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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시스템은 제가 장악했습니다. 한바탕 즐겁게 놀고 갑니다.”
- 줄리언 어산지가 자신이 해킹한 통신회사 노텔의 컴퓨터 시스템 관리자에게 남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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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어산지인지 줄리언 어샌지인지 아직도 헷갈리는데, 위키리크스 관련 책 두 종이 거의 동시에 한국에 나옵니다.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출판사들의 노력과 경쟁을 지켜보자니 위키리크스 못지않은 치열함이 묻어나 두 종 모두 제대로 된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평가받길 기대합니다. 우선 슈피겔 기자들이 어산지를 직접 만나 취재하며 써내려간 위키리크스 이야기 <위키리크스 -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를 소개합니다. 아래 내용은 이 책의 프롤로그입니다. 현재 도서정보에 있는 차례로 볼 때 전반부는 어산지의 삶을 다루고, 중반부터 위키리크스 이야기가 시작되는 듯합니다. 둘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겠죠. 위키리크스의 독일 대변인이었다가 최근 독립한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의 <위키리크스 -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은 분위기가 사뭇 다를 듯합니다. 이 책의 서문은 내일 오전에 공개하겠습니다.(이런 걸 하고 있으니 마치 출판계의 어산지가 빙의한 기분이군요.)
[프롤로그]
우리가 만난 줄리언 어산지
이 책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운동가의 이야기다. 줄리언 어산지(Julian Assange)는 자신의 조직 위키리크스와 함께 강대국들의 정부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미 국무부 외교전문 25만 1000건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글로벌 사회의 시선을 국제정치의 무대 뒤편으로 이끌어주었다. 이는 위키리크스가 지난 7개월 동안 공개한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 비디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쟁일지에 뒤이은 네 번째 폭로였다. 대중이 세계 최강국의 군사적·외교적 내부 실상을 이처럼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었던 적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산지에게, 그러나 또한 미국에게도 2010년은 불꽃같은 한 해였다. 시간이 갈수록 폭로는 더욱 빛을 발하며 장관을 연출하더니 결국 세계 각국 정부의 숨을 멈추게 만드는 ‘광란의 피날레(Finale furioso)’로 연말을 장식했다. 이 같은 상황의 전개를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더없는 행운이었다.
우리는 2010년 7월 런던에서 처음으로 줄리언 어산지를 만났다. 그는 얼굴이 창백하고 피로해 보였으며, 면도도 하지 않았고 옷은 며칠 동안 똑같은 차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곧 그것이 그의 평소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배낭과 여행가방 하나, 이것이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그에게 필요한 전부였다. 그가 아직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 런던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던 2010년 여름에 이미 역사의 바람은 깃발을 펄럭이며 그의 주변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권의 팝스타 자리에 올라 각종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이 새겨진 마스크가 등장하고, 페이스북 팬그룹이 결성되고, 이런저런 관련 시위들이 벌어졌다. 어산지는 여론을 양극으로 분열시키며 사랑과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사명에 헌신했고 남들과는 물론 자기 자신과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줄리언 어산지는 컴퓨터의 귀재다. 그는 몇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자신의 300달러짜리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며 또 하나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그 안에서 그는 현대 정보기술을 이용하여 스스로 ‘정당한 개혁’이라고 부르는 일을 지원한다. 그곳은 진정한 그의 세계다. 그가 자신과 해커 친구들을 ‘국제 전복자들(International Subversive)’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십대 시절부터 줄곧 그의 세계였다. 하지만 컴퓨터 속어로 IRL(In Real Life)이라고 부르는, 단지 0과 1로만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실제 삶에서 이 수학자의 행동은 조심성이나 신중함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무모하고 단도직입적이며, 상대가 자신과 비슷한 지적 수준에서 대화할 능력이 없다고 느낄 때 거침없이 상처를 준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측정에 따라 146에서 180 정도의 아이큐가 나오는데, 이는 보통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반면 개인적 관계를 맺는 능력은 별로 신통치 못해서 거처를 옮길 때마다 실망과 고통을 남겼다. 이렇게 애착관계에 특히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하필이면 두 여성과의 부정한 스캔들로 기소된 것은 단순히 우연으로만 보기 힘들다. 누구보다도 사적인 관심과 공적인 관심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 사람이 바로 어산지 자신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건은 그가 스스로 두 여인과 해결해야 하거나 재판관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어산지는 급진적인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이런 경계를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정의한다. 그의 생각과 행동은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어산지에게는 비전과 카리스마가 있다. 어산지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을 열광시키고 추종자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 이 점은 다른 많은 문제점들을 보완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그의 비상한 카리스마는 분열과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서도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을 발산하는 정치가들을 연상시킨다. 이는 커다란 성공을 약속하는 재능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어산지에게 호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평가하고 성과를 인정하는 것은 이와 별개의 일이다.
우리는 위키리크스를 두 가지 방식으로 평가한다. 그것은 분명히 비상하고 특출한 아이디어이지만 또한 디지털 혁명의 논리적 귀결이기도 하다. 비밀 폭로 플랫폼의 콘셉트는 새로운 게 아니며 다양한 형태의 선구자들이 있다. 그러나 민주적 공공성과 최선의 제보자 보호를 위한 인터넷의 가능성을 어산지와 그의 협력자들만큼 일관되게 실행에 옮기며 국제적 명성을 쌓은 사람들은 일찍이 없었다. 위키리크스가 저널리즘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변화시킬 수는 있다. 이 인터넷 플랫폼은 원본 자료들을 수집하여 공개한다는 측면에서는 문서보관소와 비슷하다. 하지만 사건을 탐색하고, 단서를 추적하고, 최대한 많은 관련자들과 인터뷰하고, 독자들에게 맥락과 분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위키리크스는 우리가 일차적으로 이해하듯이 실제로 저널리즘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는 원본 자료들이 언제나 사건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조직이 지금까지 발표한 자료들은 저널리즘의 작업이 훌륭하게 이루어지기 위한 소중하고 부분적으로 유일무이한 재료들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위키리크스 조직의 역사를 추적해왔다. 처음에는 경쟁 상대로서 관찰을 시작했다. 탐사보도 저널리즘(investigative journalism)의 핵심 분야에 새 경쟁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위키리크스 사이트와 그 운영자들에게 좀 더 진지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스위스 은행그룹 율리우스 베어(Julius Baer)의 원본 자료들을 위키리크스가 인터넷에 올리고 은행 측이 이를 불법으로 고발한 2008년에 들어서 분명해졌다. 2009년에 우리는 위키리크스가 독일연방정보국 에른스트 우를라우 국장과 교환한 편지들을 읽어보았다. 그것은 위키리크스보다 연방정보국에 훨씬 더 당혹스러운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위키리크스의 독일 대변인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Daniel Domscheit-Berg, 2010년 10월 사퇴)와 접촉했으며, 그 이후 줄곧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위키리크스의 스토리는 또한 우정과 실망과 배신으로 점철된 것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해커와 핵티비스트(hacktivst, 해커와 액티비스트의 합성어-옮긴이)들의 매혹적인 비주류 문화다. 그들이 추구하는 자유이념과 사회윤리는 줄리언 어산지의 비전이 성장하는 밑바탕을 이룬다. 위키리크스의 정보원 브래들리 매닝(Bradley Manning)을 FBI에 팔아넘긴 아드리안 라모(Adrian Lamo)도 같은 문화에서 성장한 해커였다. 우리는 변호사 데이비드 쿰스(David Coombs)를 비롯한 매닝의 여러 주변 인물들뿐만 아니라 라모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모와 매닝을 조사하면서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줄리언 어산지의 전기가 아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에 관심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어산지를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산지와 그의 중요한 동반자들을 지난 반년 동안 자세히 관찰했다. 런던과 베를린에서 직접 만나기도 했고, 어산지 일당과 시공을 초월해서 가장 빨리 접촉할 수 있는 장소인 컴퓨터에서 온라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산지는 고작 두세 번 정도의 만남으로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정치가들처럼 좀처럼 속내를 들여다볼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그는 사생활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사생활 함구를 만남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지만, 그렇다고 그가 대화를 나눌 때 철저하게 사생활 이야기를 배제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어산지와 나눈 대화 내용을 그의 삶을 거쳐 간 사람들을 통해서 최대한 검증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을 작업하는 몇 달 동안 우리는 위키리크스에서 현재 활동 중이거나 예전에 활동한 주요 관계자들을 영국, 독일, 호주, 아일랜드, 미국 등지에서 최소한 10명 이상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는 어산지를 긍정적으로 평하는 사람도 있었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어산지와 그 주변 인물들뿐만 아니라 영국의 〈가디언〉이나 미국의 〈뉴욕타임스〉와도 접촉을 유지하면서 〈슈피겔〉이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일지, 그 밖에 수많은 외교전문들을 출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시기에 우리는 어산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서로 의견이 다른 점도 많았기 때문에 자주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우리는 그의 음모론이나 저널리즘의 폐해에 대한 시각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위키리크스가 좀 더 민주적인 구조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과 상당히 다른 줄리언 어산지의 면모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결코 오만하거나 비열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공격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비범한 아이디어를 지닌 비범한 대화 상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