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이 워낙 정치적으로 편향된 곳이라 어이없고 황당한 장면을 자주 보는데 오래전에 희한한 문자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다. 지역 국회의원이 대통령한테 감사 문자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정치를 모르지만 적어도 학교 때 배우기로는 대한민국은 삼권이 나뉘어 서로를 견제하도록 설계된 국가다. 기껏 행정부를 감시하라고 국회의원 만들어줬더니 행정부의 수장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줬다고 주인을 따르는 개 마냥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양새라니. 감시견을 하라고 뽑아놨더니 애완견이 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긴 그 국회의원 자신은 자랑스럽기도 하겠다.
며칠 전 나도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주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일이 있었다. 주말이 되어 본가에 왔더니 얼마 전 새로 낸 <성공을 부르는 창업 노트>가 널브러져 있었다. 집사람과 딸아이가 내 책을 유심히 읽는 경우가 자주는 아니어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대뜸 아내가 ‘당신 책을 도윤이가 과제를 할 때 참고를 많이 했어’ 이러잖는가. 내가 책을 내면서 그다지 영광스러운 일은 없었는데 아내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찌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르겠다. 아내의 말을 듣고 있던 딸아이는 급기야 내 책의 글귀를 줄줄 암송하기 시작했다.
“모든 인간이 창업자들이 만든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 순간 창업자들이 만든 상품을 이용하고 ~”
내 책의 쓸모가 이토록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며칠 뒤 퇴근하고 쉬고 있는데 딸아이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첫 마디가 ‘아빠, 고민이 있어’였다. 이 또한 설레는 말이다. 다 큰 딸아이의 고민 상담 상대가 된다는 것 만큼 세상의 아빠에게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딸아이의 고민은 지금 인턴으로 다니는 직장의 퇴사문체였다. 원래는 이번 달 복학을 하면서 그만두어야 하는 직장인데 인턴이지만 재택근무를 하며 200만 원이 넘는 급여, 명절 상여금, 통신비 지원, 복지 카드까지 주는 자리를 포기하기는 아까웠던 모양이다.
나름 고민을 하다가 결국 퇴사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월차였다. 제 딴에는 퇴사를 하면서 몰아서 쓸 생각이었는데 요새 회사가 워낙 바빠서 ‘팀장’님이 당연히 월차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말을 하는 통에 월차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고. 이런 경우에 기성세대가 하는 충고는 정해져 있다. 월차는 너의 권리이니 눈치를 보지 말고 당당히 행사해라. 그게 싫으면 월차 수당을 받는 재미로 참고 다녀라. 그만큼 회사가 너를 좋게 보고 쓸모가 있다는 뜻이니 나쁜 것만은 아니다. 등등.
물론 딸아이는 해결책이 아니라 자신의 ‘짜증’과 ‘분노’에 대해서 공감이 필요해서 전화한 것이다. 남성 호르몬이 줄어든 나는 공감함으로써 딸아이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을 했지만 남성 호르몬이 부쩍 늘어난 아내는 ‘왜 과감하게 월차를 사용하겠다고 말을 하지 않았냐’는 쓸모없는 질타를 함으로써 딸아이의 짜증을 더욱 부추겼다. 그러나 딸아이는 언제나 제 엄마의 팬이다. 딸아이에게 나는 훈육해야 할 철없는 아빠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