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어진 시대 1~3 세트 - 전3권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남영 지음 / 궁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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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알라딘 서재에 아예 접속하지 않았다. 처음엔 의도한 일이 아니었으나, 이게 얼마나 놀랍도록 마음이 편한 지 발견한 뒤로는 적극적 결정이 되어 북플과 알라딘 앱까지 지웠다. 일전에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을 대차게 까며 서재에 입주신고를 한 바 있다. 그 두 플랫폼에 죄가 없단 건 아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내가 SNS의 성질을 띠는 모든 것에 몹시도 지쳐있었다는 점이다. 플랫폼을 바꾸는 건 해결책이 아니었다. 비슷한 그 무엇도 하지 말았어야 했던 거였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글을 쓰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버렸고, 염치 없이 슬금 돌아왔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느슨한 형태의 운용이 되지 않을까.


짝꿍은 내가 본 어떤 인간보다 공부에 특화된 사람이다. 흥미 여부와 관계없이 본인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아가는 데 게으름이 없다. 그가 아니었으면 나로서는 얼레벌레 눙치고, 잊고 넘어갔을 것들을 그는 성실히 알아보고 설명해준다. 그로써 내 생각을 넓혀준다. 부작용은 간혹 아주 엉뚱한 문제로 다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관련해 짝꿍은 지상군을 동원한 본토전으로 갔으면 인명 피해가 훨씬 컸을 것이다, 일본은 항복을 안 했을 것이다, 나는 일본이 패전할 것이 이미 명백한 단계였다, 반인륜적이고 불필요한 실험이었다로 논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휘어진 시대 3권 p. 289~292) 그가 이야기한 근거는 대의명분, 내가 이야기한 근거는 대의명분 외의 세 가지 이유 중 세 번째 이유로 제시되어 있었다. (다른 두 맥락은 1) '거대과학의 운명' 즉, 그렇게 많은 예산과 자원이 투입된 프로젝트에서 아무런 가시적 성과도 없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원폭은 개발되기로 결정된 순간부터 사용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것과 2) '진주만'에 대한 미국의 복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린 사안에 복합적으로 작용한 여러 요소를 두고 네 건 틀렸고 내 말이 맞다로 쓸데없이 다툰 거였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특정 근거에 더 꽂혀서 그 이유만이 옳게 사안을 꿰뚫고 있고, 사실관계를 더 잘 설명하고 있다고 믿을까.


어떤 결정의 뒤에는 단 하나의 동기가 있을 수도 있고, 수십수백가지 동기가 있을 수도 있고, 아무 이유조차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그 중 어떤 설명이 다른 것들보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질까? 왜 그 설명만이 '진짜'인 것처럼 느껴질까? 실제로는 모든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거나 아무 것도 진실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제시된 근거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해 각자가 느끼는 이러한 설득력의 차이가 때로는 파괴적으로 치닫는 많은 논쟁의 진짜 원인일 것이다.


'제시된 근거에 대해 각자가 느끼는 설득력의 차이'를 근본적 입장 차로 볼 수 있을 것이고, 바로 여기에서 진정으로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발생한다.


이때 각각의 근거가 가진 내재적, 외재적 차이, 즉, 해당 사실이 얼마나 진실한지, 해당 요소가 결정에 얼마만큼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각 요소가 사안과 얼마만큼 관련되어 있는지, 사안과 별개로 해당 요소가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각 요소는 각기 어떤 층위에서 작용하는지, 해당 요소나 맥락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단순한지, 복잡한지, 잘 알려져 있는지, 숨겨져 있는지 등은 부차적 문제일 것이다.


이번에도 문제는 각자가 지닌 위치성과 당파성이 아닐까. 당신은 무엇에 설득되도록 살아온 사람인가. 당신은 숨겨진 맥락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인가 널리 공인된 사실일수록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통계와 자료에 설득되는 사람인가 사유와 직관에 더 의존하는 사람인가. 당신은 어디에 이입하고 무엇을 배척하는가.


어떤 논쟁에서든 결국 비슷한 사람들이 어느 하나의 근거 뒤로 몰려들어 다른 하나의 근거 뒤편에 모여든 다른 무리의 비슷한 사람들과 진부한 싸움을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맥락, 근거, 요소, 사실, 설명. 무엇이라 부르든 그것을 정교하게 다듬고, 확인하고, 점검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겠으나, 궁극적으로는 무용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239) 트루먼은 포츠담 회담의 준비기간에 베를린의 폐허들을 둘러보았다. 회고록에서 그는 이런 글을 썼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이보다 슬픈 광경은 본 적이 없다...... 이제는 평화가 자리 잡을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술은 도덕이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수백 년은 더 발전한 것 같다. 아마 도덕이 기술을 따라잡을 때가 되면 더 이상 도덕이 지킬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글을 쓴 바로 그가 도덕이 전혀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의 무기 사용을 최종 명령하며 도덕과 기술의 격차를 극적으로 높여버렸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방대하고 아득한 과학적 발견, 과학자들의 개인사, 시대사회적 배경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문외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엮어낸 훌륭한 과학사 교양서를 읽었다.


마이트너는 베를린의 폰 라우에에게 하이젠베르크와 폰 바이츠체커를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두 사람을 대단히 훌륭한 인물로 생각했으나 ‘그것은 실수였다.‘고 했다. 그랬더니 마이트너와 동갑나기인 고귀한 인품의 라우에는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고 이렇게 통찰력 있게 답신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현실의 거대한 비합리성과 화해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상상 속에서 공중누각을 짓곤 합니다. 자신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좋은 면만을 찾아내려는 터무니없는 행동을 한답니다. 그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지요." 하이젠베르크의 행동에 대해 필자가 읽은 가장 설득력 있는 통찰이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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