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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 쌤의 비밀 상담소 - 사춘기 5, 6학년을 위한
김선호 지음, 신병근 그림 / 노르웨이숲 / 2024년 2월
평점 :
사춘기 5, 6학년을 위한 ‘비밀 상담소’ 책이라고 하니까 중고등학교 교사이며 자식이 이미 직장인이 된 내가 무슨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의아심을 가졌다. 그러나 첫 번째 고민 상담소부터 제대로 각 잡고 읽게 되더라. 친구가 자꾸 본인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고민인데 이 고민을 접하니 인간의 모든 고민과 해결책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이다 쌤의 비밀 상담소>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나 학부모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확신도 하게 되었다.
몇 달 전에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에서 친구가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싸움하고 학폭위원회까지 넘겨지는 사건이 있었다. <사이다 쌤의 비밀 상담소>의 고민 상담처럼 한 학생이 다른 친구가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었고 상대 학생은 노려보지 않았다고 반박했으며 감정이 격해져서 심각한 몸싸움을 한 사건이다.
일반 학교에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자초지종을 다투고 학폭위에 넘겨 처벌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사이다 쌤의 비밀 상담소>를 읽다 보니 우리는 그동안 근본적인 해결책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학생의 잘잘못을 따져 처벌하기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었나라는 반성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김선호 선생에 따르자면 많은 사람이 째려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오해인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오해를 하게 되는 것일까? 상당수가 본인 스스로 째려본다고 생각한 친구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그 악감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저 아이가 나를 기분 나쁘게 쳐다보잖아. 그러니까 내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라는 이유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본인이 어떤 이유로 그 친구를 싫어하는지부터 찾아내서 본인이 던졌던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아, 내가 사실은 그 친구의 말투를 싫어했던 거구나. 그 말투가 계속 귀에 거슬렸던 거구나. 그럴 수 있지’라고 인정하면 본인이 던진 마음을 되찾고 굳이 다른 이유를 찾아서 그 친구에게 품은 나쁜 감정을 그럴듯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초등학생의 고민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오십 대 후반을 달려가는 내가 지금껏 풀지 못한 내 평생 과제였기 때문이다. 나는 늘 한참이 지나서야 그 당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고 이불 킥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문제를 두고 늘 순발력과 재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이다 쌤의 비밀 상담소>를 읽고 나서야 순발력과 재치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내성적이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남다르기 때문인 것을 알았다.
내성적이고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타인이 뭘 원하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섣불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선뜻 말 못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늘 하고 싶은 말을 그때그때 못한 것은 내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내가 타인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삼 김선호 선생의 통찰이 위로된다. 좀 더 일찍 이 책이 세상에 나왔더라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엉뚱하게 나를 자책하면서 보낸 수십 년의 세월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고민에 대한 해결책은 참 쉽고 간단하다. 원하는 걸 곧장 말하기 어려울 때는 대답을 미루는 것이다. “잠깐, 생각 좀 해 보고….” 잠깐 시간을 두는 것은 뭘 선택할지 고민하려고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 원하는 바를 말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몇 초 정도 여유를 가진 다음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이번에는 짬뽕이 아니고 짜장면을 먹고 싶어”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엄마의 잔소리 문제, 부모님의 이혼, 용돈 문제, 학교에 가기 싫다는 생각, 여자 친구와의 스킨십, 야한 동영상, 자해, 다이어트, 낮은 자존감 등에 관한 살아 있는 고민이 등장하며 저자 김선호 선생은 관념적이고 뻔한 조언이 아니라 누구나 이 책을 읽기만 한다면 쉽게 실천할 수 있고 효과 만점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책이 참으로 신비롭다는 것은 학생, 학부모, 교사 등 어떤 독자가 읽더라도 그 독자의 처지에 맞게 읽힌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것처럼 세 살 고민이 여든 고민까지 간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평생 지고 갈 수도 있는 고민을 이 책 권을 읽음으로써 말끔히 해소할 수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