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자
배수아 지음 / 열림원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앞날개에 있는 배수아의 사진이 인상이 강했던 탓인지 그녀의 책들을 볼때도 그런 느낌으로 마주 앉게 된다. 일단 이 책의 제목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워낙에 모든지 독학(?)을 좋아하는 나는  어떤 것을 배우는데 독학으로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생각과 실천의 문제는 별개이지만.  책을 읽고 아니나 다를까 주인공은 독학자의 길을 접어들기 위해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그저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직업을 택하며 마흔살까지 관심과 집중할 대상을 위해 독학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한때 나도 직업을 그저 생계수단으로만 생각하고 내 관심은 일터가 아닌 곳에 두려고 했던 적이 있다. 문제는 직업이 너무 고된 일이라 관심과 에너지를 그 외에의 곳에 쏟아붓기 에는 역부족이었다. 일터에서의 시간은 일종의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고, 일터 밖으로 탈출했을 때 나는 이미 그 힘을 다하여 탈진된 상태였다. 그런 나날들이 하루이틀 나의 일부를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결국 나는 생계를 위한 노예였거나, 특별한 열정이  없는 그저 그런 한 인간일 뿐이라는 자괴감이 그때 늘 엄습하곤 했다. 그 때 느꼈던 불안감, 고독감, 생의 무게....

이 책을 통해 젊은날 어느 시기의 나의 고뇌를 되돌아 보는 것 같다. 마흔살까지 노동을 하며 밤에는 세가지의 외국어를 공부해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싶다는 그 문구만으로도 이 책의 인상은 나에게는 강하다.  배움, 공부, 독서를 신성시하는 내 자신, 그러나 나는 고독하고 외롭고 늘 혼자이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세상사람들이 다 그렇게 고독하게 독학하고 있는 것일까.. 인생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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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 된건 언젠가 인터넷에서 인용된 '공부할 만한 사람'이란 부분을 보고서 였다. 이제서야 허수경이 시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뚱뚱하고 우울했던 소녀는 시인으로 자라서 10년째 독일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이란 학문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유적을 발굴해내는 일 생활이 상상도 안가는 고대인들의 자취를 찾아다니는 행위는 무언가 인류의 근본을 밝혀가는 내가 익히 보았던 대학의 학문들과는 다른 어떤 근엄한 것이 있는 듯 했다.

언어를 알지 못하는 내가 태어난곳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 가서 낯선 이국어를 대했을 때의 그 홀가분함이 무얼까 생각해 본다. 내가 하는 말도 알아듣는이 없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들이 하는 말도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무, 암흑의 세계이자 자유 해방의 느낌이 다가올 것만 같다. 그리하여 다시 태고적으로 되돌아가 아기처럼 새로이 세상을 배우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부란 것, 그리고 학문을 한다는 것의 의의를 살면서 어디에다 둘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 10년이면 금수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곳의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낯선 곳으로 그것도 '고고학'을 공부하러 떠난 것은 우리 같은 범인들은 감히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그녀의 인생이고 그녀의 몫이고 다만 그녀가 그곳에서 그리하여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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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사과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구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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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구판절판


어떤 선배를 보면 저 분이야말로 서양에서 공부를 할 만한 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내하는 저력이 있고 지겨운 것을 무시할 만한 신경줄이 있고 작은 것도 세심하게 가리고 또 큰 것은 큰 것대로 잘 세우며 한번 읽은 것도 스무 번 서른 번 다시 읽고, 거짓말 못하고, 뻐기지도 않고, 그리고 철저히,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고 ......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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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어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척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는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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