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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이 책의 처음 문장, 그러니까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는 굉장히 유명하더라.
책을 미처 읽지 않은 자들도 이 문장들을 인용하기엔 인색함이 없더라.
그만큼 아름다운 문장이란 얘긴데,
그래서 노벨문학상을 탔나 싶고,
그래서 일본어를 몰라 번역본으로 읽은 내가 밉고,
또한 과연 12년간 다듬은 흔적이 엿보이더라.
간혹 이렇게 맨 처음이나 맨 끝이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운 소설들이 있는데,
최근 읽은 것과 견주어 보자면, 단연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 버금간다.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왕복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 온 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아아아앙아아..
아름답다.
우리나라 소설과 견주자면, 이건 뭐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수산의 <부초>다.
유용주가 그의 산문집에서 "비단결 같은 서정의 눈물방울"이라고 칭송한 그 <부초>.
필화사건으로 일본으로 쫓겨난 한수산이 그곳의 겨울에 탄복해서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
한수산과 가와바타 야스나리, 가르시아 마르케스.
아이러브유.
언어로 심금을 울리는 사람들이 어느 나라에건 있는 모양이다.
아, 그러고 보니 외국어 신동이 아닌 내가 또 미워지네.
일본어로 <설국>을 읽지 못하고
스페인어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읽지 못하다니..
그나마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은 일부 챕터라도 영어로 더듬더듬 읽었으니
이쯤에서 만족해야 하는 것이 지금 생에서의 운명.
<설국>에는 특히나 눈에 대한 설명이 기가 막히다.
에스키모인들은 눈에 대한 단어만도 수십 수백개 갖고 있다는데,
군마 현과 니가타 현의 접경인 그곳도 마찬가지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