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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일부러 사전 정보를 접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노력했건만...
일단 노트북만 켰다 하면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과잉 정보들.
덕분에, 이번 그의 책에는 참으로 박민규스럽게도 '라이터스 컷'이 들어가 있다는 정보를 접해버리고 말았다.
그럼 뭐야, 혹시 결말이 두 개일지도 모른단 얘기? 두근두근.
그러나 그 두근거림은 한 챕터를 다 읽기도 전에 그냥 일상적인 박동소리로 바뀌고 말았다.
뭐 이래, 왠지 우울한 걸. 문장의 허리를 톡 잘라먹은 채로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는 박민규스러움은 여전하지만
인적 없는 곳에서 우울하게 재회한 남녀가 우울하게 식사를 하고 식당 주인도 왠지 우울해 버리는 바람에 실망하려던 찰나...!
미남배우 아버지가 10살 연하 미모의 사업가와 재혼했다는 대목에서,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매우 잘 생겼던 아버지에 비해 참으로 못생겼던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이거 왠지 범상치 않은 걸 하는 기운을 느끼고야 말앗다.
그리고 그 기운을 느낌과 동시에 책장을 탁 덮고 표지의 그림을 바라보는데,
뚱뚱하고 못생기고 뜨아한 표정에 심술보까지 덕지덕지 붙은 한 여자아이가 눈에 띈다.
아니, 일부러 눈에 띄라고 원작과는 달리 그 여자아이의 뒷배경을 어둡게 처리해 놓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그 옆의 다른 여자들은 인형처럼 예쁘다.
그러니까 박민규의 이번 이야기는 못생긴 여자와 잘생긴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가 잘생겼다는 묘사는 없지만, 아버지가 잘 생겼고, 백화점 직원들 사이의 인기투표에서도 1위를 했으니,
그리고 예쁜 군만두 양의 특별한 관심까지 받았으니 잘생겼겠지 하는 추측, 아니 바람.)
그런데 불순한 나는, 역시 이쁘면 세상 살기 편하다는 불멸의 진리를 깨닫고야 말았으니....
작가의 의도 같은 건 달나라로 보내버린 건가..
나도 잘생긴 남자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가서 <시녀들>을 감상하고 싶다.
하지만 못생긴 여자아이와 내가 닮았다는 농담이라도 듣는다면 뒤통수를 후려갈겨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