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아, 사람아, 그냥 갈 수 없잖아
사석원 지음 / 푸른숲 / 2005년 5월
품절


박인환 하면 또 떠오르는 것이 있다. 종로 3가에서 시인 오장환이 경영하던 서점을 인수받아 재개업한, '마리서사'. 이곳이 바로 한국 모더니즘 시 운동의 본거지로 유명한 서점이다. 또한 결혼한 뒤 당시 세종로 135번지, 지금의 교보문고 자리에 신혼방을 차린 것을 보면 박인환은 책과 서점으로 단단히 묶여 있던 삶을 산 셈이다.-16쪽

남도인들을 빨래 짜듯 짜면 국악 소리가 뚝뚝 떨어진다던데 정말 그런가보다.-34쪽

6.25전쟁 때 아수라장 피난지에서조차 그림을 사는 이가 꽤 있었다던데, 경제적인 지수들과 상관없이 오히려 문화적인 토대는 더욱 각박해지는 것은 왜일까?-53쪽

큼지막한 창문으로 연신 햇볕이 쏟아지는데, 어찌나 따뜻하던지 마치 햇볕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66쪽

홍어! 세치밖에 안 되는 입 안의 혀로 느끼는 맛이 뭐가 요렇게 다르다냐? 고놈 참 지리고 지리다. 이 지독한 냄새를 사람들은 좋다고 환장을 하니. 더군다나 가격도 허벌나게 비싸네 그려. 알쏭달쏭한 게 홍어맛이다. 처음엔 누구나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도, 톡 쏘는 그 맛 때문에 울고 웃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어쩌다가 "에이, 까짓 못 먹을쏘냐." 며 한두 점 우적우적 씹어 삼키니, 헛기침도 나고 눈물도 나고 입 천장도 벗겨지면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90쪽

하얀 얼굴에 쌍꺼풀이 진 눈을 한 여성 접대원이 북한 막걸리인 '대봉막걸리'를 가져다주었다. 가격은 1병에 3달러. 막걸리 병의 크기가 남한 것의 3분의 2 정도밖에 안 된다. 빛깔도 훨씬 진하다. 아마 누룩을 까지 않고 그대로 담아서 발효시킨 것 같다. 누런 빛깔의 대봉막걸리를 한 모금 쭈욱 들이켜자, 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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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비타민
한순구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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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두고 야금야금 읽은 책.
 

내가 만화를 그린다면 경제학 교수의 캐릭터는 번쩍이는 안경 쓴 족제비과의 사람으로 그려야겠다 생각했는데
<경제학 비타민>을 쓴 한순구는 그런 캐릭터는 아닌 것 같다.
늙으면 태권브이를 만든 김박사처럼 될 것 같.............
  

 나, 한순구...

 

아니구나.
내 생각이 맞았구나.
하지만 사진을 보지 않고 책만 본다면, 그는 분명히 배가 동그스름하게 나온 푸근한 아저씨!
경제라면 수박 겉핥기에도 못 미칠 얕은 지식을 가진 나 같은 경제바보들에게도 친절하기 그지없다.
이 한 권으로 지식을 쌓기에는 무리가 있어도, (그럼 경제학원론을 읽어야겠지요)
술자리에서 논란거리 하나 던지고 좌중을 관찰하기엔 더없이 좋을 소재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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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비타민
한순구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1월
구판절판


경제학적 관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경제학을 적용해 보면 "시간을 아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성공이 보이는 사람이 시간을 아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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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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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사전 정보를 접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노력했건만...
일단 노트북만 켰다 하면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과잉 정보들.
덕분에, 이번 그의 책에는 참으로 박민규스럽게도 '라이터스 컷'이 들어가 있다는 정보를 접해버리고 말았다.
그럼 뭐야, 혹시 결말이 두 개일지도 모른단 얘기? 두근두근.

그러나 그 두근거림은 한 챕터를 다 읽기도 전에 그냥 일상적인 박동소리로 바뀌고 말았다.
뭐 이래, 왠지 우울한 걸. 문장의 허리를 톡 잘라먹은 채로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는 박민규스러움은 여전하지만
인적 없는 곳에서 우울하게 재회한 남녀가 우울하게 식사를 하고 식당 주인도 왠지 우울해 버리는 바람에 실망하려던 찰나...!

미남배우 아버지가 10살 연하 미모의 사업가와 재혼했다는 대목에서,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매우 잘 생겼던 아버지에 비해 참으로 못생겼던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이거 왠지 범상치 않은 걸 하는 기운을 느끼고야 말앗다.
그리고 그 기운을 느낌과 동시에 책장을 탁 덮고 표지의 그림을 바라보는데,
뚱뚱하고 못생기고 뜨아한 표정에 심술보까지 덕지덕지 붙은 한 여자아이가 눈에 띈다.
아니, 일부러 눈에 띄라고 원작과는 달리 그 여자아이의 뒷배경을 어둡게 처리해 놓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그 옆의 다른 여자들은 인형처럼 예쁘다.

그러니까 박민규의 이번 이야기는 못생긴 여자와 잘생긴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가 잘생겼다는 묘사는 없지만, 아버지가 잘 생겼고, 백화점 직원들 사이의 인기투표에서도 1위를 했으니,
그리고 예쁜 군만두 양의 특별한 관심까지 받았으니 잘생겼겠지 하는 추측, 아니 바람.)

그런데 불순한 나는, 역시 이쁘면 세상 살기 편하다는 불멸의 진리를 깨닫고야 말았으니....
작가의 의도 같은 건 달나라로 보내버린 건가..

나도 잘생긴 남자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가서 <시녀들>을 감상하고 싶다.
하지만 못생긴 여자아이와 내가 닮았다는 농담이라도 듣는다면 뒤통수를 후려갈겨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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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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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버지의 얼굴 앞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를 사랑해 온 인간의 마음은 오래 신은 운동화의 속처럼 닳고 해진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어떤 빨래로도 그것을 완전히 되돌리진 못한다... 변형되고, 흔적이 남은채로...그저 볕을 쬐거나 습기를 피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었다.-68쪽

실은... 하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희미하나마 고요히 수직으로 떨어지는 편편의 눈들을 나도 볼 수 있었다. 약속시간을 어기고...늦게 나올까 생각도 했었어요. 그럼 늦어서 죄송해요, 라고 할 말이 생기잖아요. 많이 기다리셨나요, 물어볼 수 있는 말도 생기고...-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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