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옛날엔 그랬어
비움 지음 / 인디언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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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시'는 그저 문학작품으로만 받아들여졌다. 아름다운 표현과 함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세뇌되고 익혀진 감각으로 수능과 시험 문제의 답으로만 여겨진 것이다. 그때의 시는 그렇게 그 존재 자체의 의미와 아름다움보다는 다른 것을 위한 목적으로서만 존재했다. 그런데 교과서적인 학습에서 벗어나 인생을 살면서 우연히 접한 '시'는 학창 시절의 그것과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시 자체를 표현하는 방식의 변화도 있었지만 이것을 온전히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열리니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짤막한 한 줄로도 느껴지는 감각과 표현들이 새롭고 즐겁게 다가왔다. 과거에 학습을 위한 '시'도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펼쳐두니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를 썼을지 호기심과 궁금증이 인다.

 

그렇다고 모든 시가 다 아름답고 이해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시의 특성상 산문처럼 펼쳐두는 글이 아니기에, 함축적 의미와 비유는 때론 난해하게 다가올 때도 있다. 작가에게 의미 있는 사물과 경험에서 서술되는 표현이기에 타인의 관점에서는 어렵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도 분명 '시'만이 주는 경쾌함과 매력이 있다. 짤막하고 간결한 문장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슴속에 와닿아 스며드는 그것만의 특성이 있다.

 

이 시집에는 총 4개 파트, 114개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시인이 직접 그린 27편의 일러스트도 포함되어 있어 일러스트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각 '시'들은 툭툭 내뱉듯 표현되어 있는데 다양한 사물과, 생각, 감정, 시인의 경험들이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시인이 직접 쓰고 그린 '시'와 '시화'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엮어서 감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어떤 시는 일상 속에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경험과 감정들을 담고 있는데 단 몇 줄로 공감 가는 내용들이 있다.

 

또 어떤 시는 다중적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시도 있다. '손가락을 보여 줄까요?'라는 제목의 시처럼 쓰인 글 자체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다른 것의 비유로써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시도 있다. 이를테면, 가난해서 비웠다고 표현한 것이 마음일 수도,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일 수도, 혹은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시인의 생각이 내포된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런 비유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면 그저 시 자체로, 일러스트와 함께 감상해 보는 것도 괜찮다.

 

'깍두기'라는 시는 깍두기가 담겨 있는 형태를 표현한 시인데, 읽으면서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시 중 하나다. 네모난 형태를 보고 '각진 사내'로 의인화하고,  둥글지 못해 굴러가지 못하고 빨간 국물 속에 담겨있는 모습들이 눈에 그려지는 시다.

 

'세탁'이라는 시는 화가 나거나 속상할 때 떠오를 것 같은 시다. 세탁할 때 때리고 뒤섞이고 엎어지는 소리와 형태를 보고 온갖 나쁜 말들을 그 속에 함께 넣고 세탁기를 돌리는 형상이 상상이 되어 속 시원한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깨끗하게 세탁이 끝나면, 더럽고 기분 나쁜 말들은 깨끗하게 세탁되어 좋은 말들만 남고, 구정물 속에 섞인 말의 시체들이 어느새 하수구를 통해 빠져나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우리의 마음도 이처럼 속상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세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님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선풍기'라는 시는 애처롭고 짠 내가 풍기는 시다. 고이고이 아껴서 사용한 10년이 넘은 선풍기에 빗대어 담고 있는 의미들은 쉬이 가볍다고 여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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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된 것이다. 언어로 그림을 그려주고, 맛보게 하며, 느껴지도록 만질 수 있게 해 주는 것, '읽는다.'는 말도 있지만 예술처럼 '감상한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크게 소리 내 울지 않아도 싸한 가슴을 느끼게 해 주는 것, 단정하게 예의가 스며들어 있는 것 … 그게 시가 가진 매력이었다.

에필로그 1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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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면서 보게 된 것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시'에 대한 표현으로 가장 맛깔스러운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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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날씬함과 함축과 비유를 사랑한다. 이것들이 시를 읽는데 어려움을 주기는 하지만 이들 때문에 시가 빛나고 더 아름답다. 다른 문학 장르가 갖고 있지 않은 뚜렷한 매력이 아닌가!

에필로그 1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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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날씬함'이라는 말은 '시' 자체를 형상화할 수 있게 해준다. 시인의 이 글에서, 빛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함축과 비유를 몸에 두르고 날씬한 몸을 한껏 뽐내는 '시'의 모습이 그려졌다. 


저자의 삶과 생각의 모든 부분들이 담겨있어 더 와닿았던 <나도 옛날에 그랬어>를 통해 나만의 이야기도 투영해 보고, 사물과 생각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보는 것도 재미있는 발상의 전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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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옛날엔 그랬어
비움 지음 / 인디언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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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삶과 생각의 모든 부분이 담긴 시를 통해 사물과, 생각,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툭툭 내뱉듯 담담히 기록된 시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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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포켓 가이드북 & 다이어리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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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다음에 꼭 다시 와보리라 마음먹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과거 산티아고 순례길이 종교적 목적의 순례를 위한 길로 많이 알려졌다면, 현재는 종교적 목적보다는 개인의 명상이나 자신의 내면을 찾기 위해 찾아가는 길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약 한 달여 기간 동안 먼 길을 걸어서 이동하는 만큼 쉽지 않은 여정이기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이 책을 통해서 사전에 일정과 준비물을 체크해 보면 좋겠다.

 

완주의 목적도 있겠지만, 오히려 하루하루 걸으면서 느껴지는 게 더 많다는 순례길의 여정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미리 가이드북을 살펴보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사계절>

 

◆봄(4월 중순~5월 말)
스페인 북부는 건조한 날씨가 시작되며 일부 지역은 비가 많이 내린다.

◆여름(6월~9월 중순)
날씨가 너무 덥고 뜨거워 12시 이후에는 걷기가 힘들다.

◆가을(9월 말~11월 중순)
평균 25도를 유지하는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므로 걷기가 수월하다.

◆겨울(11월 말~다음 해 4월 초)
겨울에 눈이 상당히 많이 오는데, 녹지 않고 얼어있는 구간이 많아서 걷기가 힘들다.

 


저자는 순례길을 걸을 때마다 긍정적인 기운과 감동을 받는다고 하는데, 아마 다른 순례자들 역시도 새롭고 긍정적인 미래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이지 않을까? 완주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옛 순례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며 스페인의 또 다른 매력도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아래는 참고하면 좋을 산티아고 순례길 관련 Q&A를 정리해 보았다.

 

Q.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프랑스 길을 걷는다고 하는데, 프랑스 길은 어디인가요?
'프랑스 길'은 순례자가 되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길로, 여러 순례길 중 가장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숙소 체계도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프랑스 길은 프랑스의 생장 피드 포트에서 갈리시아 지방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800km를 걷는다. 스페인 북부의 17개 자치주 중 4개의 자치주를 지나게 된다.

 

Q. 1년 중 가장 걷기 좋은 때는 언제인가요?
대한민국의 날씨를 생각하면 쉽게 연상이 되는데 5~6월의 봄, 9~10월의 가을이 걷기가 좋은 계절이다.

 

Q. 프랑스 길 기준 약 800km를 걷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하루 25km를 걷는다면 약 32일 정도 소요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개인마다 체력과 기간에 차이가 있고, 취향에 따라 며칠 더 머무를 수도 있으므로 각자의 일정에 따라 계획을 세우면 된다.

 

Q.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위험하진 않을까요?
노란색 화살표나 인도에 마크를 표시하여 길을 잃을 가능성을 덜어주고 있으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도시들은 바닥에 조개 모양으로 표시해 놓은 경우가 많으므로 해당 표시들을 따라 이동하면 된다.

 

Q.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순례길을 걷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준비물 또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배낭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최소한의 준비물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등산화: 가볍고 통풍이 잘 되는 것으로 준비한다.
2. 배낭: 보통 45L로 가장 많이 사용한다.
3. 등산용 스틱(지팡이): 필수용품은 아니므로 개인의 선택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4. 침낭: 계절에 상관없이 반드시 필요한 준비물이다.
5. 판초 우비: 겨울보다 여름에 필요하다.
6. 점퍼: 여름에는 어떤 외투든 상관없으며, 겨울에는 따뜻하지만 가벼운 점퍼가 좋다.
7. 그 외: 상/하의 속옷, 양말, 의약품, 세면도구, 수건, 선크림, 스마트폰을 준비하면 좋다.

 

Q. 걸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몸의 이상반응은 무엇일까요?
걸으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발에 물집이 잡히는 것이다. 물집이 잡히면 걷는 자세가 흐트러져서 걷는 것이 더 힘들어지고, 신경도 많이 쓰여서 걷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전에 바세린, 풋크림과 같은 제품을 준비해서 물집이 잡혔을 때 대처하면 좋다.

 

Q. 식사는 어떻게 하나요?
보통 아침은 6~7사이에 일어나 간단히 먹고 출발하며, 점심은 시간에 맞춰 레스토랑이나 아예 먹지 않고 걸어갈 때도 많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12시 30분 이후부터 점심 식사가 가능하니 참고하여 레스토랑을 이용하면 된다. 저녁식사는 마트에서 요리 재료를 사다가 만들어 먹기도 하고 레스토랑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도 하는데 다른 순례자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함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친해지는 방법이다. 참고로 저녁식사는 6시 30분 이후부터 식사를 할 수 있다.

 

Q. 순례자들은 어디에서 머무나요?
순례자를 위한 숙소를 '알베르게'라고 부르는데 공립과 사립에 따라 가격이 차이가 난다. 알베르게에서는 보통 남녀 구분 없이 배정되고, 밤 10시면 문을 닫고 아침 8시에 비워줘야 하니 참고하자.

 


이 책은 33일의 일정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여정을 소개하고 있는데 <생 장 피드포트>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하루하루의 이동경로와 이동거리, 소요시간, 도시별 알베르게, 순례길을 지나는 도시 및 성당과 문화재, 지도, 참고하면 좋을 팁과 주의사항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있다. 더불어 나의 순례길을 기록할 수 있는 플래너 및 다이어리 페이지도 추가되어 있으니 잘 활용해 보자.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정을 함께 걷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 여정길에 지나는 도시 중 기억에 남는 도시 몇 곳을 살펴보려고 한다.

 

<부르고스>
스페인 북부 문화의 도시이자 경제의 도시로 부유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교역과 관광의 중심지이자 2차 산업이 발달하여 밀을 주로 생산하는 스페인 북부의 대표 도시이다. 고대 교회와 수녀원이 많은 역사의 도시이며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부르고스 고딕 성당도 만나볼 수 있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중앙에 위치한 큰 도시에 속한다. 산타 클라라의 로얄 수도원, 산 후안 드 세스틸로스의 예배당, 사라비아 극장 등을 이 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레온>
스페인 북부의 대표적인 도시인 레온은 과거 레온 왕국의 수도였다. 레온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약 300km 지점에 도착했다는 표시를 해주는 도시이기도 하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이 많은 도시다.

 

<아스트로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250km 지점 정도에 있는 도시로 2000년 전에 로마인들에 의해 세워진 유서 깊은 도시이다. 가우디가 초창기 디자인한 건축물인 네오 고딕 양식의 주교관 건물도 만나볼 수 있으며, 이외에도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시청이 있는 마요르 광장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아스트로가 대성당도 만나볼 수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로 기독교 3대 성지이기도 하다. 성당 안에 들어가면 '영광의 문' 중앙에 앉아 있는 성 야곱을 볼 수 있다.

 


주변의 것들에 너무 많은 시선을 빼앗겨서 놓치고 있는 것들을 배낭 하나 메고 걸으면서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어쩌면 평생에 다시없을 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발에 진물이 나고, 지치고 힘들지만 그저 펼쳐진 자연과 문화재를 둘러보며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길이기에 사람들은 힘든 여정에도 그곳을 방문하고 기억하나 보다. 그래서 그 길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인종, 종교, 남녀 구분 없이 모두 친구가 되는 것이리라. 모두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지만 그 길 위에 수많은 사연과 고민을 안고 걸어가는 이들이 결국 찾게 되는 것 중의 공통점은 내일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지 않을까? 그들은 그 길 위에서 무엇을 찾고, 무엇을 내려놓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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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포켓 가이드북 & 다이어리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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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꿈꾸는 산티아고 순례길. 어디서부터 출발해서 일정은 어떻게 짜고, 어떤 준비를 해야할까? 이 책을 통해 그 시작을 위한 첫 준비물에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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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플랜트 트리플 11
윤치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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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플랜트>에는 세 편의 단편이 담겨있는데 각각 연애-결혼-이혼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다. 보통의 연애와 사랑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식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잎맥을 가지고 있듯이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 속 사랑과 연애, 결혼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하니깐'이라는 말은 어쩌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한 적절한 핑계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도 비슷한 듯 보이나 다른 속사정을 지닌 그들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세 편의 단편 속에는 공통적으로 '나'와 관계가 있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리고 모두 남성의 눈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스토리상 언급되는 작지만 중요한 부분들은 늘 그렇듯 일상 속에서 가볍게 넘기며 비껴간다. 그래서 그들은 정작 서로 그들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의 속 깊은 마음 또한 알지 못한다. 세 단편 모두 엇나가는 서로의 감정과 생각들을 '나'라는 사람의 관점에서 관찰하듯 기록되고 있는데 이들의 관계에 있어 '서로'는 끝끝내 이해되지 않는 타인일 뿐이다.

 

 

이 단편들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첫 번째는 관계론적 입장에서 느껴지는 복잡함이 있다. '나와 너'. '여자와 남자', '세상과 나' 가 서로 다른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뭉개듯이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일련의 관계에서 한쪽은 만족스럽지만, 다른 한쪽은 억울함과 불만족이 쌓이기 시작한다. 두 번째는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생각의 대조를 확인할 수 있는데  '초승달과 그믐달', '팜나무와 야자나무', '완벽함과 불안정함', '첫 번째 결혼 종용과 이혼 후 인내심 발휘' 등과 같은 대조되는 단어들을 통해서 확인이 가능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우울함과 답답함이 느껴진다. 마치 벽을 마주하고 있는 듯, 마주보지 못하고 누군가의 등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불편함과 불안함이 내내 공존 한다. 우리가 누군가와 헤어진다면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책에 실려있는 감정 상태 때문이 아닐까?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때, 상대방의 입장이나 상황은 덮어두고 내 입장에서 생각하여 행동할 때, 그저 방관하는 상대방을 알아버렸을 때 우리는 '헤어짐'이나 '무관심'이라는 상태로 돌아서게 된다.

 

 


<일인칭 컷>에서 '나'의 여자친구인 '희주'는 남자친구인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혼식을 하겠다 선언하고 함께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말레이시아 여행을 하며 '나'의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희주'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이때 '나'의 과거 회상을 통해 희주와 사내커플이었을 당시의 이야기가 잠깐 거론된다.

 

'나'는 왜 '희주'가 비혼식을 하고자 하는지, 사진을 왜 일인칭 컷으로 찍으려 하는지, 과거 성희롱을 겪고 난 이후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표준화된 사회의 규범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기준안에서 "평가받고 차별받고,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나'의 모습을 통해 관습은 무엇이고, 또 그것을 답습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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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없이 희주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지만 희주의 눈에 보일 풍경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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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밀 플랜>은 '나'와 '현영'의 신혼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어딘가 늘 불안해 보이는 '현영'과 계획적이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나'의 대조적인 모습은 신혼여행지에서조차 동일하게 반복되는데 이는 나의 착각 속에서 만들어진 상황들이다. '내가 그녀를 바꿀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그녀는 나와 같은 목표를 지닐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력이 더해져 진행된 그녀와의 결혼은 처음부터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손목을 긋거나, 수면제를 먹어 응급실을 가는 등)

 

내 입장에서 '내'가 완벽한 밀 플랜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현영'은 이를 망치는 사람으로 표현되는데, 나중에 '나'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변화를 강요하는 게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반성하지만 이후 그들 사이에는 대화가 사라진다. 그들은 그렇게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현실을 그저 순응하는 것으로 상대를 두고 각자의 생존방식으로 살아간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내 방식대로 휘두르고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였다. 순응이라는 이름으로 덮여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인연은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절대 묶이지 않음을,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연은 '정답'을 찾으려는 꼬인 실타래의 시작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혼 경력이 있는 '백현준'과 그의 꽃집에 방문하는 '이미나 차장'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러브 플랜트>는 한 번의 이혼소송을 거치면서 과거의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백현준'의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일방적으로 아내에게 밀어붙였던 결혼 종용, 그것은 그의 오만함과 자신감, 그리고 망상에서 비롯된 어설픈 치기에서부터 시작된 행위였다. 그런데 자신이 그토록 믿고 있던 신념이 이혼소송을 통해서 파괴되고 깨지면서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는데, 이로 인해 일방적 고백에 대해 공포와 분노를 느끼는 일명 "고백할 때 제발 꽃 사지 마 공포증" 을 겪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이혼 후 찾아온 '이미나 차장'에 대한 호감은 이제 과거와 달리, 율마 화분을 주는 것으로 은근한 마음만 표현하고 더 나아가진 않는다. '백현준'은 식물을 키우면서 사람과의 관계에도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미나 차장'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식물의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배운다.

 

과거 남들이 탐하던 것을 가졌다는 우쭐함과 오만함에 사로잡혀 선택했던 결혼이 결국 이혼소송을 통해 깨지면서 '관계'에 대한 관념을 재정립을 하게 된 백현준, 그의 변화에서 배웠듯이 공식적인 연인이나 결혼이라는 타이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노력, 그리고 스스로의 감정을 컨트롤하고 책임지는 행위가 더 우선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틀린 감정이 우선할 때는 온전한 감정적 홀로서기를 통해 마음을 다잡아 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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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백현준은 이미나 차장에 대한 호감이 커질수록 자신의 일방적인 감정이 상대방을 곤란하게 할까 두려워 더욱 행동을 조심했다.

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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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책의 무게에 비해 담겨있는 내용은 묵직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연애-결혼-이혼이라는 소재를 빌어 상대를 이해하는 것,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 타인을 존중하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누구나 '내'가 가장 우선시 되겠지만 적어도 나와 너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때론 상대를 진정으로 헤아려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의 마음도 필요하다는 것을 마음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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