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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남자를 죽여드립니다 ㅣ 어쩌다 킬러 시리즈
엘 코시마노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5월
평점 :
손에 잡는 순간 놓기 어려운 흡입력으로 마지막까지 읽게 되는 소설 <당신의 남자를 죽여드립니다>는 유쾌하지만 현실적 웃픈 상황들이 적절히 가미된 미스터리 소설이다. 정신없고 바쁜 일상적 모습부터 시작해 아등바등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 갑작스레 닥친 어리둥절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차분하게 해결해 나가려고 하는 의지력까지 흔한 엄마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고 매우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다소 엉뚱한 면모도 보이지만, 어쩐지 자꾸만 응원하고 싶고 지켜보게 만드는 그녀의 매력은 왠지 전남편 스티븐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결혼 후부터 자신의 뜻대로 삶을 살지 못했을 핀레이의 삶은 폭풍이 휘몰아치듯 휩쓸려 지금까지 흘러왔을지도 모른다. 육아를 하느라 자신을 챙기는 일은 고사하고 변변찮은 외출복 하나 없이 지내며 버티던 그녀가 갑작스레 맞은 이혼은 얼마나 날벼락 같았을까?
마을을 지킨다는 핑계로 자신의 집과 마을 곳곳을 훔쳐보던 이웃 주민에 의해 갑작스레 탄로 난 남편의 외도 그리고 이혼. 이후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바람피우던 미녀 부동산 중개인과의 약혼은 핀레이에게 감당할 수 없는 현실적 문제들을 떠안게 만든다. 소설을 써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지만 한창 손이 많이 가는 네 살과 두 살배기 아이들을 돌보느라 약속한 마감일이 코앞에 닥쳐도 글 쓸 시간조차 내기 힘들다.
여기에 더해 아이들에게 관심도 없는 전 남편과 약혼녀는 자꾸만 아이들을 데려가겠다는 위협을 가하고 이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는 그녀는 어떻게든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날 방법을 강구하지만 딱히 대책을 찾지 못한다.
이날은 여느 날과 같은 날이었지만 특히 더 누구 하나 죽이고 싶던 정신없던 여느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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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30분.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여차하면 누구 하나 죽이고도 남을 만큼 곤두서는 시간이다. 특히 10월 8일 화요일 아침, 나는 7시 45분부터 이미 살인 충동을 느꼈다.
7페이지 첫 문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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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출판 에이전트와 약속이 있는 상황에서, 메이플 시럽 범벅인 두 살배기 아기의 기저귀를 채우는 사이 유치원에 가야 하는 네 살배기는 제 머리를 직접 자르겠다고 설치다가 피를 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수면 부족 상태로 정신이 없는 와중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진 베이비시터, 필터 끼우는 걸 깜빡한 탓에 넘쳐 흐르는 커피가루, 하나뿐인 외출복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하고 약속 장소에 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다급히 찾은 강구책이 전 남편 스티븐이었고 급하게 두 살배기 아들 재크를 남편에게 맡기고 10시 36분이 되어서야 겨우 비에나에 있는 파네라에 간신히 도착하게 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데, 한 식당에서 그녀가 써야 할 로맨스 스릴러의 이야기를 출판 에이전트 담당자인 실비아와 나누던 중 자꾸만 느껴지던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자의 시선, 그것은 '어쩌다' 프로 킬러로 오인받게 되는 계기이자 의뢰를 받게 되는 시발점이 되는 지점이다.
갑작스레 겹친 우연과 필연, 여기에 더해 적절한 상황까지 더해지면서 어쩌면 절박했을 핀레이에게는 단 한 번뿐인 기회로 여겨지게 된다. 하지만 만약 이 중 단 한 가지라도 충족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하하 웃고 넘기며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겼을 것이다. 그리고 결단코 오해를 진실로 만드는 위험천만한 일은 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우연과 필연, 상황의 삼박자가 더해지면서 이 어이없는 '어쩌다 킬러' 행세를 자신도 모르게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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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해야 할 현실 문제가 널렸는데, 베이비시터도 없이, 더 이상의 가불도 없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마감일, 연체된 자동차 할부금, 수금원의 끊임없는 독촉 전화... 이런 내 인생에 해리스 미클러까지 끼어들다니, 참 징글징글했다.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그나저나 5만 달러라니.
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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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레이는 식당에서 힐끔 거리던 옆자리 여자가 접시 아래 놓고 간 쪽지를 보고 헉할만한 금액에 차마 쪽지를 버리지 못했고, 궁금한 마음에 조사만 해본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새 의뢰를 수행하는 상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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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하고 조용한 차고에 앉아 잠시 생각했다. 내 아이들에 대해, 청구서에 대해, 스티븐과 테리사에 대해.
5만 달러로 해결할 수 있는 온갖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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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앞에 놓인 현실적인 문제들은 그녀를 낭떠러지로 내몰았고, 10분 이상 혼자 욕실에 있는 것조차 힘든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그리고 5만 달러는 핀레이의 이러한 현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열쇠가 되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한 대화를 옆자리에서 나누는 소리를 들었다 해도 어떻게 모르는 사람을 프로 킬러로 오인하고 의뢰를 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핀레이와 같이 상대방도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에 '어쩌다' 맞춰지게 된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외모를 철저히 감춘 핀레이의 변신한 모습도 한몫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사실 핀레이는 식당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변장(금발 웨이브 가발 스카프로 가리고 선글라스를 꼈으며, 찐한 립스틱을 바른 모습이었다)을 하고 식당에 들어선다. 여기에 음침하고 무서운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것을 듣고 너무 절박했던 옆자리 테이블의 그녀는 철저히 자기만의 상상 속에서 그녀를 프로 킬러로 오인하게 된 것이다.
핀레이는 처음에 그저 궁금했다. 대체 얼마나 나쁜 남편이길래 이토록 와이프가 죽이고 싶어 할까? 청부살인을 종용할 만큼 어떤 나쁜 일을 저지른 것일까? 그래서 단순한 호기심에 그녀의 남편 '해리스 미클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게 된다.
첫 조사는 소셜 미디어 계정 이곳저곳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페이스북, 링크드인,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그 속에서 핀레이는 해리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된다. 마흔두 살이며, 페트리샤 미클러의 남편이고 전도유망한 서비스 회사의 고객 관리 총괄 부사장임을 알게 된다.
더불어 그가 자주 가는 곳과 그 외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게 되면서 핀레이는 비로소 남편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다. 그리고 왜 아내인 페트리샤가 그녀에게 그런 의뢰를 했고 왜 나쁜 사람이라고 칭했는지를 알게 된다.
조사는 이어나갔지만 핀레이는 끝까지 의뢰를 수행할 생각은 정말 결단코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녀는 그저 엉망진창인 하루를 바로잡기 위해 돈이 필요했을 뿐이고 순전히 호기심에 조사를 이어 나간것 뿐이었다.
그런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이 어이없는 '어쩌다' 의뢰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서로에게 윈윈으로 끝나는 결말을 만들어낸다. 이후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의뢰는 지속되고, 점점 더 미션은 강력해진다. 그리고 그만큼 의뢰비는 고공행진한다.
스스로를 운이 좋지 않은 사람으로 여겼던 핀레이는 어쩌다 우연찮게 마주하게 된 '어쩌다 킬러' 역할 덕분에 꽉 막혀있던 소설도 술술 쓰게 되면서 암울했던 그녀의 미래에 활짝 꽃이 피기 시작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수많은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데,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혼자 동동거리는 핀레이의 모습에서는 답답함과 서글픔, 폭발할 것 같은 예민함을, 상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직면하면서는 불안함과 걱정을, 사이다 같은 전개에서는 마치 내일 같은 상쾌함과 즐거움,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더불어 뻔뻔한 전 남편과 약혼자를 볼 때면 어쩐지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과 얄미운 감정이 불쑥불쑥 샘솟는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통쾌했던 점은 자신을 실패자 혹은 불행하고 매력 없는 사람으로 여기던 그녀가 비로소 자신의 매력을 알게 되고 이를 뒷받침하듯 매력적인 남자들이 그녀 주변에 나타나 관계를 맺게 된다는 점이다.
결혼과 육아를 통해 망가지던 한 여성이 이혼을 겪고 어이없는 오해를 받게 되면서 한때는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건강한 관계를 다시 만들고 자신의 일을 당당하게 해내면서 인정받는 모습은 어쩐지 감격스러움 그 자체다.
자신감을 잃고 스스로를 챙기지 못했던 그녀가 경찰도 해내지 못한 일을 서슴없이 해내며 자신과 가족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생까지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주는 것을 보면 절로 박수를 치게 된다. 그리고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이 이야기 속에 어떤 것들이 숨어있는지, 또 우리가 진짜 소중히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더불어 관계 속에 숨겨진 그녀 가까이에 있는 이들, 이를테면 친언니나 베이비시터 베로의 이야기들도 꼭 자세히 살펴보기를 바란다. 사실 이것은 그녀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사람인지, 또 사소한 우연이 어떻게 인연으로 이어져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인데, 앞서 현실감에 치여 가려져 있던 그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조력자 없이 혼자 고군분투하던 핀레이가 조력자를 얻고 어떻게 안정감을 찾으며 앞으로 나아가는지, 또 소설은 어떻게 대박이 났는지, 그녀의 '어쩌다 프로 킬러'는 어떤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었는지는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초반에 뒷목잡는 상황에 혈압 상승으로 쓰러질 수도 있으니 미리 대비하고 첫 페이지를 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