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구판절판


대부분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간 책은 모두 정열적으로 씌어졌다.-28쪽

이종오는 중국의 통치학과 인성론을 다룬 한 글에서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은 중국 학술사상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최대 현안 중의 하나다. 양 설의 대치는 이미 2천 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며 이 문제에 관한 나름의 해결을 시도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중국인의 마음을 두고 벌어진 유학자들의 한판 승부에서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를 누르고 승리한 사람은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다. 하지만 이종오는 [맹자]에 등장하는 고자의 이론에 착안해 인성의 무선무악설을 재론한다. 동쪽 둑이 무너지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 둑이 무너지면 서쪽으로 흐르는 물처럼, 인성이란 선한 쪽으로 이끌면 선하게 되고 악한 쪽으로 이끌면 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요순이 인의를 창도하자 인민은 인의로 나갔고, 걸과 주가 폭정을 이끌자 인민 역시 악해졌다"는 [대학]의 한 구절을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음과 함께, 공맹에 대한 반박으로 삼는다. 사람의 천성이 선하다면 걸주가 폭정을 할 경우 당연히 좇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77쪽

19세기 중엽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최한기가 했던 다음의 말은 그래서 경청할 만하다.

말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려니와 말을 하면 천하인이 취해 쓸 수 있고 발표하지 않으면 그만이려니와 발표하면 우내인이 감복할 수 있어야 한다.-101-102쪽

시마자키 도손의 [봄]-107쪽

문학이란 무엇인가? 우주 질서(신)라는 더 큰 빛을 의식하는 소수의 작가를 제외한 대개의 문학인은 자신을 키워 준, 산.강.들.바다(자연)와 이웃(사회)에 글로써 빚을 갚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문학은 글로써 신과 자연과 사회에 빚을 갚는 것이다. 야반도주란 무엇인가? 이웃에게 진 빚을 갚지 않고, 밤에 몰래 보따리를 싸서 도망가는 것이 야반도주다. 그러니 야반도주 가운데는 사소설과 같은 '소설의 야반도주'도 있지 않겠는가?-117쪽

원작의 영화화란, [돈 키호테]나 [삼국지] 또는 [아라비안나이트]와 같은 길고 복잡한 대작물을 청소년용 저작으로 축약하는 작업처럼, 책을 읽기 싫어하는 대중들을 위한 이유식이다.-129쪽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26쪽

안인희가 쓴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민음사,2003)는 2003년 '올해의 논픽션 상' 역사`문화 부문 수상작이다. 이때 심사에 참여했던 신화 연구자이자 번역자이며 소설가이기도 한 어느 심사 위원은 이 원고를 통독한 뒤 "사건"이라고 표현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크게 불러일으켰다.-293쪽

체제의 나팔수가 된 지식인들이 민중을 프로그램화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중을 민주주의의 참여자에서 방관자 혹은 구경꾼으로 만드는 것이다. 통치 계급과 거기에 기식하는 지식인들은 대중이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유럽 미국 일본 등 거의 세계 전역에서 대대적인 시민운동이 일어나자 자유주의 엘리트는 물론이고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했던 미국의 엘리트 집단들은 크게 당황했다. 그때 석유왕 록펠러의 손자이면서 뉴욕 체이스 내셔널 은행의 회장인 데이비드 록펠러의 제안으로, 사무엘 헌팅턴과 같은 자유주의 학자들이 참여한 삼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들이 1975년에 발간한 보고서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논문이다. 여기서 그들은, 시민운동이 활발한 국가들의 국민들이 "공공의 장에 진입하려 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닥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온갖 현학적인 용어로 당시의 상황을 '과도한 민주주의(excessive democracy)'라고 진단했다. 전 세계의 자유주의 석학들이 모여 작성한 보고서 왈,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면 '절제된 민주주의(moderation in democracy)'교육이 필요하다나.-315쪽

브레히트가 쓴 [코이너 씨 이야기]-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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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을 찾아서
신용관 지음 / 민음사 / 2007년 10월
절판


지금 40대 이상 연배로서 '마담 뚜'란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프랑스어 '마담'에 특수층이나 부유층을 상대하는 전문 중매쟁이를 뜻하는 순 우리말 '뚜쟁이'를 합친 용어다.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는 이 단어는 1977년 이전에는 없던 말이다. 소설가 박완서가 그해 펴낸 [휘청거리는 오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낸 표현이기 때문이다.
언어에도 생로병사가 있어, 태어나고 사랑받고 소멸한다. 무릇 언거 구사의 최고 수준을 보여야 할 작가들의 책무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괴테가 아니었다면 유럽의 '촌사람 말'이었던 독일어가 과연 지금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겠는가.

<박완서>-23쪽

"문체는 작가와 절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뺨 밑에 흐르는 피와 같다고나 할까요. 흉내나 연습으로 되는 게 아니지요. 생각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므로 문체는 작가의 사상과도 동일 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사실 나 자신만의 문체를 갖는 게 소설가로서의 소망이었고 20년 넘게 그 작업을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경숙>-37쪽

어느 문장이든 '앞 문장을 끌어서, 뒷 문장을 밀며' 긴장감을 유발해야 한다.

<조정래>-92쪽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1985년, 광주항쟁의 진실을 밝힌 르포집)

<황석영>-106쪽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무명작가 시절의 가난을 견디면서 '글 쓰는 일'은 모든 다른 사람들의 삶이 그렇듯이 시장 가운데서 하나의 생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무엇보다도 '직업 작가'이며 프로 글쟁이다.
하늘로부터 천형의 벌을 받은 것도 아니고, 글줄 좀 쓰다가 늙은 글쟁이들이 고민하는 쌍통을 하고, 무슨 특별하고 월등한 생산을 해낸 것처럼 엄살을 부리는 꼴은 차마 못 보아주겠더라."

<황석영>-111쪽

"나는 그걸 '논두렁 정서'라고 부릅니다. 농사짓는 아버지와, 서울에서 오랜만에 내려온 아들이 논두렁에 나란히 앉아 얘기를 나누는 것 말입니다.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며 말하는 건 우리네 정서가 아니지요. 중요한 얘기일수록 먼 산을 바라보거나 딴청을 피우며 하지 않습니까."

<오태석>-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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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북클럽
커렌 조이 파울러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2월
절판


"조슬린, 차가 아주 훌륭한데. 향이 그윽해서 꼭 햇빛을 마시는 것 같아요."-33쪽

"사람들은 외면상 자신과 동등한 자를 배우자로 골라요. 예쁜 사람은 예쁜 사람과 결혼하고 못생긴 사람은 못생긴 사람을 택하죠."
조슬린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인류에 해로운 일이죠."-49쪽

막 돋아난 번들대는 여드름이나 대충 칠한 마스카라나 새로 귀를 뚫었다가 주위 피부가 벌겋게 감염된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깊이 감동하던 때가 있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이 깨닫는 것 이상으로 아름다웠다.-114쪽

"까다로운 사람 한 명이 전체를 망치는 거야. 실망스러운 일 하나가 하루를 망치는 거고."
"한 번 바람 피운 걸로 몇 년간의 신뢰가 사라지는 거야."
"틀을 갖추는 데는 10주가 걸리지만 열흘이면 거기서 헤어나올 수 있지."-286쪽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습관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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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품절


묘소는 마치 묘를 다시 쓴 것처럼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새로 세운 기둥과 새로 심은 철쭉, 그 한가운데서 동글동글한 돌고래가 웃고 있었다.
"재밌네 이거, 나 시집가서 여기 묻히지 못하면 아쉽겠다."
돌고래를 씻으면서 나는 말했다.
"돌아오면 되잖냐."
아빠가 말했다.
"무슨 심한 말씀을."
"사위를 들여도 되고. 덤으로 귀여운 돌고래 무덤에 묻힐 수 있다고 하
면서 말이다."
비석을 씻고 있는데 엄숙한 기분이 들지 않고, 마치 돌고래를 씻는 기분일 수 있다니, 멋진 일이다. 더구나 돌고래는 웃으며 기뻐하고 있다.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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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구판절판


도로변의 식당이나 심야 카페테리아, 호텔의 로비나 역의 카페 같은 곳에 가면 쓸쓸한 공공장소에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희석되기도 하고, 그 덕에 독특한 공동체 의식을 다시 발견할 수도 있다.

<슬픔이 주는 기쁨>-11쪽

그러다 커서는 이십 대 중반의 고통스러울 정도로 외롭던 시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 느껴지던 시절에 가끔 차를 몰고 런던 밖으로 나가 리틀 셰프에서 혼자 점심을 먹곤 했다. 성심성의껏 소외를 시켜놓은 환경에 나 자신의 소외를 풍덩 빠트리는 것은 실로 위안이 되었다. 마치 기분이 푹 가라앉았을 때 쇼펜하우어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슬픔이 주는 기쁨>-23쪽

만일 부엌에서 시식을 했다면 평범하거나 심지어 불쾌하게 느껴졌을 음식이 구름이 있는 곳에서는 새로운 맛을 띠고 구미를 돋운다(파도가 치는 절벽 꼭대기로 소풍을 가서 먹는 치즈 넣은 빵과 같다). 전혀 집 같지 않은 곳에서 기내식을 받아들고 우리는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우리는 차가운 롤빵과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감자 샐러드를 먹어가며 지구 밖의 풍경을 한껏 즐긴다.

<공항에 가기>-37쪽

아이 없이 동물원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 아이들 한 무리를 거느리고, 거기에 뚝뚝 녹아 떨어지는 아이스크림에 풍선까지 몇 개 갖추어야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원에 가기>-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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