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간 책은 모두 정열적으로 씌어졌다.-28쪽
이종오는 중국의 통치학과 인성론을 다룬 한 글에서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은 중국 학술사상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최대 현안 중의 하나다. 양 설의 대치는 이미 2천 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며 이 문제에 관한 나름의 해결을 시도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중국인의 마음을 두고 벌어진 유학자들의 한판 승부에서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를 누르고 승리한 사람은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다. 하지만 이종오는 [맹자]에 등장하는 고자의 이론에 착안해 인성의 무선무악설을 재론한다. 동쪽 둑이 무너지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 둑이 무너지면 서쪽으로 흐르는 물처럼, 인성이란 선한 쪽으로 이끌면 선하게 되고 악한 쪽으로 이끌면 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요순이 인의를 창도하자 인민은 인의로 나갔고, 걸과 주가 폭정을 이끌자 인민 역시 악해졌다"는 [대학]의 한 구절을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음과 함께, 공맹에 대한 반박으로 삼는다. 사람의 천성이 선하다면 걸주가 폭정을 할 경우 당연히 좇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77쪽
19세기 중엽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최한기가 했던 다음의 말은 그래서 경청할 만하다.
말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려니와 말을 하면 천하인이 취해 쓸 수 있고 발표하지 않으면 그만이려니와 발표하면 우내인이 감복할 수 있어야 한다.-101-102쪽
문학이란 무엇인가? 우주 질서(신)라는 더 큰 빛을 의식하는 소수의 작가를 제외한 대개의 문학인은 자신을 키워 준, 산.강.들.바다(자연)와 이웃(사회)에 글로써 빚을 갚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문학은 글로써 신과 자연과 사회에 빚을 갚는 것이다. 야반도주란 무엇인가? 이웃에게 진 빚을 갚지 않고, 밤에 몰래 보따리를 싸서 도망가는 것이 야반도주다. 그러니 야반도주 가운데는 사소설과 같은 '소설의 야반도주'도 있지 않겠는가?-117쪽
원작의 영화화란, [돈 키호테]나 [삼국지] 또는 [아라비안나이트]와 같은 길고 복잡한 대작물을 청소년용 저작으로 축약하는 작업처럼, 책을 읽기 싫어하는 대중들을 위한 이유식이다.-129쪽
안인희가 쓴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민음사,2003)는 2003년 '올해의 논픽션 상' 역사`문화 부문 수상작이다. 이때 심사에 참여했던 신화 연구자이자 번역자이며 소설가이기도 한 어느 심사 위원은 이 원고를 통독한 뒤 "사건"이라고 표현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크게 불러일으켰다.-293쪽
체제의 나팔수가 된 지식인들이 민중을 프로그램화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중을 민주주의의 참여자에서 방관자 혹은 구경꾼으로 만드는 것이다. 통치 계급과 거기에 기식하는 지식인들은 대중이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유럽 미국 일본 등 거의 세계 전역에서 대대적인 시민운동이 일어나자 자유주의 엘리트는 물론이고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했던 미국의 엘리트 집단들은 크게 당황했다. 그때 석유왕 록펠러의 손자이면서 뉴욕 체이스 내셔널 은행의 회장인 데이비드 록펠러의 제안으로, 사무엘 헌팅턴과 같은 자유주의 학자들이 참여한 삼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들이 1975년에 발간한 보고서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논문이다. 여기서 그들은, 시민운동이 활발한 국가들의 국민들이 "공공의 장에 진입하려 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닥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온갖 현학적인 용어로 당시의 상황을 '과도한 민주주의(excessive democracy)'라고 진단했다. 전 세계의 자유주의 석학들이 모여 작성한 보고서 왈,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면 '절제된 민주주의(moderation in democracy)'교육이 필요하다나.-31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