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접근하든 투퀴디데스야말로 서양에서는 가장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역사가라는 평가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라틴 고전을 꾸준히 번역해온 천병희 선생님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드디어 나옵니다. 그리스뿐 아니라 서양 문명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 서양 고대사 최대의 사건이자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더불어 역사 서술의 기원으로 불리는 작품이지요. 많은 분들이 꾸준히 찾는 텍스트인데 그간 중역본과 축약본만 소개되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리스어 원전 번역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게 된 지금, 조금 기뻐하고 많이 뿌듯해 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오늘은 천병희 선생님의 서문 가운데 도움이 될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다음에는 이 책에 실린 40여 편의 연설문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멜로스인들과의 대담'을 전해드리겠습니다. 

6월 30일 출간 예정이며 알라딘에서 단독 예약판매를 합니다. 해당 기간에 구매하신 분 가운데 10분을 추첨하여 5분께 <역사>를, 5분께 <일리아스+오뒷세이아 세트>를 드립니다. 여러모로 도움 주신 숲 출판사와 흔쾌히 본문 공개를 허락해주신 천병희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예약판매 이벤트 페이지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10615_sup  

 

[서문_아주 특별한 비극,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주도 세력은 아테나이(Athenai)와 스파르테(Sparte)였다. 그들은 호시탐탐 그리스를 노리던 거대 제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들이었다. 이 놀라운 승리 이후 진취적인 아테나이는 민주주의를 신봉하며 강력한 해군력에 힘입어 에게 해에 제국을 건설했고, 보수적인 스파르테는 과두정체를 신봉하며 강력한 중무장보병에 힘입어 그리스 본토 남부의 펠로폰네소스(Peloponnesos) 반도를 지배했다.
  황금기의 아테나이는 정치·문화·예술 분야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유산들을 쏟아내는 한편 지속적인 팽창정책으로 제국을 넓혀나갔다. 아테나이의 독주에 위협을 느낀 스파르테는 일부 동맹국의 사주를 받아 기원전 431~404년 아테나이와의 전쟁을 일으킨다. 이것이 27년 동안 지속된, 그리스 세계의 문명과 흐름을 뒤바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기원전 421년 양국 간에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잠시 전쟁이 중단되지만, 아테나이가 시칠리아 원정의 실패로 국력이 약해진 데다 서아시아의 패자(覇者) 페르시아(Persia)와도 사이가 나빠지자, 전쟁을 재개한 스파르테가 페르시아의 지원 속에 아테나이에게 항복을 받아낸다. 유례 없이 잔혹했던 전쟁에서 패배하며 아테나이는 황혼기에 접어든다.
  당시 그리스의 산문문학은 역사가 짧아서 기원전 5세기 후반부 이전에 씌어진 것은 지금까지 하나도 전해지지 않는다. 현존하는 산문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헤로도토스(Herodotos)의 <역사>이다. 기원전 5세기 후반부에 작품 활동을 하던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5세기 초에 일어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두 차례에 걸친 전쟁에 초점을 맞춰 방대한 저술을 쓰며, 약간의 초기 역사와 여러 부족과 국가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헤로도토스가 소아시아 할리카르낫소스(Halikarnassos) 시 출신인 데 견주어 기원전 460년경 아테나이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기원전 400년경 세상을 떠난 투퀴디데스는 적어도 한 번 이상 장군(strategos)으로 선출되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나이군을 지휘했으며, 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살아서 이 전쟁의 역사를 기술(記述)했다. 모두 8권으로 구성된 그의 저술 1권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의 그리스 역사와 환경에 관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고, 전쟁에 관한 본격적인 기술은 2권에서 시작된다. 현존하는 저술은 기원전 411년 가을에서 중단되지만 전쟁의 결말은 몇 군데에서 언급되고 있다.
  헤로도토스의 저술이 넓다면 투퀴디데스의 저술은 깊은 편이며, 헤로도토스가 신의 섭리를 믿는다면 투퀴디데스는 모든 것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설명한다. 헤로도토스는 일화를 소개할 때 흔히 이설(異說)도 함께 소개하지만 투퀴디데스는 거의 언제나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만 소개하며 그것을 믿어주기를 바란다. 투퀴디데스는 자신의 역사 기술 방법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각의 인물이 전쟁 직전이나 전쟁 중에 발언한 연설에 관해 말하자면, 직접 들었든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든 나로서는 정확히 기억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실제 발언의 전체적인 의미를 되도록 훼손하지 않으면서 연설자로 하여금 그때그때 상황이 요구했음 직한 발언을 하게 했다. 그리고 전쟁 중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우연히 주워들은 대로 또는 내 의견에 따라 기술하지 않고,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든 남에게 들은 것이든 최대한 엄밀히 검토한 다음 기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내가 기술한 역사에는 설화가 없어서 듣기에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에 관해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 책은 대중의 취미에 영합하여 일회용 들을 거리로 쓴 것이 아니라 영구 장서용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출판이 되자마자 고전이 되었다. 훗날의 역사가들은 그가 중단한 곳에서 그리스 역사를 기술하기 시작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 특별한 비극 속에서 지혜와 교훈을 찾았다. 그의 영향을 받지 않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함축적인 문체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가장 심오한 역사가라는 평가를 받았고, 19세기 독일에서는 랑케(L. von Ranke) 등에 의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역사가의 이상(理想)으로 추앙받았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전반까지 이어졌지만, 그 뒤에는 그러한 주장에 회의를 품으며 그의 문체와 언어 분석에 치중하는 경향이 차츰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진리를 탐구하려는 그의 열의와, 사건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그의 노력과, 평이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기술과, 인간 본성을 파고드는 연설을 적절히 한데 엮는 능력은 여전히 경탄의 대상이다.(중략)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미완으로 끝났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살아 있었지만 전해오는 텍스트는 기원전 411년 가을에서 갑자기 중단된다. 크세노폰(Xenophon)의 <그리스 역사>(Hellenika) 등 이후의 역사서들이 기원전 411년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미루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투퀴디데스가 발표한 것의 전부라고 확신해도 좋을 듯하다.
  그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부터 기술하기 시작해 전쟁이 끝나고도 살아 있었으니, 우리는 이런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투퀴디데스는 사건을 1년 또는 반년 단위로 사건 직후 바로 기록해 그 부분을 종결한 것일까, 아니면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메모만 해두었다가 전쟁이 끝난 뒤 본격적인 집필을 시작했을까? 아니면 그 두 가지 방법을 다 쓴 것일까?
  이를테면 2권 65장의 페리클레스에 대한 평가에서 시칠리아 원정의 실패 등 페리클레스 사후 사건들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사건을 1년 또는 반년 단위로 사건 직후 바로 기록해 그 부분을 종결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대부분(1권 1장~4권 51장, 5권 84장~8권 1장)은 연설과 여담을 곁들인 정교한 사건 기술로 짜여 있다. 그러나 두 부분(4권 52장~5권 83장, 8권 2~109장)에는 연설이 거의 나오지 않고 사건이 무미건조한 삽화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어, 이는 투퀴디데스가 죽기 전에 마지막 손질을 하지 못한 예비 작업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6권 1장~8권 1장은 시칠리아 섬의 지리와 역사를 포함해 2년 동안 계속된 아테나이의 시칠리아 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술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별도의 전공 논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밖에도 그의 기술에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듯한 부분이 종종 눈에 띈다. 이런 괴리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에 대해 독일의 역사가 울리히(F. W. Ullrich)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한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기원전 421년 아테나이와 스파르테 사이에 니키아스(Nikias) 평화조약이 체결되자 투퀴디데스는 이제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인 집필을 시작해 스팍테리아(Sphakteria) 섬의 함락을 포함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1권~4권 51장을 완성했으나, 시칠리아 대참사 후 계획을 수정하여 시칠리아 원정과 그 이전의 멜로스(Melos) 섬 사건에 관해 별도의 글을 썼다는 것이다. 또한 기원전 404년 아테나이가 최종적으로 패하자 그는 두 번째 서문(5권 26장)을 쓰고 전체를 하나로 묶는 과정에서 전에 쓴 것을 조금씩 수정하기 시작했으나 죽기 전에 수정 작업을 끝마치지 못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자 어떤 편집자가 이것들을 한데 묶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상태로 출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론’에 대해 그렇다면 투퀴디데스는 역사 기술과 정치철학과 관련해 아무 원칙도 신념도 없는 역사가가 되고 말 것이라며, 그가 이용한 여러 가지 방법은 그때그때 가장 적합한 것이라는 ‘통합론’이 요즘은 득세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접근하든 투퀴디데스야말로 서양에서는 가장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역사가라는 평가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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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 2011-06-15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으로 드디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나왔군요. 정말 기쁘고 반가운 소식입니다. 원전번역본이 없어 아쉬움이 컸는데 무더운여름 시원한 냉수 마신 기분입니다. 천병희 선생님은 잘 읽히고 가장 이해하기 쉽게 번역해 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당첨 됐으면 좋겠네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5 21:45   좋아요 0 | URL
네, 이번에는 최초로 저자와의 만남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세요. 워낙 번역 작업에 몰두하셔서 짬이 날지 모르겠지만 꼭 한 번은 자리를 마련해볼 참입니다.

마산지킴이 2011-06-15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반가운 소식이네요. 이제야 나온것이 아쉽지만 정말 기쁜소식입니다. 2주를 더 기다려야 한다니 조바심이 납니다. 빨리 멜로스인들의 대담 이라도 노출시켜주세요. 서로 팽팽한 주장들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더욱 궁금해 집니다.
역시 그리스 고전문학은 원전으로 읽어야 제맛...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5 21:47   좋아요 0 | URL
대신 2주 후에는 꽤 오랜 기간 곱씹으며 들여다볼 시원한 텍스트 하나를 만나게 되겠지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멜로스인들의 대담은 다음 주 초에 올릴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무개 2011-06-1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대단하네요.. 천병희선생님 안계셨으면 이 엄청난 일을 우리나라에서 누가 해냈을까 싶습니다. 부디 장수하시기만을 바랄뿐..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4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판매나 홍보를 떠나 뭔가 선생님께 힘을 전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우선입니다. 아마 선생님께서도 아무개 님 응원을 전해들으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timeroad 2011-06-16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씨의 책을 읽으면, 정말 이 책을 비롯한 원전번역서가 얼마나 타는 목마름이었나를 느끼게 합니다. 늦지 않았겠지요. 원전으로 읽기 위해서 희랍어를 지금 공부해볼까 고민하는 중입니다. 헤로도투스의 역사를 제처두고 얘기할 수 없는 고전이지요. 아주 적절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서숣방법과 두 책을 비교하게 되는, 그런 책이 아닐까 합니다. 기대만빵입니다. 천선생님에게 늘 감사하고, 출판사와 알라딘의 열정에도 감사드립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41   좋아요 0 | URL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재미난 비교네요. 희랍어까지 공부하실 마음이라니, 부디 성공하시길~~

라라 2011-06-16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전쟁사. "오늘날 하찮은 일로 간주되는 사건도 훗날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기 때문에 사건의 대소를 가리지 않고 빠짐없이 기술했다." 작고하신 김진경 선생이 이 책을 논한 글 가운데 일부인데요, 관점을 가진 집필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텍스트도 중요하지만 천병희 선생님의 주해가 기대됩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42   좋아요 0 | URL
"오늘날 하찮은 일로 간주되는 사건도 훗날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지금 우리에게도 울림이 큰 말이네요. 고맙습니다.

motoko3 2011-06-16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합니다. 1801년에 시작된 역경의 시간들, 18년 만에 혹은 되던 해에 목민심서를 완성합니다. 다산초당은 18번 국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해남 윤씨(고산 윤선도네가 큰집, 다산의 외가는 작은집 계열), 다산의 외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일종의 연수소를 겸한 출판사가 강진 만덕리에 세워진 것이지요. 해남윤씨 집안과 이래저래 관련이 있었던 다산의 제자들, 연구원이면서 출판사 직원들이였던 이들의 숫자가 18명입니다. 역경을 딛고 역경의 세월이 있었기에 500권의 편저서가 나오게 되었다는 점, 투키디데스의 망명생활은 20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세월은 그의 역사서술에 도움이 주었다고 하는데요, 어쩌면 18년이나 20년이라는 상당한 세월은 세상을 너무 격정적이지 않게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거리'를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기대가 되는 책의 출간, 반갑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51   좋아요 0 | URL
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돌아오게 되죠. 전쟁 안과 밖 양쪽에서 바라본 그의 기록이 기대됩니다.

새우 2011-06-1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를 어긴 초자연적인 존재, 티케.. 투키디데스는 티케를 거듭 강조한다는 부분을 인상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티메는 정의를 어긴 폴리스를 정벌하는 초자연적인 존재이지며 전투에서 힘이 정의에 대해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지만, 정의를 어긴 나라는 결국 티케라는 신의神意에 의해 정벌당한다는 것, 이해가 안 가서 기억하는 단어인데, 이번 책에서 그 맥락을 다시 짚어보고 싶다. 기대가 되고 읽은 후에 꼭 리뷰를 올리도록 할게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00:51   좋아요 0 | URL
네, 새우 님의 리뷰를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yess1985 2011-06-17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간 소식이 반갑고요, 진작에 나왔던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다시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쉽지 않은 일인데..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그의 시선에서 얻는 것이 많습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 요동치는 여론과 그것을 고스란히 베끼는 언론이 생산한 기사들, 지금 진행되는 우리 주변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데에도 도움을 주는 책이 될 듯..가장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역사가(평가)가 전해주는..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7 15:37   좋아요 0 | URL
옛것이 좋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요즘입니다.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겠지요. 고맙습니다.

다섯손가락 2011-06-1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문에서 저자의 역사기술방법에 대한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라는 대목인 참 숙연하게 다가옵니다. 진인사 하였으니 대천명할 뿐이라고 해야할까, 발간 즉시 고전의 반열에 진입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런 원전번역 작업 또한 곧바로 독자들이 평가해주리라 생각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계발서들의 범람에 신물이 나는 즈음, 단비와도 같은 소식입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20 17:53   좋아요 0 | URL
이 말도 덧붙여 둡니다. "이 책은 대중의 취미에 영합하여 일회용 들을 거리로 쓴 것이 아니라 영구 장서용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목표로 책을 쓰고 그게 실제 실현되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oren 2011-06-2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의 흐름을 지식으로 파악한 자와 그에 무지한 자 중에서 전자가 후자보다 안전하게 이 위험스럽기 짝없는 세상 속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투키디데스가 이 책을 남겼으리라는 대목이 새삼 떠오르는군요.

* * *

투키디데스의 생각(세 가지 동기)

그에게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보다 중요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행위의 원천이라고 그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가 사실보다 사람의 심리를 중시한 이유가 있다. 그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체험을 통해 도달한 생각 중에서 사람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의 행동 동기란 부의 추구와 명예욕과 공포로부터 도피하려는 세 가지 동기로 집약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원망(願望)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은 힘을 얻으려 한다. 게다가 사람이 힘의 획득을 노리는 한 다툼은 끊이지 않고, 사람의 안전은 언제나 위협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리고 사람은 그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욱 강한 힘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그는 체험했던 것이다. 이러한 끊기 어려운 악순환은 사람과 사람 사이뿐 아니라 국가 사이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그는 심각한 비관론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을 비관한 그가 왜《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써서 후세에 남기려 했을까? 그것은 이러한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역사의 흐름을 지식으로 파악한 자와 그에 무지한 자 중에서 전자가 후자보다 안전하게 이 위험스럽기 짝없는 세상 속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후자를 자기 작품으로 계몽하고 그 수를 되도록이면 적게 만들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다 많은 사람이 보다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리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임에 틀립없다.
(404쪽, 범우사 편)

인문MD 바갈라딘 2011-06-23 17:25   좋아요 0 | URL
꼼꼼한 댓글 고맙습니다. 이후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본과 범우사 판을 함께 두고 살펴보아도 좋겠네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로 이성적 인간의 허울을 벗겨내고 약탈하는 자로서의 인간 존재를 명쾌하게 드러낸 존 그레이의 신작 <추악한 동맹>. 이번에는 정치와 종교의 불온한 동맹에 사로잡힌 인류의 가능성을 짚어봅니다. 그의 시니컬한 시선 못지 않게 글솜씨 또한 화제를 모으고 있어 차례로 번역될 다른 작품들이 기대됩니다. 이에 여러 분의 아쉬움을 달래드리고자 펭귄출판사가 진행한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특히 <만들어진 신>과 관련한 논의는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인터뷰 번역과 정리는 이후 출판사 신원제 편집자가 맡아주셨습니다. 원문은 아래 주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enguin.co.uk/nf/Book/BookDisplay/0,,9780141025988,00.html

 

“검은 미사(Black Mass)”(<추악한 동맹>의 원제)라는 제목을 짓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제목을 지을 때 이 책의 핵심 주제이자 근대사의 핵심 주제이기도 한 종교의 정치적 변형이라는 문제를 제목에 담길 원했어요. 검은 미사는 기독교 미사의 일종인데 다만 공식적인 미사의 뒤편에 존재하죠. 지난 수세기 동안 가장 파괴적인 운동은 천상의 유토피아적 전망을 이 땅에 실현시키겠다는 기독교의 종말론 신화에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정치 종교란 그런 것이죠. 자코뱅당에서 볼셰비키까지,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에서 미국의 신보수주의자까지, 급진 이슬람교도부터 전 지구적 자유 시장을 외치는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들까지, 근대 정치는 종말론 종교의 다양한 변형에 좌지우지 되어 왔습니다. 

다른 이유는 음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러시아 작곡가인 알렉산드르 스크랴빈(Alexander Scriabin, 1872~1915)의 열렬한 팬입니다. 스크랴빈의 아홉 번째 피아노 소나타인 “검은 미사”는 아마도 음악 역사상 가장 음울한 작품 중 하나일 것입니다. “검은 미사”라는 곡은 레닌과 히틀러, 그리고 마오쩌둥의 사상에 생기를 불어 넣었을 것이라 짐작되는, 어두우면서도 악마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펭귄 편집자이자 마찬가지로 스크랴빈의 추종자 중 한 사람인 사이먼 와인더와 대화를 나누면서 스크랴빈의 이 곡 이름을 따 책 제목을 짓자는 생각이 나왔지요.
  
이 책은 과거 큰 성공을 거뒀던 저작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새로운 출발이라고 봐도 될까요?
 
초기 작품들과 연속선상에 있는 지점도 분명 있습니다만 <추악한 동맹>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전작인 <False Dawn>에서는 지구화를 조명했지요. 그러면서 당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나 친기업적인 작가들이 보여 준 장밋빛 전망과는 극단적으로 다른 관점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지구화로 세계가 상호 연관될 수는 있겠지만 더 자유롭거나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지요.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갈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습니다. <Al Qaeda and What It Means To Be Modern>에서는 알카에다가 중세나 그 비슷한 시기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문제 삼았습니다. 알카에다는 실제 지구화의 산물이며 따라서 독특하게도 근대적이라 주장한 바 있죠. 

<추악한 동맹>에서는 이 분석을 더 심화시켰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근대 계몽주의가 승리를 거둬 우리가 신화적 사고에서 합리적인 세계관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이러한 이동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급진적인 계몽주의는 신화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 신화는 기독교의 기원, 혹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죠. 계몽주의는 과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근대 정치를 추동하는 힘은 종교적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유토피아가 도래하리라는 믿음과 진보라는 관념이 바로 그 힘입니다. 예를 들어 무제한의 성장을 용인하고 믿는 최근의 경향은 인간이 이 행성의 주인이라는 일신교적 관념의 부산물입니다. 21세기 초반 이 세속적 신화는 죽거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인류의 대부분은 근본주의적인 종교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라크 전쟁은 일종의 전환점이 됩니다. 이라크 전쟁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한 십자군 운동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고 석유 장악을 위한 전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시작은 그러했지만 이라크 전쟁은 결국 해소할 수 없는 종파 간 분쟁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저자 입장에서 <추악한 동맹> 가운데 독자들 뇌리에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추악한 동맹>의 2장에서 언급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1920년대 중반에 스탈린은 러시아 과학자에게 인간과 유인원을 이종 교배해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개발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사실 그 명령을 받은 사람은 과학자라기보다는 거래용 경주마를 사육하는 사람이었지요. 스탈린은 덜 먹고 덜 자도 되는 새로운 유형의 병사를 원했던 겁니다. 물론 그 병사는 정상적인 인간의 감정을 가지지 않아야 했지요. 스탈린은 이처럼 새로운 인간 종이 만들어진다면 자신의 힘을 확장하는 데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물론 그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추악한 동맹>의 가장 중요한 지점을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지식의 진전이 인류를 더 합리적으로, 혹은 더 자애롭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지식의 성장은 단지 인간들이 자신의 목표를 더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뿐입니다. 그 목표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죠. 지식의 성장으로 우리는 오늘날 번영을 누리고 수명이 연장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동시에 같은 지식이 기후변화와 대량 살상 무기의 확산도 가져 왔지요. 이 이중성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할 겁니다. 그 이중성은 우리 내면의 갈등을 반영하기 때문이지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Straw Dogs)>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습니다. 이 책과 <추악한 동맹>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서 나는 인간 진보에 대한 휴머니스트들의 믿음이 전통적인 종교의 신화만큼이나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게 핵심이었지요. 사실 종교의 신화는 세속의 신화에 비하면 인간 삶의 현실을 견뎌내라는 메시지에 가까웠습니다. <추악한 동맹>은 이 생각을 더 발전시켜 미국 신보수주의의 발흥, 각양각색의 테러리즘, 그리고 고전적인 지정학으로의 회귀 등 지난 수세기 동안 발생한 대중적인 정치 운동을 분석하는 데 사용합니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처럼 <추악한 동맹>도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친숙한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제시합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의 성공을 보면서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룬 책을 읽고 싶어하는 잠재적 독자층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추악한 동맹>은 이 주제를 더 단호하게 밀고 나갑니다. <만들어진 신>이 과연 유용한 책일까요? <만들어진 신>이 유용하다면 그것은 이 책이 복음주의적인 무신론의 기독교적 기원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킨스는 종교란 과학이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한 이론이라 생각했고 신앙인들을 비합리적이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원시적인 과학 이론이 아닙니다. 종교는 신화입니다. <추악한 동맹>의 마지막 장에서 도킨스의 관점을 논하며 설명한 바 있죠. 과학과는 달리 신화는 진실 혹은 거짓으로 판명될 수 없지만 인간 경험을 실어 나른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갖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종교의 신화는 휴머니즘보다 진실하다고 봅니다. 도킨스는 자신이 다윈의 추종자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휴머니즘의 신화에 기대고 있습니다. 도킨스의 주장은 과학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이 아니라 신념의 일부며, 그 신념은 도킨스 자신이 격렬하게 공격하고 있는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주의적 무신론자들처럼 도킨스 역시 신화의 보편성을 해명하지 못하며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화에 결코 의문을 제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만들어진 신>의 독자들이 <추악한 동맹>도 흥미롭게 생각할까요?
 
<만들어진 신>의 독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추악한 동맹>도 흥미롭게 읽을 것입니다. 종교에 대한 도킨스의 적대감을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책에 큰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반면 도킨스처럼 전통 종교를 적대하는 사람들에게 인간 진보라는 세속의 신념에 대한 내 공격은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추악한 동맹>은 분명 중동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우려하게 하는 다른 지역이 있나요?
 
중동은 자원을 둘러싸고 벌어진 세계 거대 권력 사이의 지정학적 충돌이 종교 전쟁과 얽혀버린 가장 명백한 사례입니다. 중앙아시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그 밖의 지역이 같은 경로를 밟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이슬람과 서양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모든 산업 사회들이 연루되어 있는 갈등이죠. 중국과 인도는 에너지 집약적인 서구의 생활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그러한 삶의 방식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습니다. 산업주의의 확산은 많은 혜택을 가져오지만 자원 전쟁과 기후변화에 불을 붙이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는 산업주의가 전체 행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다음 책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철학과 소설 사이의 경계에 관심이 있습니다. 위대한 철학자가 자신의 작품을 소설이나 단편 이야기쯤으로 생각하고 썼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 철학 텍스트를 우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철학 그 자체가 일종의 소설은 아닐까요? 

또, 과학에 대한 글을 쓰고 싶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적인 문제든 윤리적 문제든, 모든 문제는 원칙적으로 과학의 도움을 빌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그게 과연 사실일까요? 오히려 궁극적인 해결책인 양 내놓은 과학의 결론이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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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하라>, 이것은 책의 제호가 아니다. 93세 노투사의 육성이다. 혁명과 코뮌 그리고 레지스탕스의 역사가 만들어낸 프랑스 지성의 절정이다. 그리고 청년들과 미래를 향한 절절한 애정이다. 앵디녜부! 레지스탕스! 앙가주망! 분노와 저항과 참여를 통하여 거대한 역사의 일부가 되기를 호소한다. 프랑스보다 분노할 것이 훨씬 더 많은 우리들에게 그의 외침은 정수리에 올려놓은 얼음조각처럼 가슴 서늘한 깨달음이 된다. 분노의 표적을 잃은 채 부당한 증오에 함몰해 있는 자신을 깨닫고 진정 분노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격렬한 희망’, ‘평화적 봉기’에 이어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이 곧 창조이다.(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작년 프랑스를 뒤흔든 13쪽짜리 책이 있습니다. 출간 직후 수십 만부가 나가 한국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분노하라>. 사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분노하고 있습니다. 다만 매일 분노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 바꿔볼 생각이나 행동을 상상하지 못하고 그러려니, 하며 체념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스테판 에셀은 94세의 나이에도 체념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진보를 믿으며 현실의 가능성을 키워가자고 제안합니다. 이제 프랑스발 분노의 바람이 한국에도 들이닥칠 참입니다. 뜨거운 분노의 바람에 앞서 <분노하라>의 한국어판 번역자(임희근)와 저자가 나눈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참고로 이 책은 다음 주에 돌베개 출판사에서 나옵니다. 

* 저작권 문제로 해당 인터뷰 전문을 내리고 일부 질문과 내용만 남겨둡니다. 전문은 책으로 만나보시길. 

 

[스테판 에셀 인터뷰]

책에 소개된 프로필 외에, 그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우리 집안은 관습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였습니다. (중략) 그래서 일찍부터 저는 세간의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과는 일정 거리를 두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도덕이란 타인들이, 사회가 만들고 우리에게 강요하는 규범(code)에 순응하는 것일 터입니다. 또 윤리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가야 할 것, 즉 발명이며 창조, 즉 결국 각자 자기만의 자유를 얻어내는 일일 테니까요.    

  
    


올해 94세의 고령인데도 정말 정정하게, 열정적인 삶을 살고 계신 듯합니다. 백 세에 가까운 노령에도 그러한 강건함과 용기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비결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비결, 그것은 물론 ‘분개할 일에 분개하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의 비결은 ‘기쁨’입니다. 인간의 핵심을 이루는 성품 중 하나가 ‘분개’입니다. 분개할 일에 분개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중략) 남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과 베푸는 기쁨을. 남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책임을 감수하는 것.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베풀고 싶다는 마음, 이 마음을 북돋워야 합니다. 사람을 책임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자꾸만 교육을 통해 계발해야 하며, 마음 교육을 위해서는 상상력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집필 당시 이런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이 작은 책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 때가 이 세계의 아주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또한 어떻게 보면, 정치적 윤리를 설파한 것이기도 합니다. 정치적 행동을 취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윤리적 기본이 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체험에서 (요즘 사람들에게 들려줄) 메아리를 찾습니다. 그러면 젊은 세대는 그 메아리가 전하는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렇습니다. 겨우 20페이지밖에 안 되는 제 책이 이렇게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것은  전세계 시민들이 광범위하게 절감하고 있는 문제 제기에 이 책이 화답을 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레지스탕스 정신과 전통이 오늘날 어떻게 계승되고 반영된다고 생각하십니까?

1944년 5월 채택된 ‘프랑스 전국 레지스탕스 평의회’의 프로그램은 치열한 현실성을 띤 내용이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것은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텍스트였습니다. 우선 길이가 짧았고, 또한 내용이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짚어냈습니다. (중략) 잘 되어가는 사회란 무엇입니까? 모든 시민에게 존재의 방도가(방편이) 보장되는 사회, 특정 개인의 이익보다 일반의 이익이 우선하는 사회, 금권에 대항하여 부가 정의롭게 분배되는 사회입니다. 세 단어로 짧게 줄이면 여전히 이것입니다. «자유, 평등, 박애!» 
 

만약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으십니까? 또 오늘날의 레지스탕스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자기 나름으로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 광고 메시지나 언론이 전하는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만 자유롭게, 양심에 입각해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젊은이들은 옛날 레지스탕스 당시에 우리가 했던 것처럼 네트워크를 이용해야 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인터넷상의 여러 네트워크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습니다. 아랍 세계의 젊은이들은 이런 일을 훌륭히 해냈고, 그리하여 독재자를 축출하는 쾌거를 이룬 것입니다. 


현재 아랍과 이슬람권-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 민주화 요구가 한창입니다. 이 흐름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튀니지의 젊은이들, 이집트의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압박을 받으면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이슬람 문명이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문명이라면 그 문명 속에 갇힌 채 무력하게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도처에 독재와 압박에 순응하지 않는 깨어 있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다. 미얀마나 그밖의 나라들... 이런 나라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주 소중한 시기입니다. 특히 이렇게 떨치고 일어난 이들이 다시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 도처에, 때는 왔습니다.  
 

책에서 강조하신 ‘창조적인 저항의식’으로 무장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방법이 있을까요?  

제도들이 민주적으로 기능하기까지 시민들의 참여가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지를 사람들이 항상 잘 깨닫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교육이 부족해서 그럴까요? 교육도 부족하지만 정치적 창의성도 부족합니다. 시민과 통치자 사이의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을 ‘참여(적) 민주주의’라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도 여전히 막연합니다. 사실은 보통선거 방식으로 ‘넘버 원’을 선출하는 것–지방선거든, 전국적 선거든–만이 여러 제도를 제대로 기능케 하는 민주적 형태는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왜? 일단 선출된 대표자는 시민들이 원하는 바, 생각하는 바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 한 단계 높은 정치적 창의성은 우리 제도에 무엇을 요구할까요? 새로운 형태의 기능을 요구합니다.     


부자들에 의한 미디어 독점과 언론 독립 정신의 훼손을 매우 우려하고 계십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인 듯한데, 시민들 개개인 혹은 미디어 종사자들이 이런 상황에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오늘날 모든 문제들은 상호의존적입니다. 인류가 이 땅에서 사는 방식을 전반적으로 재고하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습니다. 극도의 빈곤 문제가 생태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이 두 문제는 테러리즘 문제와 연관됩니다. 즉 우리 각자 안에 내재한, 그리고 우리가 다른 것으로 바꾸려 노력해야 할 ‘폭력의 필요성(폭력을 자행하고 싶은 경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문제 말입니다. 이런 문제들에 관해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다 함께 행동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비폭력 원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폭력은 폭력의 악순환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미래로, 희망으로 향한 문을 닫아버리게 합니다. 그래서 책에서도 썼듯이 제가 보기엔, 격렬할(폭력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희망뿐이라는 것입니다. (중략) 하지만 꼭 알아두십시오! 비폭력이란 손 놓고 팔짱이나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 다음에 타인들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어려운 구축(構築)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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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워튼 2011-06-02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다리던 책인데 돌베개에서 나오네요. 읽고 분노하겠습니다. ^^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0 17:35   좋아요 0 | URL
벌써 식은 건 아니겠지요? 분노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해환 2011-06-08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쥘과 짐과 한집에 살며 까트린을 엄마라고 부른 할아버지였다는 깨알같은 정보, 얻어갑니다~ㅎ 언제나오나 손꼽고 있었는데, 드디어 담주 화욜이군요. 한껏 기대하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0 17:35   좋아요 0 | URL
이미 분노의 열기를 느끼고 계시겠군요. 후후.

루쉰P 2011-06-0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좋은 정보 너무 감사해요. ^^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0 17:35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습니다. 보내주시는 관심과 애정 늘 고맙습니다. 다음 주에는 폭풍처럼 재미난 이야기가 올라갈 테니 기대해주세요.

처음처럼 2011-06-13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짤막한 인터뷰이지만, 구순이 넘은 노투사의 진심에 피가 끓는군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6-15 10:23   좋아요 0 | URL
네, 책에는 조금 더 긴 인터뷰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10530_insa 

[이창동 감독 탄원서]

"그라피티, 이미 세계적으로 수십 년 전부터 새로운 예술장르"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저는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창동입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표현의 자유를 정신적 양식으로 삼아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의 영화감독으로서, 그리고 한 때 문화관광부 장관이라는 중책을 맡아 문화예술 창작을 고취시키기 위한 행정의 책임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이번 세청 'G20 정상회의 포스터 쥐 그림 사건'으로 기소된 박아무개 피고인에 대한 법적 처리가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척도, 예술적 방법에 의한 풍자와 비판에 대한 관용과 이해라는 중대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여 재판장님의 현명하고 관대한 처분을 호소하기 위해 이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피고인 박아무개는 국문학 박사로, 대학에서 교양 국어와 환상문학 등을 강의하며,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지젝의 저작 등 다수의 서적을 번역하였고,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등을 집필한 인문학자입니다. 사회참여도 활발하여,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한 '미신고 장애인시설인원실태조사' 사업과, 교도소 평화인문학, 지역도서관 인문학강의 등에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장애인 야학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플랜코리아'와 '세이브더칠드런'등 아동복지단체에 6년째 후원해 온 민주시민입니다. 현재 지역사회에서 초, 중학생들과 더불어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으며, 웹진에 1년 동안 육아일기를 써서 올릴 정도로 육아와 가사에 헌신하는 자상한 가장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박아무개가 G20 정상회의 홍보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하여, 비록 공용물건 훼손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였음이 인정되지만은 이는 사회적으로 관용되는 예술의 범위를 확장하여 표현의 자유를 높이고 우리사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일이었음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G20 정상회의는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박아무개의 행윌 인해 특별히 G20 회의가 방해된 바가 없으며, 공공의 재산상의 손실도 50만 원 정도로 미미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박아무개의 행위는 국민들에게 풍자적인 웃음과 해학을 제공해 주었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심대한 피해를 끼치지 않았으며, 국가의 위신을 실추시킨 바도 없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그라피티는 이미 세계적으로 수십 년 전부터 새로운 예술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것이 생성되게 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매체의 특성상 일정한 도발성과 기존권력에 대한 풍자와 비판, 그리고 '허가 받지 않은 장소'에 그려진다는 위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박아무개가 제작해서 유통한 몇 점의 그라피티도 이러한 매체의 속성을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번 박아무개의 표현물에 무거운 형벌이 가해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성숙도,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예술적 창의성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깊이 헤아려주시기 바라며, 피고인 박아무개를 선처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1. 4. 28.
이창동 

 

[장정일 작가 탄원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소설가 장정일입니다. 저는 ‘G20 홍보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정수, 최지영 피고인의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이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박정수는 ‘G20 홍보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하여, 공공물건 훼손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음을 시인하였습니다. 비록 그는 공공물건을 훼손하는 법률을 저촉했지만, 피고인의 그라피티 작업이 개인적인 심리 배설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헤아려 주십시오.

재판장님이 더 잘 알고 계시듯, 민주주의 사회는 왕정시대와 달리 왕명이나 국명이 전체 시민의 의견을 일거에 소거시킬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온갖 자유로운 의견이 제시될 뿐더러, 그것들이 서로 상충하기까지 하는 시대가 민주주의 사회고,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 교육은 그런 사회를 바람직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G20’ 행사가 선진조국 창조에 필요불가결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소수나마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박정수는 언론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저와 같은 작가도 아닙니다. 만약 그가 언론인이나 작가였다면, ‘G20’ 직전에 나왔던 허다한 반대론자들의 글이 그랬듯이, 매우 강한 어조로 ‘G20’을 비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언론인도 작가도 아니었기에 글이나 말로 자신의 의사를 밝힐 기회가 주어지지 못했습니다.

대신 동네 놀이터의 공터를 미술 실험장 삼아 설치 미술을 선보인 바도 있는 박정수 피고인은, 그라피티 작업을 자신의 표현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공범으로 고소된 최지영은 함께 공부하는 인문학 연구실의 선배인 박정수로부터 그라피티 작업을 할 것이라는 언질을 들었을 뿐, 실제 작업에는 참여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흔히 낙서라고 불리는 그라피티 작업은 왕왕 개인적인 심리 배설과 동일시됩니다. 하지만 박정수의 그라피티 작업이 명료한 의식의 산물이면서 공공의 목적을 띄고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지 않습니다.

그 일례로 그는 ‘G20’에 반대하는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그라피티 작업을 ‘G20 홍보물’에 국한했습니다. 관공서나 일반 건물에 무작위로 행하지 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G20 홍보물’에만 대상을 확정한 것은, 그가 감정적이거나 무정부적인 충동(반사회적)에 휩싸이지 않았던 좋은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피고인이 관공서나 일반 건물에 무작위로 자신들의 분노를 방사했다면, 용서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내용)를 정확한 용기(‘G20 홍보물’)에 최소화했던 이 점에, 피고인 박정수의 양심과 공공성이 있다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박정수 피고인의 죄와 그에게 내려질 법률적 처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당연 피고인의 죄는,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처분됨이 또한 법치주의에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법에 문외한들은, 재판장님이 법률적 처분을 하는 데 있어, 피고인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커다란 자율적인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가 다양한 의견의 사회라는 것은, 국가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억압하지 않고 보장해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이상이라고 합니다. 재판장님의 현명하신 판단과 넓은 혜량으로 박정수 피고인과 무리하게 공범으로 기소된 최지영을 선처해 주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 

2011. 5. 6.
장정일
 

 

[박찬욱 감독 탄원서]

"우리사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

존경하는 재판장님

영화감독 박찬욱입니다. 이번 사건의 피고인 박아무개 피고인의 선처를 호소하기 위하여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피고인 박아무개는 국문학 박사로, 대학에서 교양 국어와 환상문학 등을 강의하며,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지젝의 저작 등 다수의 서적을 번역하였고,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 등을 집필한 인문학자입니다. 사회참여도 활발하여,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한 '미신고 장애인시설인권실태조사' 사업과, 교도소 평화인문학, 지역도서관 인문학강의 등에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장애인 야학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플랜코리아'와 '세이브더칠드런'등 아동복지단체에 6년째 후원해 온 민주시민입니다. 현재 지역사회에서 초, 중학생들과 더불어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으며, 웹진에 1년동안 육아일기를 기제할 정도로 육아와 가사에 헌신하는 자상한 가장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박아무개가 G20홍보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하여, 비록 공용물건 훼손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였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관용되는 예술의 범위를 확장하여 표현의 자유를 높이고 우리사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된 일이었음을 양지해주시기 바랍니다. G20대회는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박아무개의 행위로 인해 특별히 G20 대회가 방해된 바가 없으며 공공의 재산상의 손실도 50만 원정도로 미미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박아무개의 행위는 국민들에게 풍자적인 웃음과 해학을 제공해 주었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심대한 피해를 입히지 않았으며, 국가의 위신을 실추시킨 바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가벼운 사안에 무거운 형벌이 가해지는 것이 국가의 위신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염려하는 국민들의 심기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점을 널리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피고인 박아무개를 선처해 주십시오. 

2011. 4. 24.
박찬욱 


 

[봉준호 감독 탄원서]

"이 정도의 풍자·유머 가볍게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실로 큰 모순"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인 봉준호 라고 합니다.

저는 이번 사건의 피고인 박아무개 최아무개 피고인의 선처를 호소하기 위하여 이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피고인 박아무개와 최아무개가 G20 홍보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하여, 비록 공용물건 훼손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였지만, 이는 예술 활동을 통한 다채로운 풍자와 해학의 표현으로 볼 수 있는 바, 재판장님께서도 너그러운 관점으로 보아주시길 호소합니다. G20 과 같은 국제적인 대규모 행사도 훌륭히 치러내는 우리사회, 이 정도의 풍자와 유머조차 가볍게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이는 실로 큰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76년 필리페 페팃이라는 프랑스 청년은, 자신의 동료 세명과 함께 몇 개월에 걸친 치밀한 준비를 통해,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동이 빌딩에 '조직적'으로 치무하여, 경비원과 경찰들의 눈을 피해 두 빌딩의 옥상에 '불법적으로' 와이어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와이어 위에서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고공 외줄타기 퍼포먼스'를 펼쳐보여 세계무역센터 일대의 교통을 마비시키며,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그는 물론 퍼포먼스 직후 뉴욕 경찰에 의해 수갑에 채워져 연행되었습니다. 주요 공공시설에의 무단침빕, 사전 허락 없는 공연, 도로교통을 방해한 점 등등... 경찰로서는 당연하고 합당한 연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뉴욕법원이 이 프랑스 청년에게 내린 최종 판결은 아래와 같습니다.

"피고는 공원에서 뉴욕시 어린이들을 위해 외줄타기 무료공연을 1회 이상 실시토록 한다"

법률에 대해 무지한 저 같은 사람이 보더라도, 아니 전 세계인 그 누가 보더라도 실로 위트와 센스가 넘치는, 유머감각이 살아있는 최종 판결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앞에서 제가 감히 과거 해외의 판례까지 들먹인 이유는, 현재의 우리 사회가 1976년 미국 사회만큼의 여유는 최소한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의 관용과 유머도 없이 어떻게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너그러운 관점으로 이 사건을 보시어, 피고인 박아무개, 최아무개에게 과도하게 씌워진 혐의를 벗겨 주시고, 선처하여 주시길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봉준호 

 
 

[정윤철 감독 탄원서]

"이 사회의 아량 시험하는 카나리아, 그 소리 멈추지 않기를..."

본인 정윤철은 영화감독이자 창작자로서 예술은 개인의 내면 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사유도 드러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번 G20 그래피티는 평소에 비주류 예술 작업을 해오던 박아무개씨가 사회에 던진 풍자적 발언이었습니다. 'G'와 '귀'의 발음적 유사성, 그리고 대통령을 그에 비유하는 사회적 일각의 세태를 모티브로 하여 G20에 대한 작가의 우려를 담아낸 것입니다.

물론 이는 오로지 개인의 견해이며, 공공기물을 훼손하며 예술을 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가 그 이상의 것, 즉 예술적 발언의 정치성과 권력비판을 문제로 삼아 더 큰 벌을 내리려 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불행한 사태가 될 것입니다.

물론 예술행위에도 마땅한 책임이 따르고, 타인에게 필요이상의 혐오나 불쾌감을 주어선 안됩니다. 하지만 박아무개씨가 선택한 대상이 귀한 문화재나 개인의 사유재산은 아니었던 점, 그리고 국가나 대통령의 위신을 떨구려는 의도가 있었다해도 대한민국에 그 정도의 유머감각과 관용은 기대해도 된다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부디 너그러운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G20 그래피티 사건은 이 사회의 아량을 시험하는 카나리아입니다. 지저귀는 그 소리가 멈추지 않기를 두손모아 기원합니다. 

2011. 5. 2.   
정윤철
 

 

[김조광수 감독 탄원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수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0단독부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 김광수라고 합니다. 저는 이번 사건의 피고인 박아무개와 최아무개 피고인의 선처를 호소하기 위하여 이렇게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박아무개가 G20 홍보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하여, 비록 공용물건 훼손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였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관용되는 예술의 범위를 확장하여 표현의 자유를 높이고 우리사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된 일이었음을 양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라피티는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새로운 현대 미술 장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라피티를 주로 작업하는 유명한 예술가들도 많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초기에는 그라피티를 공용물건에 대한 훼손이나 낙서로 취급 받았던 적이 있지만 이제는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인정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또한 피고인 최아무개는 박아무개의 동료이자 후배로서 연행당한 박아무개의 생업과 연구실 활동, 법률 등에 대한 조언을 문자메세지로 나눈 것이 빌미가 되어 마치 이 사건을 조직적, 계획적 범죄로 보이게 하려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의해 공범으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아무개의 행위는 조직적 계획적 행위가 아니었으며 국민들에게 풍자적인 웃음과 해학을 제공해주었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심대한 피해를 입히지 않았으며, 국가의 위신을 실추시킨 바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가벼운 사안에 무거운 형벌이 가해지는 것이 국가의 위신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염려하는 국민들의 심기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점을 널리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은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번 사건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이 사건을 현명하게 헤아려, 피고인 박아무개를 선처해주시고, 최아무개에게 씌워진 혐의를 벗겨 주십시오. 

2011. 5. 2.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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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쓰기로 생각을 한 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다. 또 한 정권이 끝나간다. 국민들은 희망을 갈구하고 있다. 더 이상 절망의 시기가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가 역사에 반면교사(反面敎師)라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역사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증언을 남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함께 했던 사람들 모두가 지고 있는 첫 번째 책무는 자기가 보고 겪었고 일했던 내용을 증언하는 것이다. 다음 시대에 교훈이 되고 참고가 될 내용을 역사 앞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제 누군가는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 이제 누군가는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성공은 성공대로, 좌절은 좌절대로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 바람으로 펜을 들었다.
 
   

 

"노무현과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함께 했던 사람들 모두의
첫 번째 책무는 자기가 보고 겪었던 내용을 증언하는 것이다.
다음 시대에 건네줄 기록을 육필로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을 극복하고,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성공은 성공대로, 좌절은 좌절대로 뛰어넘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 말한 사람 문재인. 그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2주기를 맞아 30여 년 지근거리에서 지지자로, 친구로, 동반자로 서로를 믿고 의지한 두 사람의 운명 같은 동행을 풀어냈다. 이번 책에는 문재인 자신의 삶도 담겨 있지만,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증언과 기록도 다수 들어갈 예정이다. 책은 6월 초에 만날 수 있는데, 애타는 마음에 이 책 <문재인의 운명> 서문을 최초로 단독 공개한다. 

노무현의 정치적 가치와 계승자 설문, 관련도서 리뷰대회 등 알라딘에서 따로 마련한 2주기 행사 내용은 다음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10512_noh2)

 

<문재인의 운명> 서문 

강물이 되어 다시 만나기를

세월이 화살 같다.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과 이별한 지 어느덧 두 해가 됐다. 그 느낌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그를 떠나보낸 날’은 여전히 충격과 비통함이며, 어떤 이들에게 ‘노무현’은 아직도 서러움이며 아픔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 ‘그와 함께 했던 시절’은 그리움이고 추억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 있다. 이제 우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기고 간 숙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노무현 시대를 넘어선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무를 순 없다. 충격 비통 분노 서러움 연민 추억 같은 감정을 가슴 한 구석에 소중히 묻어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냉정하게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그를 ‘시대의 짐’으로부터 놓아주는 방법이다. 그가 졌던 짐을 우리가 기꺼이 떠안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다.

2주기를 앞두고 사람들이 내게 책을 쓰라고 권했다. 이유가 있는 권고였다. 노 대통령은 생전에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남기지 않았다. 기록으로서 솔직하고 정직해야 하는데, 아직은 솔직하게 쓸 자신이 없다고 했다. 혼자 하기에 벅차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게 공동 작업을 청했다. ‘함께 쓰는 회고록’으로 가자고 했다. 저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대를 기록해 보라고 부탁했다. 그 다음에 당신이 하겠다고 했다.

그 부탁을 했던 분도, 그 부탁을 받았던 우리도 미처 뭔가 해 보기 전에 갑작스럽게 작별해야만 했다.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숙제는, 그와 함께 했던 시대를 기록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노 대통령과 오랜 세월을 같이 했고, 지금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내가 그 일을 맨 먼저 해야 한다고들 했다.
   
하지만 엄두가 안 났다.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기록을 충실히 하며 살아오지 않았다. 하도 엄청나고 많은 일을 겪어, 자료를 보지 않으면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했다. 주저되는 부분도 많았다. 대통령이 고민했던 것처럼, 나 역시 100% 솔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동시대를 함께 살았던 많은 분들이 있는데, 자칫하면 이런 저런 부담을 드리거나 누가 될 소지도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기로 생각을 한 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다. 또 한 정권이 끝나간다. 국민들은 희망을 갈구하고 있다. 더 이상 절망의 시기가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가 역사에 반면교사(反面敎師)라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역사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증언을 남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책무는 자기가 보고 겪었고 일했던 내용을 증언하는 것이다. 다음 시대에 교훈이 되고 참고가 될 내용을 역사 앞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성공은 성공대로, 좌절은 좌절대로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 바람으로 펜을 들었다.

책을 정리하면서 보니, 참 오랜 세월을 그와 동행했다. 그 분은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따뜻하고 가장 치열한 사람이었다. 그 분도, 나도 어렵게 컸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려 했고,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함께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고, 함께 희망을 만들어보고자 애썼다.   

그 열망을 안고 참여정부가 출범했다. 이룬 것도 많고 이루지 못한 것도 많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아쉬움이 많다. 후회되는 것도 있다. 견해의 차이로 마음이 멀어진 분들도 있다. 개혁-진보진영의 ‘과거 벗’들과도 다소 마음이 멀어진 듯하다. 우리뿐이 아니다. 개혁-진보진영 안에서도 상처와 섭섭함이 남아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 서거는 우리에게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줬다. 다음 시대를 함께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마음을 모아야 한다. 마음을 모아야 힘을 모을 수 있다.

더 이상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애증(愛憎)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분은 떠났고, 참여정부는 과거다. 그 분도 참여정부도 이제 하나의 역사다. 그냥 ‘있는 그대로’ 성공과 좌절의 타산지석이 되면 좋겠다. 잘 한 것은 잘한 대로, 못한 것은 못한 대로 평가 받고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분도 그걸 원하실 것이다.

노 대통령과 나는 아주 작은 지천에서 만나, 험하고 먼 물길을 흘러왔다. 여울목도 많았다. 그러나 늘 함께 했다. 이제 육신은 이별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나와 그는, 정신과 가치로 한 물줄기에서 만나 함께 흘러갈 것이다. 바다로 갈수록 물과 물은 만나는 법이다. 혹은, 물과 물이 만나 바다를 이루는 법이다. 어느 것이든 좋다.

이 같은 나의 절절한 마음을, 내가 좋아하는 도종환 시인이 한편의 시에서 어쩌면 그리 잘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멀리 가는 물>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는가. 
 


이 땅의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결국은 강물이 되어 다시 만나고,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뤄 함께 흘렀으면 좋겠다. 강물은 좌로 부딪히기도 하고 우로 굽이치기도 하지만, 결국 바다로 간다. 장강후랑최전랑(長江後浪催前浪)이라고 했던가. 그러면서 장강의 뒷물결이 노무현과 참여정부라는 앞물결을 도도히 밀어내야 한다. 역사의 유장한 물줄기, 그것은 순리다. 부족한 기록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 마뜩찮아 하던 나를 설득해 책을 내도록 권고한 분들이 꽤 많다.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받아들인다. 방대한 양의 내 녹취와 증언을 꼼꼼히 정리하여 자료로 만들어 주느라 고생한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 작업이 없었으면 나는 책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 원고를 자신의 것인 양 정성껏 봐주고, 의견을 주신 분들의 노고도 고맙기만 하다. 책을 완성해 준 <가교출판> 식구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 모든 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노 대통령 2주기에 맞춰 발간해, 그 분 영전에 헌정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열심히 정리했지만 부족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쪼록 이 책이 그 분이 바랐던 ‘함께 쓰는 회고록’의 출발점이기를 바란다. 그 분과 함께 했던 다른 분들의 알찬 기록이 속속 나오기를 기대한다.


2011년 5월
 
문 재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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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 2011-05-20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의 희노애락이 잘 나타나 있을거 같고 기대가 되는 도서입니다^^

승희 2011-05-21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옛날 대청로의 거리에서 철마골로강의하러 오실 때의 노무현 변호사를 기억합니다.
그 시절, 차가 많지않았던 시절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강의하러 와주신 열정으로 뵐 때부터
시작된 노무현+문재인의 동거를 계속 봐왔었죠. 좋은 책을 기대하겠습니다.

사자는살아있다 2011-05-24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이글을 쭈욱 따라 읽는데, 갑자기 목에 슬픔 한 바가지가 차오릅니다.
사람이 마음놓고,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문 변호사님과 남은 저희가 고인의 유지를 실천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설인 2011-06-06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