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 출간이 임박했습니다. 예약구매하신 분들께서는 다음 주 화요일에 사인본을 받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지난 북엠바고에서 짧은 서문만 보여드려서(저도 그 부분만 읽게되어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차례를 보고는 프롤로그를 보여달라고 할 걸 하며 뒤늦은 후회도 했습니다. 물론 며칠 기다리면 그만인데 큰 상관 있냐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철학의 내용'을 정리하고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철학의 쓸모'를 삶에 녹여내는 이런 책은 결국 글을 읽어봐야 판단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이번에는 과감하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공개합니다. 일부러 이미지를 넣지 않으니 글에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출판계의 어산지'는 이만 퇴청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프롤로그]

고통을 치유하는 인문정신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 라캉, 『정신분석의 다른 측면』

1.
시인을 만났다. 방송국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그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패널로 방송국에 왔던 나는 스튜디오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다행히 따로 만날 약속을 잡았다. 만나기로 약속한 토요일 1시가 되었고, 나는 약속 장소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우리는 광화문에 있는 유명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1시 10분 전에 도착한 나는 시인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1시 30분이 되어도, 2시가 되어도 시인은 오지 않는다. 혹시 약속 시간이 2시가 아닐까 해서 나는 계속 기다리기로 했다. 나의 기다림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시인은 2시 30분이 되어도, 3시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전화기를 꺼내 들고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강신주인데요. 저랑 1시에 광화문에서 만나기로 하지 않았나요.” 그러자 시인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예, 그런데 오늘은 별로 시내에 나가고 싶지 않네요. 다음에 보도록 하지요.”
너무나 당혹스러웠고, 한편으로는 화도 치밀어 올랐다. 나를 하찮게 보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커피를 한 잔 더 시켰다. 쓰디쓴 커피를 마시다 문득 조그만 깨달음이 내게 찾아왔다. 그건 바로 솔직함과 정직함에 관한 것이었다. 분명 방송국에서 만났을 때 시인은 나와 이야기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중에 사적으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이때 분명 시인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그렇다면 오늘은 시내에 나오고 싶지 않다는 시인의 말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시인이 나오고 싶지 않은 것은 물론 나란 사람이 싫어서는 아닐 것이다. 단지 시인은 다른 이유로 나와 만날 마음 상태가 아니었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았다. 만약 약속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인이 나왔다면, 그는 우울함을 억누르고 유쾌한 척 대화에 임했을 것이다.   

누구든지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 전화로 부족한 듯해서 다음 날 친구를 직접 만나기로 약속한다. 그렇지만 통화를 마치자마자 자신의 마음이 한결 좋아진 것을 느끼며, 괜히 만날 약속을 잡았다고 후회할 수도 있다. 감정이 정리되자 내일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른 것이다. 만나기로 한 친구가 정말로 소중한 친구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약속 장소에 나가서 친구를 만나 어제처럼 우울한 척하며 그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내 친구는 나의 우울함을 달래주려고 나왔으니까 말이다. 과연 이것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모습일까? 아니다. 자, 돌아보도록 하자. 여러분은 살아오면서 자신의 속내에 정직하고 솔직한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시인에게 바람을 맞던 날, 나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시인이 나를 편안하고 유쾌하게 만날 수 있을 때 나오기를 원한다. 나는 시인이 약속 때문에 억지로 나와서 내 앞에 앉아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건 껍데기와 앉아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시인과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물론 그날의 만남은 아주 행복했다. 시인은 정말 나와 만나고 싶을 때 나왔기 때문이다.


2.
솔직함과 정직함은 내가 만난 시인을 포함한 모든 인문정신의 핵심에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수영金洙暎, 1921-1968 시인은 위대했던 것이다. 자신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솔직함으로 자신과 가족, 그리고 사회를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 일부를 보자.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위대한 시인의 시라고 하기에는 조금 허접스럽게 들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바로 여기에 김수영이 시인으로서 갖는 위대함의 비밀이 있다. 대부분의 지식인이 민주투사인 척했을 때, 김수영은 자신의 소시민적 나약함에 정직하게 직면했고, 그것을 숨기지 않고 노래했던 것이다. 그래서 김수영은 위대하다. 그것은 자신을 치장하던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시인처럼 우리도 자신의 삶과 감정에 직면하도록 하자. 분명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처, 즉 관습, 자본, 그리고 권력이 만든 피고름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희망할 수 있고, 우리의 뒤에 올 사람들이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상처를 받지 않을 사회를 꿈꿀 수 있게 될 것이다. 철학자를 포함한 모든 인문학자, 혹은 시인을 포함한 모든 작가는 정직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시, 소설, 영화, 그리고 철학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정직하게 치부를 털어놓는 친구 앞에서는 자신도 정직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시를, 그리고 철학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처럼 정직하기 위해서 말이다.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쉽게 풀어보도록 하자. 여러분은 누구나 자신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라캉에 따르면 불행히도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과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은 일치하지 않는다. 전자가 페르소나persona라면, 후자는 맨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페르소나를 찢어버리고 맨얼굴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페르소나를 벗고 맨얼굴로 자신과 세계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주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거짓된 인문학은 여러분에게 더 두텁고 화려한 페르소나를 약속할 것이다.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나가르주나, 이지, 마르크스, 들뢰즈 등등 솔직한 인문정신이 우리에게 가하는 고통을 견딜 수 있겠는가? 아니 우리는 견뎌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에게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작은 희망이라도 생길 수 있을 테니까.


3.
거짓된 인문정신과 참다운 인문정신! 자기 위로와 자기 최면의 방법을 알려주는 인문학과 솔직함에 이르도록 만드는 인문학!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편이 오늘도 어김없이 아내를 때렸다. 거짓된 인문정신은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좋은 생각’을 하라고 이야기한다. “오늘 남편이 한 대만 때렸어. 어제까지는 두 대 이상 때렸는데 말이야. 오늘은 운이 좋은데.” 혹은 “남편이 나를 때릴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몰라. 아직 그가 나를 때릴 정도로 건강하다는 증거니까 말이지.” 반면 참다운 인문정신은 아내의 귀에 다음과 같이 속삭일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남편에게 자신의 삶이 있는 만큼, 나도 나의 삶을 돌보아야 할 권리, 아니 의무가 있기 때문이야.” 만약 그녀가 남편에게 참다운 인문정신이 가르쳐준 ‘나쁜 생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더 심한 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남편의 반성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정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순간, 아내는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혹은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만약 불행히도 전자라면, 그녀는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후자라면, 그녀는 남편과 함께 불행한 관계를 개선하도록 노력하면 될 것이다. 간혹 인간이 겪는 고통의 양은 불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단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을 일시불로 갚느냐, 아니면 할부로 갚느냐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정직하고 솔직하다는 것은 일시불로 고통을 겪어내는 것이다. 반면 자기 최면과 위로에 빠진다는 것은 할부로 고통을 겪어내는 것이다. 할부로 고통을 겪는다면, 할부가 끝날 때까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사라진다. 일시불로 정직하고 솔직하게 고통을 겪어내자. 그러면 남은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이 우리에게 덤으로 남겨질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참다운 인문정신, 그리고 그 솔직한 목소리를 모으려고 노력했다. 모아보니 48가지의 목소리가 되었다. 그 가운데 애써 미봉했던 여러분의 상처를 다시 후벼 파는 목소리가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눈을 돌리고 말았던 살풍경을 다시 응시하도록 만드는 목소리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도 편하게 여러분의 삶을 위로하지 않을 것이다.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48가지의 목소리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보았다. 첫 번째는 나 자신의 삶과 내면과 관련된 것들이고, 두 번째는 나와 타자의 관계와 관련된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나와 타자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 혹은 환경과 관련된 것들이다. 순서대로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관심사에 따라 세 부분 중 어느 부분을 먼저 읽어도 좋고, 책의 구성과 무관하게 마음 가는 대로 읽어도 상관이 없을 듯하다.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 읽든지 잊지 말도록 하자. 정직한 인문정신이 건네는 불편한 목소리를 견디어낼수록, 우리는 자신의 삶에 더 직면할 수 있고, 나아가 소망스러운 삶에 대한 꿈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에필로그]

독서라는 여행을 위하여

여행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아마도 그는 자기 자신을 짊어지고 갔다 온 모양일세.” 
 - 몽테뉴, 『수상록』

1.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행을 제대로 다녀온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일상생활이 바빠서인지, 그들은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이 여행지를 다녀온다. 그러나 과연 이것은 제대로 된 여행일까? 참다운 여행은 배움의 과정이어야 한다. 여행으로부터의 배움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배움은 여행지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배우는 것이다. 처음에는 말도 음식도 그들의 행동도 모두 낯설게 느껴질 테지만, 애정을 갖고 그들과 살을 부대끼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그들 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행으로부터 배우는 두 번째 배움은 첫 번째 것보다 더 심오하다. 여행지에서 삶이 충분히 편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이 떠나온 일상이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처음으로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간 사람은 누구나 극심한 뱃멀미를 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어느 순간 바다의 리듬에 익숙해지면, 더 이상 뱃멀미로 속을 끓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바다로부터 첫 번째 배움을 완수한 것이다. 언제 돌아올지 몰라 애타게 떠났던 항구로 배가 들어오면 우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배에서 내려 육지에 받을 처음 딛는 순간, 어지러움을 호소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바다의 리듬에 적응했던 우리 몸은 리듬이 없이 고정된 육지가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육지 멀미가 시작된 것이다. 항구 어느 구석진 자리에 앉아 멀미를 진정시키며,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았던 육지가 얼마나 낯선 곳인지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다. 바다는 우리에게 두 번째 배움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진정한 여행을 떠난 사람은 자신이 도착한 낯선 곳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같은 말이지만 자신이 떠나온 일상생활이 까마득한 옛이야기처럼 느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여행을 했어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차이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여행지와 익숙한 일상 사이의 차이, 혹은 이제는 익숙해진 여행지와 낯설게 느껴지는 일상 사이의 차이. 이 두 가지 차이를 동시에 겪어내야만,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여행을 가는 일과 유사하다. 여행과 마찬가지로 독서를 통해 이중적인 배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책의 내용과 저자의 속내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차츰 책과 저자에게 충분히 익숙해진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차이에 대한 감각을 얻게 될 것이다.


2.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수박 겉 핥기와 같은 여행도 있을 수 있고, 타자와 자신에 대해 깊게 성찰할 수 있는 여행도 가능하다. 그래서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여행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소크라테스는 그가 자기 자신을 짊어지고 갔다 온 것 아니냐고 조롱했다. 여행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한 사람은 여행지와 그곳 사람들로부터 배우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이다. 만약 배워서 무엇인가를 얻었다면, 그는 자기 자신이란 짐 대신 배운 것을 등에 짊어지고 돌아왔을 테니까 말이다. 여행뿐만 아니라 독서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진정으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독서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의 삶까지 변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배움의 경험을 제공하는 독서도 있을 수 있다.  

영민하고 섬세한 철학자 들뢰즈가 이 점을 놓칠 리가 없다. 그는 두 가지 종류의 독서법이 있다고 전제하며, 첫 번째 독서법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선 책이란 속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자라고 생각하고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보든가 혹은 썩고 타락한 사람들이라면 어휘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읽는 책은 전번 상자에 담긴 상자, 혹은 그것을 담는 상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석을 달고, 해석을 하고, 설명을 요구하고, 결국 책에 대한 책을 쓰게 되고, 같은 식으로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대담Pourparlers』

들뢰즈가 말한 첫 번째 독서법은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던 친구가 책을 읽던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대학원 시절 석사 논문과 박사 논문을 쓰면서 내가 했던 독서법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 독서법은 즐겁고 유쾌한 여행이 될 수가 없다. 업무 때문에 이루어진 여행이 어떻게 즐거움을 주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독서법은 놀이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책을 읽는다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상급 학교 진학이나 논문 통과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책을 읽을 때 저자가 말하려는 속내를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첫 번째 독서법에 매몰되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에 들어 있는 새로운 개념이나 어휘를 발견하여 그것을 남에게 떠벌리려는 타락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짐작하겠지만 전문 학술서나 연구서는 바로 이런 식으로 쓰인 것들이다.


3.
돌아보면 참고서나 문제집을 주로 풀던 학창 시절, 몰래 참고서 밑에 자신이 좋아하던 작가의 글을 숨겨놓고 읽으며 즐거워했던 적이 있다. 이때 읽은 책은 참고서나 문제집과는 달리 노동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었다. 그 책들은 나를 슬프게 했고, 나를 미소짓게 했으며, 어느 때는 내게 삶의 전망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아무런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과도 같았다. 선생님이 성적에 도움이 된다고 권해준 책도 아니다. 마치 여행지에서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진귀한 물건을 발견하는 것처럼, 서점에서 나는 숨겨진 보물을 만난 것처럼 그 책들을 찾아냈던 것이다. 그 책을 읽은 뒤 나는 어떻게 변할까? 이런 설레는 마음으로 나는 책을 샀고, 또 읽었다. 들뢰즈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가 들려주는 두 번째 독서법을 보니 말이다.

책을 읽는 또 다른 방식은 책을 어휘나 의미를 찾는 것과는 무관한 하나의 기계machine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작용을 하는가, 어떻게 작용을 하는가?”하는 것만이 문제가 된다.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가? 만일 작용이 없으면, 감응이 없으면, 그럼 다른 책을 집어 들면 된다. 바로 이것이 강렬한 독서이다. 무엇인가 발생하든가 아니면 아니든가, 그뿐이다. 아무런 설명할 것도, 이해할 것도, 해석할 것도 없다.
-『대담』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이 좋다는 말을 듣고 그곳 명승지를 하나하나 둘러보며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럴 때 안달루시아와 감응하고 있는가? 만약 안달루시아가 우리에게 작용을 한다면, 우리는 그곳에 머물면 된다. 반면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안달루시아가 어떤 작용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감히 그곳을 떠나야 한다. 안달루시아로부터 삶의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안달루시아를 갔어도 가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의 삶을 흔들어버리는 책이 있다. 나의 허영을 부수고 내 맨얼굴을 보도록 만드는 책이다. 혹은 내가 고뇌하는 것의 실체를 때로는 절망적으로, 때로는 희망적으로 보여주는 책일 것이다. 이런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노동하는 독서가 아니라 감응하는 독서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바로 들뢰즈가 말한 “강렬한 독서”법이다.  

지금까지 48가지의 목소리를 여러분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내가 여러분에게 들려준 목소리들은 나의 강렬한 독서 경험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연히 이 48가지의 목소리에 들어가야 하는데 빠진 것도 있을 수 있다. 내가 별다른 감응을 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아예 접하지도 못했던 책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가보지도 않았던 곳, 혹은 가보았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감응을 느끼지 못했던 곳을 소개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 삶을 낯설게 성찰하기에 충분한 중요한 목소리는 어느 정도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48가지의 목소리들 중 여러분의 삶을 뒤흔들어놓은 한두 가지 목소리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아니 있었으면 좋겠다. 그 목소리가 여러분의 마음에 울리는 순간이 여러분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성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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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위키리크스 -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에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는데요. 이번에는 <위키리크스 -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입니다. 위키리크스의 2인자였다가 내부 문제를 제기하고 독립해 '오픈리크스'를 준비하는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의 책이고, 오늘 전 세계 동시발간이라고 합니다. 도서정보 차례 부분에 무려 '저작권사와의 사전공개 금지 계약조건으로 인해 출간 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문구가 들어가 있는 책인데, 정말 그 만한 재미와 가치가 있는지는 나와 보면 알 수 있겠죠. 어제 말씀드린 대로 오늘은 이 책의 프롤로그와 서문을 공개합니다.


   
 

위키리크스 연혁 및 폭로 일지

2006년  10월 4일 위키리크스(WikiLeaks.org) 등록
           12월 첫 번째 폭로

2007년  1월 120만 건의 자료가 준비 중임을 공표하다.
           11월 관타나모 폭로       
           12월 다니엘, 카오스커뮤니케이션콩그레스(24C3)에서 줄리언을 만나다.

2008년  1월 율리우스 베어 은행의 케이먼제도 지점 자료 폭로
           2월 율리우스 베어가 다이너도트(Dynadot, WikiLeaks.org) 도메인 등록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다. 이후 소송을 취하하다.       
           3월 사이언톨로지 ‘비밀성경’ 폭로
           5월 미국 대학생조합 내부책자 첫 번째 폭로        
           6월 케냐 ‘양해각서’ 폭로
           7월 부다페스트 글로벌보이스정상회의 참석
           9월 사라 페일린의 개인메일함 공개       
           11월 영국 국민당(BNP) 당원 명단 폭로
           11월 케냐 경찰의 청부살인에 대한 오스카 재단의 보도 공개 
           12월 코소보에서 펼쳐진 범죄와의 전쟁과 관련된 독일 연방정보부(BND)의 비밀문서 폭로       
           12월 2008년 주민지역시스템 내부책자 폭로
           12월 다니엘과 줄리언, 카오스커뮤티케이션콩그레스(25C3)에서 첫 공식 강연을 하다.

2009년  1월 다니엘, 직장을 그만두고 위키리크스에 전념하다.      
           2월 6700건 이상의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 공개        
           2월 위키리크스 기부자들의 메일주소 공개
           3월 미 상원의원 콜맨의 후원자 정보 공개
           4월 페루자 국제저널리즘회의 참석       
           6월 국제엠네스티 언론상 수상
           8월 피어하우텐에서의 HAR 캠프
           9월 디지털 커뮤니티 분야 아르스 엘렉트로니카상 수상
           10월 영국 국민당 당원 명단 두 번째 폭로
           11월 9·11 테러 당시의 문자메시지 공개
           11월 독일 제약회사에 대한 수사기록 폭로
           11월 톨 콜렉트 계약서 폭로
           11월 데이비드 어빙의 이메일 통신 폭로
           11월 아이슬란드 현대미디어시민단체(IMMI)와 함께 언론자유무역항 아이디어 제출
           12월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서 피랍된 두 유조차의 폭격에 대한 폭로
           12월 23일 오프라인으로 가다.      
           12월 27일 다니엘과 줄리언, 카오스커뮤니케이션콩그레스(26C3)에서 위키리크스의 미래에 대해 강연하다.

2010년  1월 아이슬란드 현대미디어시민단체와의 협업을 시작하다.
           4월 5일 ‘부수적 살인’ 비디오 폭로       
           5월 말 브래들리 매닝이 체포되다.       
           7월 26일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록 폭로       
           7월 30일 암호로 잠긴 ‘최후의 심판’ 파일을 온라인에 올리다.   
           8월 20일 ‘뒤스부르크 러브 퍼레이드’의 기획서류 폭로
           8월 20일 줄리언에게 수배령이 떨어졌다 곧 취소되다.       
           8월 26일   줄리언, 다니엘에게 정직처분을 내리다.       
           9월 14일 다니엘, 고장 난 메일서버로 가다.       
           9월 15일 다니엘과 몇몇 핵심 멤버가 위키리크스를 떠나다.     
           9월 17일 오픈리크스(OpenLeaks.org) 등록      
          10월 22일 이라크 전쟁 기록 폭로      
          11월 미 국무부 외교문서 폭로       
          12월 1일 줄리언에게 국제 수배령이 떨어지다.      
          12월 7일 줄리언, 런던에서 체포되다.       
          12월 14일 줄리언, 보석으로 풀려나다.
          12월 30일 다니엘, 카오스커뮤니케이션콩그레스(27C3)에서 오픈리크스를 소개하다.

2011년 1월 튀니지 시민혁명 발발
          1월 줄리언,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건네받다.

 
   

 

[서문] 

2007년 위키리크스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잠긴 문 뒤에서 휘둘러지는 권력을 제어하려는 나의 목표를 다시 찾았다. 감춰진 권력 남용을 인터넷 사이트로 투명하게 밝히는 아이디어는 간단하면서도 정말 멋졌다. 나는 위키리크스에서 활동하면서 권력과 비밀유지가 부패의 온상임을 피부로 느꼈다. 
  여러 달에 걸쳐 위키리크스는 팀의 과반수가 매우 우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결국 2010년 9월 위키리크스를 떠났다. 나는 위키리크스와 줄리언 어산지의 권력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비판했다. 다른 조직에서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와 똑같은 비판을 했으리라 확신한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오래전부터 위키리크스와 관련되었던 소수의 사람들이 위키리크스의 발전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을 때, 위키리크스와 그 설립자가 내뿜는 후광이 이 질문들을 덮어버렸다. 줄리언과 위키리크스는 하나로 합체되어 스타의 세계로 빠졌다. 스스로 투명성의 깃발을 내걸었던 조직이 정보의 진공상태에서 침묵했고 그것이 오늘날의 결과를 낳았다. 
  위키리크스가 여러 비밀들을 폭로했던 것처럼, 이제 나는 위키리크스의 내부를 폭로하고자 한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내 안의 도덕성과 신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갈팡질팡하며 갈등했다.
  우리가 위키리크스 시절에 자주 했던 얘기가 있다.
  “올바른 역사기록이 있어야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으로 나의 의무를 대신하고자 한다.
  

2011년 1월,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

 

[프롤로그]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웹 사이트, 위키리크스

지난 몇 년 사이에 위키리크스는 크게 성장했다. 2007년 내가 거의 호기심으로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게 자랐다. 우리의 프로젝트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창백한 컴퓨터꾼들을 영리한 공인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치가들, 기업가들 그리고 군대 우두머리들에게 두려움이 뭔지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아마도 우리가 나오는 악몽을 꾸었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 프롤로그 중에서

2010년 위키리크스는 대형 폭로들을 잇달아 터뜨리면서 세계를 뒤흔들었다. ‘부수적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폭로된 미군의 이라크 전쟁 당시 민간인 살해 동영상, 25만여 건에 달하는 미 국무부 기밀문서 등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수많은 비밀과 진실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권력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2011년에도 진행형이다. 위키리크스는 현재 북아프리카 민주화운동의 불씨를 제공했다. 튀니지에서 발발한 시민혁명은 이제 이집트로 옮겨가고 있다. 또 전 율리우스 베어 은행 직원으로부터 건네받은 비밀계좌도 곧 공개를 앞두고 있어 세계의 부호들이 긴장하고 있다.

“2010년 7월 30일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자료 도메인과 여러 공유사이트에 1.4기가바이트 용량의 파일을 올렸다. 이른바 ‘최후의 심판’ 파일이라고 알려진 ‘insurance.aes256’이었고 암호로 잠가 놓았다. 특별히 민감한 자료들을 암호화하여 널리 퍼트리는 것은 확실히 의미가 있었다. 적어도 이것 때문에 미 국무부 사람들은 며칠 잠도 못 잤을 거라 생각한다. 항공모함을 보내 없앨 수도 없는 웹에서 벌어진 일이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렇듯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위키리크스는 2006년 12월에 설립된 폭로 전문 웹 사이트로 2007년 1월에 처음 웹 상에 공개되었다. 출범 이후, 위키리크스는 가장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전례 없는 내부고발조직으로 급성장했다. 설립 후 3년 동안 위키리크스는 대표적인 폭로매체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30년간 한 것보다 더 많은 특종을 생산해냈다.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서 피랍된 유조차 두 대에 대한 폭격, 아이슬란드의 금융붕괴를 초래한 카우프싱 은행의 약탈 행위, 사이언톨로지의 비밀 등 위키리크스가 공개하지 않았다면 많은 진실들이 그대로 묻혔을 것이다.

“내가 정식으로 위키리크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직접 관여한 첫 번째 폭로가 있었다. 한 제보자가 숫자, 계산식, 그래프, 작업흐름도 그리고 계약서 한 무더기를 우리의 디지털 우편함에 올려놓았다. 줄리언과 내가 대충 훑어보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수백 쪽에 달하는 그 자료에는 율리우스 베어 은행이 어떤 방식으로 고객의 수백만 재산을 세금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거래 금액도 얼추 잡아 고객 한 명당 5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 사이였다. 상위 10여 명의 탈세금액만으로도 사회복지 프로젝트 수십 개를 거뜬히 지원할 수 있었다.”

과연 이 폭로 사이트의 정체는 무엇인가? 폭로하는 기밀문서는 어떻게 획득하며, 또 무엇을 위해 폭로하는가? 위키리크스는 제보자들의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민감하고 비밀스런 정부, 기업, 조직, 종교에 대한 정보들을 받는다. 익명의 제보에 의존하지만 자체적인 검증시스템을 통과한 정보만을 사이트에 올리며 이미 공개된 내용이나 단순한 소문은 다루지 않는다. 엄청난 정보들을 공개하며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 위키리크스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가 무성하지만 실체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며 서버 위치, 핵심 멤버, 사이트 운영방식 등 그나마 알려진 정보도 사실과 다른 게 많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운영자, 관리자, 대변인이지 결코 지하조직의 전투원이 아니다. 우리는 자료를 기다릴 뿐 자료를 요구하거나 직접 해킹하지 않으며 어떤 지령도 내리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위키리크스의 ‘누구누구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러면 기꺼이 이메일주소를 알려준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몇몇 이름은 그 실체를 모른다. 실존하는 인물인지 아니면 줄리언 어산지의 또 다른 이름인지. 가령 제이 림은 법률 담당자다. 제이 림? 이름만 보면 중국사람 같다. 중국 반정부단체 회원으로 위키리크스 설립에 참여했다는 주장도 듣긴 했는데, 아무튼 나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모두가 아는 사실은 이 모든 폭로의 배후에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가 있다는 것이다. 줄리언 어산지는 언론의 자유와 정보검열 반대를 주장해온 호주 출신의 유명한 해커로 위키리크스를 통해 일약 유명인사로 거듭났다. 그는 디지털시대의 구세주일까? 사이버 테러리스트일까? 정보의 자유를 위해 희생하는 선구자일까? 아니면 권력욕에 불타는 저널리스트일까? 조직의 리더로서 어산지의 진술과 행동은 위키리크스를 매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했고 거대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이 남자는 수많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나는 줄리언 어산지처럼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그는 극단적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다. 극단적으로 에너지가 넘친다. 극단적으로 천재적이다. 극단적으로 권력에 사로잡혀 있다. 극단적 편집증이다. 극단적 과대망상이다. 나는 줄리언을 견디기 힘들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굉장히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 여겼다. 줄리언의 어린 시절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아주 멋진 사람으로 성장했을 텐데. 그래도 나는 열정적이고 아이디어가 많으며 세상을 더 좋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친구로 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했다.”

위키리크스의 등장으로 언론의 자유 및 알권리와 국가기밀의 보장이라는 문제가 대두됐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들은 전 세계 권력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지만 언론과 대중으로부터는 큰 호응을 얻었다. 프랑스 〈르몽드〉는 “언론 차원에서 처음 겪는 큰 사건”이라고 했으며, 미국 〈뉴욕타임즈〉는 위키리크스의 문서가 “알권리를 충족하고 공공의 이익에 이바지한다”라고 논평했다. 실제로 위키리크스는 기존의 언론매체가 충족시킬 수 없는 여러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정보의 자유와 지식의 공유’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위키리크스는 언론의 역할을 비롯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가능한 한 빨리 자료를 사이트에서 내리라는 협박이 가해지면 우리는 항상 상냥하고 정중하게 물었다. 혹 우리를 고발할 생각인지, 정말 문서에 대한 저작권을 갖고 있는지 등등. 대부분은 고맙게도 신속하게 저작권에 대한 증거를 화면캡처로 보내준다. 우리의 일을 덜어준 상대방에게 고마워하면서 우리는 그것도 역시 공개한다. 이들이 가처분신청을 내고 싶어도 위키리크스에는 그것을 받을 수신자가 없다.”

다만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언급했듯이 위키리크스가 민주주의에 축복이 될 것인지 저주가 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사람들은 위키리크스가 폭로하는 내용에 집중하지만 앞으로는 위키리크스의 역할, 특히 단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2010년에 엄청난 주목을 받으면서 위키리크스는 초기의 운영원칙들을 지킬 수 없었으며 이는 내부적으로 갈등을 일으켰고 결국엔 팀 해체로 이어졌다. 여러 대형 폭로 후 위키리크스가 하나의 권력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미 외교문서 폭로에도 몇몇 문제가 있다. 정치학자 헤르프리트 뮌클러가 〈슈피겔〉에 기고한 미 외교문서 폭로 반대 글에 전혀 동의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측면에서는 나도 같은 의견이다. ‘비밀이 항상 특정 권력의 손에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최신 폭로 전략으로 인해 비밀이 막강한 재량권을 행사하는 손으로 이미 넘어가지는 않았는가? 아니면 그냥 비밀의 보관자만 바뀐 건가?’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보관하던 비밀을 이제 다섯 개 거대 언론사와 줄리언 어산지가 보관한다. 이들은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자료를 고른다. 최근 폭로들은 위키리크스의 기본 아이디어에서 멀리 떨어졌다. 그것도 아주 멀리.”

현재 위키리크스는 2011년 노벨평화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21세기를 맞아 언론의 자유와 투명성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상시켰다는 취지에서다. 위키리크스에는 어떤 문서들이 여전히 잠들어 있는가? 앞으로 어떤 문서들이 폭로돼 세상을 바꾸어 놓을 것인가? 그들의 폭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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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시스템은 제가 장악했습니다. 한바탕 즐겁게 놀고 갑니다.” 


                                   - 줄리언 어산지가 자신이 해킹한 통신회사 노텔의 컴퓨터 시스템 관리자에게 남긴 메시지

 
   

 

 

줄리언 어산지인지 줄리언 어샌지인지 아직도 헷갈리는데, 위키리크스 관련 책 두 종이 거의 동시에 한국에 나옵니다.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출판사들의 노력과 경쟁을 지켜보자니 위키리크스 못지않은 치열함이 묻어나 두 종 모두 제대로 된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평가받길 기대합니다. 우선 슈피겔 기자들이 어산지를 직접 만나 취재하며 써내려간 위키리크스 이야기 <위키리크스 -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를 소개합니다. 아래 내용은 이 책의 프롤로그입니다. 현재 도서정보에 있는 차례로 볼 때 전반부는 어산지의 삶을 다루고, 중반부터 위키리크스 이야기가 시작되는 듯합니다. 둘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겠죠. 위키리크스의 독일 대변인이었다가 최근 독립한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의 <위키리크스 -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은 분위기가 사뭇 다를 듯합니다. 이 책의 서문은 내일 오전에 공개하겠습니다.(이런 걸 하고 있으니 마치 출판계의 어산지가 빙의한 기분이군요.)

 

[프롤로그] 

우리가 만난 줄리언 어산지

 

이 책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운동가의 이야기다. 줄리언 어산지(Julian Assange)는 자신의 조직 위키리크스와 함께 강대국들의 정부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미 국무부 외교전문 25만 1000건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글로벌 사회의 시선을 국제정치의 무대 뒤편으로 이끌어주었다. 이는 위키리크스가 지난 7개월 동안 공개한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 비디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쟁일지에 뒤이은 네 번째 폭로였다. 대중이 세계 최강국의 군사적·외교적 내부 실상을 이처럼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었던 적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산지에게, 그러나 또한 미국에게도 2010년은 불꽃같은 한 해였다. 시간이 갈수록 폭로는 더욱 빛을 발하며 장관을 연출하더니 결국 세계 각국 정부의 숨을 멈추게 만드는 ‘광란의 피날레(Finale furioso)’로 연말을 장식했다. 이 같은 상황의 전개를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더없는 행운이었다. 
  

우리는 2010년 7월 런던에서 처음으로 줄리언 어산지를 만났다. 그는 얼굴이 창백하고 피로해 보였으며, 면도도 하지 않았고 옷은 며칠 동안 똑같은 차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곧 그것이 그의 평소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배낭과 여행가방 하나, 이것이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그에게 필요한 전부였다. 그가 아직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 런던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던 2010년 여름에 이미 역사의 바람은 깃발을 펄럭이며 그의 주변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권의 팝스타 자리에 올라 각종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이 새겨진 마스크가 등장하고, 페이스북 팬그룹이 결성되고, 이런저런 관련 시위들이 벌어졌다. 어산지는 여론을 양극으로 분열시키며 사랑과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사명에 헌신했고 남들과는 물론 자기 자신과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줄리언 어산지는 컴퓨터의 귀재다. 그는 몇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자신의 300달러짜리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며 또 하나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그 안에서 그는 현대 정보기술을 이용하여 스스로 ‘정당한 개혁’이라고 부르는 일을 지원한다. 그곳은 진정한 그의 세계다. 그가 자신과 해커 친구들을 ‘국제 전복자들(International Subversive)’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십대 시절부터 줄곧 그의 세계였다. 하지만 컴퓨터 속어로 IRL(In Real Life)이라고 부르는, 단지 0과 1로만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실제 삶에서 이 수학자의 행동은 조심성이나 신중함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무모하고 단도직입적이며, 상대가 자신과 비슷한 지적 수준에서 대화할 능력이 없다고 느낄 때 거침없이 상처를 준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측정에 따라 146에서 180 정도의 아이큐가 나오는데, 이는 보통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반면 개인적 관계를 맺는 능력은 별로 신통치 못해서 거처를 옮길 때마다 실망과 고통을 남겼다. 이렇게 애착관계에 특히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하필이면 두 여성과의 부정한 스캔들로 기소된 것은 단순히 우연으로만 보기 힘들다. 누구보다도 사적인 관심과 공적인 관심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 사람이 바로 어산지 자신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건은 그가 스스로 두 여인과 해결해야 하거나 재판관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어산지는 급진적인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이런 경계를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정의한다. 그의 생각과 행동은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어산지에게는 비전과 카리스마가 있다. 어산지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을 열광시키고 추종자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 이 점은 다른 많은 문제점들을 보완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그의 비상한 카리스마는 분열과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서도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을 발산하는 정치가들을 연상시킨다. 이는 커다란 성공을 약속하는 재능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어산지에게 호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평가하고 성과를 인정하는 것은 이와 별개의 일이다. 
  

 

우리는 위키리크스를 두 가지 방식으로 평가한다. 그것은 분명히 비상하고 특출한 아이디어이지만 또한 디지털 혁명의 논리적 귀결이기도 하다. 비밀 폭로 플랫폼의 콘셉트는 새로운 게 아니며 다양한 형태의 선구자들이 있다. 그러나 민주적 공공성과 최선의 제보자 보호를 위한 인터넷의 가능성을 어산지와 그의 협력자들만큼 일관되게 실행에 옮기며 국제적 명성을 쌓은 사람들은 일찍이 없었다. 위키리크스가 저널리즘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변화시킬 수는 있다. 이 인터넷 플랫폼은 원본 자료들을 수집하여 공개한다는 측면에서는 문서보관소와 비슷하다. 하지만 사건을 탐색하고, 단서를 추적하고, 최대한 많은 관련자들과 인터뷰하고, 독자들에게 맥락과 분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위키리크스는 우리가 일차적으로 이해하듯이 실제로 저널리즘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는 원본 자료들이 언제나 사건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조직이 지금까지 발표한 자료들은 저널리즘의 작업이 훌륭하게 이루어지기 위한 소중하고 부분적으로 유일무이한 재료들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위키리크스 조직의 역사를 추적해왔다. 처음에는 경쟁 상대로서 관찰을 시작했다. 탐사보도 저널리즘(investigative journalism)의 핵심 분야에 새 경쟁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위키리크스 사이트와 그 운영자들에게 좀 더 진지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스위스 은행그룹 율리우스 베어(Julius Baer)의 원본 자료들을 위키리크스가 인터넷에 올리고 은행 측이 이를 불법으로 고발한 2008년에 들어서 분명해졌다. 2009년에 우리는 위키리크스가 독일연방정보국 에른스트 우를라우 국장과 교환한 편지들을 읽어보았다. 그것은 위키리크스보다 연방정보국에 훨씬 더 당혹스러운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위키리크스의 독일 대변인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Daniel Domscheit-Berg, 2010년 10월 사퇴)와 접촉했으며, 그 이후 줄곧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위키리크스의 스토리는 또한 우정과 실망과 배신으로 점철된 것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해커와 핵티비스트(hacktivst, 해커와 액티비스트의 합성어-옮긴이)들의 매혹적인 비주류 문화다. 그들이 추구하는 자유이념과 사회윤리는 줄리언 어산지의 비전이 성장하는 밑바탕을 이룬다. 위키리크스의 정보원 브래들리 매닝(Bradley Manning)을 FBI에 팔아넘긴 아드리안 라모(Adrian Lamo)도 같은 문화에서 성장한 해커였다. 우리는 변호사 데이비드 쿰스(David Coombs)를 비롯한 매닝의 여러 주변 인물들뿐만 아니라 라모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모와 매닝을 조사하면서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줄리언 어산지의 전기가 아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에 관심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어산지를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산지와 그의 중요한 동반자들을 지난 반년 동안 자세히 관찰했다. 런던과 베를린에서 직접 만나기도 했고, 어산지 일당과 시공을 초월해서 가장 빨리 접촉할 수 있는 장소인 컴퓨터에서 온라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산지는 고작 두세 번 정도의 만남으로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정치가들처럼 좀처럼 속내를 들여다볼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그는 사생활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사생활 함구를 만남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지만, 그렇다고 그가 대화를 나눌 때 철저하게 사생활 이야기를 배제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어산지와 나눈 대화 내용을 그의 삶을 거쳐 간 사람들을 통해서 최대한 검증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을 작업하는 몇 달 동안 우리는 위키리크스에서 현재 활동 중이거나 예전에 활동한 주요 관계자들을 영국, 독일, 호주, 아일랜드, 미국 등지에서 최소한 10명 이상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는 어산지를 긍정적으로 평하는 사람도 있었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어산지와 그 주변 인물들뿐만 아니라 영국의 〈가디언〉이나 미국의 〈뉴욕타임스〉와도 접촉을 유지하면서 〈슈피겔〉이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일지, 그 밖에 수많은 외교전문들을 출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시기에 우리는 어산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서로 의견이 다른 점도 많았기 때문에 자주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우리는 그의 음모론이나 저널리즘의 폐해에 대한 시각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위키리크스가 좀 더 민주적인 구조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과 상당히 다른 줄리언 어산지의 면모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결코 오만하거나 비열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공격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비범한 아이디어를 지닌 비범한 대화 상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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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 2011-02-10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호 재밌겠네요.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 또 없을까요.(김변호사 제외)

herenow 2011-02-10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이야말로 알리딘 인문MD님이 아니면 올릴 수 없는 내용이네요.
안그래도 2권이 동시에 검색되고 한 권은 내용조차 제대로 안 나와있어 궁금했는데 말이죠.
출판계의 어산지...ㅋㅋ '출판계 위키릭스' 2탄도 기대합니다. ^ ^

(두 책의 커버이미지가 며칠 사이에 계속 바뀌는 것도 재미있군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2-11 10:4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 글에 있는 표지도 하루만에 바뀌었습니다. ^^

귀를기울이면 2011-02-10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큐 180이란 말에 아이쿠 했습니다. 그게 실존하는 점수구나.. 근데 위키리크스는 리크스인데 스타벅스는 왜 버크스가 아닐까 궁금해지네요.ㅎㅎ 어쨋든 상당히 흥미가 가는 이야깁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2-11 10:55   좋아요 0 | URL
정작 요즘 어산지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보도가 안 되는 듯해요. 위키리크스도 마찬가지고요. 시간이 좀 지나면 '스토리'를 넘어 각종 분석(저널리즘, 운동 전략 등등)도 책으로 소개되겠죠. 사실 그게 더 기다려집니다.

난나야 2011-02-1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는 과연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진실들이 저 위키리크스에 아직 잠들어 있을지 궁금합니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차례 시도한 '북 엠바고'는 애초의 기획 취지(책에는 없는 자료를 따로 구해 보여드리고자 한)를 살리기에 어려움이 많아, 이 기회에 개념을 확장해보았습니다.(물론 그래봤자 저 혼자만의 생각이니까) 출간 이전에 책의 출간 이유와 내용의 얼개를 살펴볼 수 있는 머리말과 차례 정도의 정보라도 먼저 전해드리고자 하는 충심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네요.

여하튼 이번에는 2, 30대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철학자 강신주 선생님의 신작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소개합니다. 이미 예약판매를 하고 알라딘 2월의 저자로도 활약하고 계시지만 홍보는 모름지기 다다익선이니까요.(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10201_author2)

   

[머리말] 

저는 책을 읽는 독자이면서 동시에 책을 집필하는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책이란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편지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점에 들러 새롭게 출간된 책들을 뒤적이다가, 제 마음을 동요시키는 책을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책들이 저를 설레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소수의 책만이 저를 흔들어 깨웁니다. 이런 경우 누가 저의 마음을 엿보기라도 하듯이 저는 서둘러 책을 구입하여 서점을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조용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장 한 장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곤 합니다.

삶의 고뇌가 쌓인 만큼 타인의 고뇌가 읽힌다고 했던가요? 페이지마다 절절하게 아로새겨진 알지 못하는 저자의 고뇌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제 마음에 젖어듭니다. 저자는 1,000여 년 전의 사람일 때도 있고, 어느 경우에는 저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으나 아주 먼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일 때도 있습니다. 엄청난 시공간을 넘어 책이란 매체를 통해서 저자가 저와 접속되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간혹 어떤 책은 저에게만 보내는 연애편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파울 첼란(Paul Celan, 1920-1970)이란 시인은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시는 “유리병편지Flaschenpost”와 같은 것이라고 말이지요.

아주 먼 곳에서 누군가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물론 그의 외로움은 자신의 속내를 전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요. 마침내 그는 자신의 속내를 정성스레 글로 옮겨서 유리병에 담습니다. 바람이 바다 쪽으로 부드럽게 부는 날, 마침내 그는 유리병을 힘껏 바다에 던집니다. 먼 바다로 흘러가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는 유리병을 지켜봅니다. 그러고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유리병편지를 받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가 바다에 던진 유리병편지는 수차례의 거센 폭풍우를 뚫고 어느 낯선 바닷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도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아직 유리병편지에게는 남은 일이 있습니다. 모래사장에 올라온 유리병편지는 반쯤은 모래에 묻힌 채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려야 하니까 말이지요.

유리병편지는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것에 만족할 수가 없을 겁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편지가 누군가의 삶과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오디세우스와 같이 험한 바다를 방황했던 유리병편지는 자신이 도달해야 할 곳에 이르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라진 유리병편지는 얼마나 많을까요. 모든 것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에만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법입니다. 결국 유리병편지는 편지를 보낸 사람과 편지를 받은 사람이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될 때에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저는 수많은 유리병편지를 받았습니다. 발신자는 스피노자, 장자, 나가르주나, 원효 등과 같은 철학자였습니다. 매번 편지를 받아 펼쳐볼 때마다 저의 고독과 외로움은 경감되었을 뿐만 아니라 저는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들을 통해 제 사유와 삶이 외롭지만은 않다는 위로를 받았으며, 동시에 제 속내를 표현하는 관점이나 기법도 아울러 배울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그들로부터 받은 행운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기 위해서 오늘도 조심스럽게 편지를 적습니다. 그러고는 정성스레 유리병에 담을 겁니다. 가끔 저의 책들이 서점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보곤 합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저의 유리병편지를 꺼내 읽어볼까요? 그 사람도 저와 마찬가지로 들뜬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보게 될까요?

광화문에서
강신주 


 

[차례] 

머리말
프롤로그 : 고통을 치유하는 인문정신

1.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후회하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욕망은 나의 것인가  라캉, 『에크리』
페르소나와 맨얼굴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개처럼 살지 않는 방법  이지, 『분서』
자유인의 당당한 삶  임제, 『임제어록』
쇄락의 경지  이통, 『연평답문』
공이란 무엇인가  나가르주나, 『중론』
해탈의 지혜  혜능, 『육조단경』
신이란 바로 나의 생명력이다!  최시형, 『해월신사법설』
습관의 집요함  라베송, 『습관에 대하여』
생각의 발생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지적인 통찰 뒤에 남는 것  지눌, 『보조법어』
관점주의의 진실  마투라나, 『있음에서 함으로』
언어 너머의 맥락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마음을 다한 후에 천명을 생각하다  맹자, 『맹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2. 나와 너의 사이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없다  칸트, 『실천이성비판』
집단의 조화로부터 주체의 책임으로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자유와 사랑의 이율배반  사르트르, 『존재와 무』
타인에 대한 배려  공자, 『논어』 
수양에서 실천으로의 전회  정약용, 『맹자요의』
사유의 의무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기쁨의 윤리학  스피노자, 『에티카』
선물의 가능성  데리다, 『주어진 시간』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감수성  정호, 『이정집』
섬세한 정신의 철학적 기초  라이프니츠, 『신 인간 오성론』
여성적 감수성의 사회를 위해  이리가라이, 『나, 너, 우리』
사랑의 지혜  장자, 『장자』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서 누구나 사랑할 수 있다는 역설  원효, 『대승기신론소·별기』
설득의 기술  한비자, 『한비자』
논리적 사유의 비밀  아리스토텔레스, 『분석론 전서』

3. 나, 너, 우리를 위한 철학 
웃음이 가진 혁명성  베르그송, 『웃음』
아우라 상실의 시대  벤야민,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새로움이란 강박증  리오타르, 『포스트모던의 조건』
자본주의의 진정한 동력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유쾌한 소비의 길  바타유, 『저주의 몫』
여가를 빼앗긴 불행한 삶  드보르, 『스펙터클의 사회』
운명은 존재하는가  왕충, 『논형』
미꾸라지의 즐거움  왕간, 『왕심재전집』 
덕, 통치의 논리  노자, 『도덕경』
사랑, 그 험난한 길  묵자, 『묵자』
약자를 위한 철학  베유, 『중력과 은총』
주체로 사는 것의 어려움  바디우, 『윤리학』
결혼은 미친 짓이다  헤겔, 『법철학』
우발성의 존재론을 위하여  들뢰즈, 『천 개의 고원』
잃어버린 놀이를 찾아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치안으로부터 정치로  랑시에르, 「정치에 관한 열 가지 테제」
진정한 진보란 무엇일까  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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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11-02-0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에게도 유명한 강신주님이네요.ㅎ 시의 적절한 소개. 이 책 읽고 싶어지네요.

2011-02-09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2-09 08:59   좋아요 0 | URL
아, 강연회는 아직 페이지가 올라가지 않아서 연결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15일 화요일에는 올라갈 예정입니다. 현재 예상하는 일정은 3월 10일 목요일 저녁, 장소는 김대중 도서관입니다. 페이지 올라가면 꼭 신청해주세요. 고맙습니다.

마늘빵 2011-02-0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고 예약신청했는데 아직 받으려면 한참... 그 전에 김상봉 샘의 책을 읽기 시작했죠.

인문MD 바갈라딘 2011-02-09 13:49   좋아요 0 | URL
14일에 책이 들어오고, 15일에 일괄 배송할 예정입니다. <다음 국가를 말하다>는 현재 단독 강연회를 준비 중이니 좋은 소식 전해드릴게요. 고맙습니다.
 

[한국에서 강제송환당한 날 밤] 한국에서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무사하다는 소식을 알림.

 

"더 불온해지고 더 강력해졌다!" 

가난뱅이 계의 아이돌 마쓰모토 하지메가 돌아왔다. 물론 입국거부 이후 정부의 입장을 알지 못해 우선 책으로 슬며시 인사를 전해왔지만, 곧 참이슬을 마시러 한국에 올 참이란다. 알라딘 독자들이 보내준 응원(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01020_poor)을 기억했기 때문일까. 이번 책은 한국의(만국의) 가난뱅이들과의 교감과 연대를 기억하며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 출간을 감행했다.    

"이리하여 한국에 오도 가도 할 수 없데 되었으니 어쩔 수 없구만. 책이라도 내볼까? 요런 생각으로 일본에서 걸핏 하면 펼치곤 하던 황당무계한 대작전을 보고하는 책을 내게 되었다! 우와, 에헤야 어기야디야! 이 책에 실린 글은 <매거진 9>라는 일본의 웹 매거진에 연재하던 것인데, 최근 2년 동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열렸던 축제나 소동 이야기를 보고한 것이다." 

이 <매거진 9>의 '9'는 일본헌법 9조를 말한다. 그가 운영하는 '아마추어의 반란' 재활용 가게의 거래처였는데, 오며가며 낯을 익히다 연재까지 하게 되었단다. 내용은 그가 펼치는 난장쇼를 지상중계하는 것. 고로 이번 책은 2009년 신년부터 2010년 입국거부 직후까지 마쓰모토 하지메와 가난뱅이들이 함께 벌인 축제와 소동의 보고서다.  

 

[신년 인간붓글씨 대작전] 신주쿠 동쪽 입구에 있는 GUCCI 앞에서 신년 인간붓글씨를 감행! 이걸 부자놈들이 봤더라면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서울에서 감행한 찌개 투쟁] <한겨레21>에서 진행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강연회를 마치고 이내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감행한 찌개 투쟁, 오른쪽은 그날 뿌린 전단. 이 전화번호는 이미 없어졌으니 연락하지 말도록.

  

오호라, 책을 펼치는데 매 꼭지 4컷 만화가 있다. <가난뱅이의 역습> 때 독자들에게 사인해주는 걸 보고 손재주가 있군, 하는 생각은 했지만 손수 그림까지 그릴 줄이야. 역시 이 분 거침이 없으시다. 그리하여 이번 '북 엠바고'의 내용은 한국어판에는 없는 일본어가 그대로 드러난 마쓰모토 하지메의 4컷 만화를 단독 입수하여 공개하는 프로젝트로 급 전환. 일본어를 아는 이들은 아는 대로 재미가 있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책을 찾아볼 터이니. 나나 마쓰모토 하지메나 손해볼 게 없는 장사. 후훗. 재미나게들 보시라.(총 9편인데, 내일부터 하루에 3편씩 차례대로 번역 내용을 댓글로 올리겠습니다. 일본어 잘 하시는 분들께서는 먼저 올려주시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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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MD 바갈라딘 2010-12-1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 세계공황이 도래했다 / 으윽 / 가난뱅이
1-2 요것 봐라 부자놈들아 꼴좋다!! / 대기업 폭삭 망함 / 부자놈
1-3 너희들 해고야!! / 망했다!! / 돈다발
1-4 못 참겠다! 중고품만 사야지!! / 재활용 가게 / 아이고 항복이요 / 부자놈

인문MD 바갈라딘 2010-12-17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1 난 잘났어!! / 권력자
2-2 저건 뭐지? / 부자놈 / 으음
2-3 돈 되는 건지도 몰라... / 자민당
2-4 인간 붓이다!! / 가난뱅이 / 아이고 졌다 / 꺄악

인문MD 바갈라딘 2010-12-1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1 내 이름은 가난뱅이
3-2 다른 사람한테 쓸 돈은 없어!!
3-3 확정 신고 / 세금 내라! / 공무원 / 싫어!!
3-4 집세 내놔! / 집주인 / 못 줘!!
3-5 얼씨구절씨구 / 30년 할부로 자동차 사라! / 안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