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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커리큘럼 - 고민하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공부의 길
이계삼 지음 / 한티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복잡한 게 필요 없다. 기도할 수 있는 정신과 노동할 수 있는 몸이 있으면 된다는 거죠. 저는 이것을 근대적 교육 언어로 번역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인문학'과 '농업'이 아닐가 생각합니다.' -p 328~329
이계삼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무언가 마음이 경건해진다. 그의 글에서는 종교적이지 않으면서도 어떤 종교적인 힘이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글과 삶의 일치에서 오는 힘이 아닐까 싶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분을 꼽으라면 이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이계삼 선생님의 글에는 삶이 있고, 생각이 있고, 행동이 있다.
학교에 다니면서 무언가 마음 둘 곳이 필요했다. 학교라는 공간이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여유롭고 한가한 직업이 아니라는 걸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은 잘 알것이다. 일관성 없고 산만한 일들. 아이들의 감정을 이리저리 돌보고 살펴야 하는 감정 노동, 게다가 이해할 수 없는 공문에 업무들까지. 이런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의미를 두려면 무언가 의미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이계삼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이계삼 선생님께서 쓰신 글들을 찾아서 읽게 되었다.
글들을 통해서 알게 된 선생님의 명쾌하면서도 따뜻한 감성은 나를 감동시키기 충분했다. 게다가 같은 교직에 있으시면서도 끊임없이 삶의 현장을 다니시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이야기해주고, 가르쳐 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같은 교사로서 너무나도 존경스러운 분. 마음 속 한 구석에 존경하는 교사, 본받고자 하는 교사의 표상으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았다. 그래서 일까? 선생님의 사직이 너무나 안타깝고 허무했다. '저런 분도 학교 현장을 떠나시는데 나같은 교사가 현장에 남아 있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은 생각에 한동안 참 허탈했었다. 학교의 교육불가능성을 이야기 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지켜야 한다. 아이들 곁에 있으면서 아이들 손을 잡아줘야 한다 하셨는데.....
사직 후 선생님께서는 고향인 밀양의 송전탑 건설 반대현장에서 활동하시고, 작은 귀농학교에서 일하시고 계신다 하셨다. 얼마 전 송전탑 반대 운동과 관련해 텔레비전 뉴스에서 선생님의 모습을 뵈었더랬다. 이 책은 학교를 사직하기 전 학교에서 마직막 해동안 야자감독을 하시며 쓴 글이다. 그동안 선생님께서 읽은 책들과 영화들에 대한 감상과 그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현대 사회에 비추어 쓰셨는데 앉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르게 하게 되는 글들이었다.
'공부의 이유'와 '이 시대를 공부하다'. '희망을 공부하다'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앞으로 사회에 나아갈 청년들을 위한 글이라고 하셨다. 현대사회가 파멸을 향해 나가는 체제임을 똑바로 인식할 줄 알고, 공동체와 농업에의 희망과 믿음을 바탕으로 삶을 다시금 가꾸어 나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는 슈마허의 노동론에 기초하여 '복지'의 관점을 재구성해야 한다. 국가와 자본에 의해 주어지는 행복의 물질적 기초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직접 행복하게 노동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인간 관계의 문제로 복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복지를 동사무소와 시청에서 나오는 '돈'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생산과 노동의 현장에서 직접 누리는 '헹복'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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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마허는 '좋은 노동'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모든 신체기관이 동우너되는 육체 노동이며, 생산의 전 과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노동이다. 그것은 이웃과 함께하는 작은 규모의 일터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의 노동이며, 이윤 창출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의 실제 필요를 충족시키는 노동이다. '좋은 노동'은 결국 슈마허의 기술론과 슈마허의 경제학이 하나로 만나는 곳, 슣마허가 꿈꾼 '좋은 삶'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다. -p31~32
슈마허는, 우리들 인생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이라고 단언한다. 그것은 부르지아적 안락이 아니라 '주체적 자아의 소멸'로서, 일상적 삶의 지평을 초월함으로서 이루어지는 행복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슈마허에 의하면 '명상'과 '노동'이다. -p37
참으로 지성적인 것은 흙과 농토, 산물과 인간까지 포괄하는 시선, 말하자면 농민의 시선이다. -p48
탐욕과 이기심 같은 악덕을 제어하지 않고 그것을 더욱 부추김으로써 성장의 동력으로 삼은 근대 자본주의 경재학의 논리 그 자체가 고통의 원인임을 지적하는 것은 여전히 대책 없는 이상주의로 매도당할 것이다.
새삼스럽게도 나는 사상의 힘을 생각한다. -p77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욕구, 할 수만 있다면 그 자유의 영역을 넓혀가려는 충동은 인간의 뿌리 깊은 본능이다. -p106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한계를 아는 것이 윤리다. 총체성에 대한 점검을 하지 않는 지성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가. -p134
조너선 코졸은 교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신봉하는지를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드러내자고 제안했다. 교사는 자신의 경험에 따라 거짓 없이 자기 생각을 드러낸 의무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 또한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행동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p231
조너선 코졸이 제시하는 최종의 결론은 '행동'이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행동하기 시작한다면 부적절한 자책감에 시달려야 할 이유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졸은 이런 거대한 문제에 맞선 '직은 행동'을 안내하고 먼저 시범을 보이는 것 또한 교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한다. -p235
누구나 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과 자신만이 부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진 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학교 교육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면서 자기의 몸으로 자기의 시간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근대 학교 교육이 안겨다주는 가장 큰 비극입니다. -p316
선생님의 책을 읽는 것은 한없이 기쁜 배움의 기회이지만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마음을 먹는 것은 하나의 고통이다. 선생님 만큼 양심적이지도, 활동적이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 글도 그러하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감상문을 남겨야 하는데 어줍잖은 말들로 책의 내용에 누를 끼칠까 걱정이다. 부디 청춘들이 이 책을 많이 읽고 현대적 삶과 우리가 살아가야할 앞으로의 꼴을 생각해봤으면 한다. 그리고 삶에서 인문학과 농업을 통해 자신의 삶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가꾸어 나갈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