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하늘. 결국 저녁엔 쏟아붓는 비.

 

학부모가 되었다. 허리 수술한 것도 있지만 큰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육아휴직을 하게되었다. 병가를 쓰고 쉬다가 복직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의 상황과 마음은 휴직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돈 때문에 조금 아쉽긴 하지만 휴직해서 좋다. 아들의 입학식도 그리고 수업하는 것도, 소풍가는 것도 다 지켜보고 내 손으로 챙겨줄 수 있으니까.

 

여자 나이 서른 중반에 한 번 크게 아프다던데 나는 올해가 그런가 보다. 허리 디스크 수술하고 , 4월 말에는 가슴에 큰 멍울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세 달 사이에 전신 마취 두 번의 수술. 대학병원 입원실이 익숙해진 상황. 그래도 아프면서 다시 몸을 돌아보고 건강 관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엔 보지 않던 건강식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운동복과 운동화를 더 사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어번은 30분 이상을 빠르게 걷고, 매일매일 스쿼트며 허리를 위한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이 많이 가벼워지고 탄탄해졌다. 어젠 천문대를 갔는데 15분 정도 올라가는 오르막길을 크게 힘들이지 않고 빠른 속도로 올라갈 수도 있었다. 체력이 전 보다 좋아지는 듯 한 느낌.

 

몸도 조금씩 나아져서 아이 등교한 후 여가 시간에 사람들 만나고 운동하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쇼핑하곤 한다. 오늘은 큰 아들의 같은 반 엄마들 몇이 모여 점심을 먹었다. 먼저 친해져 있는 사람들과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 어색함이 있어 낯을 가리는 나는 그저 밥만 조용히 먹었다. 낯선 사람과 밥 먹는 것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소득이 있었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켈리그라피를 배울 수 있는 곳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큰 아들 임신 했을 때 홈패션을 배웠던 문화센터에서 켈리를 가르쳐준다고 해서 오늘 바로 가서 문의하고 등록했다. 켈리와 더불어 팝아트도.

 

글과 그림. 항상 갈망하면서도 선뜻 하지 못했던 일들. 시간이 있을 때 배워두면 평소에 짬짬이 취미삼아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내 속에 쌓여있던 많은 것들도 표현할 수 있겠지.

 

아프고 나서 내 삶에 충실하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존중받지 못하고 항상 좌절감과 슬픔을 느끼던 나날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나 혼자서도 온전히 행복할 수 있는. 그런 날들. 그런 마음들. 미련을 버릴 수 있는 단호함. 뒤 보다 앞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아들이 받아쓰기를 줄곧 100점 받아왔다. 수학문제도 어렵지 않게 잘 풀어가고 있고. 요즘 컴퓨터 게임을 조금씩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물건을 잘 챙기지 못하는데 그 점 말고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는 듯 하다.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어하고 어울리고 싶어하고. 배운대로 교과서대로 생각하고 말하려고 하는 건 내 어릴 적 성격을 많이 닮은 것 같다. 엄마 성격 닮으면 피곤한데...

 

밖에 비가 줄창 내린다. 목요일까지는 계속 약속과 일정이 있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 뭐 그러하다. 그냥 이런 일상이 좋다, 아프지 않고 담담히 살아가는 일상. 책도 좀 읽고 서평도 조금씩 써야지. 5월 예쁜 계절.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예쁜 봄 더 즐겨야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5-05-13 0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1월에 발병한 허리디스크는 결국 1월말 수술로 이어졌다. 발병 후에도 조금씩 책 읽고 독후감도 쓰고 했는데 수술 이후에는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겨우겨우 읽은 것이 `금요일엔 돌아오렴`이었다. 앉아있기 힘드니 책 읽기도 멀어지고. 그동안 책을 사는데 참고 했던 한겨레 신문도 안 읽게 되니 새책이 대한 소식도 못 접하고. 누워 핸드폰으로 짧은 기사들 sns만 했다. 그런데 자꾸 글에 대한 미련이 버려지지 않아서 결국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했다. 한동안의 버릇 때문인가 책을 곁에 두고도 읽히지 않다가 어제 겨우 몇 페이지 읽었는데 문장들이 마음을 두들겨 빗소리 들으며 책 읽는다.
역시 문장이 주는 느낌, 힘, 생각, 표현의 다양함에 감탄의 재미는 버릴 수가 없다. 건강해져서 전처럼 진득하게 문장이 주는 기쁨을 맛보고 싶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붉은돼지 2015-04-19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술을 받으셨군요. 빨리 쾌차하셔서 전처럼 독서의 즐거움을 만깍하시길 바랍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삶을 자신의 삶과 함께 쉽게 풀어서 쓴 책.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일본의 시골빵집 이야기를 통해 수비게 이해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황과 나 - 개혁가 프란치스코와 한국
김근수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란치스코 교황의 열풍 속에서 본질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책. 종교가 추구해야 하는 것,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고 난 후, 내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비판적 사고와 경계에 서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해주는 책. 두고두고 곱새길 문장이 가득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