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몽테스팡 수난기 - 루이 14세에게 아내를 빼앗긴 한 남자의 이야기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강문정의 문화 에세이인 <그가 사랑한 베르사유>를 읽었는데, 몽테스팡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그 서적에서의 언급이 가장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의 귀족가문 여자들은 결혼여부와 관계없이 왕에게 선택되기를 바랐으며, 국왕의 관심을 받으면 도리어 남편이나 가족들은 그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더구나 ‘태양왕’의 시절이 아닌가. 그러나 왕에게 후작부인을 뺏긴 우리의 몽테스팡 후작의 거동은 이러하였으니.
『젊은 혈기에 좌충우돌하면서 귀족들이 여는 문학 살롱과 공적인 장소에서도 자신의 아내와 루이 14세의 관계를 떠들어대며 복수심에 불타 있었다. (…) 심지어는 왕궁 무도회에서 아내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그가 사랑한 베르사유 中 p. 112)
<그가 사랑한 베르사유>는 루이 가(家)의 프랑스 왕정을 중심으로 베르사유궁의 자취를 더듬는 책이기에, 몽테스팡은 지나가는 에피소트로 등장한다. 그러니, 여기서 몽테스팡은 그저 오쟁이 진 남편의 안타까운 면모를 객관적이고 담백한 필체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장 퇼레의 소설은 이 남자의 인생을 소재로 하여 한 편의 희극을 선사하고 있다.
장 퇼레가 이렇게 훌륭한 작가인 줄 난 미처 몰랐다. 만화를 그리기도 하고, 시나리오도 쓰면서 희극배우, 영화배우로도 활약하는 그는 글쓰기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랭보를 위한 무지개><오랜 고통><중력의 법칙><오 베를렌><자살가게>등 10여편의 저작이 있다. <나, 프랑수아 비용>은 ‘전기소설 상’를 수상했고, <달링>은 영화화되었다. 이 책으로는 ‘2008 메종 드 프레스상’을 수상했다.
열림원에서 그의 작품을 많이 출간했는데, 번역은 모두 성귀수씨가 맡았다. 열림원은 주요 작가마다 전문번역가가 한명씩 붙어있는 것 같다. 불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굵직한 책의 번역 편수도 많고, 실제로 시인으로 등단도 하신 글쟁이다. 이 책은 번역의 몫이 아주 컸는데, 그런 점에서 역자에게 고마울 만큼 그야말로 ‘역작(力作)’이다.
부부금술이 지나치게 좋은 몽테프팡 후작 부부, 흠이 있었다면 빚이 좀 과하게 많았다는 것, 더 문제는 이 후작이 돈 버는 수완은 없고, 어떻게든 한 몫 해보려고 자꾸 전쟁터에 나간다. 그런데 또 병력을 꾸리느라 빚져서 전쟁나가고 빈털터리 되어서 돌아오는 짓을 되풀이한다. 그 와중에 또 애는 낳아요.
몽테스팡 애편네는 특유의 입담으로 사교계에 입문하고, 공작부인 추천으로 왕비의 규방에 들어간다. 여색이 짙은 애편네는 자식과 남편은 나 몰라라 하고 궁궐에 가서 왕의 눈에 띄려고 몸을 사리지 않는다. 물론 이 얘기는 상식적이지만, 이 소설은 후작부인은 거의 다루지 않고, 후작의 상황과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꾸린다. 때문에 더 재밌을 수 있었던 부인의 행태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낳는다.
몽테스팡은 점점 미쳐간다. 믿었던 애편네의 배신과 쪼들리는 가난, 거기에 왕이 가하는 압박과 세상의 조롱. 모든 것이 그를 못 살게 굴지만, 그에게 정녕 힘든 것은 어쩌지 못할 부인에 대한 사랑이다. 애들은 또 어떤가. 큰 딸은 엄마의 빈자리에 시름시름 알아가고, 아들놈은 지아비와 다르게 신분의 격을 따져가면서 안하무인이 된다.
‘아주 지랄 똥을 싼다’고 할 만큼, 후작의 남다른 행동거지는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리고 쫓기는 신세가 되어 스페인으로 도망을 가, 몇 년을 지내고 다시 돌아온다. 부인은 여전히 궁에서 애를 줄줄이 낳고 룰루랄라지만, 곧 루이14세가 그 여인에게 싫증을 느낀다. 후작은 그에게 부인이 돌아올 것을 기대함으로 마지막으로 그녀를 위해 또 빚을 지고 집을 꾸민다.
그러나 곧, 죽을병에 걸리는 후작. 세상만사는 왜 그에게 다 요지경인지. 그러고 나니, 후작부인은 수도원으로 쫓겨나 후작에게 빌빌대기 시작하고 그는 차갑게 거절한 후, 생을 마감한다. 후작의 마지막은 안타깝게 그려내고 있으나, 후작 부인의 생 마감 장면은 그야말로 ‘개나 물어갈’ 장면으로 그리고 있다.
이 소설, 재밌다. 콩트이며 시트콤 같다. 장이 넘어갈 때마다 ‘와우~와우~와우~와웅~’ 하면서 스스로 배경음악을 깔게 된다.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 부인에게 유린당함은 생각지도 않고 오직 왕에게만 대적할 만큼 소중하게 여겼던 그의 아내와 가정, 그러나 지킬 수 없는 수순이었고, 주인공은 무식하고 무능력한데다 무모하기까지 했다. 거기서 터져나오는 재밌는 장면들이 가히 압권인 책이다.
비극적인 사랑을 희극적인 필체로 두드러지는 웃음과 함께 전달한 저자의 능력을 높이 산다. 꿀꺽꿀꺽 잘 넘어가고, 다음 내용을 보지 않고는 잠이 안 올 정도로 재밌었다. 가끔 도를 넘는 그의 유머는 몰입된 독자를 끙끙거리게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