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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사랑 -상
양귀자 지음 / 살림 / 199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류의 사랑을 믿었던 시절이 나에게도 분명히 있었다.
예를 들자면, 모든 사람의 새끼손가락에는 보이지 않는 빨간 실이 묶여 있는데 그 실은 진정한 사랑과 연결돼 있다든지,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걷다가도 후광이 비치는 나의 반쪽을 우연처럼 만나게 된다든지...
아. 플라토닉 러브만을 믿었던 무지몽매했던 여고시절.
<천년의 사랑>은 그 때 읽었어야 했다.
그럼 나는 눈물 줄줄 흘리면서 읽는 내내 이런 상상을 했겠지.
1. 나는 엄청 예쁘다.
2. 하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처럼 착하다.
4. 이런 내 앞에 대한민국엔 없을 것 같은 1% 훈남이 다가온다.
5. 우리 둘은 첫눈에 이끌려서 사랑에 빠진다.
6. 그런데 어느날 얼씨구 갑자기 불치병에 걸린다.
7. 당연한 얘기지만 죽어가면서까지 하얗고 예쁘다.
8. 못믿을만큼 헌신적인 남자가 이런 나를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사랑해 준다.
9. 힛. 그럼 나는 하늘에서 이 남자를 내려다보면서 눈물 흘려줘야지.
그런데 난 1번에서부터 아웃이다. 패스.
하지만, 세상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사랑법 또한 100가지.
그러니까 나는 이런 사랑에 자신없어도, 누군가는 이런 사랑을 하고 있을 테지.
나는 <천년의 사랑>은 고사하고 <일년의 사랑>도 버거워서 헉헉대는데.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소설 속 주인공 오인희와 성하상의 사랑이 부럽다는 거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