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위키리크스 -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에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는데요. 이번에는 <위키리크스 -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입니다. 위키리크스의 2인자였다가 내부 문제를 제기하고 독립해 '오픈리크스'를 준비하는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의 책이고, 오늘 전 세계 동시발간이라고 합니다. 도서정보 차례 부분에 무려 '저작권사와의 사전공개 금지 계약조건으로 인해 출간 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문구가 들어가 있는 책인데, 정말 그 만한 재미와 가치가 있는지는 나와 보면 알 수 있겠죠. 어제 말씀드린 대로 오늘은 이 책의 프롤로그와 서문을 공개합니다.


   
 

위키리크스 연혁 및 폭로 일지

2006년  10월 4일 위키리크스(WikiLeaks.org) 등록
           12월 첫 번째 폭로

2007년  1월 120만 건의 자료가 준비 중임을 공표하다.
           11월 관타나모 폭로       
           12월 다니엘, 카오스커뮤니케이션콩그레스(24C3)에서 줄리언을 만나다.

2008년  1월 율리우스 베어 은행의 케이먼제도 지점 자료 폭로
           2월 율리우스 베어가 다이너도트(Dynadot, WikiLeaks.org) 도메인 등록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다. 이후 소송을 취하하다.       
           3월 사이언톨로지 ‘비밀성경’ 폭로
           5월 미국 대학생조합 내부책자 첫 번째 폭로        
           6월 케냐 ‘양해각서’ 폭로
           7월 부다페스트 글로벌보이스정상회의 참석
           9월 사라 페일린의 개인메일함 공개       
           11월 영국 국민당(BNP) 당원 명단 폭로
           11월 케냐 경찰의 청부살인에 대한 오스카 재단의 보도 공개 
           12월 코소보에서 펼쳐진 범죄와의 전쟁과 관련된 독일 연방정보부(BND)의 비밀문서 폭로       
           12월 2008년 주민지역시스템 내부책자 폭로
           12월 다니엘과 줄리언, 카오스커뮤티케이션콩그레스(25C3)에서 첫 공식 강연을 하다.

2009년  1월 다니엘, 직장을 그만두고 위키리크스에 전념하다.      
           2월 6700건 이상의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 공개        
           2월 위키리크스 기부자들의 메일주소 공개
           3월 미 상원의원 콜맨의 후원자 정보 공개
           4월 페루자 국제저널리즘회의 참석       
           6월 국제엠네스티 언론상 수상
           8월 피어하우텐에서의 HAR 캠프
           9월 디지털 커뮤니티 분야 아르스 엘렉트로니카상 수상
           10월 영국 국민당 당원 명단 두 번째 폭로
           11월 9·11 테러 당시의 문자메시지 공개
           11월 독일 제약회사에 대한 수사기록 폭로
           11월 톨 콜렉트 계약서 폭로
           11월 데이비드 어빙의 이메일 통신 폭로
           11월 아이슬란드 현대미디어시민단체(IMMI)와 함께 언론자유무역항 아이디어 제출
           12월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서 피랍된 두 유조차의 폭격에 대한 폭로
           12월 23일 오프라인으로 가다.      
           12월 27일 다니엘과 줄리언, 카오스커뮤니케이션콩그레스(26C3)에서 위키리크스의 미래에 대해 강연하다.

2010년  1월 아이슬란드 현대미디어시민단체와의 협업을 시작하다.
           4월 5일 ‘부수적 살인’ 비디오 폭로       
           5월 말 브래들리 매닝이 체포되다.       
           7월 26일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록 폭로       
           7월 30일 암호로 잠긴 ‘최후의 심판’ 파일을 온라인에 올리다.   
           8월 20일 ‘뒤스부르크 러브 퍼레이드’의 기획서류 폭로
           8월 20일 줄리언에게 수배령이 떨어졌다 곧 취소되다.       
           8월 26일   줄리언, 다니엘에게 정직처분을 내리다.       
           9월 14일 다니엘, 고장 난 메일서버로 가다.       
           9월 15일 다니엘과 몇몇 핵심 멤버가 위키리크스를 떠나다.     
           9월 17일 오픈리크스(OpenLeaks.org) 등록      
          10월 22일 이라크 전쟁 기록 폭로      
          11월 미 국무부 외교문서 폭로       
          12월 1일 줄리언에게 국제 수배령이 떨어지다.      
          12월 7일 줄리언, 런던에서 체포되다.       
          12월 14일 줄리언, 보석으로 풀려나다.
          12월 30일 다니엘, 카오스커뮤니케이션콩그레스(27C3)에서 오픈리크스를 소개하다.

2011년 1월 튀니지 시민혁명 발발
          1월 줄리언,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건네받다.

 
   

 

[서문] 

2007년 위키리크스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잠긴 문 뒤에서 휘둘러지는 권력을 제어하려는 나의 목표를 다시 찾았다. 감춰진 권력 남용을 인터넷 사이트로 투명하게 밝히는 아이디어는 간단하면서도 정말 멋졌다. 나는 위키리크스에서 활동하면서 권력과 비밀유지가 부패의 온상임을 피부로 느꼈다. 
  여러 달에 걸쳐 위키리크스는 팀의 과반수가 매우 우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결국 2010년 9월 위키리크스를 떠났다. 나는 위키리크스와 줄리언 어산지의 권력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비판했다. 다른 조직에서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와 똑같은 비판을 했으리라 확신한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오래전부터 위키리크스와 관련되었던 소수의 사람들이 위키리크스의 발전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을 때, 위키리크스와 그 설립자가 내뿜는 후광이 이 질문들을 덮어버렸다. 줄리언과 위키리크스는 하나로 합체되어 스타의 세계로 빠졌다. 스스로 투명성의 깃발을 내걸었던 조직이 정보의 진공상태에서 침묵했고 그것이 오늘날의 결과를 낳았다. 
  위키리크스가 여러 비밀들을 폭로했던 것처럼, 이제 나는 위키리크스의 내부를 폭로하고자 한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내 안의 도덕성과 신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갈팡질팡하며 갈등했다.
  우리가 위키리크스 시절에 자주 했던 얘기가 있다.
  “올바른 역사기록이 있어야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으로 나의 의무를 대신하고자 한다.
  

2011년 1월,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

 

[프롤로그]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웹 사이트, 위키리크스

지난 몇 년 사이에 위키리크스는 크게 성장했다. 2007년 내가 거의 호기심으로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게 자랐다. 우리의 프로젝트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창백한 컴퓨터꾼들을 영리한 공인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치가들, 기업가들 그리고 군대 우두머리들에게 두려움이 뭔지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아마도 우리가 나오는 악몽을 꾸었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 프롤로그 중에서

2010년 위키리크스는 대형 폭로들을 잇달아 터뜨리면서 세계를 뒤흔들었다. ‘부수적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폭로된 미군의 이라크 전쟁 당시 민간인 살해 동영상, 25만여 건에 달하는 미 국무부 기밀문서 등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수많은 비밀과 진실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권력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2011년에도 진행형이다. 위키리크스는 현재 북아프리카 민주화운동의 불씨를 제공했다. 튀니지에서 발발한 시민혁명은 이제 이집트로 옮겨가고 있다. 또 전 율리우스 베어 은행 직원으로부터 건네받은 비밀계좌도 곧 공개를 앞두고 있어 세계의 부호들이 긴장하고 있다.

“2010년 7월 30일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자료 도메인과 여러 공유사이트에 1.4기가바이트 용량의 파일을 올렸다. 이른바 ‘최후의 심판’ 파일이라고 알려진 ‘insurance.aes256’이었고 암호로 잠가 놓았다. 특별히 민감한 자료들을 암호화하여 널리 퍼트리는 것은 확실히 의미가 있었다. 적어도 이것 때문에 미 국무부 사람들은 며칠 잠도 못 잤을 거라 생각한다. 항공모함을 보내 없앨 수도 없는 웹에서 벌어진 일이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렇듯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위키리크스는 2006년 12월에 설립된 폭로 전문 웹 사이트로 2007년 1월에 처음 웹 상에 공개되었다. 출범 이후, 위키리크스는 가장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전례 없는 내부고발조직으로 급성장했다. 설립 후 3년 동안 위키리크스는 대표적인 폭로매체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30년간 한 것보다 더 많은 특종을 생산해냈다.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서 피랍된 유조차 두 대에 대한 폭격, 아이슬란드의 금융붕괴를 초래한 카우프싱 은행의 약탈 행위, 사이언톨로지의 비밀 등 위키리크스가 공개하지 않았다면 많은 진실들이 그대로 묻혔을 것이다.

“내가 정식으로 위키리크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직접 관여한 첫 번째 폭로가 있었다. 한 제보자가 숫자, 계산식, 그래프, 작업흐름도 그리고 계약서 한 무더기를 우리의 디지털 우편함에 올려놓았다. 줄리언과 내가 대충 훑어보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수백 쪽에 달하는 그 자료에는 율리우스 베어 은행이 어떤 방식으로 고객의 수백만 재산을 세금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거래 금액도 얼추 잡아 고객 한 명당 5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 사이였다. 상위 10여 명의 탈세금액만으로도 사회복지 프로젝트 수십 개를 거뜬히 지원할 수 있었다.”

과연 이 폭로 사이트의 정체는 무엇인가? 폭로하는 기밀문서는 어떻게 획득하며, 또 무엇을 위해 폭로하는가? 위키리크스는 제보자들의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민감하고 비밀스런 정부, 기업, 조직, 종교에 대한 정보들을 받는다. 익명의 제보에 의존하지만 자체적인 검증시스템을 통과한 정보만을 사이트에 올리며 이미 공개된 내용이나 단순한 소문은 다루지 않는다. 엄청난 정보들을 공개하며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 위키리크스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가 무성하지만 실체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며 서버 위치, 핵심 멤버, 사이트 운영방식 등 그나마 알려진 정보도 사실과 다른 게 많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운영자, 관리자, 대변인이지 결코 지하조직의 전투원이 아니다. 우리는 자료를 기다릴 뿐 자료를 요구하거나 직접 해킹하지 않으며 어떤 지령도 내리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위키리크스의 ‘누구누구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러면 기꺼이 이메일주소를 알려준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몇몇 이름은 그 실체를 모른다. 실존하는 인물인지 아니면 줄리언 어산지의 또 다른 이름인지. 가령 제이 림은 법률 담당자다. 제이 림? 이름만 보면 중국사람 같다. 중국 반정부단체 회원으로 위키리크스 설립에 참여했다는 주장도 듣긴 했는데, 아무튼 나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모두가 아는 사실은 이 모든 폭로의 배후에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가 있다는 것이다. 줄리언 어산지는 언론의 자유와 정보검열 반대를 주장해온 호주 출신의 유명한 해커로 위키리크스를 통해 일약 유명인사로 거듭났다. 그는 디지털시대의 구세주일까? 사이버 테러리스트일까? 정보의 자유를 위해 희생하는 선구자일까? 아니면 권력욕에 불타는 저널리스트일까? 조직의 리더로서 어산지의 진술과 행동은 위키리크스를 매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했고 거대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이 남자는 수많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나는 줄리언 어산지처럼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그는 극단적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다. 극단적으로 에너지가 넘친다. 극단적으로 천재적이다. 극단적으로 권력에 사로잡혀 있다. 극단적 편집증이다. 극단적 과대망상이다. 나는 줄리언을 견디기 힘들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굉장히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 여겼다. 줄리언의 어린 시절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아주 멋진 사람으로 성장했을 텐데. 그래도 나는 열정적이고 아이디어가 많으며 세상을 더 좋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친구로 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했다.”

위키리크스의 등장으로 언론의 자유 및 알권리와 국가기밀의 보장이라는 문제가 대두됐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들은 전 세계 권력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지만 언론과 대중으로부터는 큰 호응을 얻었다. 프랑스 〈르몽드〉는 “언론 차원에서 처음 겪는 큰 사건”이라고 했으며, 미국 〈뉴욕타임즈〉는 위키리크스의 문서가 “알권리를 충족하고 공공의 이익에 이바지한다”라고 논평했다. 실제로 위키리크스는 기존의 언론매체가 충족시킬 수 없는 여러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정보의 자유와 지식의 공유’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위키리크스는 언론의 역할을 비롯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가능한 한 빨리 자료를 사이트에서 내리라는 협박이 가해지면 우리는 항상 상냥하고 정중하게 물었다. 혹 우리를 고발할 생각인지, 정말 문서에 대한 저작권을 갖고 있는지 등등. 대부분은 고맙게도 신속하게 저작권에 대한 증거를 화면캡처로 보내준다. 우리의 일을 덜어준 상대방에게 고마워하면서 우리는 그것도 역시 공개한다. 이들이 가처분신청을 내고 싶어도 위키리크스에는 그것을 받을 수신자가 없다.”

다만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언급했듯이 위키리크스가 민주주의에 축복이 될 것인지 저주가 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사람들은 위키리크스가 폭로하는 내용에 집중하지만 앞으로는 위키리크스의 역할, 특히 단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2010년에 엄청난 주목을 받으면서 위키리크스는 초기의 운영원칙들을 지킬 수 없었으며 이는 내부적으로 갈등을 일으켰고 결국엔 팀 해체로 이어졌다. 여러 대형 폭로 후 위키리크스가 하나의 권력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미 외교문서 폭로에도 몇몇 문제가 있다. 정치학자 헤르프리트 뮌클러가 〈슈피겔〉에 기고한 미 외교문서 폭로 반대 글에 전혀 동의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측면에서는 나도 같은 의견이다. ‘비밀이 항상 특정 권력의 손에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최신 폭로 전략으로 인해 비밀이 막강한 재량권을 행사하는 손으로 이미 넘어가지는 않았는가? 아니면 그냥 비밀의 보관자만 바뀐 건가?’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보관하던 비밀을 이제 다섯 개 거대 언론사와 줄리언 어산지가 보관한다. 이들은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자료를 고른다. 최근 폭로들은 위키리크스의 기본 아이디어에서 멀리 떨어졌다. 그것도 아주 멀리.”

현재 위키리크스는 2011년 노벨평화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21세기를 맞아 언론의 자유와 투명성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상시켰다는 취지에서다. 위키리크스에는 어떤 문서들이 여전히 잠들어 있는가? 앞으로 어떤 문서들이 폭로돼 세상을 바꾸어 놓을 것인가? 그들의 폭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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