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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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연구실 밖으로 처음 고개를 내민 과학자란 방금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유약한 존재인 것을.

<우리만의 유니버스>

0보다 작은 수를 쉽게 뺄 수 없는 학생과 멈춰 있는 축구공도 제대로 못 차는 내가 무엇이 다르가.

Q1. ‘유니버스‘ ‘코스모스‘ ‘스페이스‘는 모두 우리말로 ‘우주‘라고 번역된다. 무엇이 서로 다른가? 각 단어를 어디에서 들어보았는가?

우리가 은하니 성단이니 얘기할 때 사용하는 ‘우주‘는 ‘유니버스‘다. 별과 먼지와 행성과 우리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것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과 상황과 환경이다.

‘코스모스‘는 질서와 조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우주다. 우주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에는 질서와 조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버릴 텐데, 다행히도 우주의 먼지는 모이면 구름이 되고, 구름이 꼭꼭 뭉쳐 별과 행성을 만들어내고, 별은 제 안의 연료가 소진되면 남은 것을 폭발적으로 내어놓으며 다시 우주에 먼지를 공급한다. 별이 모이고 모여 성단을 이루고, 은하를 이루고, 은하단을 이룬다. 밤하늘의 별은 흘러가고 행성은 때때로 역행했다 다시 순행한다. 일식과 월식은 예측에 맞게 일어난다. 빅뱅 이론처럼 우주가 어떻게 생겨나고 진화했는가 살펴보는 분야를 ‘우주론cosmology‘이라고 한다. 칼 세이건의 대표작인 그 책 이름이 <코스모스>인 것도 우주의 질서와 조화, 우주라는 대자연의 작동 원리를 논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주‘ 따위로 섣불리 번역하지 않고 원제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대단히 훌륭한 일이다.
컴퓨터 자판에도 있는 ‘스페이스‘는, 자판에서와 다름없이 ‘공간‘으로서의 우주다. 특히, 인류가 인공위성이나 우주선과 같은 인공물체를 보내 탐사하는 공간을 칭한다.

대학이 학문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공부라는 걸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은 사람, 배움의 기쁨과 앎의 괴로움을 젊음의 한 조각과 기꺼이 맞바꿀 의향이 있는 사람만이 대학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며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

어떤 사람의 직업은 정해진 ‘시간‘을 성실히 채우는 일이고, 또다르 사람의 직업은 어떤 ‘분량‘을 정해진 만ㅋ늠 혹은 그에 넘치게 해내는 것이라면, 나의 직업은 어떤 주제에 골몰하는 일이다.

외국 연구자들과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들의 메일이"Enjoy!"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칼 세이건의 유명한 고전 <코스모스>를 처음 읽던 때의 나는 신화도 종교도 역사도 모르는 채 유럽을 여행하던 때의 나와 다르지 않았다. <코스모스>는 인류가 기록하고 남긴 역사는 물론, 그 이전의 생명 역사, 또 그 이전의 지구와 태양계의 형성, 마침내 우주 빅뱅까지 거슬러올라가며 그야말로 모든 ‘자연‘의 역사를 두루 통찰하는 ‘빅 히스토리‘의 거작이다. 천문학의 태동에 대해 설명하면서 점성술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고, 별을 비롯한 다양한 천체를 어원으로 하는 수많은 단어를 설명한다. 외계 생명을 얘기하다가 지구 생명에 대한 진화론의 역사를 훑고,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논하며, 세포핵 속 DNA의 뉴클레오티드까지 들어갔다가 목성 대기로 쏙 빠져나온다. 한 사람이 지닌 지식의 넓이와 사유의 깊이가 그의 생물학적 나이라든지 그가 태어난 후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몇 바퀴 돌았는가 따위에 비례할 리는 없지만, 우주와 지구의 역사,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논하는 이 대작을 집필했을 때 칼 세이건의 나이가 사십대 중반에 불과했다는 걸 생각하면 놀랍다... 천문학만 알아서는 이 책을 읽을 수 없다. 생물학도 알아야지, 화학도 알아야지, 그의 위트와 감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사와 종교,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천문학계의 상황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다길래 샀다. 몇 차례 읽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다시 깨달았다. 번역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을. 그래, 뭐 꼭 그렇게 하늘과 우주에 대한 감동으로 전율을 느끼는 사람만 천문학을 전공하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장기하식으로 말하자면, 천문학자가 <코스모스>를 완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뭐 상관없는 거 아닌가?

요즘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일평생 천문학 연구와 교육에 몸 바치셨던 홍승수 교수께서 새로 번역한 판본이다. 현재의 번역도 훌륭하지만, 만약 오랜 뒤에 또다시 새로운 번역본이 나온다면 나는 그때에도 또 개정 번역판 <코스모스>를 사들일 것이다. 후루룩 넘겨 읽고, ‘아, 이 아저씨 또 사람 선동하네!‘ 생각하며 책장에 꽂아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우주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 나오는 연쇄살인범은 ‘다음 생에는 천문학자나 등대지기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소시오패스라서 밤하늘 혹은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직업을 떠올린 것일까. 나도 이 직업을 선택할 때는 천문학자가 사회에 나올 일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아마 등대지기도 때때로 방송작가의 인터뷰 요청을 받을 것이다.

학회에서 발표자를 당황시키기 딱 좋은 고약한 질문 중 하나는 "확실한가요?"다.

일찍이 철학자 데카르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했던가. 과학자들은 그 말을 아주 잘 실천하고 있다. 의심하는 것이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문제에도 다양한 각도에서 의심하고, 그 답을 구하려 애쓰며, 답을 찾은 뒤에도 과연 답이 하나뿐인지 또다르 측면에서의 답은 없는지 계속해서 의심하는 것, 그것이 과학자가 하는 일이며 해야 하는 일이다.

책이라는 것은 선물하기가 은근히 까다로운 물건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각자의 독서 취향이 있고, 독서에 취미가 없는 사람은 책 좀 읽으라는 뜻이냐며 발끈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우주와의 랑데부는 완전한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서점에 갔다가 무심결에 다양한 성운과 은하 사진으로 가득한 과학 잡지를 집어들었다. 그것이 랑데부의 시작이었는 줄도 모르고 그저 우주를 담은 사진들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어느 순간 천문학의 세계에 도킹해 있었다. 친구의 오디션에 따라갔다가 캐스팅된 배우나 세찬 장맛비에 우산을 빌려주었다가 연인으로 발전한 커플에게도 그런 환상적인 랑데부가 있었을 것이다. 혹여 그런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별에서 태어나 우주 먼지로 떠돌던 우리가 이 지구를 만난 건 그야말로 우주적으로 멋진 랑데부였으니까.

우주에 갈 때도 지구상의 미생물이 다른 천체를 오염시키는 일이 없도록 대비를 한다.

설명은 간단할수록 좋다는 ‘오컴의 면도날‘ 개념

발상의 대전환을 촉발하는 사건을 ‘코페르니큐스적 혁명‘이라고 비유

해와 달, 행성들이 지나는 길에 있는 별들은 스물여덟 개의 별자리, 28수로 묶어두었고, 동방의 청룡, 서방의 백호, 북방의 현무, 남방의 주작이 각각 7수씩을 맡고 있다. 28수는 윷놀이 말판에서도 볼 수 있다. 말판을 잘 보면 한가운데 칸 주위로 28개의 칸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북극성과 28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만 원궈지폐의 뒷면에도 우리 전통 별자리가 나온다.세종시대의 천문 관측기기 혼천의와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의 뒷배경에 희미하게 보이는 수많은 동그라미가 바로 한반도의 옛 밤하늘을 담은 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다.

지폐 하나에 천문학 관련 아이템이 셋씩이나 새겨진 나라는 많지 않다. 해외 학회에서 만난 다른 나라 연구자들에게 지폐를 자랑하면, 한국 사람들은 천문학에 무척 관심이 많고 지폐에 새길 만큼 중요하게 여기나보다 하는 말을 듣는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런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 물결. ‘은파‘는 그런 뜻이다. 푸른 여름의 밤바다 위로 밝은 보름달이 고요히 떠오르면 연인들은 그 달빛 아래에 앉아 달이 아름답다고 서로에게 속상이겠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달이 아름답네요‘로 번역했다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를 주고받으면서.

달에서 보는 지구는 마치 선반에 올려놓은 오르골 장식품처럼 달 하늘 어딘가에 떠서 제자리에서 천천히 돈다. 낮에도 밤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지구의 위치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달에 집을 짓는다면 지구로 향하는 창을 낼 것이다. 창문이 곧 생동하는 액자가 될 테니.

그러잖아도 비좁은 간이 관측소 안에서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어야 했다. 빌 브라이슨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나라에서는 불법일 만큼 가까이".

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고, 삶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안갯속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되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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