌 직후, 죽음 직전에 생각했다. 딱 그거군. 문장은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 P212

두번째 이야기는 블랙하트 고등학교에서 온 버지니아 킴의 작품이었다. <여행>은 중국에서 입양된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 P228

고자질하는 심장 / E.A.포, 1843

그때 니콜이 문학적 삶을 살아가는 더 나은, 더 행복한 길이 있을 거라고 말을 꺼냈다. 내가 말했어, "그래, 가령 어떤?"
그녀가 말했다. "서점 주인."
"좀더 자세히 말해봐." 내가 말했다.
"내 고향에 서점이 하나도 없다는 거 알아?"
"진짜? 앨리스 정도 되는 동네면 하나쯤 있을 법도 한데."
"그래." 그녀가 말했다. "서점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도 할 수 없지."

그렇게 우리는 대학원을 때려치우고 그녀의 신탁기금을 헐어 앨리스 섬으로 이주했고, 아일랜드 서점이라는 가게를 열었지. - P243

"가끔 그이의 유머 감각이 그립긴 해요. 하지만 그의 가장 좋은 부분은 책에 다 있어요. 그가 몹시 그리워지며 언제든 책을 읽으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 P250

"결정적으로, 근사한 표지가 중요해요. 내용이 얼마나 훌륭하든지 그건 문제가 안 돼요. 일분일초도 못생긴 대상에 내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아요." - P251

에이제이는 종종, 이 세상 최고의 것들은 죄다 고기에 붙은 비계처럼 야금야금 깎여나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레코드 가게가 그랬고, 그다음엔 비디오 가게가, 신문과 잡지에 이어 이제는 사방에 보이던 대형 체인 서점마저 사라지는 중이다.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형 체인 서점이 있는 세상보다 더 나쁜 유일한 세상은, 대형 체인 서점‘조차‘ 없는 세상이었다. 적어도 대형 서점은 약이나 목재가 아니라 책을 팔지 않는가! 적어도 그런 서점에는 문학 공부를 한 사람, 책을 읽을 줄 알고 사람들에게 책을 골라줄 수 있는 사람도 좀 있지 않겠는가! - P262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 레이먼드 카버, 1980

내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해온 문제는, 어째서 싫어하는/혐오하는/결함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들에 관해 쓰는 것이 사랑하는 것들에 관해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걸까 하는 거야. - P289

책을 읽으면서 그는 마야를 위해 새로운 단편소설 목록을 만들고 싶어진다. 마야는 작가가 될 거야, 라고 생각한다. 그는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란 직업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마야에게 그 생각을 얘기해주고 싶다. ‘마야, 장편소설도 분명 그 나름대로 매력적이지만, 산문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창조물은 단연 단편이지. 단편을 마스터하면 세상을 마스터하는 거야." - P297

결국, 우리는 단편집이야. - P301

좋아, 그는 생각한다. 한 단어가 돼야 한다면 한 단어로 하지 뭐.
"사랑? 그는 말했다. 제대로 발화됐기를 빈다.
마야는 눈썹을 찡그리고 그의 표정을 읽으려 애썼다. "장갑?" 마야가 물었다. "손 시려요, 아빠?"
그는 고개르 끄덕였고, 마야는 아버지의 두 손에 자기 손을 포갰다.차갑던 그의 손이 이제 따뜻해지고, 그는 오늘은 이걸로 할 만큼 했다고 판단한다. 내일은, 어쩌면, 말을 찾아낼지도. - P304

"애한테 넌 독서를 싫어하는구나 하면 애는 그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지." - P308

"있잖아,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겨. 에이제이나 어밀리아 같은 좋은 사람들. 그리고 난, 책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 얘기를 하는 게 좋아. 종이도 좋아해. 종이의 감촉, 뒷주머니에 든 책의 느낌도 좋고. 새 책에서 나는 냄새도 좋아해." - P308

"난 평생을 앨리스에서 살았어. 내가아는 유일한 곳이지. 좋은 동네고, 이곳을 쭉 그렇게 살리고 싶어. 서점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잖아, 이즈메이." - P310

나는 진심으로 아일랜드 서점을 사랑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고, 종교도 없다. 하지만 내게 이 서점은 이승에서 교회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이곳은 신성한 곳이다. - P3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