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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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할 만한 속내 이야기가 없어서 그저 남의 얘기를 듣기만 해야 하는 신세만큼 처량한 것도 없다. 누구나 알다시피, 고전 비극에서 우리를 진짜 슬프게 하는 것은 주인공의 비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의 비극이다. 평생 특별한 일이라곤 겪어본 적이 없는 순진한 사람들이 자기 모험을 자랑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장황한 이야기를 체념한 채 다소곳하게 듣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칠십리 장화 中>-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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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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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 시종일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단 하나의 의문.

"예술은 과연 모든 것에 우선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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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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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변하면 위대성에 대한 평가도 사뭇 달라지게 마련이다. 수상도 그 직을 떠나면 고작 잘난 척하는 말재주꾼이었던 게 아닌가 여겨질 때가 많고, 장군도 부하를 잃으면 저잣거리의 보잘것없는 얘기 주인공으로 떨어지고 만다.-1쪽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어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전설적인 사건들은 주인공을 불멸의 세계로 들여보내는 가장 확실한 입장권이 되어준다.-10쪽

"교양 있는 여자들이 왜 그렇게 몰취미한 남자들과 결혼하는 거죠?"
"똑똑한 남자가 어디 교양 있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하나요."-27쪽

"우유가 맛있기야 하지요. 특히 브랜디 한 방울을 타면 말예요. 하지만 소로 봐서는 누가 젖을 짜주면 그것처럼 고마운 일이 없지 않아요? 젖통이 불면 갑갑할 테니까요."-29쪽

도덕적인 분노를 느끼면서도 죄인을 직접 응징할 완력이 없을 때는 늘 비참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43쪽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69쪽

"전 이런 생각을 합니다. 무인도에서도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요. 제가 쓴 글을 저밖에는 읽을 사람이 없는 게 확실하다면 말입니다."-110쪽

때로 그처럼 사람의 외형이 정신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크 스트로브는, 말하자면, 뚱뚱보 토비 벨치 경의 몸뚱이에 로미오의 열정을 지닌 격이었다.-164쪽

세상에는 자비로운 섭리에 따라 분명 독신으로 살게끔 운명지어졌으면서도 고집이 세거나 또는 불가피한 사연으로 그 천명을 거스르는 사내들이 있다. 결혼한 독신주의자처럼 가엾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231쪽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태어난 곳에서도 마냥 낯선 곳에 온 사람처럼 살고, 얼니 시절부터 늘 다녔던 나무 우거진 샛길도, 어린 시절 뛰어 놀았던 바글대는 길거리도 한갓 지나가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가족들 사이에서도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고,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보아온 주변 풍경에도 늘 서먹서먹한 기분을 느끼며 지낼지 모른다.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또는 격세유전으로 내려온 어떤 뿌리깊은 본능이 이 방랑자를 자꾸 충동질하여 그네의 조상이 역사의 저 희미한 여명기에 떠났던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때로 어떤 사람은 정말 신비스럽게도 바로 여기가 내가 살 곳이라 느„L지는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그곳이 바로 그처럼 애타게 찾아 헤맸던 고향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그들이 죄다 태어날 때부터 낯익었던 풍경과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정착하고 만다. 마침내 그는 이곳에서 휴식을 발견하는 것이다.-253쪽

"... 그런데 스트릭랜드가 사는 그곳에는 소리라곤 하나도 없었어요. 밤에 피는 하얀 꽃들로 사방은 향긋한 내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정말 얼마나 아름다운 밤이었는지 영혼이 육체에 갇혀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영혼이 금방이라도 허공으로 두둥실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죽음이 조금도 무섭지 않고 사랑스러운 친구처럼 느껴졌어요."-273쪽

"스트릭랜드 본인도 그게 걸작인 줄 알았을 겁니다. 자기가 바랐던 걸 이룬 셈이죠. 자기 삶이 완성된 거예요.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고, 그것을 바라보니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 다음 자부심과 함께 경멸감을 느끼면서 그걸 파괴해 버린 거죠."-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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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단편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3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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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에게 좋아하는 소설을 물어볼 때 제일 흔한 대답 중 하나가 바로 '위대한 개츠비'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소설이길래 이다지도 열광하나 싶어 읽어봤다가 '흥!' 소리만 연달아 냈었다. 생각보다 기대 이하였기 때문인데, 이상하게도 그 여운이 오래 남아 몇 달 지난 후 다시 한 번 읽어봤었고 그제서야 고개를 두어번 끄덕거릴 정도였으니 피츠제럴드에 대한 나의 애정은 정말 얕은 시냇물 수준. 단편을 꽤 썼단 얘기를 듣고, 그렇다면 과연 단편은 얼마나 큰 여운을 줄까 싶어 덥석 집어들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흥!'. 번역할 때는 영어보다는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원서로 읽으면 멋진 구절일 수도 있겠는데 번역해 놓으면 영 딴판인 문장들이 간혹 있었을까봐(?) 아쉽다. 번역문장에 비해 플롯은 참으로 훌륭한 듯하다. 장편으로 죽죽 늘려도 부족함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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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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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생김새를 보자면, 절대 지구가 그를 <깜박>할 리는 없을 테고, 우리도 그를 <깜박>하긴 어렵다. 그런데 그는 용케도 집에서 학교에서 지구에서 <깜박>한 두 중학생의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꺼낸다. 이런이런... 경험담이 아니라면 이렇게 조목조목 에피소드를 대기도 힘들텐데, 그는 어쩌면 학교 때 왕따? 아니면 그가 학교를 왕따? 모를 일이다.

일단, 박민규의 책이라 해서 주저없이 집어들긴 했지만,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두 가지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박민규에게 변화가 없다는 것. 잘 알려진 작가 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제목을 가린 채로 한 페이지만 읽어도 바로 그임을 알아맞힐 수 있다. 그만큼 그의 문체가 개성적이기 때문. 그 나름의 문체에 빠져들어 하루키든 이외수든 성석제든 책만 냈다 하면 일단 믿고 사는 게 습관이다. 하지만 박민규의 경우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제목을 가린다 해도 박민규의 책임을 단박에 알아볼 순 있겠는데, 조금 식상하다는 느낌. 말장난스러운 문장은 이제 좀 줄여도 되지 않을까.

<핑퐁>이 아쉬운 또 하나의 이유는, 다분히 개인적이긴 한데, 근래 들어 80년대 한국소설에 집착하고 있어서이다. 이외수의 <산목>,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등을 누런 속지 그대로 펼쳐보는데 그 맛이 꽤 쏠쏠하다. 진지한 그 시절의 느낌을 책곰팡이 냄새와 함께 느낀다는 건 요즘 나의 새로운 기쁨 중 하나. 그런데 박민규의 소설엔 '진지함'이 결여돼 있다. 물론 그래서 박민규를 참신하다, 새롭다, 젊다..고 표현하는 거겠지만 몇 권째 계속 진지하지 않다는 게 좀 아쉬울 뿐이다. 정말 다분히 개인적으로. 

그래도 박민규의 다음 소설이 기대되는 건, 또 그게 박민규이기 때문. 브라보 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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